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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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인하
작성일 개국626(2017)년 1월 12일 (목) 00:20  [자시(子時):삼경(三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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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가주서] 승정원일기 : 개국617(2008)년 12월 상 (교정)
상(上) 4년, 12월 1일 을해(乙亥)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승정원에서 주관하여 4일까지 제20차 윤대(輪對)를 진행하였다.
* 2일, 행사헌부집의지제교 박범이 부임하여 업무 파악에 주력하고 있음을 아뢰었다.
* 같은 날, 행호조좌랑 김진이 아뢰기를, "호조의 사무를 경장하는 것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호조의 정기적인 주요 업무로는 녹봉지급과 호구조사, 정기적인 지역활성화 공로자 선정이 있사옵니다. 이중 녹봉지급과 호구조사는 그 시행 달이 겹쳐 호조의 업무가 갑자기 늘어나는 폐단이 있사옵니다. 또 녹봉지급을 위한 근무내역서는 녹봉지급 전월 말일까지 받게 되어 있어 근무 내역이 확정되는 말일에 전조의 업무가 과중해지옵니다. 이에 녹봉지급을 위한 근무내역서는 녹봉지급월 상반기에, 녹봉지급은 녹봉지급월 하반기에 지급하고, 호구조사는 3, 6, 9, 12월에 시행하는 것이 업무의 과중함을 줄이는 길이라 생각하옵니다. 현재 녹봉제도절목에 근거하여 녹봉산출을 위한 근무내역서를 전조로부터 받아서 녹봉을 산출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실제로 녹봉 월에 녹봉의 형태로 지급하는 수당은 문무관 외에도 군관, 훈장, 관속이 있사옵니다. 이에 다른 아문에서도 근무내역서를 적법하게 받을 수 있도록 녹봉제도절목의 일부 규정을 개정하기를 청하옵니다. 호조는 아조의 재정을 운영하는 부서로 모든 예산의 집행을 담당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집행하는 예산은 모두 월별로 정리할 뿐 그 쓰임이나 사항에 대한 분류가 없어서 녹봉지급 등의 예산집행을 하는 달에는 예산 규모의 왜곡이 발생하옵니다. 따라서 호조에서 집행한 금전을 결산할 때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분리하여 정리하기를 청하옵니다. 일반회계와 특별회계의 분류는 집행내역의 성격에 따라 크게 몇 가지로 분류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이외에도 호조업무지침이나 녹봉제도절목을 알기 쉽도록 좀 더 상세히 적어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옵니다. 다만, 이 많은 일은 조정의 인력이나 여건을 고려하여 시기를 가려 시행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하옵니다.
지역활성화 공로에 대한 관청의 업무상황은 과거업무를 담당한 예조에 회신이 오는 대로 계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 같은 날, 행병조정랑 윤호가 외관직을 청하며, 병조의 인사에 대하여 아뢰었다.
* 같은 날, 행승정원주서 손오공이 어명을 행하였음과 의견을 아뢰었다.
* 같은 날, 시호도감낭청 천어가 고묘 절차와 의례에 대한 계본을 곧 올리겠음을 아뢰었다.
* 같은 날, 행예조정랑 겸성균관직강 이만원이 예조 업무 과중과 성균관 업무에 대하여 아뢰었다.
* 같은 날, 행선공감주부 윤선거가 금일 주부에 부임하여 공조업무 파악에 주력하고 있음을 아뢰었다.
* 3일, 상(上)께서 전교(傳敎)하시기를, "업무 개선은 말 그대로 관청별 소관 업무를 개선하는 것을 지향해야지, 관청 본연의 업무를 폐지하는 것까지 나아가서는 곤란하다. 참작하여 전교하겠다. 한성부와 함겸감영에 관한 건은, 오는 6일까지 등청하지 않고 10일까지 소명도 없다면 파직하고 후임관을 차송하는 것으로 한다.
호조에 명한다. 녹봉 지급 시기를 월말로 옮기더라도 이조나 병조에서 준비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종전대로 녹봉 지급 전월 말엽에 근무 내역서를 이첩하는 것으로 하고, 호조 업무를 분산하기 위해 호구 조사 시기는 분기 마지막 달인 3월, 6월, 9월, 12월에 시행하는 것으로 한다. 일반회계, 특별회계로 분리하는 것은 명목 기준이 애매하고 세입이 없는 상황에서 제도만 번잡하게 할 뿐이니 역시 도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지출 항목에 관한 것이라면 지원 분야나 사업별로 월별 금액 한도를 산정하고 출납을 정리하면 될 것이다. 지역 활성화에 관한 계본에는 기여자 명단을 포함한다.
병조에 명한다. 정랑이 부임한 지 불과 보름이 지났을 뿐이니, 사정이 여의치 못하더라도 이달 중순까지는 수장 직임을 수행하기 바란다. 봉사의 승진 임명 역시 관직에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허락하지 않는다. 前사과 박위는 즉시 전랑으로 명하여도 좋다. 충청검률의 임기를 1회 평정분 연장하여 지방관 공백에 대처하니, 중순 이후에 체직하라.
승정원에 명한다. 조정 사무에 대한 독려가 승정원의 소관 업무이지만, 양사에는 본래 백관을 규찰하는 직임이 있으므로 승정원에서 적시에 독려하지 못하는 등의 상황일 경우 감찰 형식을 빌려 미진한 점을 일깨워 줄 수도 있는 일이다. 승정원에서 평소 주의를 기울여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충청과 경상 양감영에 즉시 장계할 것을 통첩하라.
예조에 명한다. 시제 채택은 시제 제출자의 과거 응시와 같은 문제가 연관되어 있으므로, 과거 시행에 앞서 계본을 올려 전교를 얻는 것이 마땅하다. 교육기관에 대한 금전 지원은 단순한 금전 지출이 아니라, 교육 목적을 위한 것이니, 그 용도나 규모를 예조에서 확인해야 하는 바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완전한 교육자치를 시행하는 것도 아니므로 교육기관에 대한 금전 지원은 종전처럼 예조를 거쳐, 예조에서 호조와 협의 후 집행하는 것으로 한다. 독립유공자 향사 논의의 우수 참여자에게는 금전을 증액 지급하는 것으로 추진하라. 천거에 관한 건은, 실직(實職)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경기전이나 준원전에 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외의 사안과 공조에서 아뢴 바에 대하여는 따로 전교할 내용이 없다.
예조의 담당 업무 가운데 게시물 규찰과 관련하여 지역 관청에서 정기적으로 예조에 관련 현황을 보고하도록 지시한 것은 불필요한 행정이다. 관할 관청에서 적절히 계도하는 것으로 그치면 될 일이다. 통신체 등과 관련하여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예조의 책임을 묻지 않겠으니, 이러한 것부터 줄여 지방 관청과 예조의 행정 부담을 감소시키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 같은 날, 행병조정랑 윤호가 평정을 청하며 고묘 및 이어(移御)에 관한 제반절차를 차질이 없도록 하겠음을 아뢰었다.
