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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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인하
작성일 개국626(2017)년 1월 8일 (일) 17:02  [유시(酉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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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가주서] 승정원일기 : 개국613(2004)년 8월 하 (교정)
8월 16일 정묘(丁卯)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전라도검률 박우석이 전라도 행사 문제에 대하여 장계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금전 60냥(兩)을 내릴 것이니, 상금을 다소 조정하여 시행하라. 아울러, 포상자에게 실지로 금전이 지급되기 위해서는 행사가 종료된 후에 호조로 포상자의 명단과 지급액을 보고하여 재산 현황에 반영되도록 조처해야 한다.
이와는 별도로 전교한다.
-. 금일부터 현직 관리의 휴가원(休暇願)을 과인이 윤허하면, 호조에서 휴가 1일당 1냥씩(4품 이상관은 2냥) 계산하여 공제하도록 한다. 이는 보유한 금전에서만 공제하되, 공제할 금전이 없거나 부족한 자는 금전이 발생할 때마다 공제하도록 한다. 다만, 60냥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보유 재산(가옥, 토지 등)을 강제 처분하여 공제한다.
-. 금일부터 15일 이상을 근무하다가 녹봉 지급일(매월 15일) 이전에 사직하는 관리에게는 해당 녹봉의 절반을 지급하도록 한다. 다만, 호조에 직접 방문하여 '녹봉지급요청'을 신청하는 자로 제한을 두겠다.
-. 금일부터 관속(임시 관속)으로 근무하는 백성(유품자)이 '금전지급요청'을 신청한 경우에는 10냥을 더 지급하도록 한다.
-. '녹봉재산제도'를 활용한 상벌은 자력표에 기록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 병조정랑 이현이 권지의 평정결과에 대해 계목을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아뢴 바를 알겠다."라고 하였다.
○ 병조정랑 이현이 충청도 백성 정언신의 품계 회복에 대해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정랑이 아뢴 바는 충분히 알겠으나, 한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다. 정언신(鄭彦信)의 품계를 종8품 수의부위로 회복하고, 황해도 검률로 사령하라."라고 하였다.

8월 17일 무진(戊辰)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예조정랑 조병옥이 제20차 소과 생진시 시제에 대하여 계본을 올렸다.
○ 한성부 효력부위 김대현이 재물 거래와 관련하여 상소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각종 재물을 매입(구입)하거나, 매도(판매)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 각종 재물(토지, 가옥, 말, 어선 등)을 국가(호조)에서 매입하거나, 국가(호조)에 매도하는 경우
1) 재물을 매입(매도)하려는 자는 본적지 지방관청으로 방문하여 '재물매입(매도)신청서'를 제출한다.
2) '재물매입(매도)신청서'를 접수한 본적지 지방관청에서 호조로 보고한다.(본적지 변경 방법과 동일)
3) '재물매입(매도)신청서'를 접수한 호조에서 신청서를 처결한 후, 매입(매도)자의 재산 현황을 변경한다.(거래 완료)
-. 각종 재물을 다른 백성으로부터 매입하거나, 다른 백성에게 매도하는 경우
1) 재물을 매입(매도)하려는 자는 읍내장터에 해당 사실을 공지한다.
2) 매도(매입)자가 나타나면 상호간 거래를 약조한 후에, 각자 본적지 지방관청으로 방문하여 '재산양도(양수)신고서'를 제출한다.(매도자는 양도신고, 매입자는 양수신고)
3) '재산양도(양수)신고서'를 접수한 본적지 지방관청에서 호조로 보고한다.
4) '재산양도(양수)신고서'를 접수한 호조에서 신고서를 처결한 후, 양도 및 양수자의 재산 현황을 변경한다.(거래 완료)"라고 하였다.
○ 이조참의 정재안이 문관 휴가에 대해 계목을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휴가를 윤허한다. 작일에 전교한 바가 있으니 호조에서는 6냥(兩)을 공제하라."라고 하였다.
○ 병조정랑 이현이 제20차 소과 원시 시제에 대하여 계본을 올렸다.
○ 한성부 효력부위 김대현이 은행 개설에 대해 상소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녹봉재산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이후에 고려해 보겠다."라고 하였다.
○ 행승정원주서 손오공이 정언신의 품계 회복과 관련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정언신(鄭彦信)의 품계 회복과 관련하여 어전에 올라 온 차자와 상소를 모두 살피고 병조에 전교한다. 정언신을 효력부위 권지전옥서참봉으로 고쳐 사령하라."라고 하였다.

8월 18일 기사(己巳)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병조정랑 이현이 사직소를 올리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사직을 윤허하기는 어려우나, 체직이라면 윤허토록 하겠다. 정랑은 사성 서양갑(徐羊甲)에게 병조로 부임할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여 계(啓:보고)하라."라고 하였다.
○ 훈련원참군 김현유가 정언신의 품계 회복에 대하여 상소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앞서, 승정원에서 올린 차자에 전교한 바가 있으니 재차 거론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 규장각제학 이휘가 정언신의 품계 회복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었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사간원사간 신성룡이 7월 포상 및 징계 대상자에 대해 홍문관과의 합계를 올려 아뢰기를, "우선 포상자에 대하여 아뢰나이다. 포상 대상자로는 성균관 동지사 이동진, 성균관 사성 서양갑, 훈련원 참군 김현유가 그 대상이라 여기어 지나이다.
첫째로 오랜기간 본조의 국가대표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복설을 앞장서 힘썼으며 아조의 교육기관의 중심으로서 기능을 수행한 이동진 성균관 동지사가 마땅히 포상자로 선정해야 할 것이라 여겨지나이다. 두번째로 경상도의 지방관으로 부임후 경상도 활성화와 정상화에 힘쓴 성균관 사성 서양갑이 대상에 선정되어야 할것으로 여겨지나이다. 마지막으로 오랜기간 한성부의 참군대행을 맡아 지방관 대행의 모범적 수행을 보여준 김현유 훈련원 참군이 포상자로 선정되어야 할것으로 여겨지나이다. 이에 각각 이동진 동지사는 10일의 근무일수 가산을 김현유 참군과 서영갑 사성은 각각 5일간의 가산이 합당하다 생각되나이다.
다음으로 징계자에 대하여 아뢰나이다.
징계의 대상자로는 이조 사옹원 권지 봉사 정종호, 평안도 前 도사 한종훈, 함경도 검률 신재호가 그 대상이라 여기어 지나이다. 우선 이조 권지 봉사인 정종호는 지난 7월 14일 천거로 이조에 초입사한후 20일 부임인사와 24일 과제물 제출을 한후 아무런 활동이 없이 현재까지 현직에 있으니 그 죄가 크다고 할수있겠나이다. 관작을 거두고 근무일수 10일 감산함이 마땅하다고 여겨 지나이다. 다음으로 평안도 前도사 한종훈 또한 평안도에 6월부터 장기간 등청하지 않아 자진하여 사과문을 도 게시판에 게재 하였고 성실한 직무수행을 다짐하였으며 이런 전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개선의지가 없고 또한 장기간 관아에 등청하지 않으므로 징계자로 선정하여 이를 치죄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이에 근무일수 10일 감산이 마땅하다고 여겨지나이다. 마지막으로 함경도 검률 신재호는 지난 6월 29일 부임한 이래 장기간 관아에 등청 하지 않고 병조의 활동독려와 소명서 제출 요구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나이다. 이에 근무일수 10일 감산과 파직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오니 혜량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동성균 이동진(李東珍), 사성 서양갑(徐羊甲), 참군 김현유(金賢柳) 등은 근무일수 10일을 가산하고, 전평안도사 한종훈(韓宗勳)은 15일을 감(減)하라. 권지봉사 정종호(鄭種乎)에 관한 것은 이조참판의 의견을 듣고 결단하겠다. 또한, 함경검률 신재호(申渽湖)에 관한 것은 관북어사가 올린 서계를 살핀 후에 결단하겠다."라고 하였다.
○ 사간원사간 신성룡이 참의 정재안의 가자에 대하여 합계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아뢴 바를 알겠다. 명일에 정재안(鄭宰安)을 가선대부 이조참판으로 삼는다. 다만, 근무일수 손해는 별도로 보전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 사간원사간 신성룡이 정언신의 품계회복에 대하여 아뢰었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8월 19일 경오(庚午)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이조참의 정재안이 문관 휴가에 대해 계목을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아뢴 바를 알겠다. 다만, 금일부터 5일 이하의 휴가는 전조(銓曹:이조와 병조)에서 전결한다. 아울러, 금전(金錢)을 공제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 함경도 부여정 민지훈이 신임 관찰사 부임을 청하는 상소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상소한 바를 알겠다."라고 하였다.
○ 성균관사성 서양갑이 병조 수장직 수행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전하께서 병조를 통하여 신의 병조수장 수행 여부를 아뢰도록 명하셨으나 지금 성균관에서 다음 학기의 학사일정이 계획되어 있어 계획에 최대한 지장이 없도록 빠른 처결을 바라고자 신이 직접 전하께 아뢰오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신이 정3품 어모장군이 되도록 단 하루라도 병조 수장을 맡았던 적이 없었던 것이 늘 아쉬운 부분이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생겨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하옵니다. 하오나 성균관에서의 중임이 있기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 후임관의 인사가 분명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병조 수장직에 응할 수가 없사옵니다.
다만, 승정원 주서 손오공이 사석에서 신에게 성균관의 교수직을 맡고 싶다는 의중을 표한적이 있사오니, 그를 성균관으로 체직한다면 성균관의 학사일정이 차질 없이 진행되리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신 또한 마음놓고 병조수장직에 응할 수 있으리라 사료되옵니다. 아직 주서가 부임한지 한달이 지나지 않았고 근무일수의 손해가 발생할 것이오니, 이 점을 고려하신다면 일단 성균관의 겸직을 맡기시고 그의 평정 예정일인 8월 27일에 주서를 면직시킨다면 인사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그러나 이후에 승정원이 공석이 되어 그에 대한 인사 문제가 남을 것이오니 이 점 또한 전하께서 살펴주셔야 할 것이옵니다.
