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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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인하
작성일 개국626(2017)년 1월 14일 (토) 23:54  [자시(子時):삼경(三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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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가주서] 승정원일기 : 개국624(2015)년 11월 상 (교정)
상(上) 11년, 11월 1일 경술(庚戌)
행이조좌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승정원에서 주관하여 제181차 윤대(輪對)를 4일까지 진행하였다.
* 1일, 행이조좌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이 아뢰기를 "관청 수장에 대하여 아룁니다. 사헌부에는 행집의 서민교가, 이조와 승정원에는 소신이, 호조와 형조에는 시정 김관이, 예조에는 행교감 심기열이, 병조와 훈련원에는 행정랑 이성필이, 공조에는 행제검 이다행이 있습니다. 현재 11월 제1차 평정기간이니, 소신과 행병조정랑 겸훈련원판관 이성필의 평정을 내려주십시요.
다음으로 이조의 업무에 대해 아룁니다. 제55차 대과가 종료되었고 이번 대과에서 무공랑 권지교서관저작 조예인이 대과 무과 장원급제를 하였습니다. 응시 당시에는 무관이었고 또 초자혜택에 있어 절목에서는 '대과 급제자에 대한 초자 혜택은 출사 후 1회에 한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문무과 구분에 대한 것은 없었으므로 그대로 초자혜택을 시행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정6품 승의랑으로 4계 가계하였습니다. 또 이번 대과에서 소신이 병과로 급제하였기에 평점 1점을 가산하였습니다. 한편, 지난번에 아뢰었듯 오는 11일과 14일에 지방관들의 임기가 끝나므로 이에 따라 병조와 인사협의 중에 있습니다. 인사(人事)는 곧 만사(萬事)이므로 신중을 기해 협의를 진행할 것이며 협의가 완료되는대로 어전에 계하겠습니다. 이 외에는 따로 아뢸 사안은 없으며 상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승정원의 업무에 대해 아룁니다. 승정원에서는 지난 윤대에서 아뢴 것과 마찬가지로 승정원일기 찬술에 주력하였으며 개국612(2003)년 12월, 개국613(2004)년 06월~09월 일기를 작성하였고 개국624(2015)년 10월 일기도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또, 개국613(2004)년 01월~05월 일기는 전임 주서 김성, 이산 등이 작성하여 서각에 입고하였으나 소신이 살펴본 바 전하께서 세제시절 대리청정으로 정무를 보셨던 것이나, 각 아문에 별도로 내리셨던 비망기나 전교 등 중요 기록들이 누락되어 있었으며, 재위년도에서도 오류가 있어, 오탈자 및 체계 교정을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개수(改修)하였고 유사(有司)의 도움을 받아 교체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신의 거취에 대해 아룁니다. 이는 차후 계본으로 아뢸 것이나 오는 12일에는 소신이 외관직 경력과 좌랑 경력 등을 충족하여 대부로 승차 예정에 있습니다. 지난날 전하께서 '가주서도 품위에 맞게 5품 이하에서 차출하라.'라고 하셨고 또한 소신이 가주서로 승정원에 부임한지도 5개월이 되어 가니 이제 그만 승정원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전하께서 윤허하여 주신다면 후임 관원을 의망하여 차후 인사 계본에서 아뢰겠습니다."라고 하였다.
* 같은 날, 행병조좌랑 겸훈련원판관 이성필이 아뢰기를 "병조에서는 현재 상시 업무를 진행하고 있사옵나이다. 제55차 대과 시행 결과 등에 대한 계본에 올린 대로 무과 을과 제1인에 급제한 강건의 경우 과거 훈련원에서 군졸 및 군관으로 근무한 경력과 성균관 제20기 무과 유생으로 졸업한 경력 2가지 모두가 있음으로 정7품 적순부위로 초수하였으며 수의부위 권지군기시봉사 임충빈은 초자 혜택을 적용하여 종7품 분순부위로 2계 가계하셨사옵나이다. 현재 이조에서 아뢴대로 인사협의가 진행되고 있사오며 협의가 완료되는 대로 이조에서 계할 방침입니다.
훈련원의 업무는 10월 평가가 완료되었으며 10월 병사수당을 호조로 이첩한 가운데 11월 일정을 공고하였사옵나이다. 이 외에는 상시 업무를 수행하고 있사오며 제55차 대과 시행에 따른 시관 혜택은 예조의 공문이 도착하는대로 계하도록 하겠사옵나이다."라고 하였다.
* 같은 날, 행사헌부집의 서민교가 아뢰기를 "사헌부는 특별히 계할 사항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 2일, 전하께서 전교(傳敎)하시기를 "이조에 명한다. 대과 무과에서 장원 급제자가 나온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은영연 시행 등에 관하여는 따로 예조에 하명하겠다. 승정원 관원 인선은 계청대로 하고, 이제까지 입고된 전체 승정원일기의 간행 내역을 각 관원의 기여를 중심으로 정리하여 보고토록 하라."라고 하였다.
* 같은 날, 행전연사제검 이다행이 아뢰기를 "현재 공조는 상시 업무를 진행하고 있사오며 3차 시전세 회의를 진행중에 있습니다. 신의 접속 체력이 비루하여 지지부진한 면이 있사오나 끝까지 진행하여 괄목할 만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 같은 날 행병조정랑 겸훈련원판관 이성필이 아뢰기를 "금일 예조로부터 문관 중 시관 혜택을 받을 대상자에 대한 공문이 도착하였사옵나이다. 이번 제55차 대과 시관 중 시관 혜택을 받을 대상자는 무관은 참시관을 맡았던 신과 통훈대부 의주목사 신 이운 2인이며, 문관은 통훈대부 내자시정 겸형조정랑 신 김관, 중직대부 행전연사제검 신, 이다행. 봉정대부 행승문원교감 신 심기열 이상 3인이옵나이다.
하옵고 권지군기시봉사 임충빈은 훈련원으로 사령, 정직으로 전환시켜 신을 대신해 훈련원의 업무를 맡기고, 적순부위 강건은 권지군기시직장으로 사령시키고자 하옵나이다. 윤허만 내리시면 사헌부의 서경을 거쳐 즉시 사령토록 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 같은 날, 행승문원교감 심기열이 아뢰기를 "이번 대과 결과로 무과에서 장원이 나왔사옵니다. 이는 아조의 경사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 이에 대한 결과로 은영연을 시행하려고 하옵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성균관 관련하여 교임에 임용될 자들을 탐문 중에 있사옵니다. 마무리되는 대로 어전에 계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오늘, 홍문록 등재자로부터 후보자 추천에 대한 간찰을 받았사옵니다. 어전에 계하도록 하겠나이다.
현재 예조는 상시 업무를 진행중에 있사옵니다."라고 하였다.
* 같은 날, 내자시정 겸형조정랑 김관이 아뢰기를 "호조에서는 현재 상시업무를 수행 중에 있으며, 경아전으로 업무수행 중인 호조 녹사 강건이 개국624년 10월 31일에 초수사령되어 품계를 보유하게 되었사옵니다. 전하께서 지난 제170차 윤대의 비답에서 하명하신대로 경아전은 무품자로 선발되어야 하기에 강건의 직역을 해제 및 면직하였사옵니다. 따라서 다시 경아전을 선발하여 기존의 업무를 계속 진행하고자 하옵니다.
형조에서는 상시업무를 수행 중에 있사옵니다."라고 하였다.
* 3일, 행승문원교감 심기열이 아뢰기를 "현재 성균관 운영에 대해 아뢰겠나이다. 성균관 교임 모집 공고를 이달 5일까지 받기로 되어 있었사옵니다. 교임 신청자가 3인이나 되오고, 무과 강의는 행병조정랑 겸훈련원판관 신 이성필이 담당해주기로 하였사옵니다.
신이 민국이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옵니다. 이에 따라 성균관 행정적인 업무를 신이 맡고, 교임을 심사하여 채용되는 대로 성균관 운영을 계속하려고 하옵니다.