* 같은 날, 행이조정랑 한유찬이 문관 평점 가감산현황 작성법을 조금 바꾸었으면 하는 의견을 아뢰었다.
* 4일 상(上)께서 전교하기를, "어전 전교나 인사 평정 시행 등, 평점 가감산 사유가 발생하였을 때마다 갱신하면 업무에 필요한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다. 주무 관청의 공시가 있어야 비로소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행정의 기본이고, 관원들이 스스로 관리하고 보고하게 하더라도 이조나 병조에서 그 보고가 제대로 된 것인지, 근거가 명확한 것인지 등을 확인해야 할 것이므로 관원들의 보고에 의한 가감산 내역 갱신은 허락할 수 없다. 다만, 근속기장 수여나 상점 10회 가점 등에 관한 업무는 이조 또는 병조에서 일일이 살펴 시행하지 않고, 관원 각자의 신고가 있고 나서 그 내역을 확인하여 적용해 주는 것이 행정 간소화의 취지에 들어맞을 것이다. 이조 업무에 과중한 부분이 있다면 관원 충원을 고려하라. 평정은 승정원을 통하도록 하겠다.
고묘를 앞두고 있고 민국 학생들의 학업이 과중한 기간이므로 이만 윤대를 마친다. 행정 개선에 관한 사안은 다음 윤대에서 계속한다. 담당 업무별 혹은 관원별로 대략 소요되는 시간을 살펴, 부담되는 내역을 중심으로 개선안을 계한다."라고 하였다.

12월 2일 병자(丙子)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이조정랑 한유찬이 문관 정기 포상자에 대하여 계본을 올리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성균관 겸임 사령 이후 지금까지의 성균관 근무 1회 평정분마다 평점 1점씩을 가산해 주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 시호도감낭청 천어가 고묘절차 등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날짜는 차망이었던 12월 7일로 하여, 전하께서 광화문(光化門)을 나서시어, 육조거리, 운종가를 지나시어 종묘로 거둥하십니다. 또한 전하께서 북궐을 나서는 시간은 사시(巳時: 오전 10시)쯤에 출궁을 하신 뒤, 약 30분 혹은 반시진(半時辰: 1시간) 정도 후에 종묘에 다다르실 예정이옵니다. "당일 상오에 전하께서 거둥하시기 이전이나 그 전날에 종묘에서 고묘 주관 관원이 의례순서를 기록한 문서를 등록합니다. 전하께서 종묘에 거둥하시면 고묘를 알려 의식을 시작합니다. 이후에는 대축관이 초에 불을 붙이고 축문을 읽은 뒤에 혜종대왕과 장종대왕의 의식을 맡은 관원 각 1인이 교서 또는 문서를 낭독한 후 받들어 올립니다. 종묘의 법도를 생각한다면 정전 이후에 영녕전의 의식을 행하여야 할 것이나, 혜종대왕의 대가 높으므로 어느 향을 먼저 올릴지 전하께서 정하여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이후에 초헌과 종헌, 아헌을 행한 이후에 담당 관원이 축과 폐를 묻고 물러난 이후에 어가가 창덕궁으로 향할 예정이옵니다. 따라서 전하께서 종묘와 동궐로 거둥하시는 절차의 호송 등과 관련된 인원을 제외한다면 종묘의 의식에서 대축관 및 제례유사, 종헌관 및 아헌관, 교서와 문서를 받잡아 올리는 관원 등이 필요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고묘 일자가 수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이제서야 계본이 올라오니 시간이 촉박하게 되었다. 빈틈없이 준비하여 차질이 없도록 하라. 행렬과 고묘 시각은 내외 관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확정하여도 될 것이다. 참여 관원을 속히 인선하고 군병 동원에 관해서도 병조와 협의하라. 또 대축관, 헌관 등은 제례 때의 직명이니, 전례를 살펴 적절한 직함을 계하도록 하라. 고묘 때에도 축과 폐를 묻는 등의 절차가 있는지 의문이니, 이에 관해서도 상고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12월 3일 정축(丁丑)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경상도검률 장지용이 경상도와 전라도의 현황에 대하여 장계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임기 연장을 허락하지 않고, 임기 종료 후에는 임시 대행도 맡기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12월 4일 무인(戊寅)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사헌부집의지제교 박범이 경상검률의 장계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참작하여 전교하였다. 집의의 지적대로 출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를 외관직에 명한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하겠다."라고 하였다.
○ 행충청도검률 송현이 충청도와 강원도의 현황에 대하여 장계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지방관 임명 이후 첫 장계를, 몇 차례 지적을 받고서야 겨우 올리니 지역 행정에 익숙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임기를 다할 때까지 이러한 상황을 만회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라고 하였다.

12월 5일 기묘(己卯)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한성부서윤 김준호가 청암서원 원장 임명과 관련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청암서원 문제와 관련하여 예조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 원장 공모 지원자의 서원 운영 계획 등을 살펴 계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12월 6일 경진(庚辰)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시호도감낭청 천어가 고묘일자 연기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신의 불충으로 차망으로 올렸던 12월 7일까지 고묘의 준비를 마치지 못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일전에도 신의 불충으로 인하여 고묘일자를 연기하였으니 전하께 차마 계목을 올리지 못할 면목이오나, 선대왕에 대한 예의를 차마 갖추지 못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이기에 불충을 무릅쓰고 전하께 고묘일자 연기에 대하여 계하옵니다. 신이 삼가 급히 살피오니 천은상길일로 음력 무자년 12월 10일(양력 1월 5일, 경술)과 12월 11일(신해), 12월 12일(임자), 12월 13일(계축)이 있사옵고, 12월 24일(갑자, 양력 1월 19일)과 25일(을축, 대한), 26일(병인), 27일(정묘)일이 있사옵니다. 수망으로 갑자일을, 차망으로 계축일을, 말망으로 을축일을 올립니다. 신의 불충으로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높게는 전하로부터 아래로는 여염에 이르기까지 부끄럽지 않은 데가 없사옵니다. 신의 잘못이오니 신의 직을 파하시어 더욱 능력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일을 마무리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사직 후 오위로 체직되었으니 신변이 여유롭지 못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조정의 중대 사업이 거듭 연기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므로, 도감 활동이 종결된 후 포상 시행시에 참작하지 않을 수 없겠다. 고묘 일자는 수망으로 확정한다."라고 하였다.

12월 7일 신사(辛巳)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병조정랑 윤호가 무관 인사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가선대부 행호분위호군 서양갑과 통훈대부 前공조정랑 임상유가 관직신청서를 하였습니다. 이에 무관 일부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고자 합니다.
