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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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인하
작성일 개국626(2017)년 1월 18일 (수) 14:05  [미시(未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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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가주서] 승정원일기 : 개국624(2015)년 12월 하 (교정)
12월 16일 병인(丙寅)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승정원에서 주관하여 20일까지 제184차 윤대(輪對)를 진행하였다.
* 16일, 행사헌부지평 정예림이 아뢰기를, "사헌부의 업무에 대해서는 현재 추고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아직 호조로부터 경위서를 받지 못하였는데 경위서를 받는 대로 사헌부의 의견을 정리하여 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외에 을미년 한 해가 다 가고 곧 새해를 맞이하는 만큼 아뢸 사항이 있습니다. 매해 전하께서 국정 지표에 대해 연두교서를 내리시나, 교서에 담긴 내용이 구체적으로 시행된 적은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소신은 병신년(丙申年) 연두교서조차도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까 감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여 몇몇 관원들의 출사로 조정에 활력이 다소나마 생기었고, 또 새해를 곧 맞이하게 되었으니, 빈청을 열어 현직 관료들이 모두 모여 새해의 국정지표와 그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의논케 함이 어떠하겠습니까. 윤허하여 주신다면 사헌부에서 주관하여 보름 간 빈청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논의 결과를 취합하여 1월 중으로 계하고자 합니다. 더이상 소신들이 어명을 받들지 못하는 불충을 저지르지 않도록 윤허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 같은 날, 사복시정 이운이 아뢰기를, "각 관청 수장에 대하여 아룁니다. 사헌부에는 행지평 정예림, 승정원에는 동부승지 임상유, 이조에는 참의 천어, 호조에는 행첨정 심기열, 예조와 형조에는 시정 겸정랑 김관, 병조에는 신이, 공조에는 행제검 이다행이 있습니다. 신의 평정을 내려 주시옵소서.
사헌부 계청에 대하여 아룁니다. 사헌부에서 빈청을 열어 새해의 국정지표에 대하여 논의할 것을 청하였는데 신 또한 그 뜻이 합당하다 생각됩니다. 현직 관원들이 심도있는 논의를 통해 국정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한다면 위로는 전하와 조정의 번영을 기대할 수 있고 아래로는 여항의 백성들 또한 기뻐할 것 입니다. 신 또한 더이상 어명을 받들지 못하는 불충을 저지르지 않도록 윤허하여 주시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 17일,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가 아뢰기를, "현재 승정원에서는 10월 승정원 일기를 작성중에 있으며, 그 외 특이사항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 18일, 이조참의 천어가 아뢰기를, "이조에서는 일상업무를 수행하고 어명을 봉행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 같은날, 예빈시정 겸형조정랑 김관이 아뢰기를, "예조에서는 금번 제99차 소과에 대한 준비를 마쳤으며, 이번 참시관의 업무가 병조에 있는만큼 병조를 도와 금번 소과가 잘 진행되어 치루어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사옵니다.
사헌부의 계청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신 역시 사헌부의 뜻이 합당하다고 사료되옵니다. 더욱이 현재 본조에서 관록이 있는 몇몇의 관원들이 출사를 하였으며, 또한 열정과 실력을 갖춘 새로운 관원들이 조정의 업무를 진행하고 있사옵니다. 관원부족의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았으나, 충분히 새로운 국정지표를 구체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논의가 되는 여건은 충족이 되었다고 사료되옵니다. 신 역시 매년 전하의 명을 거스르는 불충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윤허하여 주시길 청하옵니다."라고 하였다.
* 19일,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가 아뢰기를, "사헌부에서 내년 국정지표에 대하여 빈청을 열어 논의하자 청하였는데, 신 또한 그 뜻이 매우 합당하다 사료됩니다.
다만, 새해 국정 지표와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논의하기 앞서 올해 국정 지표 달성 여부를 먼저 확인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신이 조정 정상화 이후 내려진 연두 교서를 확인 보았는데, 주요 내용으로는 유효 인구 부족 및 조정 관리 부족, 주요 사업 미완결 또는 미시행 등으로 매년 내용의 차이는 조금씩 있으나 큰틀은 대동소이 하였습니다. 이는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알았으나, 무엇이 잘못 되었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불민한 신들이 알아채지 못함이 아닌가 합니다.
신은 올해 국정 지표 달성 여부를 먼저 돌아본 뒤, 부족한 점은 무엇이었는지, 잘한 점은 무엇이었는지를 점검하고, 부족한 점에 대한 개선 방안을 수립하여 그에 대한 세부적인 시행 계획을 수립/국정 지표에 반영하는 것이 우선이라 사료됩니다.
이에 사헌부에서 이러한 업무를 자청하여 주관하고자 하오니 그 뜻을 높이 치하하심이 옳을줄 아룁니다.
또한, 금일까지 윤대에 참여하지 못한 관원에 참여 독려 간찰을 발송하였으며, 승정원에서는 11월 승정원 일기를 작성중인데 10월 승정원 일기 작성중으로 착오하여 아뢰었습니다."라고 하였다.
* 20일, 상(上)께서 전교(傳敎)하시기를, "연두교서에 담을 내용에 관해 윤대 자리에서 몇 차례 의견을 수렴한 적이 있었지만, 그 효과는 평년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뚜렷한 성과를 담보하기는 어렵겠으나, 일을 추진하는 것은 결국 실무를 담당하는 관원이므로 그 의지를 담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선임 관원이 재직하고 있는 승정원에서 빈청 논의를 주관하여 보도록 하라.
이조에 명한다. 호조, 공조 관원이 20일 현재까지 윤대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호조는 사헌부의 규찰에도 아직 대응하고 있지 않으니, 등청이나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규례에 따라 평점을 감하고, 두 관원의 실태를 파악한 후 그에 관한 의견을 계하라.
윤대를 마친다."라고 하였다.

12월 17일 정묘(丁卯)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2월 18일 무진(戊辰)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2월 19일 기사(己仕)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2월 20일 경오(庚午)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경기도 통정대부 서민교가 논묘당논의소(論廟堂論議疏)를 올려 아뢰기를, "<대학>에 이르기를, '"갓난아이를 보호하듯 하라"라 하였으니 마음에 진실로 구한다면 비록 적중하지는 않더라도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식 기르는 법을 배운 뒤에 시집가는 자는 있지 않았다.(康誥曰如保赤子心誠求之雖不中不遠矣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촌구석에서 엎드려 듣건대, 이제까지의 어제교서(御製敎書)가 시행되지 못함이 많음이 있어서, 조정에서 논의하여 그 시행할 바를 정하여 계청한다고 들었습니다. 참으로 그 정성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국가에 근본이 바로 서 있다면, 따로 논하여 이것을 하자 무엇을 해보자 하지 않아도 될만한 일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정치의 근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하(上下)가 공(共)히 나라를 다스리는 단서(端緖)를 알고, 교화를 억지로 하지 않아서 자기로부터 먼저 시작하여 천하로 미루어 넓혀감에 있습니다. 성상(聖上) 전하께서 스스로 일신(日新)의 각오를 다짐하시고, 군신(君臣)들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겠다고 맹서(盟誓)하고, 백성들이 일치단결하여 함께 나아간다면 불가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선후본말(先後本末)을 잘 헤아려 일을 해 나가고, 그 일이 이치와 실정에 합당하면 필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논어>에 이르기를, '제후 나라를 다스리되, 정사에 집중하여 믿음있게 하며 씀씀이를 절제하여 백성을 아끼고 백성을 부림을 때에 맞춰 하라.(子曰道千乘之國敬事而信節用而愛人使民以時)'라고 하였습니다.
