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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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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욱
작성일 2009/02/13 (금) 14:12
문서분류 역사
설명 한국 현대사를 다룬 소설
구분 보존
저작 정병욱
ㆍ추천: 0  ㆍ열람: 176      
임진강 3편

휴전협정을 맺자마자 피신하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서울로 올라온지 일년이 되어버린 어느날(1954년) 시민회관 앞에서 중절모에 갈색 양복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원균이었다. 그의 곁에 있었던 여자는 그의 사촌인 서경이었다. 서경을 보고 원균이 말했다.

“강희가 언제 오는지 아니?”

“전주서 올라오는데요.”

서경은 화려한 옷차림으로 시민회관에 기다리고 있다가 강희가 세 아이를 데리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알아본다. 마침 용석도 동행이 되어주었다.

“언니…!”

하고 서경은 강희를 알아본다. 원균도 안부를 물어보았다.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 공연은 시작되었다. 음악회였다. 이 음악회에 초대한 이는 강희의 여전 동창이었다. 그녀도 음악을 전공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어서오렴, 강희야.”

강희의 동창이 강희를 알아보았다.

“잘 지냈니?”

하면서 왜 이곳에 자신들을 초대해주었느냐고 묻자 그 동창이 말했다.

“사실, 다름이 아니라 음악을 잘하는 아이가 있어서 너를 부른거야. 그애가 가곡을 잘부르고, 마치 소프라노를 보는 듯해서 너를 불렀어. 근데 재능이 어느정도 있는지 참 궁금해서 그렇거든.”

그리고 동창과 같이 앉은 강희 일행은 음악회 행사 광경을 바라보았다. 무대가 시작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감미롭게 음악이 무르익어갔다. 드디어 다음 사람이 무대에 올랐다.

“바로 저애야.”

동창이 가리킨 사람을 강희는 바라보았다. 곱게 생긴 여자다. 고생을 한 흔적이라곤 없고, 감수성이 예민한 여학생을 보는 것 같은 이 여자. 천진난만한 여자. 이 여자는 복영자의 동생 영숙이 원통한 감옥이라고 무턱대고 꾸짖어대던 바로 그 손녀. 媛鈺(원옥)이었다. 그녀가 지금 현재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있는 상태였다.

“감수성이 예민한가?”

강희가 묻는 질문에 동창은 그럭저럭 이야기를 꺼냈다. 원옥이 부른 곡은 우리나라 가곡인‘금강에 살어리랏다’라는 노래였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강희는 원옥에게 연민을 느꼈지만 원옥에게 부족한 것이 꽤 많았나보다. 해서 음악회의 막이 내리면서 사람들은 관람석을 벗어났다. 강희 일행도 벗어날 즈음에 동창이 원옥을 데리고 강희 일행 앞에 다가왔다.

“인사해. 이분은 성악가이신 전강희 선생님이셔.”

원옥은 인사를 하였다. 강희도 냉정히 인사를 한다.

“처음 보네요. 올해 나이는 몇이죠?”

“열다섯이요.”

강희는 원옥에 대한 부족함을 조만간에 알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원옥을 보낸 동창이 근처에 있는 음식점으로 일행들을 안내했다. 동창과 서경이 강희에게 말했다. 원옥을 보니 어떻습니까? 그러자 강희가 조만간에 말을 꺼냈다. 소프라노가 될 재능은 있는 모양인데 뭐가 부족하고 부족해. 일행은 일제히 놀란다. 강희에게 그런 말이 나올 줄이야.

“저기, 강희야.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원옥이 그 아이 집안이 경성법원 박 판사의 외가 쪽이야.”

놀란다. 박 판사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원옥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원수는 아니지만 친일파의 핏줄이라는 이유가 그것이다. 뜻밖의 말에 동창은,

“저기 강희야, 아무리 친일파의 핏줄이라고 해도 이러는 건 안 좋다.”

“재능과 실력만 쌓아서 이까짓 음악회에 이름을 날리는 건, 식은 죽 먹기야. 그 실력정도면 외국에 가서 골고루 섭렵해야만 좋은 성악가가 되는 법이야.”

“언니는 당초에 그런 사람이에요? 재능이 설령 좋다 해도 저 아인 친일파라는 이유 때문에 저렇게 내버려둘 수가 없는 법이예요.”

……나도 저버리게 할 순 없다.

“언니. 원수 때문에 이러시는 거라면……. 차라리 그 아이를 독하게 대하셔도 상관은 없어요. 하지만 식구는. 예나 지금이나 어렵게 살고 있지요. 그나마 젊은 날에 교사로 재직하고 있어서 벌어두신 돈으로 근신하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간절히 언니한테 부탁해서라도 원옥에게 도움이나마 주고 싶은 이 마음을 이해해주시기만 한다면.”

원균도 강희에게 말하였다.