우선 행호분위호군 서양갑은 학업 및 과내 활동으로 인해 경관직을 맡을 만한 여유가 되지 않아 5번째 외관직을 수행하고자 하여 경기도관찰사 관직에 임명하여 초입사 관원들의 본보기를 삼고자 합니다.
前공조정랑 임상유는 될 수 있으면 병조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와 병조의 수장으로 삼으심이 좋을듯 합니다. 그간 임 前정랑은 병조와 호조, 형조, 공조를 역임하고 2차 지방직도 수행한 바, 다시금 병조를 맡기신다면 직임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리라 신은 생각합니다. 신은 체직 후 수어청으로 옮기고자 합니다. 수어청이 군영으로서 기반을 다지는데 일조를 다 하고자 합니다.
적순부위 행수어청초관 이대현을 무공랑 행전라도검률 관직에 임명하고자 합니다. 이 초관은 관력은 미천하나 그간 성실한 근무자세와 무난한 일처리 및 관속 경력으로 능히 외관직 소임을 다하리라 생각되오며, 본인도 체직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무공랑 행경상도검률 장지용을 적순부위 행군기시봉사 관직에 임명하고자 합니다. 장 검률은 군기시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아 추후 무관의 대들보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임 前정랑, 신 윤호, 이 초관, 장 검률의 체직일자는 장 검률의 지방직 임기 만료인 12월 11일로 하고자 합니다. 이때 인사하는 것이 평정에도 불이익이 없을 것입니다.
분순부위 행훈련원봉사 박지운을 계공랑 행강원도검률 관직에 임명하고자 합니다. 박 봉사의 경우도 관력은 미천하나 그간 성실한 근무자세와 무난한 일처리 및 관속 경력으로 능히 외관직 소임을 다하리라 생각되오며, 본인도 체직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무공랑 행충청도검률 송현을 적순부위 훈련원봉사 관직에 임명하고자 합니다. 송 검률은 훈련원에 근무한 적이 있어 능히 소임을 다하리라 생각됩니다.
박 봉사, 송 검률의 체직일자는 12월 2차 평정을 고려하여 12월 16일로 하고자 합니다. 이때 인사하는 것이 평정에도 불이익이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지제교는 개국616년 정월에 前참판 서양갑을 황해도관찰사에 명할 때 내렸던 것과 같은 형식으로 경기도관찰사에 명하는 교서를 찬하여 들이도록 하라. 이조에서는 지방관 차송 등 본 계목의 내용과 관련하여 문관 인사에 관한 의견이 있으면 계할 것이다. (모두 본 계목에 댓글로 한다)"라고 하였다.
* 행이조정랑 한유찬이 아뢰기를, "희릉 참봉 이화가 체직신청을 하였기에 이번 문무관 인사이동에 있어서 병조와 협의를 하였고, 병조와의 협의에서 이조의 의견은 호조좌랑 김진을 북삼도로 체직하고, 함경도도사 박현철에게 호조를 책임지게 하고, 이화를 홍문관으로 체직하는 것이 어떨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병조에서 호조좌랑 김진에게 북삼도로 갈 의향이 있느냐는 간찰을 보내겠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호조좌랑 김진이 북삼도로 간다고 한다면, 박현철을 호조로, 이화를 홍문관으로 체직하는 것이 어떨까합니다. 그 시기는 박현철의 임기만료가 12월 21일이여서 22일에 사령을하면 31일까지 만 10일간 근무를 하는 것이기에 12월 22일에 사령하는 것이 좋다고 여겨집니다."라고 하였다.
* 행사헌부집의지제교 박범이 아뢰기를, "신 명을 받들고 다음과 같이 교서를 찬하였습니다.
- 교경기도관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서양갑서(敎京畿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徐羊甲書)
왕은 이르노라. 나라의 한 군현을 맡겨 다스리기는 것 조차 어려운데 왕명을 대신하여 여러 군현을 맡아야 하는 도정(道政)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일이다. 그리하여 한 지역의 책임을 맡음은 예로부터 어렵다고 하는데, 이를 맡을강건하고 올곧은 신하를 얻었으니 백성들의 복이면서 또한 나의 복이기도 하다. 생각건대, 경기(京畿)를 다스리는 일은 여러 도 가운데에서 가장 어렵다. 경조(京兆)를 보호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어 민정을 살피는 데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대는 이미 여러 지역을 책임져 훌륭히 완수한 관력이 있으므로 그 직임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생각하건대 그대는 경헌공(敬憲公)의 붕우(朋友)로서 그를 위하여 서원을 세우고 스스로 원장이 되어 기리고 있으니 경헌공의 그와 같은 덕목을 그대는 이어 받았다 볼 수 있다. 또한 오래도록 조정에 봉직하여 내외의 여러 관직에 종사하였고 부지런하고 현명한 관리로써의 모습은 여타 관원의 모범이 되었다. 그동안 이룬 공적에 대해 백성들의 신망이 적지 않으니 그대가 방백(方伯)으로 부임하기를 내심 기원하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다만 한 도(道)의 관찰사로 명하는 심정을 그대는 헤아릴 줄 알 것이라 믿는다. 백성들의 원망을 물어 봄에 있어서는 편견을 걷고 어진 바람을 불게 하라. 자급이 통훈 대부(通訓大夫) 이하인 자는 스스로 처단하되, 사형을 집행할 때에는 조정에 품의하라. 이에 경을 경기도관찰사로 삼는 바이니, 나의 이 명을 공경히 받들어서 즉시 그대가 받은 지역으로 가라." 라는 교서 찬 내용을 아뢰었다.
*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전원 11일에 체직시켜도 평정을 받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11일자로 前참판 서양갑을 경기도관찰사에, 정랑 윤호를 파총에, 前정랑 임상유를 병조정랑에, 초관 이대현을 강원도검률에, 검률 장지용을 군기시봉사에, 봉사 박지운을 황해도검률에, 검률 송현을 행봉사에 명한다. 무관이 북변을 책임지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봉사를 황해도로 보내는 것이고, 경상과 전라 지역에 호구가 많기 때문에 초관을 강원도로 사령한다. 이조에서 계청한 참봉 이화의 홍문관 사령도 허락한다. 저작에 명하도록 하라. 도사 박현철은 이조정랑으로, 정랑 한유찬은 나주목사로 삼는다. 경기관찰사에게는 지제교가 찬한 교서를 내리니, 따로 사은숙배를 하지 않고 감영에 부임하여도 좋다.