아직 성균관이 복설된 후 단 한학기만 지났을 뿐이며, 유생들의 열정이 예전만큼 되살아나고 있지 않아 완벽한 복설이 이루어졌다 말할 수 없는 실정이옵니다. 사정이 이러하오니 만약 신이 병조로 체직된 다 하여도 학사일정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는 일이 없도록, 전하께서 조처해 주시기를 주청드리옵니다."라고 하였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행승정원주서 손오공이 병조 수장 임명 문제와 관련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아래 성균관 사성 서양갑의 차자를 읽어 보니, 신을 성균관의 교수로 추천한 것을 보았는데 소신 아직까지는 승정원에서 물러나고 싶은 생각이 없사옵니다. 또한 겸직이라면 고려를 해볼만한 사항이오나, 신 민국에서 곧 취직을 하게 되기에 지금과 같은 접속체력이 나오지 않을 듯 싶사옵니다.
일전에 소신은 상께서 불서용을 해제하시고 승정원 주서로 임명하시기 전에 성균관 교수직을 신청하였다가 반려당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성균관의 교수직을 맡고 싶은 생각은 있었사오나 상께서 이렇게 은전을 베푸시어 승정원 주서로 임명하신 바, 신은 정원에서 2개월 여 이상을 근속한 후에 성균관 교수직에 여석이 있다면 체직하여 물러갈 생각이었사옵니다.
신 아직 정원에 부임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사오며, 지근거리에서 금상전하를 뫼시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오니 부디 신의 뜻을 살펴 주시옵소서."라고 하였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규장각제학 이휘가 정언신의 품계회복에 대하여 재차 차자를 올려 아뢰었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8월 20일 신미(辛未)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홍문관정자 김종서가 관북 암행 후 서계를 올려 아뢰기를, "신이 함경지방을 암행하면서 함경 검률 신재호를 봉고 파직하였사온데, 그의 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검률은 개국613년 6월29일자로 임명이 되었사온데, 보름이 조금 넘은 7월15일에 겨우 병방의 부재신고를 처결하고서는 현재까지 관아에 등청조차 하지 않고 있었사옵니다. 이미 병조에서 소임을 다 하라는 개인 서찰이 여러번 발송되었다고 들었으나, 지금까지도 관아에 등청한 흔적이 없사옵고, 토관직의 정직 진출건과, 관속의 임,해임건 뿐만 아니라, 최근 전하의 용단으로 시행하기 시작한 녹봉재산제도를 비롯하여 함경관아에 산적한 업무가 있음에도 이를 방기하고 있으니, 어찌 한시라도 전하를 대행한 함경도 지방관의 지위를 그대로 둘수가 있겠나이까. 함경도에 들리는 소문에 검률이 민국의 군대에 입대하였다고들 하나 이 역시 확인할 길이 없었나이다. 허나 설사 군대에 입대하였다 하더라도 민국의 관청 역시 어느날 갑자기 군대 입대하라 명하는 것이 아닌데, 간단한 사직서와 사정을 올릴 시간이 없었겠나이까. 설사 일이 그렇다 하더라도 지방관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니, 관용의 여지는 그리 많지 않았나이다. 관아에 등청하는 것을 아예 하지 않으니 수령칠사를 일일히 논하고 감찰할 것이 아예 있지 않았나이다. 하여 고심끝에 결국 봉고파직의 권한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으니 전하께서는 부디 상량하여 주소서.
그러나 함경도는 지방관이 장기간 등청하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뭇 활기가 있고, 다른 도에 비해 과히 부족함이 없다 싶을 정도로 몇몇 사람이 오손 도손 살고 있었으니, 소신이 처음 함경도에 이르렀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나이다. 함경도를 비롯한 변방 지방은 예로부터 피폐하기가 이를데 없다는 장계가 끊이질 않았사옵고, 유효인구는 커녕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다는 소문이 무성하였는데, 신이 함경에 이르러 보니 작금의 현실은 그러한 지난날의 함경도 모습이 아니었나이다.
서당에는 서양갑이 운영하는 천손서당이 37강째를 이어오고, 신이 살펴본 바, 서양갑 훈장이 부임한 이래 일주일이 멀다 하고 강의가 끊임없이 올라오니, 함경에 이르렀을 때 처음으로 글읽는 소리가 가장 먼저 들렸나이다. 또한 강의의 내용을 살펴보니 지구과학과 지질학, 천문학등의 자연과학 분야로 역사 일변도의 다른 도의 서당과 차별이 있었사옵고, 강의의 구성이나 수준또한 오히려 다른 도의 서당들 보다 낳아 보였나이다.
이에 신은 감히 주청들이나이다. 천손서당의 훈장 서양갑은  얼마전 대구부사의 직을 사임하는 소를 올려 전하께서 이를 가납하셨으나, 사직소를 올리기 전에 대구부사의 직임과 성균관 무과 교수의 직임과 천손서당의 훈장직등 세가지의 역활을 수행하였나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세가지 직임중 어느 하나를 소홀히 한것이 없으니 어찌 그의 수고가 없다 하겠나이까. 작금의 현실이 쉽게 서당개설 신청서를 내고 몇번 강의를 하지도 않은채 훈장직을 사직하거나, 자취를 감추는 일이 비일비재한 풍토에서 경관직과 외관직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관리가 고향에서 서당 또한 성심을 다하여 운영하였사오니, 이러한 공을 널리 알리시고 서양갑의 공을 치하하는 상을 내려 주시길 주청드리나이다.
또한 함경도의 지방관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함경관아의 업무처리는 무리없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처결 속도 또한 여타의 지방보다 오히려 신속하였나이다. 또한 관아 차원의 하계행사 역시 개최하여 많은 이의 호응이 있었다고 들었나이다. 아여 신이 어찌 이리한가 살펴 보았더니, 함경도 여맹 민지훈이 사실상 지방관의 일을 대행하고 있었나이다. 비록 토관직의 품계는 있다 하나 오랫동안 함경도의 관속으로써, 오히려 관찰사 대행보다 그 수고가 많으니, 그의 수고와 고분 분투에 대해서도 전하께서 치하해 주셔서 널리 알리시는 것이 옳다 사료되옵니다. 또한 민지훈이 병조에 정직 진출서를 내었으나, 함경도 지방관의 결정이 없었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하나이다. 검률이 없어진 자리를 홀로 떠 맡아 오히려 다른 지방 보다 낳은 일처리와 성실함을 보였는데, 없어져 봉고파직된 함경검률의 결정이 없어 정직진출이 반려되었다는 것은 설사 절차가 그렇다 하더라도 실로 모순이 아닐 수 없나이다. 엎드려 바라오건데, 전하의 용단으로 이를 바로 잡아 주소서.
또한 함경도는 현재 지방관의 부재상황에 놓여있는지라, 이러한 상황이 하루라도 더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 것이나이다. 민지훈을 정직으로 임명하시고 함경도 지방관으로 임명하신다면, 이미 그가 지방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바, 함경도의 행정공백은 생기지 않을것이나이다.
이상으로 관북지역 암행의 결과를 전하께 보고드리나이다. 종합하면, 검률 신재호가 장기간 등청하지 않아 지방관으로써의 죄가 크다 하겠으나, 그 이외에 모든 면에서 함경도는 스스로의 힘으로 잘 움직이고 있었나이다. 조정의 상하에서 모두 함경이 변방이라 하여 관심이 적고 그나마 조정에서 내려보내 임명한 지방관이 자취를 감추는 등, 돌이켜 보면 전하의 성은이 미치기가 참으로 멀었던 곳이온데, 이렇듯 스스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있었으니, 이런 백성들을 가진 전하께서는 어찌 기뻐할 일이 아니겠나이까. 지방관이 없는 중에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함경도를 참으로 잘 운영하였던 서양갑, 민지훈 이하 함경의 백성을 치하하시고, 인자하고 어진 신하로 하여금 함경을 다시 이끌게 하시어 전하의 성은이 조선 팔도 구석 구석에 이르기까지 미치게 하소서.
신이 함경으로 가는 길에 경기도와 강원도의 사정도 살펴 보았나이다. 강원도 역시 관속들의 활발한 활동에 도내 활기가 돌고 있어, 신이 느끼기는 이제 조선의 관속제가 정착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였나이다. 강원도에는 이방 이충과, 병방 박우석이 있사온데, 소인이 살펴 보기에 둘 다 열심으로 직임을 다하니, 어찌 강원도가 평안하지 않겠사옵니까. 뿐만 아니라 태백서당과 얼마전 문을 연 대원서당이 운영되고 있었 사온데, 서당의 분위기들이 사뭇 화기애애 하였나이다. 강원도의 서당은 유효인구가 타도에 비해 적은데도 조회수가 무려 40이 넘는 강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댓글이 7-8개씩 올라오기가 일수니 다른 지방의 서당의 분위기에 비하겠나이까. 이렇듯 강원도 역시 큰 무리 없이 돌아가고 있었나이다. 지방관으로 하여금 유효인구를 늘리려는 노력 뿐만 아니라 도내를 더욱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라 하교하시면 앞으로는 훌륭한 지방으로 성장할 것이나이다.
다음으로 경기도에 대하여 아뢰나이다.