“맞소이다. 그 아이에게 설령 잘못한 일이 있다고하면 꾸짖어주는 것이 더욱 좋지요. 강희 양이 좀 봐주시오. 황 군수님 부인 분을 생각해서라도 봐주시는 게 좋을 듯 싶소. 저는 강희 양을 믿다고 말하고 싶소. 당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박 판사에게 옥고를 치르는 치욕을 감내하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 판사는 이 옥고에 대해서 온건적인 반응으로 대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소. 사이토총독이 만세시위를 한 조선민족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조선은 서양의…「중간생략」…”

강희의 얼굴에선 눈물이 나왔다.

며칠 뒤, 강희는 원옥이란 아이의 집에 들어가보기로 하고, 그 집에 가보니 중년의 남자가 거지 차림으로 있는 채 집을 지키고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판자촌에 있던 원옥의 집. 그 중년의 거지는 원옥의 아버지였다. 젊은 시절 고리대금을 갚지 못하여 졸지에 무능력자가 되어버린 그 자신에 대해서 원망을 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들어선 강희는 원옥의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원옥이 있는지 물어보자 원옥의 부친은,

“지금 원옥이 없어. 원옥이 지금 서울역에서 거지행세를 하고 있어.”

하며 원옥의 부친은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강희에게 애원조로 말을 꺼내대기 시작했다.

“이봐, 우리 원옥일 잡아가려고 그러는거지, 그래서 왔어? 그러는거냐고. 제발 우리 원옥일 잡아가지…잡아가지 마라, 응? 잡아가지마! 잡아가면! 잡아가면!”

순간 흥분하여 이 거지는 강희에게 매달리듯 간절히 애원하였다. 그에게는 막내딸이나 다름이 없는 딸. 그딸을 저 여자에게 보내기도 두려워 도둑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힘든 처지이다. 그러나 박 판사의 처제 영숙이 원옥의 어미와 장을 보고서 들어왔을때 이 광경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이 아가씨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또 영희가 들어섰다. 강희가 놀라면서 영희에게 인사를 하니 영희가 놀라면서 여기는 왜 왔느냐고 물으니,

“제가 이곳에 온 연유는 윤원옥이라는 학생때문인데.”

하며 강희는 원옥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원옥의 부친이 못마땅했다. 저 아가씨를 아세요? 하며 원옥의 부친은 어머니 영숙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원옥의 부친이 엉뚱한 소리를 딸년이 납치될 뻔했다며 으르렁대는 것이다. 일정 때 일본정부로부터―총독부로부터―직위를 얻어 미군이 와서 군정을 펼칠 때까지 관리로 지내오다가 갑자기 미군으로부터 적산으로 몰린 나머지 전북 진안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영희네가 50만원을 줘서 이곳 서울 도심에 있는 판자촌에 앉은 것이다. 심지어 고리대금을 마련하여 근신하였으나 지금은 대금을 갚으려고 서울역에서 거지노릇을 해댔던 것이다. 원옥은 이런 환경 속에서 이서경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성악을 전공하였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강희에게 털어놓은 영희. 그때 강희는 비로소 제자로 원옥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해보고는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온 강희의 뒤를 영희는 가엾게 바라보았다. 순간 영희는 강희의 뒷모습에서 외가의 조카 병기의 마누라가 된 의성댁을 떠올렸다. 언니의 큰 희망을 저버린 조카 병기. 그러나 언니는 왜군의 총받이로, 징병으로 끌려가는 황국의 신민으로 희생시키려고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그 음모는 수포로 돌아갔다. 아들의 의사를 존중치 못한 언니의 연약함. 그 연약함으로 의성댁은 올가미에 얽매인 나비처럼 집안에서는 소외되어 왔다. 그러나 명실상부한 유명회사의 사모임이 되었다. 의성댁은 행복하게 잘 살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래왔다. 그 생각을 떠올린 영희는 저물어가는 태양을 바라본다. 초저녁에 원옥이 집에 돌아왔다. 그녀가 어린시절에 할머니가 부르짖던 ‘원통한 감옥’의 주인공.

 

원통한 감옥―장학생 윤원옥

 

1953년 올해 갓 K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성악을 전공하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음악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탓에 음악회에 여러차례동안 다니곤 하였다. 조국을 그리워 하던 나그네의 감동을 줄 정도이니 원옥은 천재로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에게 더욱 가혹함과 희생을 강요했다. 누구에게 축조되고, 조작되는 이 세상 풍경이 좋지않았다. 「더럽고 썩어 자빠진 세상아!」강희의 냉정함도 이에 비하면 더욱 그녀를 가련하게 할 것이다.

……더욱 초라한 꼴을 이제는 보지 않겠어.

그녀는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시민회관서 전 선생의 못마땅함이 그녀를 괴롭혔다. 설마 자신의 재능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아니면, 아니면…

“선생님! 제가 잘못이 있는거예요? 아니면 제 가족이 잘못한 일이 있어서 저를 성악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인가요? 아니예요, 아닐꺼예요. 그렇죠? 선생님은 인자로이 대하셨잖아요. 그렇죠? 선생님은 진정 이렇게 저를 비극적으로 내동댕이치시는 거죠? 제가 너무 오만하거나 자만한거면 제가 직접 처신하고 선생님을 따르겠어요.”