또한 다시 한번 성균관이 문을 닫게 된다면, 아조의 교육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리라 사료되옵니다. 성균관 운영에 대해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신이 노력하여 교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 같은 날, 행병조정랑 겸훈련원판관 이성필이 아뢰기를 "신이 불민하여 큰 실수를 범하고야 말았사옵나이다. 권지군기시봉사 임충빈은 일단 정직전환부터 시킨 다음 차후에 인사 이동에 맞춰 훈련원봉사로 사령하고자 하며 적순부위 강건은 그대로 권지군기시직장으로 사령하고자하옵나이다. 윤허만 내리시면 강건의 경우 사헌부의 서경을 거쳐 즉시 사령토록 하겠나이다.
또한 금일부터 선천안 등록에 대한 회의를 다시 진행하고 있사옵나이다. 회의가 끝나는대로 계하겠사옵나이다."라고 하였다.
* 4일, 전하께서 전교(傳敎)하시기를 "예조에 명한다. 성균관 교임에 관한 건은 교육 진흥을 위해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다. 내실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은영연 시행에 관한 일정이나 계획을 정식으로 계하라. 지난 9월에 은영연을 한 차례 시행하였으므로, 그 이후 급제자가 몇인 안 되니 예조 청사에서 시행하는 정도면 충분하겠다.
병조에 명한다. 권지 관원의 인사도 계청대로 재가한다. 시관 혜택에 관한 건은 규례대로 시행하라.
이외 여러 관청에서 계한 바는 잘 알았다. 특별한 사안이 제기되지 않았으므로 이만 윤대를 마친다."라고 하였다.
○ 의주목사 이운이 북삼도 현황에 대하여 장계를 올려 계하기를 "먼저 행정에 관하여 아룁니다. 북삼도에 계류 중이거나 미결 된 업무는 현재 없습니다. 관속은 황해도 병방이 10월 30일까지 재직 중이었으나 31일 자로 대과 초자 혜택으로 승륙되면서 동일 면직 하였습니다.
호구에 대하여 아룁니다. 금일(1일)을 기하여 황해도의 전체인구는 28인이고 유효인구는 2인이고 평안도의 전체인구는 21인이고 유효인구는 4인이고, 함경도의 전체인구는 33인이오며, 유효인구는 3인 입니다. 함경도의 유효인구 1인 증가 외에는 모두 지난 장계의 내용과 같습니다.
교육에 관하여 아룁니다. 황해도에는 자운서당이, 평안도에는 대동학당, 함경도에는 천손서당이 있으며 현재 모든 교육기관에서 강의가 진행 중이지 않습니다.
지역 모임에 대하여 아룁니다. 황해도에는 용화연가가, 평안도에는 아현문중이, 함경도에는 박문독서회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황해도 모임에 대하여 아뢰겠습니다. 용화연가는 현재 북삼도 내에서 가장 활발한 모임으로 모임 구성원의 활동이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평안도 모임에 대하여 아뢰겠습니다. 아현문중은 아조 내 가장 오래된 가문모임으로 현재는 예전만큼 활발하지 않지만 작게나마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함경도 모임에 대하여 아뢰겠습니다. 박문독서회 역시 모임 구성원의 활동이 작게나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신이 관장하는 지역의 모임을 면밀히 살펴 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으로 해서 도울 것입니다.
형정에 관하여 아룁니다. 현재 관내에는 현재 평안도 태천현에는 학교폭력으로 사람을 자살에 몰아넣은 서원구와 우재곽이 유배중 이며 이들은 개국626년 4월 20일에 방면될 예정 입니다. 함경도 경원부에는 황산 테러를 저지른 이준항이 유배중 이며. 이준항은 개국630년 1월 3일에 방면될 예정입니다. 함경도 온성부에는 조두숭이 유배중 이며. 조두숭은 개국650년 6월 18일에 방면될 예정입니다.
군정에 관하여 아룁니다. 북삼도의 모든 감영과 군영에는 소속 군사가 없습니다.
재정에 관하여 아룁니다. 북삼도의 재정은 전결세와 결작세 징수로 이뤄지며 평안감영의 공금으로는 1850냥, 황해감영의 공금으로는 7510냥, 함경감영의 공금으로는 1370냥이 있습니다.
사업에 관하여 아룁니다. 지난 10월 17일부터 10월 24일까지'찾아라! 맛있는 이북음식' 전국행사를 실시하였고 성공적으로 행사가 마무리 되었으며 수당에 대한 호조 통보 절차까지 완료하였습니다.
신이 북삼도로 부임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임기를 다하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그간 나름대로는 도정을 살핀다 마음 먹었지만 신의 재주가 미천하여 치적은 차치하더라도 전하의 치세가 북삼도 전역에 닿게하지 못하였습니다. 여러 부족한 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관내 교육 진흥에 대하여 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지방관으로서의 소임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 할 것입니다. 더욱이 요즘은 요순시대에 비견될 만큼 내외가 안정된 때인데 이러하니 신의 마음이 더욱 무겁습니다. 얼마남지 않은 임기지만 임기만료까지 도정에 더욱 힘쓰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장계한 바를 잘 알았다. 특별한 내역이 없고 지난 장계가 올라온 지 불과 20일이 지났을 뿐이니, 임기를 마칠 때까지 따로 장계하지 않아도 되겠다."라고 하였다.

11월 2일 임오(壬午)

행이조좌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승문원교감 심기열이 홍문록 후보자 등록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전하께서 명하신대로 홍문록 등재 대상을 탐문한 결과 제54차 문과에서 갑과 제2인으로 급제하였고, 이번 제55차 대과에서도 병과 제1인으로 급제한 행이조좌랑 겸승정원가주서 신 정예림을 추천하옵니다. 좌랑은 올해 4월에 출사하여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고, 승정원일기를 찬술하는 등 적지 않은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홍문록에 오르기에 적절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또한 중직대부 행전연사제검 신 이다행을 추천하고자 하옵니다. 그는 지난 개국620년 4월 24일에 종사랑으로 초수하여, 현재 1,321일 동안이나 관직에 근무하고 있사옵니다. 그는 조정에서 많은 곳으로 사령되어서 여러 가지 직무를 수행하였사옵니다. 덕망이 출중한 인재라고 사료될 만 하옵니다. 홍문록에 등재되어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사료되옵니다.
지난 개국624년 10월 27일에 홍문록 등재자인 조산대부 신 이정언에게 문의해본 결과, “두분 다 학식과 덕망을 고루 갖추신 분들이니 저어할 까닭이 없습니다. 따로 결격사항에 해당되는 부분이 없다면 저 또한 저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답변을 받았사옵니다.
이번 후보자 추천에 근거는, 홍문록 업무 지침 중 “홍문관이 가동하고 있지 않으면 예조에서 어전 재가를 얻어 홍문록 작성을 주관하되, 전직 홍문관원(파직자, 삭직자 제외), 홍문록 등재자 등의 의견(적임자 추천)을 반영한다.”를 기초로 하여 탐문하였사옵니다.
이에 신은 홍문록 후보 등재자로 행좌랑 신 정예림과 행제검 신 이다행을 올리고자 하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지침에 있는 예조의 홍문록 추천 근거를 나열하면서 바로 위에 명시되어 있는 홍문록 후보 대상자에 관한 내용은 살피지 않았는가. 작년 8월의 홍문록 갱신 재가 이전에 출사한 자들은 후보가 될 수 없다. 행좌랑 1인만 등재하라."라고 하였다.
