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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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인하
작성일 개국626(2017)년 1월 8일 (일) 17:05  [유시(酉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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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가주서] 승정원일기 : 개국614(2005)년 8월 (교정)
상(上) 1년, 8월 1일 정사(丁巳)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실록청총재관 이동진이 실록 27권 찬수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실록청에서 실록 27권을 찬수하여 사고에 보관하게 하였음을 아뢰옵니다. 실록 27권의 찬수 대상기간은 개국610년 5월 11일부터 동월 20일 까지오며, 실록의 찬수에는 신을 비롯, 편수관 성혼(成渾)과 기주관 박한(朴桓), 정언신(鄭彦信)이 참여하였습니다. 실록 27권은 지난 7월 9일부터 편찬에 착수하여 7월 18일에 완결하여 사고에 봉안하였습니다. 실록 찬수에 공로가 많은 편수관 성혼을 비롯한 사관들에게 전례에 따라 포상하여 주시길 주청드리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아뢴 바를 알겠다. 찬수(纂修)에 참여한 관리들은 전례에 따라 포상토록 한다."라고 하였다.

8월 2일 무오(戊午)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3일 기미(己未)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4일 경신(庚申)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한성부 백성 정한이 성균관 복설에 대하여 상소를 올리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상소한 바는 잘 알겠으나, 작금의 조정(朝廷) 여력으로는 성균관을 가동하기가 매우 어렵다."라고 하였다.

8월 5일 신유(辛酉)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6일 임술(壬戌)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7일 계해(癸亥)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형조정랑 손오공이 민국의 군인 총기 난사 사건 논죄 결과에 대하여 별단으로 계사를 올려 아뢰기를, "지난 6월 민국의 군인인 김동민은 경기도 연천군 본인의 근무 부대에서 야간 경계 근무를 서던 중, 피고인이 생활하는 내무반에 잠입하여 내무반 군인 15명에게 총기를 난사하였사옵니다. 이에 7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1명은 후송 중 사망했으며, 4명이 중·경상을 입은 바가 있사옵니다. 후에 피고인은 범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다시금 경계 근무지로 복귀하여 당일 아침까지 태연히 근무를 섰으며 관련 장교의 추궁에도 범행 사실을 은폐하려한 극악무도함이 드러났사옵고, 민국 국방부의 조사 결과 총기 난사 살해 계획이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전의 계획에 의하여 일어남이 밝혀졌사오니 피고인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옵니다. 이에 형조에서는 피고 김동민에게 정형(正形)을 선고하였사옵니다. 피고인은 극악무도하게 자신의 내무반원들을 살해하였으며 참회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음이 명백히 드러났사오니 피고에게 정형을 내려 본조의 정의를 세움이 마땅할 줄로 사료되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아뢴 바를 알겠다. 판결에 관한 양사(兩司:사헌부와 사간원)의 의견을 듣고 전교를 내리겠다."라고 하였다.
○ 행형조정랑 손오공이 사직을 청하는 차자를 올려 아뢰기를, "신이 부족함에도 형조정랑에 부임한 지가 벌써 3개월이 지났사오니 이를 모두 상의 성은이라 생각하나이다. 이에 견마지로를 다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사오나, 형조를 정상적으로 활성화 시키지 못한 신의 미거함이 그대로 드러나오니 이 죄를 어찌 상께 모두 아뢸 수 있겠나이까. 이에 신이 더욱 분발하여 형조를 정상화 시켜야 함이 마땅하겠사오나, 신이 현재 민국에서 병역의 의무로 인하여 근자에 들어 본조에 등청하기가 어렵사옵니다. 이에 삼가 사직을 청하오니 부디 신의 사직소를 윤허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사직을 윤허한다.”라고 하였다.