신임 이조정랑은 前서윤 김준호를 성균관에 사령하여 본관(本館) 업무를 전담하게 함으로써 예조 수장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는 안을 검토하고, 신임 병조정랑은 부임한 지 3개월이 지난 주서 손오공을 호조로 체직하고 좌랑 김진을 승정원으로 보내는 안을 검토하여 각각 계목을 올리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12월 8일 임오(壬午)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경상도검률 장지용이 전라도에 발생한 폭설에 대하여 장계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한 차례의 사태 진압으로 표창을 수여하고 포상을 상신하는가. 앞으로 표창은 의정부의 결재를 받도록 하고, 의정부가 없으면 예조의 결재를 받는 것으로 한다."라고 하였다.
○ 행사헌부집의지제교 박범이 행이조정랑겸시호도감낭청 한유찬을 가자(加資)하여 당상관으로 삼기를 청하는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준직(準職)에 이르지 못하였다. 3품 관직을 거치기도 해야 할 것이니, 11일자로 정랑 한유찬을 나주목사로 체직한다. 가자 여부는 부임 1개월 후에 이조, 삼사 등의 의견을 물어 결정하는 것으로 한다."라고 하였다.

12월 9일 계미(癸未)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함경도사 박현철이 연예인 호화응원단 사건에 대하여 계사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공인 신분에 대한 양형 조항은 공무 외 상황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민국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에게는 공무상 공금을 투명하고 적법하게 집행하지 않은 죄목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계사대로 집행하되, 죄목을 고쳐 판결하라."라고 하였다.
○ 행함경도도사 박현철이 북삼도 지역의 현황에 대하여 장계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토관직 자원은 본적과 상관이 없지 않은가. 경력으로 보아 이조에서 문관 인사를 감당하게 될 때가 되었으니, 내직에서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하기 바란다."라고 하였다.
○ 행선공감주부 윤선거가 모임 활성화 기여자 포상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신설 모임은 활발한 것이 당연하고 장차의 예상을 근거로 포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전우회와 국민당은 제외한다. 은사금 규모가 포장 수준을 초과해서는 곤란하니, 몽인회 대표에게 100냥을 지급하는 것으로 그친다."라고 하였다.
○ 행예조정랑 이만원이 제43차 소과 시행과 근속기장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기장 수여를 재가한다. 소과 시행 시기는 병조 계목을 기다려 결정하겠다."라고 하였다.
○ 행예조정랑 이만원이 제43차 소과 생진시 시제에 대하여 계본을 올렸다.

12월 10일 갑신(甲申)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예조정랑 이만원이 청암서원 원장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예조의 의견을 잘 알겠다. 사액서원이지만 원장 선임 명단까지 어전에서 재가하기는 적절하지 않으므로, 계본 내용을 기초로 신임 관찰사가 판단하여 차정하든지 다른 방안을 살펴 시행하는 것으로 한다. 11일 이후에 감영에 통첩하라."라고 하였다.
○ 행승정원주서 손오공이 청사직소를 올리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이조와 병조에서는 주서 후임을 인선하라. 사직일자는 후임관 부임일로 한다."라고 하였다.

12월 11일 을유(乙酉)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사헌부집의지제교 박범이 전관의 평정에 대한 감찰결과를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신 지난 12월 1일 비망기를 받들고, 어명에 따라 전관(銓官)의 평정 실태에 대하여 현 평점제도가 시행된 615년 11월 2차 평정부터 617년 11월 2차 평정까지 49번의 전관의 평정결과와 평정사유서를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신은 전관 평정사유에 대하여 3가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평정사유서 양식을 잘 지키고 있는가. 둘째는 평정사유를 기준 이상(2줄)으로 기재하고 있는가. 셋째는 평정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는가입니다.
우선 평정사유 양식을 잘 지키고 있는가에 대하여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대체로 사유서 양식은 지키고 있었지만, 일부 관원의 경우에는 양식 자체를 지키지 않는 경우를 볼 수 있었습니다. 615년 12월 2차부터 616년 2월 1차까지 그리고 616년 3월 2차에서, 총 5차에 걸쳐서 이조에 재직한 김준호는 평점만을 기재하여 양식 자체를 지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조에 재직한 천어에게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616년 4월 1차에서 616년 8월 1차까지 10번에 걸쳐 양식 자체를 어기고 사유자체를 기재하지 않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천어는 이후에도 이조에 다시 봉직한 617년 4월 2차부터 617년 6월 2차까지 총 5번에 걸친 평정에서 사유서 양식 자체를 하나로 통합하여 개별적인 사유 양식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병조의 평정에서는 이러한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병조 재직시절 강동엽은 하나의 양식으로 여러 관원을 평정하였으나 사유내용이 구체적이어서 양식을 지키지 않았다고 보이게는 힘들 듯합니다.
다음으로 평정사유를 2줄 이상으로 기재하였는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과연 2줄 이상을 무엇으로 기준삼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신은 이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여 감찰에 임하였습니다. 신은 한 문장을 5단어로 보고 10단어 이상을 2줄로 파악하였습니다. 상당히 자의적이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대체로 615년에 예조 관원을 평정하였던 김지수와 616년에 예조 관원을 평정하였던 한유찬은 그 내용이 상당히 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3문장 이상으로 기술하던 사유서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617년에 들어서는 예조 관원을 평정하였던 박현철도 그 내용이 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조관원을 평정하였던 현 예조정랑 이만원도 내용이 길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예조관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예조관원의 평정을 이조에 보고하는데, 이조 수장이 이를 보기 때문입니다. 정작 이조에서는 사유서가 길지 않았습니다. 이조의 경우를 보면 초기의 615년 김준호는 평점만 기술하였으며 이후 이조 수장이 된 천어도 1문장 이상을 넘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홍국영과 한유찬은 2줄로 기술하여 문제 삼을 부분은 없었으나, 전 참판 양지원이 평정이 되고 나서는 오히려 형식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나마 전체 이조의 평정 중에서는 한유찬이 가장 모범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김준호의 호조재직시절 최근 평정을 보면 615년과는 달리 평정을 충실하게 하고 있어서 옛 과오를 다시 범하지는 않는 듯 합니다.
병조의 평정에서도 각 평관마다 사유의 길이는 각각 달랐습니다. 초기의 서양갑과 정언신은 내용이 오히려 지나치게 길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병조의 수장이 된 김현유도 상당히 내용이 길고 자세하게 적었으며, 문무관을 통틀어 가장 모범적인 평정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될 정도입니다. 이후 임상유에 들어와서 내용이 짧아졌다가 김희종과 강동엽, 박윤상에 들어와서는 다시 표준적인 길이로 돌아왔으며 현 병조정랑 윤관에 와서는 내용이 다시 길어졌다고 보여집니다. 이조와 병조를 비교해보면 최근만 보더라도 이조보다는 병조의 사유내역이 더 길었다고 봅니다. 전관의 평정길이를 종합해 보면 신이 보기에 15단어로 된 3문장 정도가 적당한 듯합니다. 현재 2줄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은 개정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바로잡는 것이 바람직할 듯 합니다. 2줄로는 구체적인 사유를 적기에 양이 적다고 보여집니다.