국가를 다스림은 거창한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박하고 작은 것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처럼 하지 않는다면, 위에서는 재촉하여 핍박하고 아래에서는 괴로워서 원망하게 되니, 그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자명합니다. 옛날 삼대(三代)는 무위(無爲)로써 유위(有爲)를 이루셨으니, 그것은 바로 백성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않고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의리(義理)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리(功利)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정치는 번잡하게 되고 개폐(開廢)가 끊이지 않아서 전조(前朝)의 전철(前轍)을 밟음은 물론, 백성은 지치게 되며 나라의 위신은 온데간데 없게될 것입니다.
<논어>에 이르기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천하에 도 있으면 예악과 정벌이 천자에게서 나오고 천하에 도 없으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오니, 제후로부터 나오면 대개 열 세대 안에 잃지 않음이 드물고 대부로부터 나오면 다섯 세대 안에 잃지 않음이 드물고 가신이 국가의 명령을 잡고 있으면 세 세대 안에 잃지 않음이 드물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정사가 대부에게 있지 않고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서민이 의논하지 않는다'(孔子曰天下有道則禮樂征伐自天子出 天下無道則禮樂征伐自諸侯出自諸侯出蓋十世希不失矣自大夫出五世希不失矣陪臣執國命三世希不失矣天下有道則政不在大夫天下有道則庶人不議)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백성에게 재갈을 물려 말을 못하게 하려 함이 아니라, 그 정치가 순조로우면 백성이 굳이 말할 일이 없음을 이른 것입니다. 설마 제신(諸臣)들이 논의한 바를 계하면, 이를 그대로 가납하여 교서로 내리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이것이 신의 어리석은 속단이기를 바랍니다. 신료들이 충정으로 간한 바가 틀렸다 할 수는 없습니다. 정론(政論)이 있게 되는 것이니 기쁜 일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역시 아래에서 가타부타 말이 나오는 것도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닌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는 이제까지 위에서 억지로 시켜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래에서는 따르지 않아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세상에 보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무릇 음양(陰陽)과 천지(天地)의 분별이 있듯이 내외(內外)와 상하(上下)와 귀천(貴賤)과 존비(尊卑), 부자(父子)와 군신(君臣)과 장유(長幼)와 부부(夫婦)의 분별 또한 엄연합니다. 이것들 모두는 서로 떨어질수 없고 또한 부절(符節)과 같아,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는 구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각기 도리가 있고 예절이 있고 절의가 있어서 사수(死守)하여야 하는 것임은 고금(古今)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가만히 역대를 살펴보면 이러한 분별이 지켜질 때는 태평하였으나, 이와 같지 못하면 난세가 되었습니다. 비록 중의(衆議)는 아래에서 나오더라도 반드시 정령(政令)은 위에서 나와야 합니다.
시골 사람의 우활(迂闊)한 말이라 물리치지 마시고 삼가 유념하시기를 앙청(仰請)합니다. 미욱한 신이 주제넘게 조정의 일에 대하여 모자란 머리를 굴리고 거칠게 붓을 놀렸습니다. 소신의 죄가 실로 작지 않습니다. 삼가 물러나 궤복하고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라 하고,
승정원동부승지 임상유가 덧붙이기를, "제184차 윤대석상에서 거론되어지고 있는 새해 국정지표 빈청 논의 주청 관련된 상소로,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제신(諸臣)들이 충정으로 새해 국정지표 논의하여 계하는 것은 정론(政論)이 있게 되는 것이므로 기쁜 일이나, 논의 내용을 그대로 전하께서 가납하여 교서를 내리시지 않을까 우려함과 동시에 아래에서 가타부타 말이나와 진행되는 이러한 모양새가 세상에 그대로 비춰지는 것을 걱정하였습니다.
또한, 중의(衆議)는 아래에서 나오더라도 장령(政令)은 반드시 위에서 나와야 하는데, 이는 부자(父子)와 군신(君臣), 장유(長幼)와 부부(夫婦)의 분별이 엄연하기 때문으로 이러한 분별이 제대로 지켜질 때는 천하가 태평하였으나, 이와 같지 못하면 난세가 도래됨을 우려한 내용의 상소입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상소한 뜻은 잘 알았다. 윤대에서 의견을 수렴한 것이 이미 여러 차례였으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12월 21일 신미(辛未)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이조참의 천어가 첨정과 제검의 실태에 관한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신이 탐문하니 첨정 심기열은 12월 9일에 헌부의 공문을 수신한 뒤로 등청하지 아니하였으며, 제검 이다행은 12월 2일에 소지를 접수한 뒤에 등청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12월 초까지는 다소간의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12월 제1차 평정에서는 상점을 받았습니다.
규례대로 두 사람의 평점을 감하였사오며, 또한 살피건대 어떠한 형편인지 알 수 없으니 전례와 같이 일단 면직하고 오위로 사령한 뒤에 추후 소명을 들어 처분하거나 첨정의 경우 추고 중이니 추고 결과를 살펴 처분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병조와 협의하여 추후 인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다시 계하겠나이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재가한다. 체직 처분하라."라고 하였다.

12월 22일 임신(壬申)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2월 23일 계유(癸酉)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사복시정 이운이 권지 관원 정직 의망에 관해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권지 관원 정직 의망에 대하여 아룁니다. 12월 20일자로 권지군기시직장 강건은 평정 2회를 받아 정직 전환 요건을 갖추었습니다. 당초 권지의 정직 전환은 병조업무지침상 재가를 받지 않는다 명시 되어있습니다만 지난 11월 7일 전하께서 "적순부위 강건은 지금 품계가 정7품이지만 본래 을과 급제자이므로 정8품 품계가 초수이고 정8품에서 정7품으로의 2계 가계는 성균관 졸업과 군관 경력에 의거한 특별 가계인 것이다. 며칠 전에 이조에서 동일하게 을과 급제로 정8품에 초수되었던 관원을 바로 정7품직에 올려 인선하였기에 허락하지 않았으니, 해당 관원도 권지를 마치면 8품직을 의망해야 한다." 하교 하시어 권지군기시직장 강건의 정직은 행군기시봉사로 의망합니다.
무관 평정에 대하여 아룁니다. 작일 호조 수장이었던 심기열이 접속력 문제로 오위로 체직 되어 행호조산사 겸상의원직장 최성원에 대한 평정권자가 공석이 되어 평정이 이루어 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신이 평정을 할 것을 청 합니다.
무관 대행에 대하여 아룁니다. 수교등록 권1에 수장 유고나 부재 상황에 대하여 무관의 경우 병조에서 그 시기나 상황에 대하여 의견을 계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호조외 공조 수장이 접속력 문제로 모두 오위로 체직되어 유고가 되었기에 행호조산사 겸상의원직장 최성원으로 하여금 호조, 공조 수장 대행을 하는게 어떠하겠습니까.