이런 말을 꺼낼 줄 알았던 강희…아니 원옥. 며칠 전 스승인 서경이 언젠가 하던 소리를 기억하였다.

“전 선생의 양친은 젊은 시절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살다가 노서아로 달아나 낳아둔 탓에 전 선생이 독하게 살아가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사람들과도 제대로 어울릴 수가 없었대. 어울리는 것을 여러번 겪으셨지만 학교교사로 있을때 동기인 홍 선생이라는 남자가 접근해서 서로 투쟁적인 사랑을 나누다가 결혼을 하였지. 지금은 세 아이를 둔 어머니로 살고 있지만. 막내는 수없이 고비를 겪었지. 태어나자마자 남편은 사상범으로 잡혀가고, 한 순간 아이의 몸이 망가졌지만. 지금은 잘 살고 있어. 아무렴. 불타는 사랑을 한 사람이지.”

원옥은 하루하루를 강희에 대한 잡생각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녀한테는 세 명의 오빠나 두 명의 언니가 있다. 큰오빠와 둘째 언니는 폐질환(만성폐렴)을 앓고 있어 병원에는 제대로 가보지도 못하고 근신하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그 생각을…하지만 이상하게도 외가의 오빠인 병기를 사모하고 있었다. 대구에서 병기를 처음 만났을 때 자상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던 엘리트 출신의 청년! 비록 결혼했지만 병기는 한때 파장을 일으킨 제2부인으로 원옥을 삼으려 했지만 일가의 반대로 인해 무산이 되면 어이하나 하고 두려워한 것이다.

“원옥이 있니?”

다정스런 둘째이모 할머니의 부르심에 원옥인 잡생각을 버린다.

“이제 자야지. 내일가야되지 않고.”

염려스러운 소리를 듣자마자 그녀는 스르르 잠에 들고야 만다. 이른 아침이 되어 일어난 원옥은 걸어서 두 시간이나 떨어진 K대학교에 도착했다. 도착하여 강연을 청강하려고 수업자료를 꺼낼 때 강의는 진작에 시작되었다. 우선 이론수업을 시작한다. 고전주의, 신고전주의, 국민악파…이런 이론수업을 하고 나니 머리가 복잡하련만 원옥은 진지하게 수업을 참관한다. 이 수업을 진행한 강사는 유명 소프라노 가수였다. 강의가 끝나고 그녀가 찾아간 곳은 안암동 교사에서 15여 리 떨어진 살곶이에 있는 용설란의 거처방이었다. 시간은 정오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선 그 방에서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나왔다.

설란의 집에는 손님이 없었다. 그 손님은 설란의 양녀 매원이라는 여자였다. 아바지에게서 버림받은 가여운 아이, 그 아이는 기생이 되어 한을 씻던 이였다. 지금은 병기가 운영하는 용산옥의 종업원으로 살고 있는 평범한 아낙이 되었다. 갑자기 찾아온 객이 있는 것을 본 매원이 인사를 하였다.

“어서 오세요…그렇잖아도 여손님이 오신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오시네요.”

애정어린 매원의 말에 원옥은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원옥은 그런 매원에게 감사를 표했다.

“저 아인 내 수양딸이야. 엄청 아름답지 않아?”

설란은 자랑하듯이 원옥을 바라보면서 자랑스레 웃어주었다.

“참……원옥아. 전 선생이 너를 찾다가 가셨어. 내일 뫼실까 할 생각인데 너는 괜찮은거지? 차근차근 생각해보아.”

원옥은 설란의 부탁을 받고 밖에 나와 집 앞에 다가가니 검은 드레스를 차려입은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 여자는 바로 시민회관서 본 전 선생이라는 사람이었다. 그저 미안스러운 모양인지 무엇인가 담긴 봉투를 준다. 그 봉투에 들어있는 것은 설탕세트였다. 반도에서 구하기 어렵다는 그 선물…

“진심으로 미안하다. 너의 재능을 모른 바도 아니겠지만 어디 근처에 있는 다방에 가서 차를 마실까?”

원옥은 그렇게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무심결에 인근의 다방에 선생을 안내했다. 커피를 대접하는 원옥에게 진정 신뢰감이 싹트이게 되었다.

“너는 충분히 성악을 잘해낼 수가 있을거야. 지금의 실력으로는 음악회에 나설 가치가 없진 않다. 자신이 겪고 있는 모든 것을 직감하듯 회상하듯 가느다란 노래로 잘 불러야지만 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수가 있다. 그리고 너에게 기회를 줄께.”

그 기회... 원옥에게 다음 인생의 전성기가 오는 것... 그것 뿐이다.

다방을 나선 스승과 원옥은 서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 뒤 각자의 터로 갔다.

다음날 원옥은 이른 아침부터 대학공부를 하러 가는 것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그럭저럭 수업을 마치고 대학을 나설 때 이모할머니가 어김없이 찾아오셨다. 원옥에게 친척집으로 간다는 이야기만을 해 주고서 원옥을 데리고 친척집으로 향했다. 빈민촌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친척일 줄을 원옥은 몰랐었다. 친일파 자손이라던 그의 먼 친척이 왜정 시절에 복심법원 판사로 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반민특위에 연루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병기가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만 모르고서.