마지막으로 사유내용에 대한 것입니다. 문관의 초기 평정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술이 되어 있었습니다. 김지수의 경우가 가장 구체적으로 기술이 되어 있었고, 한유찬도 마찬가지이지만, 모두 예조의 평정이었습니다. 이조의 경우는 사유길이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이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한유찬이 이조 재직시절의 평정 사유가 가장 구체적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다소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며 예조는 꾸준히 구체적인 사유를 기재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병조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초기 병조의 평정은 상당히 자세하고 구체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임상유의 병조재직시절 이후에 평범해지고 간단해졌습니다. 김희종과 강동엽, 박윤상을 거쳐 윤관에 이르기까지 크게 변함은 없었습니다. 현 윤관의 경우에는 이전의 평정보다는 그나마 다소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는 경향을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신이 평정 내역에 대하여 일일이 상고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다만 평정사유서에 나와있는 기술이 어떠한가에 대한 평면적인 감찰에 불과하여 잘못된 지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명을 받고 사유서에 대한 내용만을 보고 종합적인 견해를 제출해야 하는 불합리를 전하께서 헤아려주셨으면 합니다.
평정사유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평점을 내린 사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관의 평점사유는 모두 구체성을 띠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616년에는 어느정도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617년에 들어와서 그러한 모습이 형식화되는 경향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하였습니다”라고 상점을 주는 한편, 같은 내용을 가지고 중점을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형식화된 사유기재도 문제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역시 상점과 중점이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지난 6월 30일 전하께서는 전교를 내리시어, “평정 결과에 있어 상점을 기본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문제라고 하겠다. 이조와 병조에서는 평정 점수가 지나치게 관대하게 주어지지 않도록 유의하라."하셨고, 또 다시 7월 22일에 "업무를 방기한 것도 아닌데 평소 근무량이 많지 않은 관직이라고 해서 하점을 주어서는 안 되겠지만, 특별한 성과를 보인 것도 아닌데 매번 상점으로 평가하는 것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열심히 노력하는 관원들의 공로를 무엇으로 보상하겠는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개선된 것은 크게 없는 듯 보였습니다.
물론 일부는 상당히 구체성을 띠고 있었습니다. 이조에서 평정결과를 보아야 하는 예조 수장의 예조관원 평정이나, 병조 수장이 보는 병조좌랑의 평정은 대체로 구체적이었지만, 정작 전관 수장의 평정은 그렇지 못한 면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초기의 평정은 상당히 구체적이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양갑과 정인신, 김현유, 김지수와 한유찬의 경우에는 상당히 모범적인 평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의 평정을 보면, 구체적인 업적을 하나하나 기재하면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상점이나 중점을 준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의 평정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신이 보기에 형식화된 평점사유의 기재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요즘 들어 발생하게 되는 평점에 대한 이의신청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상점이 기본적인 평점이 된 것에 대한 인식이 너무 저변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입니다. 현재 등청을 하지 않아서 업무를 전혀 하지 않을 경우에만 하점이 주어지고 있으며, 15일 중에서 한 두번만 등청해도 기본적으로 중점은 받을 수 있는 듯 하며 주어진 업무만 다 하여도 상점을 챙기는 것이 현재의 평정 기준이 아닐까 합니다. 바로 위와 같이 제기된 2가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노출될 것입니다.
또한 현재 병조의 경우에는 정랑과 좌랑이 평정을 같이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두 평관이 모두 사유를 보게 되므로 보다 객관적인 평정이 될 수 있으며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정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조의 경우는 오래전부터 홀로 문관을 평정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관에서도 이조 수장 및 1인을 더 하여 평정관으로 삼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49차례 평정 중에서 양식을 준수하지 않거나 평정 사유가 대여섯 단어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관원별로 통계를 낸 후 그 결과를 계하도록 하라. 같은 평정 사유를 적었으나 평점은 다른 경우도 그 횟수를 계산한다. (본 계본에 댓글로 한다)"라고 하였다.
* 11일, 행사헌부집의지제교 박범이 아뢰기를, "49차례 중에서 우선 양식을 어긴 경우입니다. 김준호가 5회, 천어가 9회, 한유찬이 1회입니다. 내용이 다섯 단어 이하인 경우로 김준호 7회, 천어 12회, 윤선거 1회, 한유찬 3회, 양지원 2회, 임상유 11회, 김희종 1회, 박윤상 2회입니다. 마지막으로 중복된 경우입니다. 이는 내용이 거의 비슷한 경우로 상점을 받아도 관례적으로 적은 경우입니다. 천어가 9회, 양지원이 1회, 임상유가 6회입니다. 그 중에서 같은 내용으로 적은 경우는 임상유가 '자신의 본분을 지켰음'이라고 하고서 하나는 상을 하나는 중을 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양지원이 '활동력이 높고 업무수행을 적절히 함'을 중으로, '활동력이 낮으나 업무를 잘 수행함'이라 하고 상점을 준 것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천어는 '맡은바 소임을 충실히 함'을 상으로, '소임을 성실히 수행함'을 중으로 준 것도 거의 같은 내용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이와 같이 하여 횟수를 계산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기본에 충실한 것이 진정한 군자(君子)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관청 관원으로 이조, 병조에 보고할 때에는 규정을 잘 지키면서 홀로 전관(銓官)이 되어 평정할 때에는 그렇지 못하였으니, 이는 조정 관원으로서의 처신을 망각한 것이다. 위반 정도가 심한 천어, 임상유, 김준호 등 3인의 평점을 3점 감하고, 한유찬 이하는 1점 감하라. 크게 징계해야 할 사안이나, 처음 지적된 것이므로 경징계로 처분한다. 앞으로 이러한 일이 있을 때에는 파직이나 품계 강등과 같은 중한 처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평정 사유를 한글 30자 이상 적도록 하고, 이를 내외에 엄중히 신칙하여 재발되지 않도록 하라. 근래에 업무인계서와 같은 문서도 법전에 규정된 양식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아울러 신칙하라."라고 하였다.
○ 행선공감주부 윤선거가 시전 운영 개선안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매월 500냥의 입주세를 부담하면서 시전을 운영할 자가 있겠는가. 10분의 1인 50냥 수준으로 감액하라. 이외 내용은 상소 등을 통해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에 한해 어전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한다. 공조에서 적절히 기준으로 정해 시행하라."라고 하였다.