경기도는 검률 김준호가 지방관으로 있사옵고, 관속으로 이방 정천신과 병방 노태환 2인이 있사온데, 이중 노태환은 사직서를 제출하였으나 현황에는 아직 반영되지 않은 듯 하나이다. 허나 다른 도와는 달리 이들 관속의 활동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며, 임명된지 열흘만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앞서 소신이 살펴본 두 지방에 비해 관속들의 책임감과 활동의지가 한참을 못 미쳤나이다. 이러한 행태들은 특히 경기도에서 자주 일어났던 일이온데, 아직도 시정되지 않는 일이옵니다. 관속이 쉬이 임명되고 쉬이 그만두니, 임명하고 면직하는 행정력 낭비도 낭비거니와, 무엇보다도 이러한 폐단이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자명한 일이니 개탄할 일이옵나이다. 허나 이러한 풍토를 개선하는 것에 뽀족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으니, 그저 지방관이 두루 두루 살피고 면밀히 따진 후에 임명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사옵니다. 또한 성심으로 오랫동안 관속들에게 포상을 후하게 하시어 이들에게 활동의 동기가 생기도록 하는 것이 옳다 생각되옵나이다. 경기도에서 운영되는 서당 또한 현황에는 3개가 등록되어 있었사온데, 경기학당은 훈장 성혼의 개인사정으로 잠시 휴강한 상태이고, 김준호가 훈장으로 있는 우원서당은 활발하게 강의가 이루어졌으나 현재는 잠시 소강상태 인 것 같사옵니다. 그러나 아직 서당이 유명무실 해 졌다거나 개폐를 논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아 신이 일단 전하께 상황을 아뢰는 것으로 소임을 마치고자 하니 상량하여 주소서, 허나 석실서당은 강의가 중지된지 수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그 현판이 붙어 있으니 조속히 폐쇄를 결정하는 것이 옳다 사료 되옵나이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봉고파직(封庫罷職)된 신재호(申渽湖)는 근무일수 20일을 감(減)하고, 1개월 녹봉에 해당하는 금액을 벌금으로 징수하라. 이는 어모장군 서양갑(徐羊甲) 등이 연명하여 올린 구명소(救命疏)를 감안한 조처이다.
소임을 완수한 정자 김종서(金宗徐)는 근무일수 20일을 가산하고, 강원판관 조운(曺雲). 함경예방 민지훈(閔地訓). 강원이방 이충(李忠). 강원병방 박우석(朴佑碩) 등은 서계에 따라 근무일수 10일을 가산한다. 아울러, 천손서당(天孫書堂) 훈장 서양갑에게 말 1필을 내린다.
병조에서는 민지훈의 의사를 확인하여 정직(正職)으로 사령하라. 석실서당(石實書堂) 존폐에 관한 것은 예조에 일임한다."라고 하였다.
○ 이조참판 정재안이 정언신의 품계회복에 대한 규장각제학의 차자에 대해 차자를 올렸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함경도 어모장군 서양갑 외 7인은 前함경도검률 신재호의 구명을 청하는 연명소를 올리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감안하여 조처하였다."라고 하였다.
○ 규장각제학 이휘가 이조참판 정재안의 차자에 대해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정언신(鄭彦信)의 품계 회복과 관련하여 경(卿)이 아뢴 바는 충분히 알겠으나, 과인이 달리 의도하는 바가 있으니 거듭 거론하지 마시오.
승정원에 전교한다. 금번 문제와 관련하여 어전에 올라오는 차자나 상소는 본인에게 되돌려 주도록 한다."라고 하였다.

8월 21일 임신(壬申)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예조정랑 조병옥이 신성근 정문 설치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설치 장소는 아뢴대로 한다. 장려조 시행과 관련하여 별도로 전교한다. 과인의 재가로 칭송 수준이 결정되면 예조에서 관련 지방관청에 결과를 통보하도록 한다. 아울러, 결과를 통보받은 지방관청에서는 관내에 칭송 결과를 공고하고 해당자에게 통첩하도록 한다."라고 하였다.
○ 상(上)께서 승정원에 전교(傳敎)하시기를, "이달 23일에 하빈군(河濱君)과 황해도 태백산성 인근으로 사냥을 나섰다가 하빈군 사제(私第:사저)에서 이틀을 유한 후, 25일에 환궁하고자 하니 하빈군에게 전하여 준비케 하라. 또한, 조정(朝廷)에 알려 혼란이 발생되지 않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 성균관사성 서양갑이 병조 수장직 수행에 대하여 재차 차자를 올렸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강원도판관 조운이 병조 수장직 수행에 대해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한 관청의 수장을 지명함에 있어 이름이 거론됨이 어찌 영광스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만은 이름을 세우기전에 자신의 능력을 알고 진퇴를 신중히 결정해야 함에 따른 차자이오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본관에게는 지방관으로 조정을 위해 일할수 있도록 허락해 주셔서 전하의 성은을 각도로 전파할수 있도록 쓰시옵소서."라고 하였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8월 22일 계유(癸酉)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규장각제학 이휘 이하 제신(諸臣)들이 상(上)의 탄신일을 맞아 하례를 올렸다.
○ 경상도 과의교위 조운이 지방의 포상제도 개설에 대하여 상소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표창은 '명예포상제도절목'에 근거하여 시행하되 기준을 낮추면 될 것이고, 포상 및 행사 등에 필요한 예산은 일전에 전교한 바와 같이 장계를 올려 신청하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8월 23일 갑술(甲戌)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하빈군 사제(私第:사저)에 계신다.
○ 규장각제학 이휘가 알현을 올리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경(卿)이 수고한 바가 크오. 물러가 쉬시오."라고 하였다.
○ 상(上)께서 하교(下敎)하시기를, "과인이 황해도에 머무는 명일 자정까지 민의(民意:백성의 소리)를 듣겠다. 타 지역 백성의 참여도 무방하다."라고 하였다.
* 23일, 권율이 아뢰기를, "손오공 승정원 주서가 팔도서당에 대한 차자를 올렸사온데 해당자들을 징계하지 마시옵고 다만 따끔히 질책해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 같은 날, 김준호가 아뢰기를, "절차가 거창하여 쉽게 추천자를 아뢸 수 없는바, 명예포상제도절목을 폐하시고 강원도 과의교위 조운이 올린 상소대로 지방의 포상제도로 대체하시옵소서."라고 하였다.
* 같은 날, 권주가 아뢰기를, "전하, 우매한 소인을 비롯한 백성들에게 어버이 되신 입장이 되시어 부디 반성할수 있는 기간을 주시옵소서 전하. 소인이 석고대죄를 하옵나이다. 부디 헤아려 주시옵고 소인들의 어리석음을 엄히 질책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 같은 날, 천입성이 아뢰기를, "전하께오서 황해도에 유하시는 동안 미편한 점이 없으신가 저어되오며, 연일 계속되는 비로 옥체를 상할까 염려되옵니다.
천신이 아뢰고자 하는 것은 명예포상제도에 대한 것으로 지난 개국612년 02월 12일 제정되어 개국613년 06월 06일 개정된바 있는 명예포상제도가 지금까지 한건도 시행되지 않고 있사옵니다. 이 제도는 지방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되며, 백성들의 아조활동에 의욕을 고취 시킬 수 있는 중요한 제도라 생각되는바, 이에 대한 홍보를 통하여 각 지방관과 경관직 관리들에게 제도의 시행을 항상 검토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길 바라옵니다.
천신이 생각컨데 명예포상제도의 선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선정에 어려움이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최초의 명예 훈장 수여자가 나온다면, 이에 대한 기준이 바로 서게 될것이니 이후로는 보다 많은 백성들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숙고하시어 명예포상제도가 제도로서만 덮여지지 않고 현실적으로 시행되어 아조 활성화의 중심제도가 되도록 조치하여 주시옵서서.
천신이 전하의 하해와 같은 성은으로 품계를 제수받았으나 능력이 부족한지라 전하를 가까이서 모시지 못하는 불충을 용서하시옵고, 부디 황해도에 유하는 동안 옥체보중하시옵서서."라고 하였다.
* 24일, 박한이 아뢰기를, "민심은 천심이요 나라의 일이 백성에 있는바, 항시 백성을 굽어 살피소서. 문성공 율곡선생의 진옥당시폐소(玉堂陳時弊疏)에 시무구사(時務九事)를 언급하였는바. 취할 바가 적지 아니하나이다. 한 나라가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짐이 한 사람에게 달려 있고, 한 사람이 훌륭하고 그렇지 못함은 한 마음에 달려 있는데, 한 마음이 지향하는 바를 뜻이라 하옵니다. 때에는 고금(古今)이 있으나 도에는 고금이 없으며, 문왕(文王) · 무왕(武王)의 정치는 전적(典籍)에 기록되어 있으니, 그 뜻이 전하께 있다 하오면 그것을 본떠서 실행하는 것은 전하에게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논어 술이편에 이르길 '인은 멀리 있는 것일까? 내가 인을 하고자 하면 이에 인이 이르러 온다'하였으니 전하께옵서 백성을 살피심이 그와 같다면 어찌 전하의 뜻에 그름이 있겠나이까.
또한, 사방에 교명을 내리시어 진정한 마음으로 간언을 구함으로써 여러 가지 계책이 모두 모여들도록 하시고, 그중 쓸만한 것은 채택하여 정치를 하는 데 응용하면 곧 사람들과 함께 선을 행하게 되어 모든 정사가 날로 새로와질 것입니다.서경에 이르기를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른다.'하였고, 또 '간언(諫言)을 따름에 어김이 없다.'고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전하께서 마땅히 유념하셔야 할 일입니다.
이는 문성공의 충언이며 또한. 만백성이 전하께 바람하는 바가 아닌가 하옵니다. 부디 바른 뜻을 세우시고 만조백관과 백성의 간언에 귀기울이시어 역대에 길이 남을 성군이 되시옵소서."라고 하였다.
* 같은 날, 이원이 팔도 서당의 저작권 침해 문제에 대해 아뢰었다.
* 같은 날, 민지훈이 팔도 서당의 저작권 침해 문제에 대해 아뢰었다.
* 25일, 상(上)께서 하교(下敎)하시기를, "-. 강의자료 도용과 관련한 문제는 자세한 경위를 알지 못하니, 환궁 후에 조처토록 하겠다.
-. 유생 박한(朴桓)이 아뢴 바는 깊이 유념하겠으며, 과인이 유생의 이름을 기억하겠다.
-. 무공랑 천입성(天立星)이 아뢴 바는 일간 실현될 수 있도록 조처하겠다."라고 하였다.