○ 행이조좌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이 전체 승정원일기 간행 내역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현재 궐내 서각에 입고된 승정원일기는 개국612년 12월 일기부터 개국624년 10월 일기까지입니다. 용량 문제로 상,하로 분권하여 편찬한 것도 있어 권수로는 총 141권(분권을 고려하지 않을시 총 130권)이며, 만11년 10개월 동안의 기록입니다. 비록 창국(昌國)부터 일기가 기록된 것은 아니고 실제 조종조의 일기와 비교하자면 부족한 부분이 많겠으나, 여러 승정원 관원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오늘날 나름의 의미가 있는 아조의 승정원일기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하여, 전하의 명을 받들어 이제까지 입고된 전체 승정원일기의 간행 내역을 각 관원의 기여를 중심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기여는 포상의 정도, 편찬 권수 등을 고려하였습니다.
먼저 승정원일기 편찬의 노고를 인정받아 수훈(受勳)한 자들입니다. 지금의 승정원일기 편찬 규례를 마련한 故 임某가 있습니다. 개국616년 02월~03월, 개국616년 06월~09월, 개국618년 11월~12월, 개국619년 01월~07월 일기 등 총 15권을 직접 작성하였고, 개국615년 10월~12월, 개국616년 01월, 개국616년 04월~05월, 개국616년 10월~12월, 개국617년 01월~02월, 개국618년 09월~10월 일기 등 총 13권을 교정하였습니다. 승정원일기 10권 작성·교정으로 평점 7점 가산을, 이후 추가로 근정삼급 진충장을 수훈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중직대부 故이수현입니다. 개국618년 01월~04월, 개국618년 06월~08월, 개국619년 08월~12월 일기 등 총 12권을 직접 작성하였고, 개국618년 05월, 개국618년 09월~개국619년 07월 일기 등 총 12권을 교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1계 가계, 이조표창 및 평점 가삼점의 포상을 받았고 근정삼급 진충장을 수훈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통선랑 김성입니다. 개국613년 01월~02월, 개국614년 01월~08월, 개국617년 05월~12월, 개국620년 01월~03월 일기 등 총 21권을 직접 작성하였고, 개국617년 03월~04월 일기 등 총 2권을 교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1계 가계만 우선 포상을 받았고 훈포장에 대해서는 정기 포상에 반영하도록 하여 근정삼급 진충장을 수훈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신 정예림입니다. 개국612년 12월, 개국613년 06월~12월, 개국622년 10월, 개국623년 03월~개국624년 10월 일기 등 총 29권을 직접 작성하였고, 개국613년 01월~05월, 개국618년 01월~02월, 개국622년 11월~12월, 개국623년 01월~02월 일기 등 총 11권을 교정하였습니다. 지난 문관 포상에서 18권의 일기 작성과 6권의 일기 교정에 따라 근정삼급 진충장을 수훈하였고 이후 16권을 추가 편찬 및 교정한 것입니다.
수훈자 중 마지막으로 조산대부 이정언입니다. 개국621년 09월부터 개국622년 09월 일기까지 총 13권을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책례도감 낭청으로서 노고를 인정받아 근정삼급 진충장을 수훈하였습니다.
이하로는 승정원일기 편찬의 노고를 인정받아 수훈이 아닌 포상을 받은 자들입니다.
중직대부 이다행입니다. 개국620년 12월부터 개국621년 08월까지 총 9권을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평점 가삼점(加三點) 및 창국대전 한 질을 하사받은 바 있습니다.
중훈대부 황석입니다. 개국620년 04월부터 07월까지 총 4권을 직접 작성하였으며 평점 가사점(加四點)을 받았습니다.
급제 윤선거입니다. 이 당시는 승정원일기 편찬 규례가 마련되기 이전이었으나 개국616년 04월, 개국616년 12월, 개국617년 01월~02월 등 총 4권의 일기를 직접 작성하였으며 이 중 3권에 대해서만 노고를 인정받아 평점 가삼점(加三點)을 받았습니다.
소위장군 故민진후입니다. 개국618년 05월, 개국618년 09월~10월 등 총 3권의 일기를 교정하였으며 평점 가이점(加二點)을 받았습니다.
통정대부 천어입니다. 승정원일기 편찬 규례가 마련되기 이전에 개국615년 10월~12월, 개국618년 05월 일기를 작성하였고 편찬 규례가 마련된 이후에 개국620년 08월 일기를 직접 작성하여 총 5권을 작성하였고 개국620년 07월 일기를 교정하였습니다. 편찬 규례가 마련된 이후에 작성·교정한 일기 2권에 대해서만 노고를 인정받아 평점 가일점(加一點)을 받았습니다.
이하로는 승정원일기를 편찬하였지만 때를 놓쳐 안타깝게도 포상을 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봉정대부 심기열입니다. 개국622년 11월부터 개국623년 01월 일기까지 총 3권을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통정대부 한명회입니다. 개국620년 09월 일기, 개국623년 02월 일기 등 총 2권을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봉정대부 이여송입니다. 개국620년 10월부터 11월 일기까지 총 2권을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급제 이산입니다. 개국613년 03월부터 05월까지 총 3권을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통훈대부 故이진입니다. 승정원 편찬 규례가 마련되기 이전에 개국616년 10월부터 11월 일기까지 총 2권을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봉렬대부 故박규수입니다. 승정원 편찬 규례가 마련되기 이전에 개국617년 03월부터 04월 일기까지 총 2권을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통훈대부 정태수입니다. 승정원 편찬 규례가 마련되기 이전에 개국618년 10월 일기 1권을 직접 작성하였고 개국618년 09월 일기 1권을 교정하였습니다.
통훈대부 이운입니다. 승정원 편찬 규례가 마련되기 이전에 개국618년 09월 일기 1권을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계공랑 故홍국영입니다. 승정원 편찬 규례가 마련되기 이전에 개국616년 05월 일기 1권을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급제 조지아입니다. 승정원 편찬 규례가 마련되기 이전에 개국616년 01월 일기 1권을 직접 작성하였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실록찬수청이 정지되어 우리 조정의 기록이 역사로 정리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나마 승정원일기가 이처럼 11년 분량을 간수하게 되었으므로 후세를 위해 실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체로 10여 권을 간행하면 삼급 근정훈장을 수여하였는데 지금 행좌랑의 편찬 분량이 애매하여 이급 훈장을 상신하기에는 형평상 무리가 있다. 그러나 승정원에서 물러나려는 시기에 이러한 노고에 대해 아무런 치하가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니, 전감찰 김성의 전례에 따라 우선 한 자급을 올린다. 일단 정랑으로 내부 승진시키고, 자급을 올리는 것은 승품 요건을 충족시키는대로 연이어 시행하라."라고 하였다.

11월 3일 계미(癸未)
행이조좌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1월 4일 갑신(甲申)
행이조좌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이조좌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이 문관 인사 및 통청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이미 윤대에서 아뢴 바 있지만, 현재 병조와 인사협의 중에 있고 협의가 완료되는 대로 소신이 전조(銓曹)를 대표하여 인사안을 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병조에서 알려오기로는 선천안 문제를 처리함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선천안 문제를 해결하는 대로 인사건에 대해 회신을 해주겠다고 하며 인사이동 건은 조금 시일이 걸릴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아조(我朝)의 특성상 전하께서도 인군(人君)이시기에 매일매일 정무(政務)를 보시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또 헌부 역시 생업(生業)으로 다망(多忙)하므로 서경을 처리함에도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곧 다음주가 행경상도검률 하유의 체직일이므로 인사행정 절차에 소요될 시간들을 감안하였을 때 부득이하게 아뢴 바와 달리 병조와의 협의가 필요 없는 사안 한에서, 문관 인사만 별도로 이조에서 아뢰고자 합니다. 이는 평정과 녹봉에 불이익을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먼저 헌부와 이조는 현재 조정 사정이 여의치 않으므로 통정대부 서민교와 소신이 유임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승정원입니다. 작일(昨日) 첨지중추부사 천어가 관직을 신청해왔습니다. 접속력이 좋지는 않지만 조정의 사정을 외면할 수 없어 충심(忠心)으로 결단을 내린 듯합니다. 천어의 관력(官歷)과 접속력을 감안하여 승정원 동부승지로 의망합니다.