8월 8일 갑자(甲子)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9일 을축(乙丑)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사간원사간 박상진이 7월의 포상 및 징계자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신 등이 듣건대, 장예가 무후를 평하기를 "상을 내릴 때 소원하다고 빠뜨린 적이 없었고, 벌을 내릴 때 가깝다고 봐준 적이 없었다"고 하였고 진수 또한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도움을 준 자는 설령 적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상을 주었고, 법을 범하여 태만히 군 자는 설령 가까운 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벌을 주었다" 하였으니 가히 한고조의 소하, 조참에 비길만하다고 여겼습니다. 일찍이 무후는 가까운 자에게 숭앙을 받았고 먼 자 또한 공경하여 옷깃을 여몄으니 어찌 그 근본이 이병에 있지 않겠습니까. 또한 항차 신하된 자로 고명을 받든 이 또한 그러하였거늘 왕업을 튼실히 함에 있어서도 또한 같은 이치일 것으로 사료하옵니다. 그러하므로 하늘의 명을 받드는 군왕은 사람을 얻고 잃는 바가 이병을 다루는 바에서 출발한다 여겼으니, 이 균형을 잃으면 민심이 다른 곳으로 귀부하여 왕업이 흔들리고, 균형을 바로 잡으면 왕업이 만 대에 길이 영원하였사옵니다. 신 등이 전하로부터 청요의 직분을 받아 행함에 있어 늘 염려하는 것은 이병이 균형을 잃어 성덕에 누가 됨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신 등이 살펴보니 오로지 전하의 주변에 있는 신료들마다 그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는 이들 뿐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나이까. 이에 신 등은 기꺼운 마음으로 전하께 감히 그들의 공을 상표하여 백관들에게 널리 표창케 하려 하나이다. 우선 정4품 봉정대부 행예조정랑 겸시호도감낭청 장운익은 전일 사헌부 지평으로 청요직을 행함에 실수가 없었으니 만인들 또한 가히 중임을 감당할만 하다 여겼습니다. 그는 전임 성 정랑 후임으로 예조로 들어가서도 대과의 임무를 착실히 이루어냄은 물론, 공조 대행의 임무 또한 성실히 이행하니 그 기대가 결코 헛된 바는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시호도감낭청으로 대행대왕 전하의 크신 덕을 기리는 업무 또한 소홀함이 없으니 어찌 그의 이와 같은 큰 공을 기려주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신 등은 이에 그를 먼저 전하께 주달하여 그 공로를 올리는 바이옵니다. 또한 정7품 적순부위 행경상도검률 이충 또한 가히 칭찬할만 하니, 그 동안 지방관 부재로 어려움을 겪던 경상감영의 업무를 인계받아 크게 바로 잡았고 꾸준함이 부민의 기대에 부응하니 이에 주달하여 그 공로를 고하나이다. 근자에 전하께서 유생들의 상소를 받으시고 현직의 지방관들이 그 일을 제대로 이행치 못함을 안타까이 여기셨더니, 이제 이 검률이 그와 같은 전하의 심려하심을 깨끗이 씻어내고 민심을 굳건히 하니 어찌 그의 공로가 작다 하겠습니까. 이에 그 또한 주달하여 고하옵니다. 더불어서 종2품 창국원종이등공신 가선대부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 실록청총재관 원임규장각제학 이동진 또한 원로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여 성심으로 행하니 이 또한 겸하여 고하옵니다. 승정원의 직분은 곧 언로를 위로 전하고 조정의 공사를 소상히 파악하여 후대에 교훈으로 삼게 하는 바이니, 이동진은 그러한 직분에 소홀함이 없어 근자에 승정원을 맡은 여러 신하 중 가히 으뜸이라 이전의 여러 공업을 방불케 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또한 주달하옵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께서 비답하시어 지방관 중 대행자들 중에서도 포상자를 가리라 하셨으니, 신 등은 지난 한 달 동안 대행으로서 성실하게 행한 자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즉 강원도 대행 박한, 전라도 대행 강감찬, 함경도 대행 공주희가 가장 두드러진 줄로 아옵니다. 신 등이 생각컨대, 박한은 사헌부 지평으로 청요의 중임을 감당함에도 강원도 대행의 임무를 성실히 하며, 전라도 대행 강감찬 역시 처음 전라도에 부임한 때와 같이 꾸준한 성실함으로 오히려 현직 관리보다 나은 바가 보이고, 함경도 대행 공주희는 전일 몇 차례 포상을 받은 이로서 전옥서의 임무 못지 않게 함경도의 대행 임무 역시 결코 소홀하지 않으니 참으로 포상을 받을만한 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이들 또한 전하께 주달하여 표창해주실 것을 아뢰옵니다. 신 등은 이들 중 대행 3명과 현직에 있는 장운익과 이충에게 근무일수 10일을 가산하고, 이동진에게는 가자 등 별도의 포상을 내리어 원로로서 노고를 치하하심이 마땅할 것이라 사료하오니 전하의 현명하신 계찰하심으로 이들의 공로를 기려 주시옵소서."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계본에 수록된 6인에게 근무일수 10일을 가산토록 한다."라고 하였다.