○ 행승정원주서 손오공이 팔도 서당 강의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강의시 수강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적절한 범위 내에서 타인의 저작물(著作物)을 강의자료로 사용하는 것은 용납될 수 있겠으나, 타인의 저작물을 일부 고쳐 강의한 것이 전부라면 그러한 서당은 존립할 필요가 없겠다. 아울러, 타인의 저작물을 일부라도 사용할 경우에는 사전에 저작자(著作者)의 양해를 구하거나 최소한 출처(出處)라도 표기해야 하는데, 아무런 조처없이 무단으로 도용하였다면 엄히 논죄하지 않을 수 없겠다. 예조에서는 각급 교육기관의 강의 내용을 엄밀히 조사하여 타인의 저작물만을 일부 고쳐 강의하거나,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도용한 훈장(訓長)의 명단을 계(啓:보고)하라."라고 하였다.
○ 행승정원주서 손오공이 녹봉재산제도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첫 번째로, 관리의 녹봉 지급과 관련하여 아뢰옵니다. 지금 녹봉의 지급을 보면, 매월 15일에 녹봉을 지급하는 형태로 되어 있나이다. 하지만 신이 생각하기로 본 제도는 관리하기는 수월하겠으나 불합리한 경우가 생기오니 이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매월 15일에 녹봉을 지급하는 경우에, 문의하여 본 결과 예를 들어 14일에 관직사령이 나면 15일에 일괄적으로 녹봉을 지급하게 되어 있사오니, 현재 관직에 있는 관리명단을 전조에서 호조에 보고를 하면 녹봉을 지급하게 되어 있다 하옵니다.
하오나, 그 관리가 녹봉을 받고 16일에 사직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 관리는 한달을 일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녹봉을 받는 경우가 생기옵니다. 그리고 관리들의 각각의 평정예정일이 다름에도 어떤 관리는 15일을 일하여 녹봉을 받고, 어떤 관리는 30일을 일하여 녹봉을 받는 경우가 생기오니 이는 오히려 현재에 비추어 합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옵니다.
녹봉 지급의 경우, 전조의 평정처럼 그 평정결과에 따라서 지급되는 것도 아니오니 별다른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옵니다. 예를 들어 8월 25일에 관직이 임명된 관리가 있다면, 그 관리는 9월 24일이 평정예정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렇게 30일을 일하고 녹봉을 받아가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오며 또한 호조에서는 그 관리의 평정예정일에 '모 관리에게 녹봉 얼마를 지급한다.' 라고 공고를 하고 재산 현황에서 갱신을 하면 끝나는 일이오니 오히려 현재 제도보다 불합리한 사례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드오니, 상께서 살펴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두 번째로, 호조의 백성 재산 매입과 관련하여 아뢰옵니다. 현재 재산 매입 제도를 보면, 호조에서 백성을 재산을 매입하는 경우와 백성끼리 거래를 통하여 재산을 매입하는 경우가 있사옵니다. 하지만, 재산제도는 이대로 끝날 것이 아니고 아울러 나아가 사조에 민국과 동일한 경제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현재의 경우를 보면 백성의 재산은 호조에서 매입하오니 당연히 백성들 간의 거래는 줄어들고 계속 이대로 나아간다면 백성들 간의 거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옵니다. 백성들의 사정에 따라 자신의 물품을 비싸게 팔거나 싸게 파는 경우가 있을 것이온데, 현재와 같은 경우라면 호조에 팔면 가장 절차도 빠르고 손쉬우니 당연히 호조에 매입을 할 수 밖에는 없을 것이옵니다.
이렇게 되면, 호조의 자금은 무한정이 있는 경우가 되오니, 이는 민국의 경우에 맞추어 현실성이 떨어지게 되오며 아울러, 경제제도로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사오니, 마땅히 호조에서 백성의 재산을 매입하는 것은 철폐되어야 한다고 신은 생각하옵니다. 부디 혜랑하여 살펴 주시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손주서가 아뢴 바는 과인도 염두에 두고 있는 사안이다. 추이를 지켜보면서 점차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니 크게 심려치 말라."라고 하였다.
○ 규장각제학 이휘가 출궁에 앞서 아뢰기를, "오늘이 전하께서 황해도 태백산성 인근으로 납시어, 사냥을 하시는 날이옵니다. 길일(吉日)이라 별다른 걱정은 되지 않으오나, 각 관청에서 만반의 준비를 더욱 갖추었사옵고, 인근의 한성부, 경기감영, 전하께서 납시실 황해감영에 이르기까지 전하의 사냥 행차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그 준비에 열심인 것으로 아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알겠소. 지금 출발하겠소."라고 하였다.
○ 평시서제조 이완이 손주서의 차자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녹봉 지급에 관하여 현 제도는 모든 관리에 대해 15일 근무하는가를 조건으로 모두 일괄 지급하는 제도를 체택하고 있사옵고, 15일 이상 근무하고도 녹봉을 받지 못하는 관리를 위해서는 녹봉지급을 절반 지급하도록 하고 있나이다.
손 주서가 아뢴 14일 임관, 16일 사직의 경우에도 물론 녹봉이 지급되오니 부당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사오나, 본조에서 발생하기 극히 드문 일이고 만약 그러한 경우가 생긴다면, 녹봉의 문제가 아니라 관청을 희롱한 일이 될 것이오니 그 예에 따라 별도로 취급하여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듯 하나이다.
만약 손주서가 아뢴대로 평정예정일에 맞추어 녹봉을 지급한다던가 근무일수를 감안하여 조치한다면 호조의 업무는 이조와 병조의 업무를 합한 것 만큼이나 막대한 행정력이 소비되게 되나이다. 각 관리별로 근무일수를 고려하여 관리하여야 하며, 품계를 별도로 관리하고 그 떄 그때 평정 결과 등을 관리하여야 하는 등 엄청난 행정수요를 감당하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 할 것이나이다. 만약 업무 과중으로 호조의 업무가 마비된다면, 사실상 본조의 경제제도는 완전히 멈출 것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인데 어찌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일단 아직 경제제도가 완비되지 않았고 호조의 업무또한 안정적이지 못하오니 일단 시행후 차후에 보완을 검토하시는 것이 가하다 할 것이나이다.
하옵고, 호조에서 토지 등 재산을 매입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호조에서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 사안이오나, 아직까지 화폐의 유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재산을 가진 백성이 몇 되지 않으며, 장터가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임으로 지금 당장에 호조에서 재산을 매입해 주지 않으면 사실상 토지 등의 재산이 유동성을 가지지 못함으로 교환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할 것이 우려됨으로 당분간 매입 중단을 보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지오며, 한분기 정도의 경제 제도 운영 이후에 대부분의 백성이 재산을 가지게 되고, 교환 등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판단될떄까지 매입 중단을 보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지나이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아뢴 바를 알겠다.
이와는 별도로 전교한다. 금일부터는 각급 관청과 민간 단체에서도 재산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하되, 우선은 금전으로 제한을 두도록 한다. 과인이 전라감영과 황해감영에 내린 내탕금(內帑金)을 해당 관청의 재산(예산)으로 변체(變體:이체)하라."라고 하였다.
○ 동지성균관사 이동진이 성균관사성 서양갑의 체직과 관련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었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형조좌랑 장운익이 민국 연예인의 대마초 사건에 대한 논죄에 대해 계사를 올려 아뢰기를, "지난 7월 16일 민국의 영화배우 겸 탤런트 예명 김부선(본명 김근희)가 611년(2002년) 11월부터 613년 7월 16일 구속시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자신의 아파트, 승용차 등에서 대마초를 흡연한 후, 613년 7월 12일 민국의 수사관을 피해 도주하였다가 적발된 사건이 한성부로 부터 보고되어 형조의 논죄를 거쳐 이에 전하께 아뢰옵니다.
이에 형조에서는 8월 3일 본 사건을 한성부로 부터 보고 받고 논죄에 착수하여 민국의 공인 신분으로 수 차례에 걸처 많은 물의를 야기한 김근히를 기존 마약 사범 최고형인 6개월, 동일 범죄 1/3 증형, 재범이상 배가증형 등을 적용하여 1년 4개월(16개월)의 형옥에 처하게 되었음을 아뢰오니 삼가 주상전하의 재가를 바라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계사를 윤허한다. 다만, 형옥 12개월에 처하라."라고 하였다.
○ 한성부 종사랑 권율이 상소를 올려 아뢰기를, "일전에 손오공 주서가 팔도서당 강의에 대해 차자를 올린바 있사온데 신의 서당이 그 범위에 들었사오니 주상전하를 뵐 면목이 없사옵니다. 하오나, 손 주서가 예로든 송재학당 훈장 권주나 소신이오나 연치가 어린고로 민국의 저작권법을 몰랐사옵니다. 또한 강원도에서 강의중인 효력부위 김대현,경기도 인의서당 훈장 이원도 같은 연유라고 하겠사옵니다.
부디 청하옵건데 저작권에 대해 깨우쳐주시옵고 앞으론 차후에 이런일이 없도록 엄히 훈계하는 선에서 마치시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일간, 적절한 조처가 내려 질 것이니 처소에서 근신하라."라고 하였다.
○ 병조정랑 이현이 무관 평정 결과에 대해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먼저 성균관 사성 서양갑의 평정 결과를 삼가 아뢰옵니다.성균관 사성 서양갑이, 대구 도호부사 재직시 받은 8월 셋째주 무관 정기 평정에서 가계(6.50)점을 받았나이다. 이는 사성 서양갑이 근무정산으로 어모장군에 오른 후 첫번째 실시된 평정의 결과이옵니다.
다음으로 권지 무관들의 평정 결과를 삼가 아뢰나이다.지난 7월 14일 임명된 군기시 권지 부봉사 이원은 가계(5.00)를, 형조 권지 율학훈도 이충은 가계(6.50)를, 형조 권지 율학훈도 박하진은 가계(5.00)를, 형조 권지 율학훈도 이은은 가계(6.00)를 받았나이다.