다음으로 호조입니다. 행승문원교감 심기열을 의망합니다. 행교감은 개국624년 07월 14일에 예조정랑으로 예조에 부임한 후 지금까지 약4개월간 예조에서 근속하고 있습니다. 예조에 부임하기 전에 잠시 오위에 있었는데, 오위 이전에도 약2개월을 예조에서 근속하였습니다. 따라서 경험을 넓히기 위하여 순환 보직을 고려해보았을 때 호조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행교감이 개국619년 12월에 잠시 행호조산사로 임명되었던 경우 외에는 호조에서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성균관을 보니 충분히 다음 학기도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윤대에서 행교감이 아뢰기를 민국의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고 성균관의 행정업무를 맡겠다고 한 바 있으므로 성균관을 겸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하여 행교감을 행내섬시첨정 겸성균관직강(호조 내섬시 종4품직, 성균관 정5품직)으로 의망합니다.
행교감의 호조 체직으로 인해 공석이 되는 예조는 시정 김관을 의망합니다. 이 또한 행교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정의 관력(官歷)과 순환 보직을 생각한 것입니다. 책봉례로 인해 임시로 세자시강원보덕직을 겸하긴 하였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였을 뿐 정식으로 예조 업무를 본 것은 아닙니다. 시정 김관은 개국621년 02월부터 07월까지 약5개월간 예조에 있은 후로 지금까지 예조에 근무하지 않았습니다. 하여 시정 김관을 예빈시정 겸형조정랑(예조 예빈시 정3품 준직, 형조 본조 정5품직)으로 의망합니다.
다음으로 임기가 끝나가는 지방관들에 대한 것입니다. 행경상도검률 하유는 승문원박사(예조 승문원 정7품직)로, 행강원도검률 정도전은 행승문원저작(예조 승문원 정8품직)으로 의망합니다. 이는 이들이 지방관으로 부임 이전에 각각 예조 교서관 정8품직인 교서관저작과 예조 승문원 정9품직인 승문원정자를 맡았고 외관직을 수행하며 2개월이 지났음을 감안한 것입니다. 마침 시정 김관은 형조에서 법률 개정 업무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 두 관원이 예조로 배치된다면 시정 김관을 훌륭히 보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행강원도검률 정도전의 체직으로 공석이 되는 중부는 권지교서관저작 조예인을 행한성부참군(한성부 정7품직)으로 의망합니다. 권지교서관저작 조예인은 이번 11월 제1차 평정으로 권지가 끝납니다. 권지저작 조예인은 이번 제55차 대과 무과에서 장원이라는 실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놀라운 성적으로 급제하였으며 또 북삼도에서 의주목사 이운의 밑에서 관속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권지를 마치자마자 중부지역을 맡겨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그간의 권지저작의 행적을 살펴보았을 때 품행이 방정(方正)하고 성품이 강직(剛直)하며, 이번 대과 급제에서도 알 수 있지만 문재(文才)도 빼어나니 통청(通淸)을 허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혹자(或者)는 권지저작의 통청 자격을 논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할지 모르지만 소신의 생각으로는 참하관에 불과한 前부사과 김갑이 실직에 있었던 기간이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음에도 통청이 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정6품 참상관인 권지저작이 그보다 부족할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청컨대 권지저작의 통청(通淸)을 윤허하여 주십시오.
행경상도검률 하유의 체직으로 공석이 되는 하삼도는 행전연사제검 이다행을 행청암도찰방(종6품 무록직)으로 의망합니다. 비록 제검 이다행이 녹관(祿官)으로 전환되지는 못하였으나 이 또한 앞의 경우들과 마찬가지로 관력(官歷)과 순환보직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제검 이다행의 최근 외관 경력은 개국622년 11월 15일부터 개국623년 01월 15일까지의 행곡산군수로 근속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경관직에서만 근무하였으므로 이번 기회에 지방관으로 근무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소신이 아뢰지 못한 병조, 공조, 북삼도 지방관 등에 대한 의망은 병조에서 따로 계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소신이 아뢴 바들을 허하여 주신다면 행검률 하유는 임기가 끝나는 11월 11일에, 그 외에 관원들은 행검률 정도전의 임기가 끝나는 11월 14일에 맞춰 일괄 사령하고자 합니다. 하삼도의 경우 3일간 공백이 생기나 잠시동안 하유가 대행을 하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아뢴 뒤, 추가로 아뢰기를 "소신이 권지저작을 행한성부참군으로 의망하였는데, 권지저작이 아조의 형정(刑政)에 상당한 관심을 표하며 외람되지 않는다면 형조도 겸하여 일을 배워보고 싶다는 의견을 전해왔습니다. 신이 알아본 바 권지저작이 민국에서 법학(法學)과 연(緣)이 있는지라 시정 김관과 또 그가 추진하고 있는 법률개정 업무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사료됩니다. 하여 권지저작을 행한성부참군 겸형조명률(형조 본조 종7품직)로 의망합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승정원, 호조, 성균관, 예조 등의 인사를 원안대로 재가한다. 권지저작은 경기검률로 차송하고 통청록 갱신은 문반 외관직을 마친 후에 다시 검토한 후 계하라. 형조 겸직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출사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중부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관 직임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병조에서 공조 인사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므로 하삼도 인사는 잠시 보류한다. 임기 교체 이전까지 결정치 못하면 현임이 계속 대행케 하라."라고 하였다.

11월 5일 을유(乙酉)
이조정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사헌부집의 서민교가 병조정랑의 포언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계하기를 "지난 2일, 행정랑 신 이성필이 사가(私家)에서 포언을 하였습니다. 그 말이 지극히 어지러워 감히 어전에서 논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 말을 상고한즉, 업무 상의 고충과 함께 일신의 피로 등이 겹쳐 감정이 북받침에 인하여 나온 말인듯 합니다. 그 심정이 일견 이해되고 사가 내에서 한 말이지만, 그는 저자의 시정잡배나 일개 촌민이 아닌 관원입니다. 과연 무엇을 '저지르고' 무슨 이유로 '업무를 접'는다는 것인지, 무슨 마음을 먹고 이같은 참람된 말을 하고 있는지 신은 도통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대학>에 이르기를, '이 때문에 말이 어그러져 나간 것은 또한 어그러져 들어오고 재물이 어그러져 들어온 것은 또한 어그러져 나간다.' 하였습니다.
<예기>에 이르기를, '군자의 용모거지는 조용하고 바르니 높일 자를 보고서 공경하여 조심한다. 발의 용모거지는 무겁게 하고 손의 용모거지는 공손하게 하고 눈의 용모거지는 단정하게 하고 입의 용모거지는 그치게 하고 목소리의 용모거지는 고요하게 하고 머리의 용모거지는 곧게 하고 숨소리의 용모거지는 조용하게 하고 일어선 용모거지는 덕스럽게 하고 얼굴빛의 용모거지는 엄숙하게 하여야 한다' 하였습니다.
또 <예기>에 이르기를, '무릇 사람을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예의이니, 예의의 시작은 용모와 체모를 바르게 하고 얼굴빛을 가지런히 하고 사령(辭令)을 순하게 하는 것에 있다. 용모와 체모를 바르게 하고 얼굴빛을 가지런히 하고 사령을 순하게 한 뒤에야 예의가 갖추어지니, 임금과 신하를 바루고 부모와 자식을 친애하게 하고 어른과 젊은이를 화합하게 하여서, 임금과 신하가 바르고 부모와 자식이 친애하고 어른과 젊은이가 화합한 후에야 예의가 우뚝선다' 하였습니다.
<논어>에 이르기를, '조정에서 하대부와 더불에 말씀하심에 강직함과 같으셨으며 상대부와 더불어 말씀하심에 화기애애함과 같으셨다. 임금께서 계시거든 조심하고 삼가함과 같으셨으며 위의가 알맞음과 같으셨다' 하였습니다.