8월 10일 병인(丙寅)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병조참의 서양갑이 제19차 대과 무과 결과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금번 제19차 대과 무과에는 단 한명이 응시하여 낙방한 관계로 급제자가 없었습니다. 시제를 최근 명량해전 방영등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에 관련하여 제출했지만, 응시율이 극히 저조하였던 것은 지난 대과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금번 대과의 시관은 전병조정랑 박신신, 병조좌랑 정언신 2인으로, 단 한 명의 급제자도 나오지 못하였기에 시관진 포상에 대한 일은 전하께서 처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시관들은 근무일수 5일을 가산토록 한다."라고 하였다.
○ 예조정랑 장운익이 제19차 대과 문과 시행 결과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금월 5일에 종료된 19차 대과 문과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응시자의 견해를 묻는 것으로 지난 대과보다 약간 늘어난 모두 5명이 응시하였사오며, 응시자 5명중, 문관이 3명, 유생이 2명 응시하였사옵니다. 이 가운데  급제자는 봉직랑 박지하가 6.00으로 병과에, 현 호조 좌랑 권율이 4.50으로 병과에  입격 하였사온데, 모두 전 현직 관리였사옵니다. 다음으로  시관과 출제자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이번  시관은 예조정랑 신 장운익, 봉상시 주부 권성유 2인이었으며 응시자 5인의 시권을 각각 체점하였사옵니다. 또한 금번 문과의 시제는 예조 좌랑 서민교가 출제 하였습니다. 조례에 따라 이들의 근무일수를 가산하여 주실 것을 삼가 청하옵니다." 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시제를 출제한 서민교(徐民敎)와 시관들은 근무일수 5일을 가산토록 한다."라고 하였다.

8월 11일 정묘(丁卯)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이하 제신(諸臣)들이 상(上)께서 탄신을 맞아 하례를 올렸다.