권지 부봉사 이원은 업무에 대한 오해가 있어 몇몇 업무를 제대로 수행치 못하였으나 활동하고자 하는 의욕이 대단하였으며 권지 율학훈도 이충은 형조의 업무에 서투르긴 하오나 나름대로 성실히 하였사오며 박하진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미등청한바 있사오나 지금은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나이다. 이은 역시 지금은 휴가 중이오나 휴가 전까지는 나름대로 꾸준히 업무를 수행하였나이다. 이에 삼가 아뢰오니 이원, 이충, 박하진, 이은을 권지를 면케 하시고 정식으로 직책을 수행토록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병조에서 평정한 바를 알겠다. 권지(權知)들을 정직에 제수하라."라고 하였다.
○ 전라도 백성 권주가 죄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일간, 적절한 조처가 내려 질 것이니 처소에서 근신하라.
이와는 별도로 전교한다. 전라도 검률은 권주(權洲)를 엄히 훈계하여, 이후론 압존(壓尊)을 위배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 전라도 유생 이석이 권율, 권주 등의 상소에 대하여 상소를 올려 아뢰었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전라도 유생 이석이 몇몇 훈장의 저작물 도용에 대하여 상소를 올려 아뢰기를, "금일 손 주서가 차자하여 몇몇 학당과 서당 훈장의 타인 저작물 도용에 대하여 아뢰었사옵니다. 이에 신, 글을 올리나이다. 아조에는 각 지방마다 학당과 서당이 있으며,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사옵니다. 분명 이들 중에는 훈장 스스로 강의를 하지 않고, 타인의 저작물을 도용하여, 마치 자신의 저작물인양 강의를 진행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들은 분명 큰 잘못을 저지른 것임에 분명하옵니다. 하오나 이 문제는 쉽사리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옵니다. 분명한 무단 도용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저작자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한 경우도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저작물로 강의한다고 하여 처벌을 할 수는 없는 것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관에 명하시거나 따로이 관리를 파견하여 정확한 실태를 파악토록 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정확한 실태가 파악이 된 뒤에야 그 잘못에 따라 처벌을 내려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는 한 번 잘못을 바로잡는 것으로는 온전히 바로잡히지 않사옵니다. 그러므로 예조에 명하시어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각 학당과 서당의 강의를 살펴보도록 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더하여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 도용한 훈장들에 대한 처벌에 대하여 아뢰겠사옵니다. 무릇, 훈장이라 하면 타인에게 가르침을 주는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 영향력은 조정의 관리 못지 않게 크옵니다. 백성들 뿐 아니라 관리들 또한 각 학당과 서당에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갈고 닦사옵니다. 그러므로 훈장의 미치는 영향은 아래로는 백성부터 아래로는 관리들에게까지 미치옵니다. 그러므로 훈장의 도덕적 책임은 막중한 것이옵니다. 훈장 스스로가 잘 알지 못하여 강의에 오류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사오나, 자신이 모른다고 하여 타인의 저작물을 마치 자기의 것인양 도용하는 것은 심각한 도덕적 잘못이 아니라 할 수 없사옵니다. 그러므로 훈장이라는 지위의 도덕적 책임에 대한 잘못에 대하여 처벌을 하여야 할 것이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상소한 바를 알겠다. 과인이 적절한 조처를 내릴 것이니 심려치 말라."라고 하였다.

8월 24일 을해(乙亥)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하빈군 사제(私第:사저)에 계신다.
○ 규장각제학 이휘가 아침 문후를 여쭈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금일은 사냥을 쉬고, 인근 바다로 나가서 산보하며 정국(政局) 구상을 마무리해야 할 듯하오.
황해감영에 전하시오. '항해감영에 전교한다. 과인의 황해도 거둥을 기념하고자 황해감영에 금전 100냥(兩)을 내릴 것이니, 황해도 활성화를 위한 행사를 계획하여 시행하라.'"라고 하였다.
○ 규장각제학 이휘가 침수 문후를 여쭈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고맙소. 경(卿)은 그만 물러가 쉬도록 하시오."라고 하였다.
○ 이조참판 정재안이 권지 관원들의 평정결과 등에 대해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금번 8월 셋째주 평정에서 지난 7월 14일 임명된 권지 사옹원봉사 주공단은 7.00의 평정으로 가계를, 권지 봉상시부봉사 권율은 6.33으로 가계를, 권지 승문원정자 송승록은 6.66으로 가계를, 권지 승문원 정자 홍유풍은 6.33으로 가계평정을 각각 받았사옵니다.
이들 모두 비교적 성실한 업무태도로 해당 관청으로부터 비교적 높은 평정을 받았사옵니다. 이에 삼가 아뢰오니 주공단, 권율, 송승록, 홍유풍의 권지를 면하게 하시어 정식으로 관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아울러 같이 권지로 임용된 정종호는 3.00의 평정으로 주의 평정을 받았사옵니다. 파직 평정은 아니나 권지의 신분으로 주의 평정을 받은 것은 문제가 있으며 그동안 이조에도 거의 등청을 하지 않았으며 이조관원으로서 의식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에 삼사의 7월 징계 대상자에도 명단이 올라와 있으니 이에 신의 소견으로는 파직하여 다른 관원들에게 경종을 울리게 함이 타당하리라 사료되옵니다. 아울러 신 역시 적극적으로 업무를 독려하고 등청을 촉구하였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하였사옵니다. 이에 삼가 청하오니 신의 죄를 청하오니 신 역시 벌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권지 정종호(鄭種乎)는 삭탈(削奪)하고, 가산을 적몰하라. 다른 권지들은 정직에 제수하라."라고 하였다.
○ 동지성균관사 이동진이 성균관 무과 교수에 대해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아뢴 바를 알겠다. 명일에 서양갑(徐羊甲)을 병조정랑으로, 이현(李炫)을 황해도 곡산군수 겸 곡산병마동첨절제사로, 조운(曺雲)을 성균관 직강으로 체직한다."라고 하였다.
○ 황해도 한량 박한이 상소를 올려 아뢰기를, "근자에 민국에선 천하의 이목이 집중된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높사옵니다. 그 중 체조경기에 출전한 양태영이 심판의 오심으로 억울하게 금메달을 놓쳐 동메달에 그치는 억울한 사건이 있었사옵니다.
항간에 금번 올림픽은 대국의 압력이 거세어 오심으로 얼룩져있다는 풍문까지 돌고 있고 실제 경기들을 보면 그러한 풍문이 거짓이 아닌듯 보일지경으로 양태영의 억울한 사연은 더더욱 그러한 바를 증명하고 있는 실예가 될 것이옵니다.
전하. 올림픽이란 항상 1, 2위를 따지지 않고 참여와 그 선수의 노력을 살피니 인이 있고 공정한 룰로 정정당당히 겨루니 의가 있으며 선수가 서로 최선을 다하며 룰을 지키므로 예가 있으며 승리를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쓰기에 지가 있고 정당한 승패의 결과를 미련없이 인정하니 신이 있음인데 양태영은 이러한 오상의 정신에 배신을 당하여 양태영을 비롯해 본국의 백성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백성모두가 그를 아쉬워하니 이를 어찌 천의라 하지 않겠사옵니까. 부디 양태영의 억울함을 풀어주시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상소한 바를 알겠다. 다만, 민국 체육회와 선수단에서 조처 중에 있으니 당분간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였다.

8월 25일 병자(丙子)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규장각제학 이휘가 환궁할 시각에 대해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알겠소. 지금 출발하겠소."라고 하였다.

8월 26일 정축(丁丑)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승정원주서 손오공이 세가지 사안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첫 번째 사안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전조의 '인사평정절목' 개정과 관련하여 먼저 아뢰옵니다. 상께서 전조에 인사평정절목 개정과 관련하여 전교를 내리신 날짜가 7월 23일이옵고, 7월 30일에 새로운 조항 첨가를 위하여 재차 전교를 내리셨사옵니다.
그로 인하여, 신은 승정원의 업무를 하기 위하여 전하의 전교를 전조에 통문으로 보내었사옵니다. 하오나, 7월 23일에 전교한 내용이 일주일간 봉행되지 않자, 신은 어명을 독려하기 위해 전조에 7월 30일 자로, 통문을 보냈으나 전조의 수장들은 어명을 봉행하겠다고 분명히 그 의중을 드러냈사옵니다.
하오나, 그후로 또 열흘이 지나도록 어명이 봉행되지 않자 신은 분명히 어명을 거역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8월 11일에 사간원에 제보를 하였습니다. 사간원 사간 신성룡이 이르기를 '병조가 근래 들어 업무 폭주로 고심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여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자.' 라고 의견을 피력하여 신 역시 또한 사간원에서 알아서 조치를 취하리라 생각하고 기다렸사옵니다. 하오나, 업무태만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지금까지 아무런 조처가 없어 신이 이렇게 어전에 직소하게 되었사옵니다.
그 후에, 이조 참판 정재안이 동일 8월 11일에 논의를 시작하여 이조와 병조의 의견을 모았으나, 또 현재는 절목개정의 업무가 진척되지 않는 것으로 신의 조사 결과 드러났사옵니다.
상께서 신이 올린 각급 관청 업무 처결기한과 관련하여 올린 차자에 다음과 같이 전교하셨었사옵니다. '다만, 직무태만 또는 직무유기로 업무가 장기간 지연되거나, 방치되는 경우에는 엄단(嚴斷)토록 하겠다.' 현재 전조의 인사평정절목 개정이 상께서 전교하신 사안에 분명 위배되오니, 관계자들을 문책하심이 마땅한 줄로 아뢰옵니다.
두 번째 사안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신은 무관으로 문관의 평정에 대해서는 관여할 권한은 없사오나, 금번 평정에 대한 의혹이 계속 불거져 가므로 상께 아뢰옵니다.
금번 평정으로 종4품 조산대부로 승품한 한종훈의 평정결과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조산대부 한종훈은 삼사에서 계한 '7월 근무자 보고' 에서 장기간 등청하지 않은 결과로 징계대상자로 분류되어 상께서 근무일수 감산 15일을 명하셨사옵니다.
근무일수 감산 15일이라면, 분명 근무태만자 중에서도 그 태만한 정도가 심한 경우에 해당한다 할 수 있사온데, 이조의 평정으로 한종훈이 조산대부로 승품되었사오니, 이는 분명 문제가 있다 생각하옵니다. 상께서 한종훈의 승품에 대하여 혜량하여 판단하심이 옳을 줄로 사료되옵니다.