이는 언행을 삼가할 것을 후세에 경계하시고, 모든 일이 잘 되어가는 것 또한 언행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른 것입니다. 이로써 미루어보면, 신 이성필의 일이 과연 온당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는 위로 임금을 받들어 정사를 돕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보듬고 살피니, 임금과 백성 사이에 있으면서 그 위상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또한 신하된 자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을 마음에 새기고 다잡아 막중한 소임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그의 사정을 신이 다 알 수 없어서 얼마나 극한 어려움에 처하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하된 자로서 어려움에 처하였어도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있으니, 바로 이 포언한 일도 그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관리가 덕스럽지 않고 장중하게 백성에게 임하지 않는다면, 백성의 마음은 들뜨고 안정되지 못합니다. 더구나 그는 이 나라의 군사를 책임지는 병조의 장관이자 낭관이고 군직에 있으면서 사병을 다스리는 지위에 있는데도, 말이 이처럼 가볍고 거조(擧措)가 망령되니 과연 믿고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이 없는 이와는 함께 조정에 설 수 없고, 백성을 불안하게 하는 이와는 함께 의리를 논할 수 없습니다. 행병조정랑 겸훈련원판관 신 이성필을 향리로 방축하시거나 엄중히 징계하시기를 감히 청합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정랑으로 하여금 일의 전말을 밝혀 소명케 하라. 처분은 사헌부의 계본이나 계사에 의거하겠다."라고 하였다.
○ 이조정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이 병조정랑의 언행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계하기를 "소신은 오늘날 조정에 몇몇 관원들은 후의(厚意)를 지나치게 입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생각으로 어전에 글을 올린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이는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조정의 기강이 흐트러지고 천직(天職)을 소홀히 하여도 근심하지 않는 풍조(風潮)가 만연해질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찬찬히 다시금 생각해보니 조정의 사정이 그리 권도(權道)를 발휘하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는 망극한 지경이라, 전하의 비답들을 받들며 오늘날 조정의 형편과, 또 전하의 지극한 자애로우심에 소신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하들에게 잘못이 있어도 너그럽게 봐주시며 벌을 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찬찬히 잘못된 점을 일러 고치게 하셨으니 신하들의 처지를 십분 헤아려 주신 것입니다. 응당 오늘날 조관(朝官)이라면 이와 같은 은혜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하물며 전하의 은혜를 직접 받은 관원들이야 따로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소신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그저 견마지로(犬馬之勞)를 아끼지 않고 힘써 최선을 다해 업무에 임하는 것만이 성은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국에 들리는 말로는 병조정랑이 사가에서 포언(暴言)을 했다고 합니다. 소신이 듣기로도 망령(亡靈)되어 탑전(榻前)에 전문(全文)을 올리기가 민망합니다. 병조정랑의 포언이 사가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담벼락을 넘어 사가 밖에 있는 이들도 알게 되어 천하에 퍼졌는데 무심히 지나치기는 어려운 내용들이니 조정에 풍기(風氣)를 감독하는 헌부에서 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병조정랑의 처지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닙니다. 미루어 짐작해보면 조정을 생각하는 마음은 깊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정랑 스스로도 이에 통탄(痛嘆)해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의 품계가 대부에 이르렀고 그의 말 한마디는 민심(民心)에 영향을 미치기에 충분합니다. 현재 병조에 산적한 업무가 많습니다. 선천안의 갱신과 지방관 임기 만료에 따른 무관 인사건, 권지의 관직 사령 등이 그러합니다. 병조의 수장이라면, 다른 망령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산적한 업무들을 해결하는 것만을 생각하여도 부족합니다.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아도 성은에 보답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는데 하물며 포언은 전하께서 병조정랑에게 내린 성은(聖恩)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분수에 넘치는 행동입니다.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되고 그 사람의 성정을 반영하는 것이니 쉬이 넘기기 어렵습니다. 다만, 병조정랑이 업무의 막중함을 못이겨 힘이 부치는 듯합니다. 정랑이 칭병(稱病)을 청한 적도 있을 만큼 등청 여건이 여의치 않습니다. 문관의 인사를 관장하는 소신이, 무관이고 또 병조 수장의 일에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나, 전하께서 이러한 점들을 살펴 헤아려 적절한 조처(措處)를 내려주심이 온당(穩當)한 줄로 아룁니다. 삼가 바라건대, 영명(英明)하신 비답을 내려주십시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차자한 뜻을 잘 알았다. 지난 계본에서 행정랑 이성필이 입원과 휴가에 관한 언급을 하였으므로 평온한 일상 상태에서 나온 언행은 아닐 것으로 짐작하지만, 일단 사헌부의 탄핵이 제기되었으므로 전후 사정을 살펴 처분하겠다."라고 하였다.
○ 행교서관박사 조예인이 병조정랑의 언행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계하기를 "이미 탑전에 올라온 두 장의 차자로 성려가 크실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이 부득이하게 다시 엎드리는 까닭은 황공하오나, 언로의 사라짐을 두려워함입니다. 행집의 서민교가 올린 차자를 보니 어그러져 나간 말이 하도 망극하여 신도 몸둘 바를 모를 지경임은 동일합니다. 하오나, 전하! 이는 분명 사가의 사립문 안에서 이루어진 일로 보아야 할 것이지, 조정 사무의 연장으로 보기에 곤란한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헌부가 백관을 규찰하고 미풍양속을 권면해야 하는 부서로 제 할일을 하는 것이 사리에 분명히 합당하나, 규제하는 바가 지나치다 할 것은, 이것이 지역 게시판도 아닌 문중모임의 가운데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는 그의 성정이 본시 그러하고 아니고를 떠나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소추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 집은 그만의 편안한 안식처로 여기는 것은 바깥의 듣는 귀가 집 안에서만큼은 없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규찰하려는 목적보다 벌어진 일이 지나치게 커진 일에 해당한다 사료됩니다. 이제 이 일을 엄중히 벌하시면 문중은 아조의 하나의 생활이 아닌 보안을 위해 문을 걸어잠그고 그들만의 이야기를 향유할 것인즉, 문중이 있는 의미조차 없어질 것입니다. 설령 그가 이지러진 마음으로 함부로 말을 했다 할지라도, 헌부는 관부에서 관부의 일로 감찰을 하기에 분주해야 하건만 그의 사가까지 쫓아가 외람된 말을 들어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숙종 23년 응교에 재직하던 이건명은 그의 문집 <한포재집>에 실린 진계소에서, 나라가 흥하지 못하는 까닭 8가지 중의 하나를 언로불개(言路不開)라 하였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언로와 신이 말하고자 하는 언로가 다르지 않음은 말을 다스리려 함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고 잘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대부로서 분명히 행실과 언질을 주의해야 함에 정랑 이성필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지만 그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탄핵한대서야 누가 관원이 되어 공무를 맡으려 하겠으며 부담되어 조정이외의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겠습니까. 가주서 정예림은 이를 두고 말이 담을 넘어왔다고 하나 정랑 이성필이 그것까지 고려하여 글을 쓰고 말을 하였겠습니까. 실로 신은 이 차자 이후로 신의 처분조차 생각해야 하는 현실이 두렵습니다. 역으로 신에게 내려질 불리한 처분조차 감당하기로 하고 차자를 올리는 것은 이후로 활동할 다른 관원들과 예비 관원, 그리고 만백성에게 들려진 자유의 끈을 함부로 버리라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이 권지 기간중에 병조의 훈련원에 있으면서, 평소에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부분을 분명히 보았음에도 부하로서 그에게 충간하여 그 행실을 올바르게 정돈토록 하지 못하고 충실히 보필하지 못하였으니, 그의 옛 부하로서 신 또한 처벌과 추고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 건으로 정랑이 처벌을 받는다면, 어느 백성이 그의 문중에서, 또는 간찰로, 또는 주막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흉중에 간직하다 끝내는 암종으로 산화하지 않겠습니까. 외람되게 말하는 것을 자유라 할 수 없다 하오나 이는 말하는 자의 성품에 달린 일이지 말의 자유에 달린 것이 아닌지라 전후의 순서가 뒤바뀐 논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실로 두렵고 두렵습니다. 이제 사조를 이용함에 있어 언행의 수위를 생각해야 하니, 이것이 현실과 너무도 닮아 있음에 신은 모발의 끝까지 떨립니다. 검경을 이용해 개인의 가가오독(加加梧獨, 카카오톡)을 감찰하겠다 하는 정부와, 헌부의 역할이 사가의 언행까지 규찰하겠다는 아조의 사이에 어떠한 간격이 있습니까.