현재 후임 호조, 공조 수장은 이조와 협의 중이며 조속히 마무리 하도록 진력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재가한다. 계본대로 전환하라. 평정과 대행에 관한 건은 이조 계목의 인사에 의거한다."라고 하였다.

12월 24일 갑술(甲戌)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이조참의 천어가 호조와 공조의 당면 처리에 관한 계목을 올리기를, "전교하신대로 두 관원은 오위로 체직하였으며, 호조와 공조를 맡을 관원을 물색하였으나 관원의 수급이 좋지않아 어려운 면이 있고, 몇몇 관원의 의향을 알아본 결과 적절한 관원을 탐문치 못하였습니다. 하여 병조와 논의한 결과 호조는 신이, 공조는 시정 이운이 잠시간 맡아 당면한 현안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일단은 업무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본시 공조 관원 부재시 호조가, 호조 관원 부재시 이조가 맡도록 한 바 있으나 현재 산사 겸상의원직장이 있어 이조에서 대행하기가 적절치 않으니 신과 시정이 각각 사재감정과 선공감정을 맡도록 하시어 당면 업무를 처리토록 하심이 어떠하시겠습니까."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재가한다. 계목대로 사재감과 선공감의 3품 상당직(相當職)을 겸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12월 25일 을해(乙亥)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사헌부지평 정예림이 관원 추고에 대하여 계사를 올려 아뢰기를, "행기린도역승 정병욱의 장계에 대한 주상 전하의 하교를 받들어 추고(推考)를 진행하고자 관계 관원으로 추정되는 前행내섬시첨정 심기열, 행전라도검률 방인하, 행경기도검률 조예인, 행기린도역승 정병욱에게 지난 12월 10일에 경위서 제출을 요청하였습니다. 前첨정 심기열을 제외하고 모두 헌부로 경위서를 제출하였으며, 이들이 제출한 경위서와 헌부에서 자체적으로 파악한 바들을 살펴 추고 결과에 대해 계사를 올립니다.
먼저 행검률 조예인과 행검률 정병욱에 대해 아룁니다. 소신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바도 그러하거니와 이들이 올린 경위서의 내용이 일치하였는데 이 둘은 그저 공모전 행사에 대해 채점관으로서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하는 행검률 방인하의 제안에 응하였을 뿐, 그 외에 어떠한 관여를 한 것은 없었습니다. 또 행검률 방인하가 적합한 절차를 밟았으리라고 생각하였으며 절차 상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다음으로 행검률 방인하에 대해 아룁니다. 제출한 경위서에 따르면, 행검률 방인하는 전국단위의 행사를 시행하기 위해서 지방관 업무지침과 호조, 어전을 조회하여 의정부의 마지막 전국행사 결재 이후의 전국단위행사가 특이한 사항없이 십여차례 호조와의 협의로 시행됨을 알았고 전례를 따라 경기, 황해감영으로 전국행사에 대한 협의공문을 보내 동의를 구하고 호조에 전국행사에 관한 공문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호조에서 공문을 확인한 후 어전에 차자를 올렸고 그에 대한 비답을 보았으나 민국의 입시와 관련하여 대구와 서울을 이동하면서 잊게 되었고 호조의 공문 회신을 보고 아무런 의심없이 행사를 진행했다고 하였습니다.
행검률 방인하, 행검률 조예인, 행검률 정병욱 등에 대한 소신의 생각을 아룁니다. 이들은 모두 외관직 관원으로 중앙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지난 호조의 차자에 전하께서 명시하셨으나 이것이 외직에 있는 관원들까지 두루 알 수 있게 널리 공표(公表)가 된 것은 아닙니다. 실상 아조가 가상 사회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내외의 일을 두루 알기 편하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경관직과 외관직을 구분하고 있으며, 또 외관직에 나가 있으면서도 사정전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또한 근본적으로 전국 단위 행사를 시행하고자 한 그 뜻이 아조의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므로 이러한 점들을 참작(參酌)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특히 행검률 방인하는 민국에서의 사정도 있고 또 업무상 과실에 대해 충분히 뉘우치고 있습니다. 하여 이들에게는 특별히 다른 처분은 없고, 다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전국 단위 행사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사헌부 명의로 공문을 붙여 계도(啓導)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추가로 전국 단위 행사를 시행함에 있어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고자 '전국 단위 행사를 시행하고자 할 경우 의정부가 기능하고 있지 않을 때는 사전에 지방관이 장계를 올려 어전의 재가를 얻는다.'와 같은 내용의 조항을 지방관 업무 지침에 삽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료되는 바 유사(有司)로 하여금 업무 지침이 빠르게 갱신될 수 있도록 독촉(督促)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前첨정 심기열에 대한 소신의 생각을 아룁니다. 아조에 그간에 있었던 전국 단위 행사의 시행 전례들을 살펴보면 어전의 재가를 득하지 않고 호조나 공조 등과의 협의를 통해 진행하였고 사후에 지역 현황에 대한 장계를 올리면서 결과를 보고하는 식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특별히 문제가 된 바는 없었으나 지난 호조에서 올린 차자에서 전하의 비답을 통해 '의정부가 기능하고 있지 않을 때는 지방관이 장계를 올려 추진하면 될 일이다.'라고 명확히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교를 받든 호조에서 이 부분에 대해 전라감영에 알려 절차대로 진행할 수 있도록 이끌었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호조 내섬시에서 전라 감영으로 행사에 관한 회신을 보내니, 확인 후 진행하시면 되겠습니다. 호조에서 본 행사에 대해 이견은 없습니다.'라고 전라감영에 알렸습니다. 이로 인해 팔도의 지방관들이 죄를 짓고 추고를 당하게 되었으니 호조에 업무상 과실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더불어 상기의 내용은 前첨정의 경위서가 없이 헌부의 자체 조사로 아뢰는 것입니다. 이는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前첨정이 경위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하염없이 前첨정이 경위서를 제출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前첨정이 여전히 등청조차 못하여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면 모를까 지난 22일에는 등청하여 추고 공문을 수신하였습니다. 일찍이 前첨정은 예상치 못한 피정(避靜)으로 잠적을 한 전적이 있는데 이 때 전하께서 정상을 참작하여 따로 징계치 않으셨습니다. 또한 최근에 올린 사직차에 대해 전하께서는 '만약 민국에서의 학업이나 생업 때문이라면 그러한 사정을 미리 관청에 적절히 고시하여 상하 관원이 소관 업무에 참작할 수 있게 하라. 그것이 혹시나 있을 오해와 억측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다.'라고 비답을 내리신 바 있습니다. 이미 이번과 비슷한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같은 행실을 반복하여 직무유기로 조정 업무에 폐를 끼쳤으며, 또한 이번의 경우에는 등청까지 하였음에도 헌부의 추고에 응하지 않고 있으니 그 죄가 무겁습니다. 하여 소신은 前첨정 심기열의 파직을 청합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계사 내용이 타당하다. 직접 수교(受敎)를 받은 호조에서 그에 따라 시행하지 않은 탓이다. 추가 계사에 따르면 문맥을 잘못 이해한 때문이라고 하였지만 일의 발생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고, 경위서 제출 또한 방치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계사대로 처분한다."라고 하였다.