세 번째 사안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상께서는, 예전부터 죄를 지은 백성들에게 '처소로 물러가 근신하라.'는 명을 내리신 적이 있사옵니다. 하온데, 그 근신이라는 개념이 모호하므로 그 범위를 정확히 할 필요성이 있어 아뢰옵니다.
근신이라는 사전적 의미로는 첫 번째 의미로,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다'라는 의미와 두 번째 의미로 '학교나 직장에서, 일정 기간 동안 등교를 금하거나 행동을 제약하는 일'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나이다.
만약 상께서 전교하신 '근신' 의 의미가 첫 번째라면, 죄를 범한 자는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면 될 것이온데, 상께서 명하신 '근신' 의 의미가 두번째 사안이라면, 분명 죄인은 모든 직무를 파하고 상께서 재차 전교를 내리시기 전까지 가택에서 스스로 연금하여 출입을 하지 않는 것이 옳을 것이옵니다.
주상전하의 어명을 출납하는 승정원의 관리로써 어명의 해석이 모호하여 차자를 드리나니, 부디 무지한 신을 깨우쳐 주시길 바라옵니다. 아울러, 신이 어명을 제대로 전조에 독려하지 않아 업무태만이 일어나게 되었사오니 신의 죄 또한 중하다 할 수 있사옵니다. 부디 신의 죄를 엄히 물으시어 어명의 지엄함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이시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 '인사평정절목'을 개정하고 세부적인 평정기준을 마련하여 각급 관청에 배부하는 일이 쉽지 않은 사업임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해서 한 달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만한 사업도 아니다. 이조참판의 체력을 감안하여 별도의 문책 없이 7일간 말미를 주도록 하겠다.
-. 풍문(風聞)에 과인이 즉위한 이후로 관리들의 평정점수가 상당히 후해졌다고 하더니, 한종훈(韓宗勳)의 예를 보니 낭설(浪說)은 아닌 듯하다. 전조(銓曹:이조와 병조)에 분명히 전교한다. 이후로도 관리들의 평정점수가 지나치게 후하거나 관대하다면, 전조 수장의 평정점수는 최하점을 면치 못할 것이다.
-. 금번에는 근신 장소를 명확히 하였으니 후자의 의미이다."라고 하였다.
○ 병조정랑 서양갑이 각급 관청의 자체 평정에 대해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조산대부 한종훈의 지난 평정점수가 지나치게 후하였다는 손 주서의 차자에 대해 전하께서 전조에 전교하시기를, '이후로도 관리들의 평정점수가 지나치게 후하거나 관대하다면, 전조 수장의 평정점수는 최하점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하셨사옵니다.
신 스스로, 지난 사헌부 집의 시절 당시 평안도 검률 민성휘의 평정 문제와 관련하여 평정이 지나치게 후하다고 지적하여 당시 병판이었던 하빈군과 의견을 달리한 적이 있었사오니, 어찌 전하의 명을 성심껏 받들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허나 각 관원의 평정아문은 비단 전조 뿐만이 아니라 만약 타 아문의 수장이 수하 관원을 평정하였을 때 그 평정 점수가 지나치게 후하다고 판단된다 할 지라도 수장의 평정권에 전조의 수장이 '이것은 지나치게 후하다.'라고 하여 물리칠 수는 없는 일이옵니다.
전조 수장의 노력만으로 평정점수가 지나치게 관대한 것을 해결할 수는 없으니 각급 관청의 수장급 관리 및 수하 관원들에게 차후 평정 점수가 지나치게 관대한 일이 없도록 엄명을 내리신다면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단, 무관의 경우 대부분의 무관들의 평정아문이 병조이므로 신과 병조 관원들은 전하의 심려를 덜어드리도록 성심을 다할 것을 맹세하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전조(銓曹:이조와 병조)에서 각급 수장들을 평정할 시에, 휘하 관원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후한 평정점수를 준 사실이 있다면 마땅히 평정에 반영하여 불이익을 주도록 한다."라고 하였다.
○ 병조정랑 서양갑이 외관직 임명에 대해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금일, 승의부위 민성휘와 민지훈을 각각 강원도 검률과 함경도 검률에 행직 임명하였음을 고하옵니다.
민성휘는 전 사헌부 감찰 한백겸의 천거로 출사하여 제14차 소과 원시의 시관을 수행하였고 형조 율학훈도, 평안도 검률을 역임하였사옵니다. 금번에 민지훈을 함경에 사령하고 남은 두 외관인 평안과 강원 중에서 민성휘가 역임한 바 있는 평안도를 제외한 강원도로 사령하였사옵니다.
또한 민지훈은 함경도 토관 출신으로 제14차 대과와 제17차 소과 원시에 급제하였으며, 그간 함경에서의 공이 많아 근자에 정직으로 승격하였습니다. 이에 민지훈을 전 검률 신재호의 전례에 따라 함경 검률에 명하였사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병조에서 사령한 바를 알겠다."라고 하였다.

8월 27일 무인(戊寅)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상(上)께서 삼사에 전교(傳敎)하시기를, "삼사 주관으로 빈청을 열어 조야(朝野)의 공론을 두루 수렴한 뒤, 근정훈장(勤政勳章)과 명예훈장(名譽勳章)을 수여할 후보자를 정해 각각 삼망(三望)하라. 훈장은 중추절(仲秋節:추석)을 기념하여 9월 24일에 수여할 것이니 9월 17일까지 후보자를 삼망하되, 빈청은 제1실을 사용하라."라고 하였다.
○ 상(上)께서 형조에 비망기(備忘記)를 내리시기를, "본국에도 국선변호인(國選辯護人)을 두었으면 하는 것이 과인의 오랜 의지인데, 사헌부와 형조의 실직(實職)을 역임한 현직 관리(현직 형조관리는 제외)나 유품자에게 피의자를 변호할 수 있는 국선변호인의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해 주고, 형조에서 사건을 공고하면 개인 의사에 따라 형조로부터 사건을 수임(受任)하여 변호를 담당하게 하였으면 한다. 국선변호인의 처우는 금전 또는 근무일수 포상 등으로 배려할 수 있을 것이다.
형조에서 구체적인 절차나 방법 등을 제도로 마련하여 아뢰되, 필요하다면 빈청을 열어 조야(朝野)의 공론을 수렴하라."라고 하였다.
○ 이조참판 정재안이 외관직 임명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금일, 비어있는 평안도 외관직에 정8품 통사랑 주공단을 평안도 검률에 임명하였기에 삼가 고하옵니다. 주공단은 7월 14일 천거로 출사하여 7월 29일에는 재15차 문과에 급제하고 이조 사옹원 봉사로 우수한 활동을 하여 지방관으로 부족함이 없어 임명하였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정직과 토관직의 차이가 분명하다고는 하나, 이방으로 재임중인 토관 서민교(徐民敎)가 6품 참상인데, 8품 참하관을 평안도 지방관으로 사령하면 되겠는가. 주공단(周公旦)의 사령을 즉시 거두고, 사옹원으로 복귀케 한다. 아울러, 평안도 지방관은 5품 이상관으로 새로 임명하던지, 토관 서민교와 협의하여 정직 지방관으로 전환케 하라."라고 하였다.
○ 형조좌랑 장운익이 민국의 유엉칠 연쇄 살인 사건 논죄 결과에 대해 계사를 올려 아뢰기를, "민국의 백성 유엉칠은 지난 개국 612년(2003년) 9월 11일 민국의 전주교도소 출소 13일만인 9월 24일 서울 신사동 거주 모대학 명예교수 부부 살해를 시작으로 613년(2004년) 7월 18일 검거될때까지 서울 전역을 돌며 감금, 폭행 등으로 총 21명의 무고한 백성들을 참혹하게 살해하였사옵니다.
또한 유엉칠은 위의 기간동안 살인과 별도로 민국의 경찰관 신분증을 위조, 사칭하며 공갈과 협박으로 금품갈취, 절도 등을 저지르는가 하면 구속후 도주 및 재구속후 욕설, 공갈, 살해협박등의 행위를 저질러 많은 백성들을 놀라게 하였사옵니다.
이에 형조에서는 지난 7월 18일 전임 형조 명률 김영일의 논죄 개시 이후 지속적인 정보 수집과 논죄등을 통하여 유엉칠에 대하여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음을 들어 별단의 판결문과 같이 정형에 처하기로 하였사오나, 규정상 의정부의 논죄를 거쳐 계하여야 하지만 관원이 없는 관계로 2심을 생략하고 주상전하의 결단에 맡기기로 하였사옵니다. 이에 삼가 주상전하의 재가를 청하옵니다.
본 사건은 형조에서 신속하게 논죄되어야 할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형조내의 다른 업무와 논죄로 인하여 미루어지다 이제서야 어전에 계하게 되는 불충을 저질렀사오니, 신등의 불충 아울러 꾸짖어 주시옵기를 청하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계사를 다시 올리도록 한다. 전례에 따라 '옥사 관련 현황'을 제외하고는 가명(假名)을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8월 28일 기묘(己卯)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강원도 수의부위 이충이 평안검률 임명에 대하여 상소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앞서 조처하였으니 심려치 말라."라고 하였다.
○ 병조정랑 서양갑이 前병조정랑 이현의 근무일수 보전 문제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전하, 전병조 정랑 이현이 황해도 곡산군수로 체직됨에 따라 그가 근무하였던 8월 12일~8월 26일까지 15일의 근무일수가 손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전례에 따라 15일중 8할인 12일을 보전하여 주시기를 청하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아뢴대로 조처하라."라고 하였다.
○ 형조좌랑 장운익이 민국의 유영철 연쇄 살인 사건 논죄 결과에 대해 다시 계사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죄상(罪狀)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고, 관계 자료가 매우 빈약하나 혐의가 확실한 사건이니 특별히 문제 삼지는 않겠다. 삼사(三司)의 의견을 듣고, 정형(正刑:사형) 여부를 결단하겠다."라고 하였다.