이제 만백성은 간찰과 주막에서 행하는 일들에도 누가 행여나 내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는가 내 글을 누가 보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하며, 그들의 행신을 어디에서나 조심하기 위해 주눅든 모습으로 지낼 것입니다. 그것을 원하신다 하시면 정랑 이성필을 엄벌에 처하시고 조정에 서지 못하게 하십시오. 허나 그것이 아니라면, 주의 정도로 적당할 일입니다. 견문발검(見蚊拔劍)이라 하였습니다. 모기만한 일에 칼을 빼드는 것이 합당하겠습니까. 청야와 산림, 두문에서 우리를 보고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 비웃을까 두렵습니다. 별일도 아닌 것을 조정의 시무로 만들어 만인의 웃음거리를 제공할 이유가 하등 없기 때문입니다. 청하건대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십시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풍문에 의한 탄핵과 논계(論啓)가 허용되는 것이 사헌부, 사간원 등의 대각(臺閣)이며, 해당 인물의 직임이 무관을 관장하는 병조 수장이기 때문에 사헌부에서 이처럼 발의한 것이다. 한두 관원의 사의(私意)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정상을 참작하여 처분될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차자 말미에서 염려한 바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11월 6일 병술(丙戌)
이조정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사헌부집의 서민교가 행정랑 이성필의 일에 대하여 계사를 올려 계하기를 "먼저 행병조정랑 겸훈련원판관 신 이성필의 경위서를 초록(抄錄)하여 올립니다.
...(중략)
행병조정랑 겸훈련원판관 신 이성필에 대하여 계합니다.
그가 병이 깊고 피치 못할 상황까지 겹쳐 있는 와중에 격분한 감정을 실어 글을 올렸습니다. 행정랑의 언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만한 질병임은 틀림없다고 판단됩니다. 이를 각별히 참작하지 않을 수 없으나, 관원으로서 그 언행을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백성의 모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차회 인사평정 평점을 하점으로 처리하고 엄중히 신칙하시어 다시 되풀이하지 말게 하시고 밀린 공무를 조속히 처결하게 하게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행사헌부집의 신 서민교에 대하여 계합니다.
신이 모질고 박절함이 심하고 견식이 부족하여 일마다 원성이 일어나고 빈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일이 되지 못할 것을 두고 신이 도의(道義)에 어그러지게 행공(行公)하여, 나랏일이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곱자로 줄 긋듯 틀림이 없어서 한 사람도 울거나 괴로운 사람이 없게 하여야 할 정사에서 만 사람이 잘못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신이 출처(出處)를 잘못 하여 급기야 위로는 죄를 짓고 아래로는 오명을 얻어, 스스로를 욕되게 하였습니다. 항상 극진히 경계하신 뜻을 끝내 잊어서 마침내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게 되었으니 이제는 살아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이 대각으로 체직될 즈음에는 조정의 형편이 궁색하여 한 자리를 맡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었으나, 이제는 적임을 차정하여 쓸 수 있게 되었고, 신보다 더 나랏일에 밝고 백관의 위에 있을 만한 첨지중추부사가 조정에 나와 있으니, 신이 어떻게 묘당의 섬돌 끝자락에 걸쳐 자리에 연연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물러나서 벼슬을 깎고 치죄하라는 명을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신병(身病)을 비롯한 절박한 개인 사정은 겉에서 보아서는 쉽게 알기 어렵다. 특히 드러난 것을 위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 본조의 현실이므로, 집의가 대각을 담당하는 직분에 맞게 소신에 따라 행동한 것을 두고 조정 내외에서 어떤 말이 있겠는가. 지금 조정의 형편이 예전과 같지 않으므로, 집의가 그처럼 결행한 것에 대해 말을 하는 자들은 그처럼 행동하지 않았어도 필시 다른 말을 하였을 것이다. 집의가 계한 뜻이나 의중은 잘 알았으니, 후임이 정해질 때까지 맡은 소임을 다하기 바란다. 정랑의 사정이 딱하기는 하지만, 전혀 문제가 없는 언행은 아니었으므로 이후 평정에서 적절히 반영하는 것으로 처분하겠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사헌부에서 신칙하라."라고 하였다.
○ 이조정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이 평정 결과등에 대하여 계하기를 "11월 제1차 평정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내자시정 겸형조정랑 김관이 중점을 받아 평점 85점에 이르렀고, 행전연사제검 이다행은 하점을, 행승문원교감 심기열은 중점을 받았습니다. 소신은 상점을 받았으며, 어명(御命)에 따라 오는 12일에 평점 누적에 따른 1계 가계와 승정원일기 찬술 포상에 따른 1계 가계가 연이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권지교서관저작 조예인은 이번 평정에도 상점을 받으면서 가계 및 정직 전환이 되었습니다. 하여, 현재 종5품 봉훈랑 행교서관저작입니다. 행경상도검률 하유는 상점을 받았고, 행강원도검률 정도전은 중점을 받았습니다. 이조 업무지침에 의하면, ‘3개 지역을 관장하는 지방관(한성부 포함)은 부임 만2개월이 되었을 때, 지방관 임기 동안에 상점을 2회 이상 받은 경력이 있으면 인사평점 2점을, 그렇지 않으면 1점을 추가 가산한다.’라고 되어 있으므로 행검률 하유는 임기가 끝나는 12일에 맞춰, 평점 2점 가산 및 이에 따른 평점 정산으로 가계가 될 예정이며, 행검률 정도전은 임기가 끝나는 14일에 평점 1점이 가산될 예정입니다.
다음으로 문관 관직신청에 대해 아룁니다. 정6품 승훈랑 정병욱이 금일 관직신청서를 제출하였습니다. 1지망 관청은 지방관이고 2지망 관청은 특별히 없습니다. 주2~3회 접속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승훈랑 정병욱의 마지막 관직은 행평안도검률이며 당시 기록을 살펴 본 결과 도정(道政)을 소홀히 하다 사헌부의 추고를 받았으며 이후 사직서를 제출하였으나 파직을 당하였습니다. 인사행정절목에 ‘징계로 면직, 파직, 삭직되었던 자가 재출사를 할 때에는 제거, 제검, 별좌, 별제, 별검, 찰방, 역승 등의 무록직(無祿職)에 임명한다.’라고 되어 있으므로, 승훈랑 정병욱의 전력(前歷)과 본인의 희망사항 등을 감안하여 황해도 행기린도역승(종9품 무록직)으로 의망합니다. 전하께서 윤허해 주신다면 서경을 거쳐 의주목사 이운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14일에 사령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지난 문관 인사 계본 및 헌부 서경 등에서는 행경상도검률 하유의 임기 만료일이 오는 11일이라고 하였으나, 이는 소신의 실수이며 11일이 아닌 12일입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평정 결과 등을 잘 알았다. 문관 인사는 계청대로 재가한다. "라고 하였다.