○ 행강원도검률 이대현이 임지로 떠나기 전에 사은숙배(謝恩肅拜)를 올리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최근에 출사 이후 처음 지방관으로 임명되었던 관원들의 치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전임 관원에게 부족했던 점을 잘 살펴, 본 사은에서의 다짐이 실천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 행사헌부집의지제교 박범이 문관의 서경 및 관직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특지에 의해 사령한 것으로 사안을 수습한다. 서경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점에 대하여는 평정시 감안하도록 하겠다. 나주목사의 도감 직책을 사령일자로 면직하니, 도감에서는 관원 충원을 계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 행예조정랑 이만원이 제43차 소과 생원시 시제에 대하여 계본을 올렸다.
○ 행병조정랑 임상유가 제43차 소과 훈련원시 시행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2일 늦춰 17일부터 23일까지 시행한다. 시관 명단을 계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 행병조정랑 임상유가 제43차 소과 훈련원시 시제에 대하여 계목을 올렸다.

12월 12일 병술(丙戌)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황해도검률 박지운이 임지로 부임하기 앞서 사은숙배(謝恩肅拜)를 올리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선천(宣薦)에 들었으니 외관직에서도 맡은 소임을 충분히 다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전임관이나 동료 관원들에게 물어 시행하되, 형식에만 치우치지 말고 관내 백성들에게 실제 효과가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라고 하였다.
○ 나주목사 겸나주진관병마첨절제사 한유찬이 임지로 떠나기 전에 사은숙배(謝恩肅拜)를 올리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첫 외관직 수행이 아니므로 따로 전교하지 않아도 지방관이 해야 할 일의 요체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별히 목사에게 경상과 전라 양 지역을 맡긴 이유를 헤아려, 상하 관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라고 하였다.

12월 13일 정해(丁亥)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경기도관찰사 겸병마수군절도사 서양갑이 청암서원 문제에 대하여 장계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강장이 강의만 한다면 다른 서당, 학당 등의 기관과 다를 바가 없다. 지난 7월에 예조 계본에서 지적되고 지금 관찰사도 언급한 것처럼, 성균관의 제도를 지나치게 모방하여 학기제, 원점제, 수료제 등을 도입한 것부터가 현실적이지 않다. 유생을 모으되, 조선 중기 이후에 실제 서원이 운영되던 것처럼 졸업이나 수료 같은 것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수강하게 한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임이 되거나 제례에 참여하게 한다면 서원 정상화의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서원이 운영될 수 있도록 하라. 예전 강의 자료를 다시 활용하는 것 등은 서원에서 알아서 시행할 일이다."라고 하였다.
○ 행홍문관저작 이화가 현 아조 교육기관 실태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훈장으로 지원하는 자를 모두 지방관이 선임해서는 안 되고, 교육기관 인사에 대한 권한이 관찰사에게 있다고 해서 교육 행정을 책임지는 예조 수장이 감영에서 예조에 보고하는 내역을 그대로 결재해서도 안 된다. 수동적인 허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매우 당연하지만, 최근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니, 예조에서 책임지고 교육기관 종사자에 대한 자질과 강의 횟수 등을 살펴 지방관과 협의를 거쳐 신임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라. 새로 임명되는 훈장에 대하여는 사전 검증과 사후 관리를 철저하게 시행할 것이다. 반대급부가 충분해야 할 것이므로 포상 역시 적극적으로 계한다.
성균관에 무과를 설치한 것은 문관과 무관의 형평을 고려한 때문이 아닌가. 지금 훈련원, 수어청 등이 있기 때문에 성균관에서 무과를 가르칠 필요가 낮아졌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성균관에서 무과를 폐지하는 문제는 쉽게 결단할 수 있는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예조와 병조에서는 성균관 무과 존속과 관련한 의견을 정리하여 계하도록 하라. 문관이 무과 강의를 맡은 것이 합당한지, 합당하지 않다면 앞으로 무관 관원을 지속적으로 충원할 수 있을 것인지, 대안으로 훈련원이 성균관 무과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인지 등이 관건이라고 하겠다. 서원에 관한 건은 경기감사의 장계에 전교하였다."라고 하였다.

12월 14일 무자(戊子)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2월 15일 기축(己丑)
행승정원주서 손오공 근무함(仕)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승정원에서 주관하여 19일까지 제21차 윤대(輪對)를 진행하였다.
* 15일, 행홍문관저작 이화가 부임하여 업무 파악중임을  아뢰었다.
* 같은날, 행선공감주부 윤선거가 아뢰기를, "신이 수장으로 있는 공조에서는 지난날, 어전의 재가를 받고 시전사업을 개선하는 업무를 진행중입니다. 또, 이북삼도 축성사업을 호조와 연계하여 협의를 끝맺었습니다. 남은 업무는 상시업무밖에 없는 줄로 압니다.
각설, 저번 윤대자리에서 막 공조에 부임함에 따라 경관청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으나, 이번 윤대자리를 빌어 아룁니다. 공조의 업무는 요새 분주하여 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따라서, 경관청은 이제 한직이라고 말하기 힘든 공조까지 분주함에 따라 관원을 늘리는 방안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논지와 상관은 없으나, 경관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승정원의 위치가 대단히 두려움을 주는데, 그 까닭은 승정원일기를 매월 2권 이상 펴내야 하기 때문인줄 압니다. 기실, 매년 승정원의 수장이 자주 바뀌고 한 동안 공석인 적이 많아서 요즘에 체직된 승정원 관원들은 예전 일기를 쓰는 것에 전력을 다합니다. 이 때문에 문무백관들이 승정원에 가기를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승정원 관원을 주서 1인 가주서 1인으로 총 2인 체제로써 승정원 체계를 운영해야 한다고 사료되옵니다."라고 하였다.