8월 29일 경진(庚辰)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충청도 진사 이덕무가 창국공신 개정에 대해 연명소를 올려 아뢰기를, "대행대왕(大行大王)의 유지(遺旨)를 받들어 금상(今上) 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어느덧 7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간 여러 도감(都監)이 운영되고 관리가 새로 부임하고 별시(別試)와 새로운 절목(節目)이 시행되는 등의 여러 변화가 있어 변화를 위한 기반이 충분히 마련되었으니, 이제야말로 조정에 새로운 기풍과 정신을 진작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분명한 원칙을 마련하고 그 기초를 확고하게 다져야 합니다. 만약 원칙과 기준이 없다면 민국(民國)의 일을 처리할 명분과 조야(朝野)의 공론을 수렴할 까닭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행대왕께서 이룩하신 공업(功業)이 적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배려가 다소 지나친 부분 또한 없지 않았으니, 그 일례가 바로 작년 7월의 대대적인 공신(功臣) 책봉입니다. 창국(昌國)의 공로를 치하하고 포상하는 일을 반드시 공신(功臣)이라 이름 하였어야 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소신(小臣) 등의 짧은 소견으로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조(我朝) 역사에 28차례의 공신 책봉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이견(異見)이 분분했지만 지금과 같이 납득하지 못할 지경인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1등으로 책봉된 2인, 2등으로 책봉된 4인, 3등으로 책봉된 5인 등의 정공신(正功臣)이 문제가 됩니다. 조종조(祖宗朝)의 전례를 생각해 보면 이는 지나치게 폭넓고 과분한 책봉입니다. 증직(贈職)과 증시(贈諡)라는 사후 포상이 크게 이루어지니 어찌 작은 일이라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충정공(忠敬公)과 충의공(忠毅公)을 추증(追贈)할 때에도 관작(官爵)이 겨우 정2품 정경(正卿)에 그쳤는데, 창국의 공로를 얼마나 크게 평가하기에 그런 포상을 부과하겠습니까. 품계가 종2품 아경(亞卿)에 이른 공신은 다시 군(君)으로 봉하는데 과연 인심이 얼마나 순응하겠습니까.
공신을 책봉할 때 반드시 1등과 2등이 있을 필요가 없음은 경종조(景宗朝)의 부사공신(扶社功臣) 책봉례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당시 공신으로 책봉하기에 미흡한 공훈이었고 결국 나중에 훈호(勳號)가 삭제되었다고는 하나, 일단 책봉하고 그 등위를 3등으로 정한 일과 추후 여하(如何)에 따라 공신 칭호를 회수한 등의 일은 후세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또 선정신(先正臣) 문정공(文正公)이 중심이 되어 정국공신(靖國功臣)의 위훈삭제(僞勳削除)를 주청했던 일도 본받을 만한 선례입니다.
창국 과정에서 여러 신하들이 노력하고 수고한 공로를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공로는 자급(資級)을 건너 뛰어 올려 주거나 특별한 관직을 제수(除授)하거나 혹은 교서(敎書)를 내려 명예를 증진시켜 주는 등의 은전(恩典)으로도 충분히 치하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창국공훈록(昌國功勳錄) 같은 것을 만들어 그 명부에 올리는 것으로 대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공신을 책봉해야 한다면, 2등 이하로 나눠 봉(封)하고 예우할 수도 있었던 일입니다. 새롭게 정비된 명예포상과 녹봉재산 등의 제도가 있으니, 지금 이것을 추서(追敍)하거나 적용하면 미흡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신 개정의 적기(適期)라 할만 합니다.
창국공신(昌國功臣) 1등 역시 여느 1등공신과 동일한 반열이라 할 수 있으니, 역시 엄중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추증과 추시(追諡), 봉군(封君)이 이루어졌으므로 정공신을 삭감하여 원종으로 하기는 어렵겠지만, 1등의 훈(勳)을 내려 2등으로 하고, 2등과 3등을 합쳐 말단(末端)으로 두는 것은 크게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원종공신(原從功臣) 15인도 지나치게 많으므로 다시 세밀하게 심사하여 등급을 조정하거나 아예 공신에서 배제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또 당초 충분히 공훈을 인정받지 못한 자가 있다면 새로 수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소신 등이 공신을 개정하고자 하는 뜻은 여러 신하들이 힘써 이룩한 업적을 전면 부정하고자 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문정공을 위시한 기묘사림(己卯士林)이 정국공신 삭제를 주청하였던 것이 어찌 반정(反正)의 명분을 모두 제거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겠습니까.
공신 의정(議定)이 형평을 잃어 외람되고 부당한 녹훈(錄勳)이 많았다는 것이 당시 공론(公論)이었기 때문에, 문정공 등이 이를 삭훈(削勳)으로 바로잡아 공권(功券)을 맑게 하고 정규(定規)를 세우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창국공신을 책봉한 것이 과거 정국공신의 경우와 세세하게 전부 일치한다는 것은 아니나, 열성조(列聖朝)의 공신 책봉 사례를 살펴 볼 때 창국 공업의 노고와 그 강도를 살펴 보면 공신 훈급과 숫자에 지나친 면이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므로, 소신 등이 역시 이를 개정(改定)으로 바로잡아 공신이라는 명호(名號)를 더욱 빛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장차 한말(韓末)의 충군지사(忠君之士), 충의지사(忠義志士)를 가려 독립공신(獨立功臣) 혹은 광복공신(光復功臣) 같은 것을 책봉하자는 여론(輿論)이 본격적으로 있게 된다면, 이 경우에는 어떻게 사업을 이끌겠습니까. 모두 조정에서 책봉한 같은 공신의 반열인데, 서로 다르게 예우할 수 있겠습니까. 공신 책봉의 세세한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혹여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본조(本朝)를 대(對)하는 다수 사람들은 필시 의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조정에서 모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설득하고 설명하겠습니까. 또 그렇게 한들 그것이 얼마나 받아들여지겠습니까. 결국 이러한 공신은 영원히 책봉할 수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
정공신의 훈급과 원종공신의 훈호, 명단 등을 개정하시어 후세에 좋은 본보기로 삼는 것으로, 대행대왕 전하는 물론 금상 전하 치세(治世)의 왕정(王政)을 더욱 밝게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경상도 생원 류돈하가 논매국노징벌소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이미 조처된 사안이다. 지난 개국611년 6월 29일에 '을사오적신죄책비(乙巳五賊臣罪責碑)'가 한성에 설치되었고, 동년 7월 15일에는 을사오적신에게 악시(惡諡)가 내려진 바 있다."라고 하였다.
○ 훈련원 참군 김현유가 이덕무 등의 상소를 물리치시라는 상소를 올려 아뢰었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상의원부제조 양지원이 광역모임 상벌제 시행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근자(近者)에 운영할 의지나 능력이 없이 광역 모임을 개설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임을 폐쇄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사옵니다. 그 예로 6월 12일에 개설한 조선 충의당(朝鮮忠義黨)은 의욕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상소에 이름이 오르자 1주일 만에 자진 폐쇄하였고, 7월 18일에 개설한 열린 친목회(열린親睦會)는 개설자가 활동을 이끌어내지 못하여 역시 약 한 달 만에 자진 폐쇄하였사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홀수 달에 시행하는 광역 모임 활동 평가에서 주의 처분을 받은 모임은 녹봉 재산 제도상 금전 30냥을, 폐쇄 처분을 받거나 특별한 사유 없이 모임을 폐쇄할 경우 60냥을 모임이나 모임 대표에게 부과하고자 하옵니다.
또한 한비자(韓非子)에 이르기를 '다스리는 자는 두 가지 자루[二炳]를 잘 사용해야 한다. 그 한 가지 자루는 형벌이고 나머지 자루는 상을 주는 일이다.' 라고 하였으니 우수한 모임을 치하함에도 모자람이 없어야 할 것이옵니다. 하여 같은 방법으로 모임 활동 평가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한 모임에 30냥을 포상하고자 하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아뢴 바를 알겠다. 깊이 상량한 후, 적절한 시기에 별도로 전교를 내리겠다."라고 하였다.
○ 규장각제학 이휘가 사직소를 올렸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병조정랑 서양갑이 사직을 금하는 문제에 대해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전하, 금번에 진사 이덕무가 창국공신 개정에 관한 소장을 올려 조정에 큰 파장이 예상되옵니다. 이미 하빈군이 사직소를 올려 퇴진의 의사를 밝혔사옵고 다른 공신들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염려되옵니다.
전하께서는 그간 고굉들과 신진들을 모두 덕으로 끌어안으셨으니 공신들이 사직을 청한다 할지라도 결코 윤허치 않으실 것으로 믿사옵니다. 허나 여타 공신들이 줄지어 사직을 청한다면 비록 전하께서 윤허치 않으신다 할 지라도 그 여파는 매우 크게 번질 것이옵니다. 이번 이덕무의 소장에 대하여 논란이 커진다면 전하께서 선뜻 비답을 내리지는 못하실 것이오나 시간을 두고 상량하신다 할 지라도 금번 사안에 대하여 비답이 있기 전까지 사직소를 올리는 것을 금하신다면, 조정의 필요치 않은 분란은 없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또한 이미 어전에 올라온 하빈군의 사직소를 윤허하시면 아니되옵니다."라고 하였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이조참판 정재안이 인사평정절목 개정에 대해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아뢴 바를 알겠다. 문맥(文脈)을 다듬고, 규례(規例)에 따라 개정을 진행하라."라고 하였다.
○ 경기도검률 김준호가 이덕무 등의 상소를 물리치시라는 상소를 올렸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훈련원참군 김현유가 이덕무 등을 벌하라는 상소를 올렸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함경도검률 민지훈이 이덕무 등의 상소문에 대해 상소를 올리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압존(壓尊)을 위배하였으니 근무일수 20일을 감(減:감산)하고, 벌금 20냥을 징수하라."라고 하였다.