그 친척은 바로 다름아닌 다른 이모할머니가 기거한다는 집이었다. 그 집에 다다랐을 때,

“이 새끼야! 꺼져!”

하는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바깥으로 나선 이는 병석의 외아들 영범이었다. 박영범, 그는 왜정 말에 보통학교를 입학하고 지금에 와서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을 밟고 있는 상태였다. 대학 진학하는데 혼선을 빚은 모양이다.

“영범아.”

그러나 이모할머니를 알아채지 못하고 영범은 바깥으로 달아났다.

“졸지에 허무맹랑한 자식으로 살아가겠구나. 허!”

며느리에게는 잘해주지만 손자에게는 잘 못해주는 모양이다. 영범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어버린 날개잃은 천사와 같았던 영범. 그런 그에게 원옥은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영범어미는 어디 갔고.”

“어디 나간 모양인데.”

“근디 저 가시나는 누구랑가.”

“이 아가씬 영숙 언니 손주요. 언니한텐 이모할머니가 되는…”

그러나 영자는 아는체도 않는다.

원옥의 비참한 삶

영자는 원옥의 비참한 삶을 동정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지아비가 죽지만 않았더라면 부를 축적하여 성북동에 계속 살 작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병기를 학병에 가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기는 자신의 집에 있던 천한 신분의 유부녀와 바람이 나 멀리 용산으로 달아난 뒤로 영자는 그토록 믿었던 아들을 가슴에 묻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미련한 영감탱아!”

박 판사의 영정을 바라보면서 꾸짖던 영자.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는 그녀로서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병석도 죽어버렸으니 영범도 제법 다툴만도 하다.

“그나저나 태광이 외손자 말이오.”

병희의 외아들 태광의 이야기가 꺼내지자 영자는 눈을 돌렸다.

“태광이가 공부를 잘해서 우등상도 타고 그랬더랍디다.”

“지아범은 죽고, 흥, 미친 년.”

웃을래야 웃을수가 없는 이 풍경을 원옥은 바라볼 수가 없었다.

“전쟁만 적어도 끝났음 좋겄는데.”

“진작에 끝났소.”

그러자 영자는 돌연히 눈물을 흘렸다. 사무친 피난살이. 그리고 박 판사의 생전 모습. 남편을 동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뿌리며 울부짖었다.

“이년아! 뭐했길래 이렇게 무심히 전쟁이 끝났다고 그러나! 어!”

“언니. 그만두소. 언제는 언니라고 오냐오냐 대했습디까?”

다투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던 나머지 원옥은 바깥을 나선다. 일기는 돌연 추운날씨가 되어버렸다. 그때 마침 큰딸 병희가 어머니를 보려고 집으로 들어왔다.

“너 누구니?”

외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원옥을 알아보지 모양이다.

“대나무골 작은 딸 원옥이요.”

그러자 병희가 웃으면서 반긴다.

“어? 원옥이야! 정말 오래간만이다!”

“……”

“그래, 할머닌 잘 계시고?”

“네.”

그럼 되었어. 하며 병희는 방안에 들어가본다.

“엄마. 나 왔어.”

그러나 병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인지 영자는 기척도 않는다. 딸이 왔다는 눈치만을 안 채 영자는 차마 딸을 부를 수가 없었다.

“엄마. 나 병희야. 어디 있어요?”

이때 문을 열어젖힌 영자. 병희를 멍청히 바라본다.

“엄마. 밥은 먹었어요?”

큰딸의 생활이 그나마 고생에 찌들어져있는 광경을 보노라면 참으로 충격을 먹곤 한다. 그러나 외면한다. 병희의 찌든 세월의 자국. 그러나… 곁에 지켜보던 영희는 언니에게,

“왜 그래 언니. 뭐 안 좋은 일이 있는감?”

그런데 난데없이 영자는 눈물을 뿌렸다. 그리고는 울어버린다. 울고 있는 광경을 지켜보던 병희가 놀란 듯이

“엄마. 왜 울어? 무슨 일이 있어?”

“세상살이가 서러워 그러시겠지.”

영희가 언니를 대신 전해주었다.

“엄마. 너무 걱정 마. 알았지? 태광이하고 잘 살고 잘 자고 잘 먹으니까 걱정은 마. 알았지?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건강이야.”

“그게 아니고. 성북동 집이 그리워서 그래.”

“?”

“성북동 집에 가보고 싶어.”

“성북동엔 왜?”

“그 집에서 살고지고 하고 싶단 말이야.”

그녀는 어느새 어린 파랑새와 같았다.

‘엄마가 지금 어디가 안 좋은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없을 거야.’

하지만 병희는 성질을 내고팠다.

‘엄마, 이제 그 과거는 잊어! 그 과거를 왜 미련하게 잊지를 못해!’

그날 병희는 엄마 곁에 잠을 청한 다음날 아침. 영자의 기척에 병희는 일어났다.