8월 12일 무진(戊辰)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병조참의 서양갑이 제27차 소과 시행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금월에 실시할 제27차 소과는 20일 00시부터 24일 자정 24시까지 만7일간 시행하고자 합니다. 이번 소과 원시의 시관을 맡을 관리는 신 병조참의 서양갑, 병조좌랑 정언신, 사헌부지평 박한입니다. 신과 정 좌랑은 병조에서 수개월 근무하면서 시관직을 수행한 경험이 풍부하오며 박 지평 역시 병조에서 수개월 근무하였고, 현재 장군급 무관 중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어 관원이 2명에 불과한 병조의 사정 때문에 원시 시관직을 수행하도록 청하였습니다. 시제는 따로 비문으로 계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소과(小科)는 이달 20일부터 26일까지 만 7일간 시행한다. 시관은 아뢴대로 한다."라고 하였다.
○ 병조참의 서양갑이 제27차 소과 원시 시제를 계본을 올렸다.
○ 예조정랑 장운익이 제27차 소과 시행 실시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금월에 실시할 제27차 소과는 앞서 병조에서 아뢴 바와 같이 오는 20일 00시부터 24일 자정 24시까지 만7일간 시행하고자 합니다. 이번 소과에 시관으로는 생원시에 함경도 검률대행 공주희, 봉상시 주부 권성유, 충청도 검률대행 천어가, 진사시에 역시 함경도 검률대행 공주희, 봉상시 주부 권성유외에  봉상시 부봉사 진풍백이 지원 하여 정하였기에 삼가 아뢰옵니다. 하오나 이번에 지원한 지방관 및 관속들의 수가 부족하여  나머지 지방관들을 두루 탐문하여 본 결과 모두 무과 계열에서 입격한 경험들이 있는 자들인 까닭에  이번 소과 역시  불가피 하게 공주희와 권성유를 생원 및 진사시 시관에 겸임하도록 하고 나머지 천어와 진풍백을 각각 생원시와 진사시의 시관으로 정하였음을 아뢰오니 삼가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함경도 검률대행 공주희는 지난 1월 천거로 출사한 이래 예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로 소과 3개시와 17차 대과에 급제하는 등 시관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하다 사료되오며,  봉상시 주부 권성유 또한 소과 및 대과에 급제하였고 여러 차례 소과 시관을 역임하였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제 19차 대과 문과 시관으로 재직한 경험이 있으니 시관자격이 충분할 것으로 사료 되옵니다. 또 충청도 검률대행 천어는  비록 시관으로서의 경험은 없사오나 일찍이 15차 대과의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한 경력이 있사옵고, 19차 소과 생원시 및 24차 소과 진사시에서도 입격한 경험이 있사와 시관 수행에 별 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봉상시 부봉사 진풍백은 지난 26차 소과에 시관으로 임한 경험이 있사옵고, 또한 소과와 대과에 급제한 경력이 있으니 시관으로서 자질을 갖추었다고 판단되어 이에 시관으로 정하게 되었음을 아뢰옵니다. 시제는 따로 비문으로 계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전하께서 답하시기를, "소과(小科)는 이달 20일부터 26일까지 만 7일간 시행한다. 시관은 검률대행 공주희(孔珠熙)와 천어(天漁)로 하며, 생진시 시관을 겸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 예조정랑 장운익이 제27차 소과 생진시의 시제에 대하여 계본을 올렸다.