○ 행경기도검률 조예인이 청통언차를 올려 아뢰기를, ""삼가 전하께서는 스스로를 어질고 슬기롭게 여기시는 것이 너무 지나치고 신하들을 너무 하찮게 여기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전하께서 생각을 발하시는 것을 살펴보면 버티는 것이 너무도 견고하시어 끝내 고치지 않으시고, 신하들이 말한 것이 성상의 생각과 다르면 그때마다 배척하시며 간혹 견책이 뒤따르기도 하는데, 이는 스스로를 어질고 훌륭하게 여기는 것이 너무 지나치고 신하들을 하찮게 여기고 계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재상은 당연히 임금과 서로 가부를 따져야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여러 신하들을 꺾어 누른 것이 이미 온당치 못한 일인데, 대신이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지 않고 갑자기 허물을 인책한 것 또한 임금께 선을 권장하는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는 인조 임금 시기 대사헌 조익이 차자를 올려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관직 풍토를 살피니 그와 같지 않다 말할 수 있는지 신은 난망할 뿐입니다. 절차는 실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실익은 절차가 지켜질 때 달성될 수 있는 것이기에 경중을 논할 수 없는 것이나, 그 본질이 모두 열심히 해보고자 하는 마음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전국 단위 행사에 관계된 모든 관원을 추고하라 하셨으니 이제 그 명의 영향이 어디에 미치는지 보십시오. 과연 신하들이 언제 자신에게 칼을 돌릴지 모를 군주를 진심을 다해 섬기려 하겠습니까? 매번 조정의 인력난을 운위하면서 왜 재야에 있는 백성들이 과거도 보지 않고 관품이 있어도 출사하지 않는다 생각해보시지는 않으십니까? 그들이 능력이 없어 일하지 않는다 생각하시는 것인지 참으로 민망합니다.
신하들이 틈만 나면 죄를 청하고 스스로를 죄인 삼는 것은 그들이 진짜로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하의 날선 견책을 미리 꺾어 그 충격을 조금이라도 덜 받으려는 것임을 모르시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 완벽하다 여김이 재위의 모든 기간을 들어 강하게 지배하고 계시었으니 무공랑부터 통훈대부에 이르기까지 발전하는 것을 기대하는 자가 없고 그저 근무 일수만 이러구러 채워 승품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공자께서는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삼군가탈수야, 필부불가탈지야 - 삼군의 대장들의 벼슬을 뺏는 것은 가하나, 필부의 뜻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공자도 불가하다 하신 필부의 뜻을 뺏으려 하시는 것입니까? 목에 칼이 들어오기 전에는 극간하는 자도 없고 그저 이것을 태평성대라 부르니, 이것이 어찌 태조께서 안민을 위한다 조선을 개창하신 뜻과 같겠습니까?
관계(關階)가 모두 부흥하지 못하는 것은 임금의 뜻이 위로 너무나 강고하고 아래로 그 뜻을 꺾을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거한 신이 보기에는 전하께서 신하들을 단속하는 사헌부는 복설 운영이 되어도, 전하의 허물을 단속할 사간원은 자취를 찾기 어려운 것도 이와 동일한 뜻으로 보입니다. 일례로, 아무리 관청의 사정이 좋지 못하다 하나 전하께서는 경연조차 열지 않으시며 윤대로 간단한 보고만 받을 뿐 같이 호흡하려 하시지 않습니다. 이미 나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까? 위에서 통제만 하려 하셨지 그들의 말을 들어보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긴 글을 꾸며 차자를 해야만 그것이 합리적인 일이 되었으며 그것도 두번 세번에 걸쳐 무식하고 미거함을 통곡하듯 아뢴 후에야 간신히 가납의 의지가 떨어지곤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전일에 두 차례에 걸쳐 급제 신 최준의 서용을 청하는 내용의 글이 두 번 올라왔습니다. 비답으로는 끝내 그 의지를 꺾었으니, 최준이 다시 조정 방향을 바라나 보겠습니까? 누가 그를 다시 조정으로 가게 해달라 청원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조정으로 들어오는 문은 이미 이렇게 좁고 나가는 문은 수도 없이 많으니 인력난이 발생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뢰어지는 기안은 이래서 불가하고 저래서 불가하다 말하기 바쁘니 도대체 그냥 연명하는 것이 아니면 무슨 일을 도모해볼 수 있겠습니까? 전국 단위 행사만 했다 하면 벌에 처해지는데, 누구든 하려고 하겠습니까?
목숨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충(忠)이라 생각하는 왜(日本)의 사무라이(侍)조차 언제 자기들을 향할 지 모르는 칼 앞에 히데요시를 등졌고, 그 결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그토록 히데요시가 아꼈다고 하던 시즈카타케의 칠본창들이 도쿠가와의 편에 서서 히데요시 가문을 대적하였습니다. 매번 이렇게 혼나기가 일쑤인 관원들이 진심으로 모든 일을 충성과 애국의 입장에서 할 수 있다 생각하신다면 크나큰 오산입니다. 더군다나 현실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주권자인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고 어느 누구도 이제는 충(忠)의 시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에서도 연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신하를 면대하는 인식의 수준은 선조임금의 시기에 머물러 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스스로 인재를 털어 버리며 인력이 없다 하는 것이 말입니다. 누구를 위한 원칙이고 규범입니까? 때로는 권도가 원칙을 앞서는 것을 보면 서고의 법전은 누구를 위함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헌 가죽 부대에 새 술을 부어 놓으면 발효되는 기포로 인해 가죽 부대도 터져버리고 술도 못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새 시대가 도래하였고 새 사람이 조정에 들어와 있으면 새로운 인식으로 그들을 면대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 포괄적인 선도자(leader)의 책무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막상 신하들을 대하는 태도를 봄눈 녹듯이 바꾸려 하니 권위와 엄한 호통으로 신하를 대하던 예전의 모습에서 바뀌어 사람들이 임금을 우습게 알까 함인지, 그렇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 대신 마음이 상하여 조선을 떠난 자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도 분노가 먼저 치민다면 신이 이런 글을 쓰는 의미조차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저 전하께서는 삭탈관작 후에 엄한 형벌을 내려 문외에 추방해버리면 그만인 만기친람의 임금이시고 신은 무지몽매한 미관말직의 벼슬아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아조에는 입으로 말하는 예의와 범절은 있으나 실재가 없고, 관용은 그저 이웃나라 책에나 나오는 것이라, 한 번 실수로 인생을 폐급으로 취급할 수 없다는 전하의 전교가 무색할 정도입니다. 행사 관계로 추고를 받았던 신 최성원은 통청록에 기록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으며 조정에 직언하는 것은 '극렬충'으로 몰리기 십상이라는 말이 저자에 나돌고 있습니다. 각자 아문 밖의 일에 서로 간섭지 아니하려 하며 그저 자신의 관생만을 보전하면 그것이 전부인 것이 풍토가 되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이끌어 만들고자 하는 조선이 과연 거기에 있습니까? 살아 숨쉬는 조선, 옛 삼봉과 태조께서 상상하였던 조선의 모습이 전하께서 생각하는 아조의 모습과 같다면 이런 식은 아닙니다. 