11월 7일 정해(丁亥)
이조정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병조정랑 이성필이 평정 결과 등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계하기를 "11월 제1차 평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행군자감봉사 겸군기시봉사 최성원은 금번 평정 결과로 인하여 1계 가계가 이뤄져 종7품 계공랑으로 가계되었사오며 임충빈은 제55차 대과 무과 을과에 급제함으로 인하여 초입사 교육이 끝남과 함께 행군기시봉사로 사령되었사옵니다. 또한 제55차 대과 무과에 을과 제1인으로 급제한 적순부위 강건은 지난 윤대에서 재가가 떨어지면서 개국624년 11월 6일, 사헌부에 관직 서경을 신청한 가운데 있사옵니다. 병조 업무지침에 의하면, ‘3개 지역을 관장하는 지방관(한성부 포함)은 부임 만2개월이 되었을 때, 지방관 임기 동안에 상점을 2회 이상 받은 경력이 있으면 인사평점 2점을, 그렇지 않으면 1점을 추가 가산한다.’라고 되어 있으므로 의주목사 이운은 평점 2점이 가산될 예정입니다.
하옵고 무관 인사에 대하여 아뢰옵나이다.
이조와 병조가 문무관 인사에 대하여 많이 논의하지 못한 가운데 신이 그동안 선천안 문제와 신의 개인적인 발언상의 문제 등으로 인하여 소신이 이래저래 여러 가지 논란을 만드는 바람에 문관 인사만 먼저 어전에 올라갔사옵니다. 이에 이조에서 제안한 것과 병조 내에서 검토한 것을 통합한 무관 인사안을 어전에 아룁니다.
호조 : 호조산사 겸상의원직장 최성원 (병조 겸직에서 공조 겸직으로 체직 및 내부 승진)
병조 : 사복시정 이운 (외관직에서 병조로 체직)
권지군기시직장 강건 (초입사)
행훈련원봉사 임충빈 (군기시에서 훈련원으로 병조 내부 체직)
공조 : 행전연사제검 이다행 유임
하삼도 : 행전라도검률 방인하
신이 근자간에 내외적으로 많이 안 좋아지고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김에 따라 사실상 업무를 보기가 힘에 부쳐질 정도여서 병조에서 이조에서 제안한 인사개편안을 바탕으로 무관 인사 개편안을 마련하였습니다.
특히 공조의 경우 현재 시전세 등의 산적한 업무가 있으나 행전연사제검 신 이다행의 접속력을 이조 차원에서 가장 크게 고려한 결과 지금의 상황에서는 산적한 업무 처리를 위해 최성원을 내부승진시켜 호조산사 겸상의원직장에 사령하여 내부 승진을 시키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이 내부 승진 안건에 대해서는 이조나 병조나 딱히 이견이 없사옵니다.
다음은 병조입니다. 현재 무관 중 신을 제외하고 병조 수장 직에 오를 수 있는 이는 행호분위사직 신 김시습과 의주목사 신 이운이오나 소신이 알아보니 행호분위사직 김시습은 민국의 생업을 이유로 당분간 실직에 나갈수 없는 몸이 되어버려 소신이나 이조에서 감히 어전에 올릴 수 있는 이는 오직 의주목사인 신 이운 뿐 이었나이다. 의주목사 이운은 개국624년 1월 16일 전관임명 금지가 이뤄진 이후 그동안 형조, 호조의 수장으로 재직하였고 지난 9월에 의주목사로 사령 되었사옵니다. 사은숙배 당시 전하께옵서 당시 내자시정의 예를 들어 "이미 여러 차례 지방관 직임을 수행하였으므로 소임을 잘 맡아 수행할 것으로 믿는다. 불편부당(不偏不黨) 넉 자로 백성을 대하여, 내자시정 김관이 외관직을 마친 이후에 다시 이조에 임명되었던 선례를 따를 수 있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부임하여도 좋다." 하셨사옵나이다. 신이 그동안 두 번이나 북삼도의 지방관으로 부임하여 그 지역의 행정을 맡았던 것을 다시 기억하니 의주목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었사옵니다. 청컨대, 이제 그를 다시 전관에 등용케 하여주시옵소서. 육체적, 정신적인 병을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하는 못난 신하의 간청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병조 휘하의 관원으로는 이미 윤대에서 계한대로 행훈련원봉사에 행군기시봉사 신 임충빈을, 적순부위 강건을 권지군기시직장에 그대로 사령하겠사옵니다. 이 중 적순부위 강건의 경우 위에 올린 대로 개국624년 11월 6일에 사헌부에 서경을 의뢰한 상태이옵나이다.
다음으로 하삼도의 후임 지방관에는 작일에 관직을 신청한 분순부위 신 방인하를 의망합니다. 분순부위 방인하는 마지막 관직이 충청검률 이었지만 임기 중 학업을 이유로 중도에 사직을 하여 임기를 모두 마치지 못했습니다. 이에 금번에 다시 관직을 신청하였사오니 그에게 다시 하삼도 지방관의 소임을 맡기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이 모든 인사는 14일에 이뤄지게 허락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내외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름 분투한 것을 모르지 않으나, 이번 일을 계제로 삼아서 생각하고 행동할 일이 적지 않으리라고 여긴다. 이는 상하좌우 모두가 크게 다르지 않다.
무관 인사를 계청대로 재가한다. 병조 수장 교체 이후에 행정랑 이성필을 오위로 체직시킨다. 하나 유념해야 할 것은, 적순부위 강건은 지금 품계가 정7품이지만 본래 을과 급제자이므로 정8품 품계가 초수이고 정8품에서 정7품으로의 2계 가계는 성균관 졸업과 군관 경력에 의거한 특별 가계인 것이다. 며칠 전에 이조에서 동일하게 을과 급제로 정8품에 초수되었던 관원을 바로 정7품직에 올려 인선하였기에 허락하지 않았으니, 해당 관원도 권지를 마치면 8품직을 의망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11월 8일 무자(戊子)
이조정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승문원교감 심기열이 제98차 소과 일정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소과 일정을 병조와 더불어 협의하여 11월 20일부터 동월 27일까지 만 8일간 시행하고자 하옵니다. 또한 시관 인선은 추후에 계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소과 시제는 역시 빠른 시일 내에 아뢰도록 하겠나이다.
이번 제55차 대과 은영연은 병조와 협의한 결과 개국624년 11월 15일 일요일에 예조청사에서 열고자 하옵니다.
제97차 소과 시행자들도 함께 참석하도록 하려고 하옵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성균관 운영에 대하여 아뢰겠나이다.
신이 성균관 교임에 대해 모집한 결과 총 3인이 신청서를 냈사옵니다.
강원도 진사 신 범내천, 한성부 승의랑 신 조예인, 충청도 통사랑 신 최성원입니다.
이들 세 명 중 강원도 진사 신 범내천은 교양과 교임에 신청하였사옵니다. 강의 내용은 물리학에 대한 내용이옵니다.
대학에서 물리를 전공하는 만큼 강의를 맡겨도 된다고 사료되옵니다. 또한 아조에서 훈장직을 한 바가 있기에 강의 질에 대해서도 의심할 바가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한성부 승의랑 신 조예인은 학교에서 정치학 강의를 하고 있는 만큼 전문성있게 문과 교임을 맡아 강의를 진행하도록 할 것이옵니다.
마지막으로 무과 강좌는 충청도 통사랑 신 최성원이 맡을 예정이옵니다. 그는 이미 훈장직을 역임한 바가 있고,
거기서 충분히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사료되옵니다. 그가 진행할 제국주의에 대한 강의 역시 그가 현재 공부 중이므로 무과를 선택한 성균관 유생들로 하여금 그 지식을 충족시켜줄만 하다고 사료옵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교임 세 명이 임명이 된다면, 이번 달 22일에 학기를 시작하려고 하옵니다.
마지막으로 봉훈랑 행교서관저작 신 조예인이 올린 기안서에 대해서 아뢰겠나이다. 현재 아조에서 교육기관들이
비활성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나이다. 이에 행교서관저작 신 조예인은 지방관에게 강제적으로는 아닌 자발적으로 향교운영을 하도록 하여, 운영하는 지방관에게 인사상에 이익을 주는 제도를 시행할 것을 신에게 올렸사옵니다.