“……나 무서워. 누가 날 욕하는 것 같아. 정말야. 누가 나를 욕하는 거 같아. 판사 마누라가 제 아들놈 간수도 안한다고 손가락질해대고. 나를 뭐라고 욕해대. 이 ㅆ×이라고 욕질하고 나를 괴롭히는 것 같아. 친일파의 자부라고 나를 골탕 먹이려고 하고 나를 뭐라고 조종하는 것 같아.”

엄마의 불안한 목소리에 병희는 의아했다. 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인근에 있는 병원으로 달려가니 간단히 진찰을 하고서 하는 의사의 辯(변).

“지금 히스테리에 걸린 것 같군요.”

“?”

“지금 히스테리와 같은 증세가 있는 걸로 봐서 뇌에 좋지 않는 영향이 있어서 그러는 것 같군요.”

“선생님? 지금 어머니가 앓고 계신 게 히스테리라고 하신 말씀이신가요? 그러면…”

“추적망상도 보이는 수가 있습니다만. 신경증이 있는 듯싶습니다.”

순간 병희는 영자가 신경증을 앓고 있다는 데에 대해 놀란 기색이었다.

“흔히 전형적인 히스테리라고 했지만 그것 외에도 다른 위험요소가 있는데.”

“말씀하세요.”

“말씀드리기가 거북해서 말입니다.”

“말씀하세요.”

“이 환자 현재 정상이 아닙니다.”

“네.”

“이 환자는 지금 고혈압증세도 있는 상탭니다. 이대로 놔두셨다가는 동맥경화로 이어져 생명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뇌에도 영향을 끼쳐서 자칫 잘못되어 치매를 동반할 수가 있습니다.”

이내 병희는 울고 말았다. 큰오빠에 대한 원망과 불신이 이렇게 가혹하게 만들 줄을 누군가가 알아줄까. 그러나 처음에 큰오빠가 용산으로 달아난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것을 알 것 같았지만 이미 사태는 벌어진 상태요, 아버지는 소극적인 태도로만 앞선 나머지 영자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이다.

‘엄마. 그렇게 불안했었어? 응? 아버지가 처음엔 잘 대해주더니 이제는 냉정히 저버린 거에 대한 불신이 엄마를 더욱 괴롭힌 거구나. 하지만 엄마. 이제는 알 것 같아.’

그러나 병희의 생각은 제대로 된 어미의 심정이 아니었다. 그 발단은 의성댁과 병기의 통정으로 이어진 큰 화였던 거다.

하여튼 병희는 어미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새벽부터 눈을 뜬 영희가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니?”

“엄마가 고혈압증세가 있다고 하는데 뇌에 영향을 미쳐 치매를 일으킬 수가 있다더군요.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였어요. 그리고 엄마, 히스테리 증세가 있대요.”

이 기막힌 말을 차마 듣기 힘든 영희. 그러나 원옥에게 가 말한다.

“원옥아. 할머니 죽을 좀 해주어라.”

원옥이 죽을 쑤어서 가지고 오자 영희는 영자에게 죽을 먹이기 시작했다.

“엄마.”

병희는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니 눈물이 앞섰다.

‘그렇지만 부르주아처럼 살아왔던 지난날 일정 때처럼 공주대접을 받아가며 잘 살았을 것이다. 민족들의 해방을 바라보지 못하는 미련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신여성으로 떵떵거리면서 백성을 굽어보지 못할망정 남편의 뒷바라지를 돌보면서 행복하게 누리곤 했던 그녀였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안서방과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어 맏손자 병기를 의성 댁을 부탁하면서 영자는 점차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인 박 판사가 마음속으로 사모했던 의성 댁, 그런데 박 판사가 맏아들에게 멀리 용산으로 달아나라고 일러둔 뒤 엄마는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엄마가 머물고 있는 집을 나서서 자기 거처에 도착하여 글을 써내기리기 시작했다.

六二五(육이오)의 혼란 속에서 민의원 후보를 정한다는 공고문이 붙여져 있었다.

전주에서도 민의원후보를 선출한다는 공고가 붙여져 있었다. 때마침 배참봉의 아들 윤형이 그 공고를 보고서는 곧장 전주의 용석의 집으로 향했다. 그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원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원우는 뒤에 누가 있는 지도 모르고 곧장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문을 열어 바라본 원우는 놀란다. 동네사람들이 모조리 다 잔치 같은 풍경을 풍기고 있었다. 그때 윤형도 그 집에 들어설 적에 사람들은 일제히 윤형을 바라보았다.

“어데서 오신 선상이런가.”

“누구요?”

순간 원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저씨!”

원우가 윤형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는 동네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이분은 서울서 오셨는데 배 선생님이십니다.”