8월 13일 기사(己巳)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8월 14일 경오(庚午)
행승정원좌승지 겸경연참찬관실록청총재관 이동진 근무함(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시호도감제조 하빈군 이휘가 대행대왕 시호 빈청 논의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전하의 하교를 받잡고 지난 5월 9일 빈청에서 대행대왕 시호에 대한 논의를 개시하여 7월 말일 부로 그 논의를 마친 바 있사옵니다. 참여한 관리나 백성은 열 명이옵니다. 도감에서 세 차례에 걸쳐 논의를 독려하는 공문을 발송한 바 있사오나, 참여가 극히 미미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향후 도감의 업무를 어찌 해야 할 지 여쭈옵니다. 빈청논의를 또다시 한다 해도, 그 참여도가 극히 미미할 것으로 예상되오니, 계속 업무를 진행하여 결과를 아뢸 것인지, 아니면 당분간 업무를 중단할 것인지 하교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행사간원행사간 박상진과 행사헌부지평 박한이 하교하신 형조 판결 문제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신 등이 들으니, 곽태와 신도반의 일에 대해 사마온공이 이르기를 "천하에 도가 있어야만 군자는 조정에서 정의를 펼칠 수 있고 소인을 치죄하더라도 가히 복종치 않는 자가 없게 된다"고 하였나이다. 또한 < 오자 >에서도 "군이 불화하여 단결을 이루지 못하면 부대를 적 앞에 내보여서는 안된다"고 하였으니 사마 공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고 고금의 이치 또한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즉 삼가 도의를 바로 세워 조정과 천하가 올바르게 하는 이치는 왕업의 기초임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신 등이 엎드려 생각컨대, 피고 김동민은 일찍이 소심한 자로 같은 영(GP) 내에서 많은 이들과 불화한 지 오래였는데 이 모두가 그의 잘못된 생각에 있을 뿐, 주위의 도움이 없었던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처음에 여러 고참 병사들이 그를 도와주려 하였으나 스스로 거부하였고, 이러한 정황에서 고참 병사들은 그를 차차 회피하게 되었으니 그러한 정황이 또한 이미 민국의 사법 기관을 통해 밝혀진 바가 있습니다. 민간의 도리로도 서로 돕고 사는 것이 권장되는 일이니 단합을 중히 여기는 군이 어찌 다르겠습니까? 그럼에도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도 무고한 장병들에게 무구(총)를 들이대니 인도에 어긋난 바가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한 영이 불화하면 나아가 적과 싸우는 일 또한 병가에서 꺼리는 바이니 이 또한 군률로 다스린다 해서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또한 신 등이 살펴본 바로는, 피고 김동민이 평소 희락(게임)에만 몰두하여 성격이 소심하며 주위와 어울리지 못하였다고 들었나이다. 혹자는 이와 같은 것을 일러 "성격의 문제를 어찌 형벌의 이유로 삼겠는가" 라며 변명을 하나, 이와 같은 말은 마치 한 가지 기준만을 가지고 만 가지 일을 모두 처리하는 것과 같으니 어리석은 소견이라 여겨지옵니다. 한 사람의 인격과 성품은 가내의 양육에 의해 결정되는 바가 적지 않으니, 일찍이 < 내훈 >에서 "이천 선생 형제가 평생 음식과 의복을 가리지 않고 모진 말로 사람을 꾸짖지 못한 바는 본래 성품이 그런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교육 때문이었다"라고 한 바를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 지친들이 아해들을 선도하지 못하였다면 이는 그들의 허물일 것이요, 어찌 같은 영에 있는 자들이 행한 바의 허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또한 정형을 꺼릴 이유가 되지 못할 줄로 아옵니다. 신 등이 엎드려 말씀드리관대, 피고 김동민은 그 죄가 작지 않고 인명을 경시한 바 또한 있으며 평소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는 등, 인정에도 어긋난 행동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더불어 고참들에게 폭언까지 일삼아 주위를 난망케 하니 어찌 화가 가까이에 있음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므로 그의 정형은 실로 타당한 바라 할 것입니다. 개인의 성품은 오로지 지친의 의무일 뿐 사회의 의무랄 수 없으며, 이로 인하여 앙화가 그 몸에 미쳤다면 지친과 혈족의 책임이 더 크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정형에 처하여 그의 죄를 엄히 치죄하심으로써 작게는 가족의 책임을 깨닫게 하고 크게는 후일의 또 다른 폐악을 경계케 하는 것이 마땅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라고 하였으나 상께서 유중불하(留中不下)하셨다.
○ 상(上)께서 창국 5주년(개국614년 8월 15일)을 기념하는 은전을 하사하시며 전교를하셨다.
"나라에 기쁜 일이 있으면 그에 따르는 특별한 조처가 있어야 하므로, 창국(昌國) 5주년을 기념하여 은전을 베풀고자 한다.
一. 생존한 창국공신(昌國功臣)들에게는 훈급에 관계없이 본적지에 토지 3결(結)을 내린다.
一. 생존한 창국원종공신(昌國原從功臣)들에게는 훈급에 관계없이 본적지에 토지 2결을 내린다.
一. 공신(功臣)이 아닌 자로 품계가 있는 백성들에게는 본적지에 가옥을 내린다. 당상관은 5칸(間), 참상관은 4칸, 참하관은 3칸으로 한다.
一. 공신이 아닌 자로 품계가 없는 백성(호적신고자)들에게는 금전 60냥(兩)을 내린다. 다만, 이달 31일까지 본적지 지방관청(관아)을 통해 호조로 '특별상금지급요청'을 신청하는 자로 제한을 둔다.
一. 품계가 있는 종3품 이하 백성 가운에 평정으로 승품된 경력이 있는 자는 한 자급을 더한다.
一. 남은 하옥 기간이 1년 이하인 자는 집행을 유예하여 조기 방면하고, 1년 이상인 자는 역시 집행을 유예하여 하옥 기간을 절반으로 낮춘다. 단, 완전한 사면이나 복권을 명(命)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8월15일 신미(辛未)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시호도감제조 하빈군 이휘 이하 제신(諸臣)들이 창국3주년 기념일을 맞아 하례를 올렸다.

승훈랑 행승정원주서 김성이 쓰고 돈용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가 교정하다.

개국620(2011)년 03월 02일 기록 : 승훈랑 행승정원주서 김성
개국626(2017)년 01월 08일 기록 : 돈용교위 행훈련원주부 겸승정원가주서 방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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