신은 이러한 것을 꿈꾸어 입조하고 과거를 보아 등과하고 어사화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소신을 제외하고도 인재가 많은데, 각자 적재적소에 배치되지는 못하고 그저 보전의 일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조정에서 정론이 없는 것은 정치가 없음이고, 정치가 없음은 그저 모두가 오늘만 살아내면 된다는 식으로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책무, 주어진 공문만 처리하면 할 일이 없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고민을 하다가는 견제를 받고 견책을 받고 추고를 받기 때문에 스스로 삼감이 도에 지나쳐 이제는 그늘에 명멸하는 버섯처럼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신만이 그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모두 자신이 없고 패기도 없고 뭘 해보려는 의지도 없이, 그저 끝간 데 없는 움츠림 속에 있을 뿐입니다. 그 속에서 보고만 받고 결재만 하는 것이라면 우리 조선의 정체성은 그저 행정시스템에 불과한 것입니까?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관직은 그저 오늘을 살아내기 위한 것에 불과하고, 미래를 멀리 보고 말하며 생각하는 자는 멸종하였습니다. 그뿐입니까. 이제는 잘못된 것이나 불편한 것을 보아도 스스로 나서 고치려는 자는 없습니다. 정론을 나누어 본 적이 없으니 이제 멍석을 깔아 주어도 아무도 그 자리에 나와 이러하다 저러하다 의견을 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옛 임금은 자신을 호칭할 때에 스스로 덕이 적은 사람이라는 과덕지인(寡德之人, 과인)이라는 말에서 두 글자를 받아 썼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어떠십니까. 스스로 덕이 많다 여기십니까? 참으로 많은 것에 통달하여 만기에 친람하신다 여기십니까? 재상을 만들지 아니하는 것이 이런 뜻에 연달아 있는 것이라면 신이 전에 올린 당상이 될 법한 자는 당상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 당연히 무색하였을 것이며, 지방의 교육을 흥하게 하자고 향교운영을 하자는 것도 무색한 제안이었을 것입니다. 금일에 이르러 내려진 비답들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실로 이와 같았습니다. 신하들을 신하로 보기 전에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저 바디(베틀의 부속품)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습니다. 추고의 근거가 전일 올려진 호조의 차자라 하였습니다. 관보나 기타 공고의 효력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아문의 차자와 비답을 전 관원이 숙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라인의 능동성을 반영한 것일 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에도 강제하는 바도 없고 법규도 없습니다. 심지어 내려진 호조 차자의 비답에도 숙지케 하라든지 그런 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사유로 벌을 부과하겠다니 참으로 난망합니다. 추고는 벌이 아니고 조사에 불과하다, 찔릴 것이 없으면 당당히 받으면 된다는 말은 이미 앞선 사례로 무색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흥성은 둘째치고 보전조차 난망한 일입니다. 신뢰의 보호는 땅에 떨어지고, 관직자의 관직 목숨은 파리 목숨인데다, 즐길거리의 태부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각종 제약과 가벌성만이 판치는 작금의 조정에서 신하들은 어디로 가야 옳겠습니까? 이제 관용 없는 임금과 내쳐짐이 두려워 말도 못 하는 신하, 우리는 창국 20주년을 장담할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사헌부의 계사 이전이라면 모르겠지만, 계사를 보고도 직접 사건에 관계된 몸으로 이러한 내용의 차자를 올렸으니 조정에서 처분하는 일에 대한 안팎의 신망이 대체로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어전에서 어떤 규례를 고쳐 시행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전교하였는데, 그 명령이 곧바로 폐기되는 지경에 이르렀을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서 그저 좋게좋게 넘어가자는 것이 진실로 조정을 위해, 장차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겠는가. 일의 전말을 살펴 처분하고자 담당 관청에 추고를 명한 것이 어찌 칼을 돌려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의 목에 대는 것에 비유될 일인가. 이미 여러 차례 명시하였지만,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혹은 적당히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대충 덮고 넘어가는 풍토가 공자께서 말한 바람직한 필부의 뜻은 아닐 것이며, 조정이 지향해야 할 바도 아닐 것이다. 한 관원이 통청록에 기록되지 못한 것을 지적하였으나, 그것이 담당 관원의 판단과 주청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과 통청록 및 선천록 선발 과정에서 재차 전교하여 몇 인을 구제한 것은 애써 외면하는가. 이에 이르러서는 과연 어떻다고 하겠는가. 스스로 자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차 내려진 전교와 처분의 면면을 볼 때 지금 조정에 관용이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규정에 따라 추고와 징계를 청하거나 전교하면 혹자는 너무 가혹하다 말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분명히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인력이 부족한 조정 형편을 참작하여 가만히 있으면 담당관의 직무유기를 지적하거나 상벌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나라에 기강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즉 관원의 주청을 가납하면 신하의 의견을 잘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권한이 아래에 있다고도 하고, 내외 사정을 참작하여 처분하면 주장이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므로 상하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한 때에는 이런저런 염려의 가능성을 뒤로하고 평소 소신에 따라 처결할 뿐이다. 이는 비단 어전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하급 관원 또는 관속을 이끄는 관청 수장의 경우도 같다."라고 하였다.

12월 26일 병자(丙子)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용양위사직 심기열이 죄를 청하는 소를 올려 아뢰기를, "12월 11일부터 신이 민국의 성탄절 행사 등 여러 연말 행사 등으로 바쁜 시기를 보냈사옵니다. 아조의 일이 있음에도 신이 민국에서 일을 끝내면 밤 12시가 넘어 집에 오는 일이 다반사여서 폰으로 업무를 챙긴다고 하였으나, 그러지 못할 때가 많이 있었사옵니다. 가끔 폰으로 간찰이나 업무를 확인하였지만, 신의 불찰로 인해 확인만 해놓고, 바쁜 시기가 지난 후 처리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있었던 것 같사옵니다.
녹을 먹는 관리로서, 아조의 일도 중요시 여겨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아조에 알리지 않고, 휴가도 내지 못한 신의 불찰로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사죄드리옵니다.
또한 매번 실수를 할 때마다, 전하의 하해(河海)와 같은 성은을 입고도, 그 성은에 보답하지는 못하고 이와 같이 상소를 올리는 신에게 벌을 내려 주시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처한 사정을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동일한 행적과 과실이 이미 여러 차례 누적되었으므로 사헌부의 추고 의견에 따라 처분하였다. 수장급 관원에게는 그 직위에 걸맞은 책임과 기대가 따르기 마련이다. 여건이 허락되면 다시 출사하기 바란다."라고 하였다.