윤형이 인사를 하자 동네사람들이 반가이 맞이하였다. 동네사람들은 윤형을 불러내어 잔칫상에 끼어들게 하여 그럭저럭 곤드레만드레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전후에 무슨 변란이 일어났는지 어쨌는지 상황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입씨름을 해대다가 해가 저물자 사람들은 우르르 각자의 거처로 가버렸다. 저녁이 되어서도 부부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동안에 밀린 공부를 하느라 원우는 분주하다. 중학교 入學試驗(입학시험)을 치를 적에 우등으로 합격하여 전주 시내의 중학교로 입학하게 되었다. 이제 갓 열네 살이다. 공부만이 자신만의 살길이라는 생각은 잊었지만 부모의 강요 하에 공부를 하지 못하였다. 부모는 자식을 자유롭게 키우고 싶다는 사소한 생각이었다.

“그래. 잘 지냈나?”

윤형은 원우에게 안부를 물어본다.

“네.”

“아버진.”

“지금 바깥에 일을 보시고 오신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는 시내로 가신다고 집을 보라고 하시네요.”

웃으면서 원우는 대답한다. 윤형은 마을사람들이 이렇게 웅성거리며 잔치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

“한데”

“네?”

“동네사람들이 왜 이렇게 잔치를 베푸는 겐가.”

“아, 저희 아버님께서 民議院(민의원)에 출마하신다고 하셨기에.”

원우가 윤형에게 대강 이야기를 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출마하기 일주일전 아버지 용석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나섰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자 이렇게 바깥에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고 들어오던 중에 편지 한통이 눈에 띄었다. 그 편지를 보니 서울서 강희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 편지의 내용은 용석이 민의원에 출마하기를 희망한다는 편지내용이었다. 그러나 용석은 정치에 뜻을 두지 못하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정치에 굳이 나서야 하는지 잘 모른 탓에 차마 출마를 마다할 수가 없다. 편지를 보낸 이는 박 판사의 맏이 병기였다. 병석의 사후에 박 판사가 생전에 병석에게 상속한 재산들을 모두 병기 명의로 돌려놓았다. 덕분에 병기는 서울서 잘 먹고 잘살았고, 의성 댁은 지역유지의 부인으로서의 위엄을 지키고 있었다.

마침 강희가 아침에 눈을 떠 용석을 바라보았다.

“지금 당신 무얼 보는 거예요?”

“지금 서울서 편지를 온 모양인데.”

“어제 편지가 왔어요. 근데 왜 그러세요?”

“내가 굳이 정치에 몸을 담글 필요가 없소, 한데 왜 내가 정치계에 몸을 담가둬야 하오? 부패했다는 자유당의 꼴을 어떻게 본다고. 그리고 정치깡패들이 정치를 장악하여 온갖 행패를 하며 낭떠러지로 굴려가고 있는데 왜 내가 정치를 참여한단 말이요?”

용석은 순간 흥분하였다. 흥분한 광경에 놀란 듯이 아이들은 눈을 비비며 문을 열어본다.

“여보,”

그러나 강희가 성질은 보통성질이 아니다. 하지만 남편의 말을 들어주는 아내로서 눈을 감기로 하였다. 그런 일들을 원우로부터 들으며 윤형은 병기의 딱한 소리를 못마땅해 했다.

이때 강희는 남편과 같이 집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손님이 오셨습니다.”

하자 용석이 윤형을 알아본다.

그렇지만 용석은 요즘 들어 죄의식에 사로잡힌다. 이유는 가히 알 수는 없다.

“표정이 좋지 않으신가보군요.”

“그렇습니다.”

“……”

“어디 안 좋은 일이라도…”

“안 좋은 건 없습니다. 홍정한이라고 아시지요.”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본 분인데.”

“그 분을 위해서 기도를 드릴까하는데.”

“기도요?”

“며칠 전에 다자이군이 왔더군요.”

다자이군이라는 이는 바로 병기의 부친 박 모 판사의 동료인 백군의 아들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죠?”

병기는 소스라치게 놀랬다.

“솔직히 미군정 하에서 차마 있기가 거북해서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갔다는데 결국 그것을 잊지 못해 2년 만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

“방전 형제님도요.”

“방전이란 분이시라면.”

“아시겠지요?”

“박 판사님의 도움을 받았다는 분.”

“아, 기억납니다.”

“그분들이 저희 아버님을 찾아뵈었습니다. 한데 참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요. 병기 선생도 놀라실 거외다.”

“말씀하십시오.”

“다자이군이 말하더군요. 홍정한이란 분과 내 가족과의 관계를. 사실 제 아버님의 사촌형이라는 군요.”

“사촌형이라면.”

“저한텐 六寸(육촌)이니 재당숙이지요.”

“참으로 복잡합니다. 하하하하.”

병기는 웃으면서 농담을 한다.

“그 분이 예배를 드리고 오는 길이라면서 저한테 선물을 주시더군요.”

“무슨 선물을.”

“민의원에 꼭 출마하라는 말.”

“하지만,”

“잘 압니다. 하지만 저는 출마하지 않을 겁니다.”

“단지 빨갱이라는 욕을 먹을까봐 죄의식에 휘말리신 건가요?”

“순간 내가 당황해서 그렇습니다.”

“그렇진 않습니다. 그런 죄의식을 버리시는 게 좋을 겁니다. 버리세요.”