* 16일, 행병조정랑 임상유가 아뢰기를, "먼저, 이번 제43차 소과 훈련원시 시관으로 신(臣)을 포함하여 병조좌랑 박위, 군기시봉사 하동구로 구성하도록 하겠나이다. 각기 원시 시관을 맡아본적이 있어 이번 소과에서도 무리없이 역할을 해낼 것으로 보이며, 또한 전하께서 하명하신 내용을 충분히 공유해 채점에 반영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병조 업무 개선방안의 논의 결과를 아뢰겠습니다. 신(臣)이 병조에 부임하였을 때에는 이에 대한 논의가 끝나 인계받은 결과를 아뢰겠나이다. 호환, 산적 출몰시 기존에는 병권이 병조에 있었으나 논의 끝에 신속하고 간결한 정병 출진 체계를 위하여 수어청에 이를 위임하여 선조치 후보고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또한 훈련원 정병 출진은 병조의 지시및 수어청이 병조에 요청시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제 선정 및 과거 주관 업무는 수시로 시제를 제출받아 계하여 시제의 미선정으로 인해 과거의 일정이 늦춰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마지막으로 초입사 관원 교육입니다. 비교적 초입사교육이 잘이루어지는 예조에 기본 예법에 관련된 사항을 위탁하고 이와 동시에 사수와 부사수 개념으로 담당 업무를 미리 경험해본 선임자가 후임자를 교육하는 방안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지난 10일, 승정원주서 손오공이 올린 사직소에 전하께서 비답으로 내리시길 후임 승정원 주서를 인선토록 명하셨고, 금일 호조좌랑의 계본에 전하께서 낸 비답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현 주서의 후임으로 누구를 인선할 것인지 이조와 논의를 해보았으나 이조는 현재 호조에 임명할 문관의 여유가 없고, 병조는 11일에 거의 모든 무관의 인사이동이 있었기에 호조좌랑 김진을 가주서에 명한 뒤, 당분간 적당한 인물을 찾아보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금일 호조좌랑의 계본에 전하께서 김진을 병조로 체직시키고 병조좌랑 박위를 호조로 부임토록 하는 인사를 검토하라 명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신(臣)이 곰곰히 생각해보니 신(臣)이 병조에 대략 1년여만에 부임하여 아직 업무가 낯설고, 업무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현재 박 좌랑을 깊이 믿고 업무에 임하고 있나이다. 그런 상황에서 박 좌랑을 호조로 체직 시킨다면 병조의 업무에 큰 혼선이 빚어질수도 있는 바, 신(臣)이 감히 청컨대 김진을 병조로 체직을 시키되 그에게 가주서를 겸토록 하고 호조에는 지난날 선공감봉사와 직장을 통해 8차례의 평정 가운데 7차례 상점을 받아 한 관청의 수장으로서도 활약을 보여준 군기시봉사 하동구를 체직시켜 그 직을 감당토록 하소서."라고 하였다.
* 같은 날, 이조정랑 박현철이 아뢰기를, "현재 이조의 업무는 제가 이조로 부임한지 근 일주일여 정도로 아직까지 그렇게 업무에 부담되는 부분을 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임관들의 업무 내용을 살펴본 바로는 업무 부담이 심할 것 같지는 않사옵니다. 혹여나 차후에 그러한 부분이 발생된다면 개선안을 모색하여 아뢰도록 하겠사옵니다.
다음은 前한성부서윤 김준호와 예조 수장의 업무 분담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前병조정랑 윤호가 올린 무관 인사에 대한 계목에 전하께서 비답으로 내리시길, 前서윤 김준호를 성균관에 사령하여 본관(本館) 업무를 전담하게 함으로써 예조 수장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는 안의 검토를 명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前서윤 김준호의 의중을 물어본 바 김준호는 아직까지 마음이 추스러지지 않아 실직에 진출하는 것은 무리인 듯 싶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괜찮다면 능령(陵令)으로서 능전을 돌보는 것은 가능할 듯 싶다는 생각을 전해왔습니다. 따라서 前서윤 김준호를 성균관에 사령하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해 예조정랑 이만원과 의견을 나누었는데 이 정랑은 현재 성균관 절목 개정, 재회 활성화, 각종 행사 시행 등 성균관 개혁 준비 작업에 심혈을 쏟고 있다 하였습니다. 혹여나 이 정랑이 성균관에서 물러나게 되야 한다면 성균관의 개혁작업이 힘들어지고 지체될 것이라 염려하였습니다. 현재 예조와의 겸직이 부담이 되는건 사실이나 겸직을 덜어야 한다면 예조에서 물러나 성균관을 맡고 싶다며 성균관 업무에 대한 강의 의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에 신의 생각은 당분간 이만원 정랑의 뜻대로 겸직을 유지하면서 그동안 예조의 후임 수장을 찾아보는게 좋을듯 싶습니다. 그리고 前서윤 김준호는 지난 서계일로 마음을 많이 다친듯 싶은데 신의 생각으로 전하께서 그를 불러 하해와 같이 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길 삼가 청하옵니다.
다음은 지난번 연예인호화응원단 사건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당시 응원단장을 맡았던 강병규에게 유배 6개월의 형을 선고하였는데 미처 전하께 유배 장소에 대해선 아뢰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신은 현재 계절이 겨울로서 북방지방의 추위가 심한것을 생각하여 지난날 신이 지방관으로 부임했던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경원은 한반도 최북단으로 늦봄에도 추위가 맹위를 떨추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그가 방면되는 그날까지 혹독한 추위속에 그가 진정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 할 수 있도록 하는게 어떨까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 17일, 행예조정랑 겸성균관직강 이만원이 소과 시행 문제, 독립유공자 향사 문제가 진행중이며 독립유공자 행장은 사헌부집의지제교 박범과 홍문관저작 이화가 분담하기로 한 상태이고, 성균관 관련 논의가 진행중에 있음과 성균관에서는 현재 14기가 진행되고 있으며, 재회가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음을 아뢰었다.
* 같은 날, 시호도감낭청 천어가 후임낭청으로 행주서 손오공이 도감의 직무 수행할 뜻을 전하여 왔음을 아뢰었다.
* 같은 날, 상(上)께서 전교하기를, "면직될 때에 승정원일기 찬술 내역을 계하도록 명한 것은 일기 편찬에 대한 공로를 평점 가산 등으로 치하하기 위함이다. 이제까지 승정원일기를 찬술하지 않았다고 해서 인사상 불이익이 가해지지 않았으며, 지방관으로 차송할 인원이 부족하고 형조를 가동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므로, 공조나 승정원 등에 관원을 여럿 임명하는 것은 현재 시행하기 어렵다.
병조에 명한다. 출병에 앞서 병조에 보고하여 결재를 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기에 출병권을 군영에 위임하는 것을 두고 업무 개선이라 하는가. 관청에 주어진 권한을 포기하면서까지 시행할 일이 아니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병조에서 병권은 행사하도록 하라. 좌랑 박위 역시 병조에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업무에 관해 소상하기는 정랑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봉사 하동구는 물의를 일으켜 8품직에 명하였던 것이므로 갑자기 좌랑 수장에 명할 수 없다. 원안대로 좌랑 박위를 호조로 체직하고, 김진을 후임 좌랑으로 삼는다. 봉사 하동구는 군기시 7품관으로 올려 가주서를 겸하게 한다. 현임 주서는 근래의 관직 가능 여부를 물어 오위에 명하고 도감 낭청으로 사령하라. 시관 명단은 재가한다.
이조에 명한다. 성균관 정비에 관한 사안은 교육 행정을 총괄하는 예조 수장의 직임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前서윤의 성균관 임명이 불가하다고 하므로, 문관 인사는 시행하지 않는다. 前서윤 역시 근시일 내에 관직에 다시 나올 수 있는지를 물어, 가능할 경우 오위로 사령하라. 유배 죄인의 배소(配所)에 관한 건은 재가한다. 지난달 초에 이등박문의 시호를 추삭(追削)하였는데, 그의 관직을 함께 삭제하지 못하였으니 '태자태사(太子太師)' 직함을 즉시 추탈하라.