12월 27일 정축(丁丑)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가 경기검률 차자에 대한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금일 신(臣)은 경기검률이 올린 차자를 접하고 전하의 심기(心氣)가 어지러워질까 저어되는 마음이 앞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차자 내용이 매우 강경하고 격렬하여 그 뜻이 실로 무엇인지 쉬이 알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臣)이 경기검률의 차자를 살펴보니 그가 부당하다 여긴 사안은 크게 두가지로 보이며, 그 첫째가 전라감영이 주관 및 진행한 전국단위 행사가 절차상의 하자(瑕疵)로 인하여 추고된 점입니다. 무릇 절차란 어떠한 행위를 통하여 발생된 결과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이것은 실익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실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만, 그 절차를 일탈(逸脫)하여 얻어진 실익이 취소 내지 무효 처분이 내려지는 것은 민국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도 이와 같아서 전국 단위 행사 직전, 내섬시첨정 심기열이 행사 시행 규칙에 대한 차자를 올려 전하의 비답을 받았으며, 전국 단위 행사 진행 절차에 대한 변경된 내용을 주무 관청에서 전라 감영에 통보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번 전라감영 주관 행사는 절차상의 하자가 있는 행사가 되었고, 전하께서는 관계 관원을 추고하라 명하시어 작일(昨日) 사헌부에서 그 결과를 계하였습니다. 이러한 전하의 처분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신(臣)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신(臣)은 내섬시첨정 심기열의 실책(失策)으로 인하여 일이 발생된 만큼 책임이 있음은 물론이나, 그가 오랜 기간 봉직한 점과 민국의 사정이 있었음을 참작하여 처분에 아량을 베푸심이 옳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두번째는, 급제 최준의 서용 불가 비답에 따른 것으로, 급제 최준이 상소를 올려 자신이 관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청하였고, 신(臣)과 사헌부지평 정예림 역시 같은 의견을 올렸으나, 전하의 뜻은 확고하여 가납치 않으셨습니다. 물론 급제 최준의 이력을 보건데 신(臣) 역시 그의 본심이 의심가는 것은 사실이었고, 이미 전하의 처분으로 징계 삭탈된 자를 아무런 명분(名分)과 기준(基準)도 없이 다시 서용하는 것 역시 전하께 부담이 따르는 일입니다. 이러한 특별한 사안을 들어 차자에 언급하는 것은 신(臣)이 보기에 온당치 못하다 여겨집니다. 이에 신(臣)은 삭탈 관원 중에 재출사가 가능한 대상 인원을 선별할 수 있는 기준을 이조와 병조에서 논의하여 마련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두가지 내용을 돌아보건데, 경기검률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조종(祖宗)의 위업(偉業)을 보존치 못할 정도의 큰 사안은 아니라 여겨지나, 조정의 대소사를 처분하실때, 전하께서 위엄(威嚴)과 아량(雅量)을 보이시면 절로 해결되리라 보입니다.
끝으로 동부승지 신(臣) 임상유 아룁니다. 경기검률 조예인의 차자는 비록 그 글의 모양새가 강경하고 격렬하나 그 내용 마저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니라 보여집니다. 비록 몇몇 내용은 그의 열정에 가려진 부분이 있으나, 실로 전하와 본조를 아끼는 마음이 있지 않고서야 어찌 이와 같이 직간(直諫)할 수 있겠습니까. 신(臣)이 듣기로 한고조는 "내가 항우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 던 것은 소하, 장량, 한신같은 인재를 얻어 잘 활용하였고, 항우는 단 한사람의 인재인 범증조차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이와 같아서 인재를 얻고 잃음은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경기검률 조예인이 비록 관품은 낮지만, 제55차 대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전하께 충심으로 직간할 수 있는 신하로 장차 본조에 매우 귀한 인재가 될 것임은 신(臣)이 비록 우매하나 바로 알수 있겠습니다. 그의 충심을 높이 치하하고 다독이심이 옳을 것으로 사료됩니다."라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품계는 참상이지만 아직 신진(新進)이기 때문에 언사가 다소 과격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겉치레 표현 아래에 있는 글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급제자 서용 문제에 관해 승지가 다시 의견을 말하였으므로 비답한다. 만약 무관을 감당하는 병조에서 처음 그러한 의견이 제기되었으면 조정에 관원이 부족한 현실을 감안하여 검토를 명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사자가 스스로 상소하여 사면복권을 청원한 것이고 대과 응시를 간청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본조 활동이 수년에 이르고도 아직 과거 제도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다. 또 상소한 시기도 군관 지원이 병조에 의해 좌절된 직후이니 그 뜻을 누가 순수하게 보겠는가. 병조에 북한산성 공사를 보고한 11월 문서까지 감안할 필요도 없으니, 그래서 더욱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교나 비답에서 출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거나 낮은 관직에 있다는 것을 굳이 명시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그러한 상황을 이유로 주장이나 주청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다. 과격한 언사나 표현이 있더라도 아직 의례나 형식에 익숙하지 못해서라고 포용하고 넘어갈 이유를 찾기 위해서이다. 오늘 이 비답의 신진 역시 같다. 그러나 간혹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 미관말직이라 자처하는 경우가 있으니, 실로 어려운 일이라고 하겠다."라 하였다.
○ 행사헌부지평 정예림이 호조 추고에 대한 계사를 올리기를, "지난 26일, 前행내섬시첨정 심기열이 호조로 경위서를 제출하였습니다. 하여 앞서 이미 추고에 대한 계사를 올리기는 하였으나 이러한 부분을 보충하여 추가로 계사를 올립니다. 별단에 前첨정이 제출한 경위서 전문을 첨부하였습니다.
前첨정이 제출한 경위서를 보니 경위서 제출이 늦어진 것은 어전에 올린 청죄소의 내용과 같이 민국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전국 단위 행사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前첨정이 과실을 범한 것은 전하의 하교(下敎)를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前첨정은 전하의 비답 중 일부를 보고 호조에서 충분히 진행되어도 될 사항이라 판단했다고 하지만 소신의 생각으로는 비답의 일부만 보고 그대로 진행하였다는 前첨정의 소명이 이해가 가지 않고, 비답의 전문도 전혀 오해를 낳을 소지가 없었다고 판단되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하교의 내용은 소신의 짧은 식견으로 이해한 바에 따르면 결국 전국 단위 행사는 지방 관청이 아니라 중앙 관청에서 실시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고, 그 사업의 부문에 따라 주무 관청이 지정이 되어야 하는데 특별한 경우가 있으므로 예외적으로 의정부의 결재를 거쳐 시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며, 현재와 같이 의정부가 기능하고 있지 않을 때는 지방관이 장계를 올려 어전의 재가를 득한 후 추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추가로 하교하신 부분이자 前첨정이 오해하였다고 밝힌 부분의 내용은, 의정부가 기능하고 있지 않은 현재와 같은 경우에 전국 단위 행사를 결재할 관청을 특정할 수 없는 것은 그 행사나 사업이 호조나 예조의 사안일지, 공조 담당일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오해할 만한 여지가 없고 부수적인 내용이며 앞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고 사료됩니다.