“…”

“저는 솔직히 홍 선생이 민의원에 출마할 가치가 있다고 충분히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런 병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용석은 차라리 병기가 출마해주었으면 하고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저는 박 선생을 민의원에 출마시키고 싶습니다.”

“흠.”

병기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당신을 믿고 싶습니다.”

웃으며 병기는 말했다.

“그렇지만.”

용석은 차마 당황한 기색이다.

“……”

병기는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공연히 민의원 출마를 마다하시지는 마십시오.”

“?”

“다자이가 온 이유는 과거의 일에 개의치는 말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재당숙이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원망하는 건 아니라는 걸. 내 아버지 박 모 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생전에 진 죄는 컸으나 죄를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지만 아들에게 영향이 미치지만 않는다면야 나는 여한이 없지.’라고요.”

방황하는 용석의 긴장된 마음이 순간 풀렸다.

“저는 요정을 운영하고 부를 축적하였지만. 아버지를,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여러 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운명을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거하고 이 일하고는 다르잖소.”

“생각해보십시오. 며칠 뒤에 다자이가 金海(김해)로 이사를 온다고 합니다만. 다음에 뵙기로 하면서.”

곁에 있던 강희가,

“잠깐만요.”

하고 병기를 불렀다. 그리고 그녀가 보자기 하나를 들고 병기에게 주면서,

“다자이상이 오면 이걸 전해주세요.”

“네.”

병기는 이내 발걸음을 서두른다. 강희는 남편에게 배웅해주고 오노라고 이르고 집을 나섰다. 그녀는 역전까지 데려다주었다.

“막차는 몇 시죠?”

“열 시각이 되지요.”

전주역전에 앞에 이르자 병기는 강희의 배웅을 뒤로한 채 부산으로 향했다. 병기는 홀로 부산에 내려왔다. 병기 가족들은 모두 이미 부산에 있었다. 부산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었다. 막차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그때 의성댁은 백씨 집에서 자식들과 같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 집에 기거중인 백군의 부친은 아직까지 생존 중이셨다. 백씨 집의 실질적인 주인은 백군의 아들 다자이였다. 다자이가 왔다는 소식을 병기가 알고 있는 것은 동생 병희에게서 였다. 병희의 동창이 부산에 기거하고 있으니 알만한 사항이었다. 해서 병희 덕분에 자세한 동네까지도 알아가지고 이렇게 찾아온 거다. 새벽에 그 집 문을 두드린다. 다자이가 문을 열어주었다. 다자이의 안내를 받은 병기는 그의 거처방에 들어섰다. 퀴퀴한 냄새가 날 듯 하지만

“어찌 된 일인가요?”

하고 당황한 듯 다자이가 물어왔다.

“전주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라.”

“전주에 친척이라도.”

“아니, 홍 水使(수사) 댁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라네.”

“수사라면 가톨릭의 그 修士(수사)가 아니지요?”

“하하하하, 그건 줄 알았나?”

“네.”

그건 아니라고 병기는 웃은 채 고개를 저었다.

“수사라는 건 우리 대한민국으로 따지노라면 海軍(해군)의 우두머리인 참모대장이랄까.”

“그렇군요.”

“한때 이순신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란 벼슬을 얻으시고서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이끄신 위대한 장군으로 우리 민족이 기억하고 있지. 그 요직에 홍 선생의 집의 조상님이 우수사를 역임하셔서 대대로 무관을 배출해내셨지.”

“그렇군요.”

다자이는 이내 웃어본다.

“흠, 웃긴가?”

“아버님이 생전에 말씀하신 일이 생각나서요.”

병기는 다자이를 바라보았다.

“제 아버진 성악가××사건에 연루된 홍정한의 얼굴을 생생히 기억나더군? 하며 말씀하셨지요. 홍정한을 보노라면 무관의 기질이 서 있다고. 웃으면서 농담조로 말하셨지요.”

“그런데. 그 사람이 무척 방황해하는 모양이더군.”

“그 사람이라면.”

“용석이란 친구 말이야.”

“무슨 고민이기에.”

“자기 재당숙이 사회주의에 몸담은 건 사실을 알고부터.”

“과거에 연연하지 말아야하는데.”

“……”

“솔직히 내 부친은 죽으면서 나한테 유언하셨어. 나한테서 죄를 받은 이들한테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고 해. 생존을 위해서 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그리 했다고.”

두 사람은 숙연해진 마음으로 그들을 위로했다.

 

며칠 뒤 다자이는 가족과 잠시 부산에서 머물다가 김해 새집으로 옮겨갔다. 김해 새집은 양옥집이었다. 붉은 블록으로 지어진 집이었다. 블록 사이사이를 시멘트로 메워놓았다. 이 집에 이사를 하고 나서 대한민국의 국적을 얻었다. 歸化(귀화)하였다. 할아버지는 무엇보다 기쁜 순간을 만끽 하셨다. 가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자이 네가 참 잘 했다.”