○ 평시서제조 이완이 사직소를 올렸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병조정랑 서양갑이 일등공신들의 사직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전하, 신이 두달 전 전하께 형조 정랑직을 청하였을 때 신에게 벌을 내릴 것을 가장 강력하게 주청드리던 일등 공신 두 명이 오늘날 그때의 신보다 더한 과오를 저지르고 있으니, 참으로 황망스러울 뿐이옵니다.
지난날 前사헌부 감찰 김도민이 사직를 청한 후 윤허도 없이 낙향하여 1품을 강등당하고 불서용에 처해진 전례가 있었사옵니다. 두달 전에 그러한 전례를 들어 신에게 중벌을 주청하던 덕수군은 어찌하여 지금 사직소를 올리고 전하의 윤허도 없이 휘하 관원에게 지금 낙향할 것이니 업무를 위임한다고 말할 수가 있사옵니까?
또한 무릇 신하라 함은 그 주군을 알기를 하늘과 같이 알 것이며, 그 진퇴가 온전히 군주에 달려 있음은 고래로 역사를 바라볼 때에 그 사실이 이미 증명된 것이라고 말하던 하빈군은 어찌하여 전하의 윤허 없이 황해도로 낙향하여 모든 직급을 내놓겠다고 말하는 언행불일치 할 수 있단 말이옵니까?
아무리 경망중이라 하여도 이는 지나친 처사이옵니다.
하오나 전하, 신은 이 두 공신의 죄를 청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공신의 죄를 사하고 조정에서 봉직하게끔 조처해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두 일등공신의 사직소로 인해 조야가 걱정에 사로잡혀 있으며, 신 또한 그러하옵니다.
전하께서 이 두 공신의 죄를 묻지 아니하고 조정에 남아 있기를 명하시온다면 공신들이 전하의 명을 어기고 조정에서 물러난다고 말할 명분이 없어질 것이오니 첫번째 득이요, 조야의 근심이 사라질 것이오니 두번째 득이요, 조정에서 격렬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으니 세번째 득이옵니다.
지금 공신들이 사직소를 올리게끔 주청한 이덕무에 대한 분개로 여러 사람들이 그의 상소를 가납치 말 것과 벌을 주라는 주청이 있사오나 어찌 언로가 열린 조정에서 상소문이 조정의 대세에 맞지 않는다 하여 당사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가 있겠사옵니까? 본 조정은 지난번 하빈군을 파직하라고 주청한 류재현에게도 큰 죄를 묻지 아니하였으니, 이번 일은 더욱이 죄를 물을 수 없는 사안이옵니다.
또한 현 조정의 형편은 이덕무 등의 상소를 가납할 수 없는 실정이오니 전하께서는 상소문을 물리치시고, 격렬한 논쟁을 사전에 방비하소서. 재야에서 혈연을 맺어 한 가족이라 칭하는 이들이 어전에서 격렬한 말이 오가서야 되겠사옵니까? 전하께서 속히 비답을 내려주시는 것이 종사의 안위를 위한 최선의 길일 것이오니 부디 신의 뜻을 가납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전라도 유생 이석이 아비의 공신녹권을 거두어 달라는 상소를 올렸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8월 30일 신사(辛巳)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경기도검률 김준호가 어모장군 서양갑의 차자에 대하여 상소를 올려 아뢰기를, "서양갑은 차자에서 아뢰길, '지금 공신들이 사직소를 올리게끔 주청한 이덕무에 대한 분개로 여러 사람들이 그의 상소를 가납치 말 것과 벌을 주라는 주청이 있사오나 어찌 언로가 열린 조정에서 상소문이 조정의 대세에 맞지 않는다 하여 당사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가 있겠사옵니까? 본 조정은 지난번 하빈군을 파직하라고 주청한 류재현에게도 큰 죄를 묻지 아니하였으니, 이번 일은 더욱이 죄를 물을 수 없는 사안이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금번 문제는 상기건과는 다르게 '공신제 자체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이옵니다. 이는 단지 녹권을 반납하고 명예를 빼앗기는 문제를 떠나 사조의 기틀 자체를 뿌리까지 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서양갑의 차자에는 앞뒤 정황을 가리지 않은 헛점이 있습니다. 류재현의 경우에는 단독상소였고 또한 터무니 없는 청파직소였사옵니다. 하지만 금번의 경우에는 이조의 좌랑이 포함되었을 뿐만아니라 사조에서 명망을 얻고있다는 진사 이덕무까지 합세하였기에 그 여파는 이루 형용할 수가 없사옵니다. 이는 조정분란의 중대한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볼 수 밖엔 없사옵니다.
서양갑의 차자가 얼핏보기엔 훌륭한 해결책 같지만 이를 가만히 두고본다면 공신들의 신망은 땅에 떨어질 것이요, 일은 일파만파로 번질 것이옵니다. 더하여 서양갑은 차자에서 격렬한 논쟁을 사전에 방비하자고 하였는데, 금번 사건은 원칙 대 진보, 인륜 대 반인륜의 싸움이지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가 없사옵니다.
자신들의 신분을 망각하여 하빈군, 덕수군의 사직과 아울러 전생(前生)에 원종공신 이등 반열에 들었던 이석의 자살을 유도한 이덕무, 김지수, 서민교, 노태환, 전병록을 크게 징벌하시어 공신들의 명예를 천추에 길이 남길 수 있도록 간곡히 청하옵나이다."라고 하였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충청도검률 박신신이 덕수군 이완의 차자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현재 진사 이덕무의 소와 이와 관련된 차자 및 소로 인해 심기가 불편하신 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마는 이와 관련된 이완의 차자에 그릇된 점이 있고, 이러한 점이 관내 백성인 이덕무와 김지수에게 이번 상소건과는 별개로 곤란을 겪게 될 듯 하여, 관내 수장으로서 이렇게 아뢰나이다.
이완은 차자에서 '하오나, 신이 우려되는 것은 8월 27일 이덕무가 이조좌랑 김지수에게 아무런 댓가 없이 자신의 재산을 양도, 양수 한 이후 오늘과 같은 소에 좌랑의 이름이 언급 된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혹여 경제제도라는 것이 마련된 이후 조정의 여론이 돈과 토지로 매매되어 조정의 기풍이 혼탁해지고 선비의 곧은 기상이 흐려질까도 우려되는바, 이에대해서도 관련 아문에 령을 내리시어 한점 의혹없이 조사해 주시오면 황감하겠나이다.' 이렇게 밝혔는데, 이는 자신의 추측을 밝혔을 뿐, 전혀 증거가 없고 이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은 것임을 밝힙니다.
분명, 진사 이덕무는 양도의 사유를 충청관아에 '충청 선현들의 묘지건립을 위하여'라고 밝혔습니다.
허나, 이는 현재 녹봉재산제도에 따르면, 사유를 적어야 하는 조항도 없을 뿐더러, 현재까지 적용된 양도 및 양수 신고에 있어서도 어느 누구도 사유를 적은 적이 없었나이다. 오히려, 5조 1항을 보면 자유의사에 따라 유상 및 무상의 방법으로 이루어진다고 되어 있고, 진사 이덕무는 분명 충청관아에 사유를 밝혔나이다.
헌데, 이를 갖고 문제를 삼고, 의혹없이 조사를 해야 한다면, 오히려 지금껏 관아에 사유를 말하지 않은 자부터 조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호조에서는 이 신고에 대해 어떠한 조사도 없이, 단지 조정이 시끄럽다는 이유와 사유를 알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반려된 상태입니다.
행정은 모든 백성에게 공평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고, 어느 누구에게는 적용이 된다면, 모든 백성들은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할지 갈팡질팡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완의 차자 중 양도 및 양수 신고에 대한 사항은 물리시고, 호조에는 잘못된 점을 엄히 꾸짖으심이 옳은 처결이라 생각되나이다."라고 하였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예조정랑 조병옥이 이덕무의 상소를 비롯하여 공신들의 사직소를 물리치라는 차자를 올렸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상(上)께서 창국공신(昌國功臣) 개정 논란과 관련하여 전교(傳敎)하시기를, "-. 이 시각부터 창국공신 개정과 관련한 상소 · 차자 · 사직소 등을 일체 금(禁:금지)한다.
-. 생존 공신(功臣:정공신과 원종공신)과 연명 상소자 5인은 별도의 전교가 있을 때까지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처소(處所)에서 대기하라. 다만, 국정 중단을 방지하고자 이조 참판은 제외하도록 하겠다. 아울러, 호조 수장의 직무는 평시서령(平市署令)이 대행한다.
-. 승정원에서는 금일부터 익월 초5일까지 빈청 2실에서 창국공신 개정에 대한 찬반 의견을 수렴하여 증감없이 계(啓)하라.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자는 호적신고를 완료한 모든 백성으로 하되, 공신과 연명상소를 올린 자들은 제외하도록 한다. 아울러, 문장이 미흡한 백성도 대거 참여할 수 있도록 '댓글 참여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되, 신분을 명확히 밝히게 하라."라고 하였다.
○ 충청도 진사 이덕무가 창국공신 개정 문제에 대하여 상소를 올렸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8월 31일 임오(壬午)
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승정원주서 손오공이 어명을 거역한 백성들에 대해 아뢰었으나,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아뢴 바를 알겠으나, 특별히 처분(處分)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 병조정랑 서양갑이 참하 관리들의 사직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창국공신(昌國功臣) 개정 논란과 관련하여 앞서 전교한 바가 있는데, 사태가 진정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어 성급히 목숨을 버리거나 사직하는 자가 늘어나니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금일, 과인이 용단을 내려 혼란을 수습할 것이니 이 시각부터 창국공신 개정과 관련한 일체의 논의를 중단하라."라고 하였다.
○ 홍문관수찬 성혼이 민국의 사정으로 사직소를 올리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사직을 윤허한다."라고 하였다.

통덕랑 행이조좌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이 쓰고 돈용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가 교정하다.

개국624(2015)년 10월 20일 기록 : 통덕랑 행이조좌랑 겸승정원가주서 정예림
개국626(2017)년 01월 08일 기록 : 돈용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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