前첨정은 참하관이나 참상관이 아닙니다. 종3품에 대부이며 4년 여간 근속하였습니다. 그간 前첨정이 민국에서의 바쁜 사정으로 업무를 살피지 못한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고, 업무에서 실수를 범한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청죄소를 올렸고 前첨정의 민국에서의 특수한 생업(生業)과 또 근속한 공로를 감안하여 전하께서는 너그럽게 살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前첨정이 청죄를 한 것만 여러 차례인데 전혀 나아진 바가 없고 바쁜 시기가 지난 후 처리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일의 경중(輕重)과 선후(先後)를 구분치 못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일찍이 다른 사안에 대해 하교(下敎)하시기를, '민국에서의 일상 업무나 학업을 대개 통신의 힘을 빌려 처리하고 다른 사람과 교통할 때에도 SNS에 의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니, 실제 병환이 있다거나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닌 다음에야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찌 몇 분 남짓한 시간을 내어 어려움을 보고하거나 소명할 틈을 내지 못하겠는가.'라고 하시었고, 또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조정 일을 민국 일에 우선하기는 어려운 일이니, 과인이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스스로 다짐하여 기한을 정해 어전에 계할 때에는 그 다짐의 무거움을 생각해야 하고, 어떤 사업을 진행함에 절차를 준수하거나 기한 내에 완수할 수 없게 되면 그 상황이 다하기 전에 미리 계하여 재결을 받는 것이 마땅한데, 그러한 행동이 없거나 허술하므로 위에서 재가하고 전교한 내용이 가볍게 흩어지는 것이다. 주의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前첨정에게'만약 민국에서의 학업이나 생업 때문이라면 그러한 사정을 미리 관청에 적절히 고시하여 상하 관원이 소관 업무에 참작할 수 있게 하라. 그것이 혹시나 있을 오해와 억측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다.'라고 하교를 내리신 적도 있습니다. 한편 '수장의 재량으로 전결하는 민원(본적지 변경, 교육기관 관련, 각종 모임 관련 등)과 인사지원 업무(관직 및 체직 신청에 따른 5품 이하관의 인사, 관속 임면, 관직 서경 등)는 5일을 기한으로 한다. 별도의 논의 없이 과인의 재가로 처결되는 민원(개명 등)과 인사지원 업무(관직 및 체직 신청에 따른 4품 이상관의 인사, 한성부 수장 임명 등)는 7일을 기한으로 한다. 이외로 대전(大典)과 절목 등에 일한이 명시된 업무(결옥일한 등)를 제외하고는 별도로 일한을 정하지 않는다. 다만, 직무태만 또는 직무유기로 업무가 장기간 지연되거나, 방치되는 경우에는 엄단토록 하겠다.'라고 전교를 하신 바도 있습니다.
前첨정 뿐만 아니라 조정의 모든 관원이 민국에서 생업(生業)을 지고 있으며 그 와중에도 짬을 내어 조정의 업무를 돌보고 있습니다. 이는 누구하나 예외가 없이 조정에 있는 모두가 그러합니다. 조정의 일이 민국의 일에 우선하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前첨정이 비슷한 사안들로 청죄(請罪)를 한 것이 여러 차례인 데 이제는 이것이 단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실로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뉘우친 것인지 알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유야무야(有耶無耶) 넘어간다면 무엇으로 내외에 경계로 삼을 수 있겟습니까. 앞서 계사를 올린 데로 이와 같은 사안에 대하여 마땅히 파직을 하여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사료되나, 조정이 관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시점에 자청하여 복귀하고 업무를 살핀 공로가 없다고 할 순 없으므로 동부승지의 주청과 같이 아량을 베푸시어 다만 그의 품계를 봉정대부로 1계 강등하는 것으로 그쳐 본인이 원한다면 계속 조정에 남아있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추가 계사를 참작하여 처분하였다. 품계를 강등하는 탈고신(奪告身)이 징계 면직인 파직보다 중(重)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행사헌부지평 정예림이 일련의 차자에 대한 차자를 올리기를, "공자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길, 듣기 좋게 꾸민 말과 좋게 꾸민 얼굴빛을 하는 사람치고는 의인이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라고 하셨습니다. 천하를 경영하시는 전하께서도 반드시 유념하셔야 할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교언영색에 현혹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하된 입장에서도 경계해야 할 바가 이와 같아서 전하께서 바르지 못한 길로 가려고 하실 때 죽기를 각오하고 직언(直言)하여 전하께서 바른 길로 나아가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하께서는 무릇 상과 벌이라고 하는 이병(二柄)으로 신하를 제어하고, 신하로 하여금 명령을 따르게 하기에 신하된 자 역시 교언영색의 함정에 빠지기가 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사특한 자들에 의해 여러 나라들이 쇠하고 망한 역사가 증명합니다.
하지만 오늘 행검률 조예인의 차자를 보니 소신은 이에 대한 염려가 가시고 아조(我朝)의 앞날이 밝음을 알겠습니다. 극력(極力)으로 간한 까닭에 문장(文章)과 태도가 제법 강하여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힐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그 내용이 전하를 기망(欺罔)한 것은 아니고 우국충정(憂國衷情)의 마음으로 조정의 폐단(弊端)을 꿰뚫고 있으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고(良藥苦於口而利於病),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 이롭다(忠言逆於耳而利於行)고 하였습니다. 혹여 차자를 보시고 일순간은 분기가 충천(衝天)하시더라도 이를 누르시고 요순(堯舜)과 탕무(湯武)를 본받아 검률의 차자를 살펴 취할 것은 취하시고 고칠 것이 있다면 고쳐야 할 줄로 아룁니다. 또한 만약 지금 검률의 차자가 극렬(極烈)하다고 하여 벌을 내리신다면 이는 걸주(桀紂)를 좇는 것과 같고 모두들 죄받을까 두려워 감히 말하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조정의 모습이 검률이 지적한 바와 같이 멍석을 깔아 주어도 나서서 가타부타 의견을 표출하는 것을 꺼리는 풍토가 만연한 것이 사실이니 어찌 이를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넓은 포용력으로 검률을 감싸시고 오히려 크게 이를 치하하십시요. 언로(言路)가 넓어질 뿐만 아니라 인풍(仁風)이 크게 뻗쳐 모두가 전하를 우러를 것입니다.
동부승지의 차자에 대해 아룁니다. 행검률의 차자가 승지가 아뢴 바와 같이 단 두 가지의 사안으로 정리가 될 것은 아니라고 여겨지나, 승지의 차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번 추고에 대한 것은 이미 계사로 아뢰었기에 달리 또 아뢸 말은 없습니다. 다만 징계로 인한 삭탈 관원들에 대해 재출사를 할 수 있도록 가능하게 하고 이에 대한 기준을 전조(銓曹)에서 논의하여 마련하게 하는 것이 옳을 줄로 아룁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이 차자 역시 염려가 지나친 것이다. 사헌부 계사에 대한 처분이 있기 전에 차자가 올라온 것이나 차자에 비답이 내려지기 전에 두 관원의 차자가 이어진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말미에서 말한 사안은 윤대 자리에서 주무 관청인 이조, 병조의 의견을 수렴하여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12월 28일 무인(戊寅)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2월 29일 기묘(己卯)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충청도검률 방인하가 하삼도 현황과 행사에 대한 장계를 올려 아뢰기를, "먼저 인사에 관하여 아룁니다. 현재 신이 관할하고 있는 하삼도 지역에는 지방관으로서 신이 전라도에 재임 중이며, 하삼도 지역에는 근무하고 있는 토관 및 관속이 없는 상태입니다.