일정 때 다자이의 생모 大田(오오다)의 성을 따라 타사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일본인으로 살아왔던 자신이 자유로이 날던 비둘기처럼 한국 땅을 밟아본다.

“국적을 얻길 잘 했어. 생부도 하늘나라에서 기뻐하실 게다. 하느님이 이렇게 다자이를 고국으로 오게 하시니 그 깊은 은총을 어찌할까. 이제는 田沙莞(다사이)라는 일본이름을 사완이란 이름을 얻어 살아갈 수가 있다면 너는 우리나라 국민으로 잘 살게다.”

하느님의 은총 아래 그는 기도를 올렸다. 용석의 민의원직 후보 출마를 할 수 있기를 기원해볼 뿐이었다.

 

용석은 민의원 후보로 자신의 처신을 단단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부인의 덕분이었다. 부인은 집안의 일을 잘 챙겨놓을 테니 염려는 말라고 일러둔 덕택이었다. 비록 어려운 선택을 했으나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자신을 다짐해본다. 어저께 용석은 원망을 했다. 병기를 원망했으나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생겨났다.

“아버지!”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들여 술자리를 마련하였다. 부인과 어머니도 같이 앉은 자리였다.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된 사람이 이렇게 어린애처럼 나약하게 부른단 말이냐.”

“아버지! 왜 저한테 가혹하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반항적으로 용석이 아버지에게 원망하며 말했다.

“그 홍정한이라는 사람 말이냐.”

“네!”

눈물을 보이며 용석은 대답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원우엄마한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어서 말이야.”

“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희는 마음을 먹고 대답했다.

“용석아. 너무 상처를 받지 마라. 이미 과거는 잊어졌다. 하지만 나한텐 추억이 남아있어서 그런 거다. 장인어른이 민의원에 출마한다면 좋은 일인들 없겠느냐며 웃으시더군.”

부친은 반항하다시피 한 용석을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저 좋은 마음으로 천사의 마음으로 용석에게 다가갔다. 이제야 이성을 되찾았다.

다음날 용석은 민의원 후보로 출마를 하게 되었다. 병기가 뒤를 돌본 덕분이었다.

그날 용석이 출마를 하는 가운데 하루 온종일 선거유세를 펼친 결과, 용석은 선거에서 민의원으로 당선이 확정되었음을 알리는 공고가 용석의 집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가족들은 이 소식을 듣고서 기뻐해하는 가운데에 용석은 곧바로 병기에게 서찰을 써서 보내었다. 그 서찰에 부디 박 선생이 비서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쓴 뒤 금순이를 시켜 병기에게 편지를 전해주고 오라는 소리를 하였다. 물론 병기도 기뻐는 하였다. 그러나 병기는 용석의 비서 노릇을 해야한다는 막연한 생각에 거절을 하려고 했으나 완강히 의성댁이 이를 성사시켜야 한다면서 독촉을 하듯 다정스레 권하였다. 하여 병기와 용석은 전주에서 후하게 소담스런 다과상을 차렸다. 물론 술까지 가지고 오지는 않았다.

병기가 전주에 오면서 느꼈던 것을 이야기를 꺼내자 용석은 이를 듣고 웃으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잖아도 며칠 전에 맏아들 호범이하고 전주에 내려오긴 했다.

“내 박 선생에게 오라고 하는 이유는 호범이를 위해서 일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때문에 이렇게 불러온 거요.”

“네?”

“다음에 대학에 들어가야 하지 않소?”

“…”

“거기다가 우리 원우도 같이 끼어들어서.”

“제가 어찌 그런 부탁을…”

“어허, 내 청 좀 들어주소.”

하며 용석이 청을 하자, 병기가 면목이 없다는 듯이 용석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결국 아퀴를 짓고 말았다.

 

다음날, 병기는 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 도착한 병기 부자는 다자이의 집으로 향했다. 다자이는 그러잖아도 바깥을 나서려던 참이었나보다.

“이게 어찌된 일이오?”

다자이가 말을 걸어왔다.

“그게 무슨 소리요?”

하는 소리에 다자이는 다시 말을 꺼냈다.

“돌연 민의원에 당선되셨더군요.”

웃으면서 다자이는 농담을 꺼냈다. 그는 한국 국적을 갓 취득한 상태였다.

“거 반가운 소리를 하시는구려.”

“참으로 반갑지도 않습디까?”

“민의원이라면 바로 국회의원이란 소리란 말이오?”

“그렇소이다. 하하하하.”

병기는 다자이에게 가끔 존대해주기도 하고 반말을 해대기도 하지만 이 둘은 다정한 친구나 다름이 없다. 다자이의 부친 백군의 사형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다자이에게 병기는 은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용석 또한 그 친구 중에 하나였다. 비록 출신은 다르지만 한 가족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친구가 민의원에 돌연 당선되니 흥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거기에 호범도 자리를 같이 하였다.

“호범이도 이제 소년 되었군.”

하며 다자이는 호범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누라는 이미 바깥을 나간지 오래다. 당분간 며칠 동안 멀리 친정에 머물 참인가 보다. 다자이는 호범을 통해서 자신의 소년 시절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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