신이 검토컨데, 앞으로 성균관 운영이나 청암서원 운영에도 도움이 되리라 사료되옵니다. 이미 아조 내의 관리들 중 상당 수가 훈장직을 수행한 적이 있다고 보옵니다. 이에 신도 이렇게 장려하게 된다면, 아조 교육 발전에도 도움이 되리라 사료되옵니다."라고 계하고 추가로 계하기를 "신이 업무 중 착오가 있었나이다. 충청도 통사랑 신 최성원이 교양과로 지원했다는 사실을 이제 확인했사옵니다. 그래서 신이 생각하옵컨데, 정략장군 행병조정랑 겸훈련원판관 신 이성필에게 무과 강의를 맡기고자 하옵니다. 윤허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소과 및 은영연 시행 일정을 잘 알았다. 은영연은 대과 급제자만 대상으로 시행하라. 장원 급제자가 외관직 부임에 앞서 곧 사은할 것이므로 그때 별도로 치하하겠다. 교임 인선에 관한 건은 예조에서 알아서 처결하라. 향교는 교육 기능만 가지고 있지 않고, 교육 부문에 한정하더라도 교수, 훈도 등의 관원을 따로 차송해야 비로소 운영이 가능한 것이므로 제안된 기안은 허락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 승문원교감 심기열이 제98차 소과 생진시 시제에 대하여 계본을 올렸다.

11월 9일 기축(己丑)
이조정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1월 10일 경인(庚寅)
이조정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1월 11일 신묘(辛卯)
이조정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병조정랑 이성필이 제98차 훈련원시 시제에 대하여 계본을 올렸다.

11월 12일 임진(壬辰)
이조정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1월 13일 계사(癸巳)
이조정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승문원교감 심기열이 제98차 소과 생진시 시제에 대하여 계본을 올렸다.

11월 14일 갑오(甲午)
승정원동부승지 천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경기도검률 조예인이 임지로 부임하기 앞서 사은숙배를 올리기를 "신이 아직 관력이 충분하지 않은 가운데에서 비루한 능력으로 생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평을 얻어 명예를 높이니 그저 보잘것없는 재주가 거만해질까 두렵습니다. 이번에 명을 얻어 경기도 감영의 검률로 부임하게 됨에, 삼개지역을 관장하는 것이 능력에 부칠까 조심스럽기도 그와 같음입니다. 졸렬한 문장과 하잘것없는 재주에도 크게 쓰임을 받아 이곳에까지 이르렀으니 전하의 성덕이 크다 할 것이옵니다. 권지로 앞서 출사함에 바른말과 글을 쓰겠다 하였으니 도정에도 그리 임할 것이옵니다. 다행히 중부에는 유효한 인구가 많아 호흡하는 도정을 보여줄 수 있을 듯하여 기대가 크고, 신이 어렵지 않게 일을 해낼 적임지라 여겨지옵니다. 부족하고 불민하나마 크게 들어 주시었사온즉 그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권지 기간을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지방관의 소임을 맡게 되었으므로 소임의 막중함에 대해 느끼고 염려하는 바가 남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상하좌우 관원의 도움을 받도록 하라. 대과 과거에서 장원 급제가 나온 것은 근래에 없던 일이다. 호조는 국조보감 한 질과 문방사우를 별급하여 주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 행전라도검률 방인하가 임지로 부임하기 앞서 사은속배를 올리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다시 조정 관직에 복귀하여 지방관 소임을 맡게 되었으므로 그 감회가 남다를 것으로 여긴다. 지금 다짐한 마음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부임하여도 좋다."라고 하였다.

11월 15일 을미(乙未)
승정원동부승지 천어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사복시정 이운이 선천안 후보자 선발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계하기를 "지난 2일 선천에 대한 비답이 있은 이후로 전임 병조 수장이었던 이성필이 이에 대하여 다시 선천안 논의를 주관하고 논의 중 신이 병조 수장으로 체직하면서 논의 주관을 이어 받았습니다.
논의에 오른 인물로는 적순부위 안병훈, 권지군기시직장 강건, 행전라도검률 방인하, 호조산사 겸상의원직장 최성원, 행훈련원봉사 임충빈 등 모두 5인 입니다. 이에 대하여 선천안 등재자의 의견을 수렴을 했사온데 방인하, 안병훈 등재에는 모두 동의하였고 신과 김시습은 여기에 강건과 임충빈의 등재까지 동의하였습니다. 따라서 선천안 등재 논의의 중론은 적순부위 안병훈, 권지군기시직장 강건, 행전라도검률 방인하, 행훈련원봉사 임충빈 4인으로 정하였습니다.
적순부위 안병훈은 제87차 소과 훈련원시 일등으로 입격하였고 이어 제50차 대과 무과 을과 제1인으로 급제 하였습니다. 이후 대과 급제 후 바로 출사하여 권지군기시봉사를 시작으로 군자감직장, 황해도검률 등을 수행하였습니다. 대과 급제 등위도 등위지만 적순부위 안병훈이 지방관으로 재직하던 때는 지금처럼 인사가 넉넉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지방관 3개월을 오롯이 맡아 한 것은 그의 근면함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되옵니다.
권지군기시직장 강건은 제80차 소과 훈련원시 이등, 제2차 증광 소과 진사시 이등으로 입격하였고 이어 제55차 대과 무과 을과 제2인으로 급제하였습니다. 이후 대과 급제 후 바로 출사하여 현재 권지군기시직장으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현재 강건은 권지이지만 정병, 관속, 군관, 경아전 등 모두가 조정과 관련된 직역으로 출사 이전에 조정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실무를 익혔습니다. 신이 진주목사 재직 시 관속으로서 행사 기획안의 면면을 살펴보았을 때 내용의 참신함이 돋보였습니다. 호조 경아전으로서도 아조 활성화 방안 업무 처리하는 것을 보았을 때 조정 업무를 살피는데 탁월함을 보였습니다. 정병과 군관으로서 아조의 국방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군관 재직시의 공로를 인정 받아 개국622년 4분기 무관 포상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다방면에서 많은 활동하는 모습을 통해 관원으로서 필요한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이 엿 보입니다.
행전라도검률 방인하는 제87차 소과 훈련원시 이등으로 입격하였고 이어 제50차 대과 무과 병과 제1인으로 급제하였습니다. 이후 대과 급제 후 바로 출사하여 권지군기시참봉을 시작으로 훈련원봉사, 충청도검률 등을 수행하였습니다. 방인하는 출사 이후 병조와 지방관직만을 하였으나 신이 병조와 진주목사 재직 시절 방인하의 직속상관 이었던 만큼 그의 업무 처리 능력과 근면함은 타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과거 성적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실무에 있어서 두각을 보였습니다.
행훈련원봉사 임충빈은 제96차 소과 훈련원시 삼등으로 입격하였고 이어 제55차 대과 무과 을과 제2인으로 급제하였습니다. 임충빈은 천거 출사 이후 현재까지 병조에서만 근무 하였으나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훈련원정병으로 복무하며 복무 기간에도 성실한 복무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성실함은 출사 이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져 맡은 바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앞서 신이 아뢴 이들 모두 학식이나 조정 업무에 대하여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이 엿보여 선천안에 들기에 적합한 인물들 입니다. 이들 모두 선천안에 등재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재가한다. 4인의 이름을 선천안에 수록하라."라고 하였다.
○ 행기린도역승 정병욱이 임지로 부임하기 앞서 사은속배를 올리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뜻한 바를 잘 알았다. 다시 이북 삼도 지역을 관장하게 되었으므로 소임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부임하여도 좋다."라고 하였다.

통정대부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가 쓰고 돈용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비변사낭청 최성원, 돈용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가 교정하다.

개국624(2015)년 12월 27일 기록 : 통정대부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개국625(2016)년 06월 25일 교정 : 돈용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비변사낭청 최성원
개국626(2017)년 01월 14일 교정 : 돈용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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