호구에 대하여 아룁니다. 금일을 기준으로 충청도의 인구는 총 151인(남 124인, 여 27인)이고, 유효인구는 10인(남 9인, 여 1인)이옵니다. 경상도의 인구는 총 296인(남 235인, 여 61인)이고, 유효인구는 14인(남 11인, 여 3인)입니다. 전라도의 인구는 총 164인(남 136인, 여 28인)이고, 유효인구는 8인(남 8인, 여 0인)입니다. 전임 지방관 하유가 올린 직전의 장계와 비교했을 때 충청도의 인구수가 4인 증가하였고 유효인구는 5인 증가하였습니다. 경상도의 인구수는 2인 증가하였고 유효인구는 1인 증가하였습니다. 전라도의 인구수는 변함이 없으나 유효인구는 4인 감소하였습니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유효인구가 증가한 것으로 보이지만 신규입조자 중 4인의 최종 접속일이 10일이 넘어 실질 유효인구는 총 2인 감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에 대하여 아룁니다. 하삼도의 교육기관으로는 충청도에 정석학당, 경상도에 영남학당, 전라도에 고산서당이 있습니다. 충청도 정석학당에는 근래까지 훈장이 없었으나 지난 18일 1건의 훈장지원서를 결재하여 훈장 김구가 있습니다. 경상도 영남학당에는 훈장 정예림, 훈장 천어가 있고 각각 행정학개론, 법학개론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훈장 정예림은 훈장으로 부임한 이후 약 4개월동안 한달에 8~10회씩 총 31회의 강의를 진행하였고, 훈장 천어는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한달에 2~3강씩 강의를 진행하며 두 훈장 모두 교육기관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전라도 고산서당에는 훈장 남세준, 훈장 최성원이 각각 여행, 정치사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훈장 남세준은 여행이라는 친근한 주제의 강의를 하며 백성들의 교육에 대한 참여를 이끌고 있으며, 훈장 최성원은 지난 12월 1일에 훈장이 되어 2강을 진행하였습니다.
지역 모임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충청도에는 천의명가와 계룡사단이, 경상도에는 죽돌세가와 도리사가, 전라도에는 해동문화재단이 위치하고 있사옵니다.
형정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현재 하삼도에는 각각 경상도 거제현과 전라도 흑산도에 종신유배중인 이명슉과 김우증이 있습니다.
군정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하삼도의 모든 감영과 군영에는 소속 군사가 없습니다.
재정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하삼도의 재정은 전결세와 결작세 징수로 이뤄지며 충청감영의 공금으로는 6,930냥, 경상감영의 공금으로는 18960냥, 전라감영의 공금으로는 14220냥이옵니다.
사업에 관하여 아뢰옵니다. 신이 지난날 전라도에서 ‘참여해보고싶은 행사 공모전’을 전국 단위로 진행하였으나 장계, 재가 없이 시행되어 추고를 받아 해당 행사의 심사를 무기한 연기하였습니다. 신의 잘못으로 재가 없이 시행하였으나, 행사에 참가한 4인의 백성이 있으니 적법한 절차를 밟아 참가 수당을 지급해주고자 합니다. 아래에 당시 호조에 보낸 공문을 수정하여 올립니다.
*행사명 : 참여해보고싶은 행사 공모전
*행사장소 : 전라도 지역 게시판
*행사기간 : 개국 624년 11월 28일 ~ 동년 12월 7일(10일간)
*참여 대상자 : 호적신고를 마친 모든 백성
*행사 소개
사조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행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을텐데, 백성으로서 참여해보고싶은 행사를 실제로 시행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참여 방법
이런 행사에 참여해보고싶다 혹은 이런 행사가 참신한 것 같다 하는 행사 기안서를 본 행사글에 비문으로 답글을 쓴다. 이후 심사를 통해 최우수작 1건과 우수 2건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이후 감영회의를 통해 실제로 시행한다.
*심사원
행기린도역승 정병욱
행경기도검률 조예인
행전라도검률 방인하
*지급수당
참가 30냥
우수 50냥
최우수 70냥
*행사 수당
4인참가 120+60=180냥"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장계한 바를 잘 알았다. 사업 금전은 호조에서 특별히 지급해 주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12월 30일 경진(庚辰)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2월 31일 신사(辛巳)
승정원동부승지 겸경연참찬관 임상유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이조참의 겸사재감정 천어가 개국624년 4분기 호구조사 결과에 대한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개국624년 12월 1일(한성부 외 지역)과 24일(한성부)을 조사기준일로 하여 개국624년 제4분기 호구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한성부 및 경기도, 강원도의 호구조사는 행경기검률 조예인이, 전라도 및 충청도와 경상도는 행전라검률 방인하가, 황해도 및 평안도, 함경도는 행기린도역승 정병욱이 조사책임관으로 호구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호구 현황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전체 호구는 총 1,604인으로 남성이 1,205인, 여성이 399인입니다. 전분기에 대비하여 25인이 증가하였으며, 그중 남성이 15인, 여성이 10인 증가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유효인구는 68인으로, 전분기 유효인구인 65명에 비하여 3인이 증가하였습니다. 성별로는 남성이 2인, 여성이 1인 증가하였습니다.
지역별 현황에 대해 아뢰옵니다. 한성부가 611인(남 416인, 여 195인)으로 전분기 대비 10인이 증가하였으며, 경기도는 254인(남 188, 여 66)으로 전분기 대비 3인이 증가하였습니다. 강원도는 47인(남 39, 여 8)으로 전분기와 동일하였습니다.
전라도는 164인(남 136, 여 28)으로 전분기 대비 3인이 증가하였으며, 충청도는 151인(남 124인, 여 27)으로 4인이 증가하였습니다. 경상도는 295인(남 234, 여 61)으로 3인이 증가하였으며, 황해도는 28인(남 22, 여 6), 평안도는 21인(남 16, 여 5)으로 전분기와 동일하였으며, 함경도는 33인(남 30, 여 3)으로 전분기대비 2인이 증가하였습니다.
유효인구 현황에 대하여 아룁니다. 한성부는 17인(남 14, 여 3), 경기도는 7인(남 7), 함경도는 2인(남 2)으로 전분기 대비 각 2명이 감소하였습니다. 강원도는 5인(남 5), 경상도는 12인(남 9, 여 3), 평안도는 4인(남3, 여1)으로 전분기 대비 각 1명이 증가하였습니다. 전라도는 8인(남 8), 충청도는 10인(남 8, 여 2), 황해도는 3인(남 3)으로 전분기 대비 각 2인이 증가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전분기와 대비하여 큰 인구 변화가 없고, 다만 호구가 다소 증가하였습니다. 이어 호구 증대에 공이 있는 자를 조사하였으나 큰 공적이 있는 자는 없었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조사 결과를 잘 알았다. 약간이나마 유효 인구가 증가하였다고 하니 다행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진용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최성원이 쓰고 돈용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가 교정하다.

개국625(2016)년 03월 19일 기록 : 진용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최성원
개국626(2017)년 01월 18일 기록 : 돈용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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