예조에 명한다. 지방관으로 시관을 충원할 수 없으면 자원(自願)에만 의하지 말고 예조에서 지정하든지, 그것조차 여의치 못하면 전례에 따라 예조 관원을 인선하도록 하라.
이조와 병조에서는 12월 제2차 평정 시행에 관하여 계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 같은 날, 이조정랑 박현철이 12월 2차 평정을 청하였고 前서윤 김준호가 오위 부임보단 능직을 청하였음을 아뢰었다.
* 같은 날, 행예조정랑 이만원이 아뢰기를, "독립유공자 사당 설치와 관련하여 별도 도감을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 아룁니다. 현재 그 배향 명단을 정하여 논의, 결정하기로 하고 예조에서 관련 사업을 실시하고는 있습니다만, 현재 진척도를 볼 때 예조에서만 시행하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따라서 사업의 규모로 보면 별도의 도감을 설치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사당을 설치하고 배향하는 사업에 굳이 새로운 관청을 세워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인물의 공적을 가려 공신에 명하거나, 추증하거나 하는 중대 사업이 아닌 단순한 사당에 배향하는 문제일 뿐입니다. 물론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써 온 독립유공자의 노고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사당을 만들 때 도감을 설치하게 되면, 앞으로 어떠한 사당이 만들어지더라도 배향할 인물을 고르기 위해 도감을 설치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집의와 저작의 차자를 보고 생각해 보건데, 이렇게 논란이 되는 사당을 꼭 설치해야 하는지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독립에 공로가 있는 이들을 배향하고 제사를 지낸다는 취지는 좋으나, '사당에 배향하고도 제대로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의견과, '특정 인물을 선별하는 것보단 지위고하와 그 공적에 관계없이 모든 이들을 기릴 수 있도록 하자' 는 백성들의 의견을 생각해 볼 때, 명단을 선정해야 하는 사당 설치 문제는 그 대상자 선정 작업과, 선정 이후에도 잡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차라리 함경도의 전국무명용사추모비(傳國無名勇士追慕碑)처럼 '독립유공자추모비' 정도의 이름으로 비석을 세우고 분향소를 설치하여 모든 독립유공자들의 노고를 기리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소과에 대해 아룁니다. 제43차 소과 생진시 시관에 나주목사 한유찬, 강원검률 이대현 2인이 지원하였으며, 시관에 더 지원하는 이가 없으므로 신을 더해 3인으로 시관을 구성하고자 합니다. 이번 생원시 시제는 교서관저작 이익수가, 진사시 시제는 교서관정자 이희철이 지었습니다."라고 하였다.
* 18일, 병조좌랑 박위가 아뢰기를, "호조와 관련된 새로운 인사이동에 대하여 신의 입장을 잠시 해명하고자 부득이하게 윤대자리를 빌어 의견을 아뢰게 되었습니다. 신이 병조에 복귀한지는 채 보름이 되지 않지만, 병조 업무는 기존에 하던 업무였기에 현재 여기에 대한 적응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옵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체직은 신에게 큰 부담이며, 아직 신은 한 관청의 수장을 담당할 정도의 그릇도 아니기에 이에 대한 걱정부터 앞섭니다. 특히, 신이 병조 내에서 담당하고 있는 토론과 일부 미결 업무들이 중단됨에 따라 신으로 인해 자칫 업무에 혼선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부득이하게 인사 이동에 대하여 재고를 청하옵니다."라고 하였다.
* 같은 날, 상(上)께서 전교하기를, "이조에 명한다. 전직이나 능직은 출사자를 위한 허직이다. 오위에 명하되, 관직에 뜻이 없다면 할 수 없다. 호조 수장은 16일에 면직하였는데 현임 명단으로 계하는가. 평정에 실수가 없도록 주의하라.
예조에 명한다. 주무 관청인 예조 수장에게 의지가 없으므로, 향사 사업 진행을 보류한다. 혜종 배식단 선정 사업 역시 같다. 시관 명단은 3인을 기본으로, 생원시 시관에는 저작 이익수를, 진사시 시관에는 정자 이희철을 추가 포함하여 각 4인으로 한다.
병조에 명한다. 좌랑 박위의 호조 임명을 26일로 연기하니, 그 전까지 관련 업무를 마무리하도록 하라. 호조는 10일간 공석으로 유지하며, 이외 사령은 이미 명한대로 즉시 시행하라."라고 하였다.
* 같은 날, 행사헌부집의지제교 박범이 아뢰기를, "신 또한 예조정랑의 말대로 회의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향사업무를 지금까지 한달여간 진행해 놓은 상태에서 그만 두는 것 또한 무리가 아닐까 합니다. 초기 논의는 몇명을 추려서 그들을 위한 사당을 설치하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선정작업의 기준이 무엇인지 전혀 논의되지 못하고 있었고, 그것은 예조가 감당해야 했을 문제였습니다. 아무런 기준이 없이 누구를 선정할 것인지 토론에 붙인다면, 당연히 너무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 의견들을 모두 취합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따를 것입니다. 예조 및 도감에서 일정 기준과 인원을 선별하고 이 중에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먼저 그 방향을 정했어야 했습니다. 이에 신은 지금이라도 다시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미 본 윤대에서 105인에 대한 어느정도의 윤곽이 나왔고 그 중에서 첨삭을 가하는 것으로 선별은 마무리 될 것이며, 어떻게 모실 것인지에 대한 것은 예조 혹은 도감이나 관리들의 논의를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누굴 모실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지속적으로 모실 것인지가 주요한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이에 신은 우선 아직 모시지 못하고 있는 두 공에 대해서 지역 사당에서 배향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합니다. 본래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모두 국가에서 모시는 신위보다 낮은 단계에서 춘추로 향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아조에서는 향교가 없는 대신 그 기능을 서당이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혹 서당에 훈장이 비어있는 경우에는 지역의 수령이 이를 맡아 지역의 인사를 유사로 차정하여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방의 활성화는 이런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라고 하였다.
* 19일, 상(上)께서 전교하기를, "향사와 관련된 사업 일체를 보류하기로 하였으므로, 내년 정월 이후에나 재개 여부를 논의하는 것으로 한다. 향교는 성균관처럼 대성전에 문묘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다. 충의공과 충경공의 제향에 관한 건은, 청암서원이 제기능을 찾은 후에, 또는 이준, 신돌석의 추증 및 추시가 끝난 후에 검토하여도 늦지 않다. 더 이상 의견이 없으면 이것으로 윤대를 마친다."라고 하였다.

승훈랑 행승정원주서 김성이 쓰고 돈용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가 교정하다.

개국620(2011)년 02월 27일 기록 : 승훈랑 행승정원주서 김성
개국626(2017)년 01월 12일 기록 : 돈용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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