走馬圖(주마도)
4. 극선이 (1)
한때 영인이 애첩처럼 부리던 극선이 서울에서 유명한 상류사회 속으로 뛰어들었다. 물론 극선이 다른 동기들과 같이 마중 나간 것은 사실이었으나, 대개는 레코드사에 입사해 가수로 활동한다느니, 영화사에 들어가 영화배우가 된다느니 하는 등 다양한 직종에서 진출하였지만 극선이만은 자그마한 찻집을 운영하게 되었다.
평양서 벌어온 돈을 가지고 차린 이 찻집을 영철은 단골로 주로 찾는다.
“어머나, 장 선생님 오셨어요.”
극선이 다방으로 들어오는 영철에게 아양을 떨 듯이 반겼다.
“응. 아, 이쪽은 내 동무들일세.”
영철이 곁에 있는 두 사람과 같이 구석진 자리에 앉는다. 어준하의 소식도 듣고 싶은 겸 안부를 물어보려는 그의 의중을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어 형은 지금 감옥에서 출옥하려면 2년 반은 걸릴 거랍니다. 몸은 괜찮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는 군요.”
빙그레 웃는 사람이 영철을 위로해주듯 대해주었다.
“그래. 헌데 영화네 서방은.”
영화네 서방이란 서종필을 일컫는다.
“종필 군은 지금 의주에 있다고 합니다. 의주에 지인을 잠시 만나고 온다고.”
“그나마 잡히지 않은 것도 다행이네.”
영철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 연유를 알고 보니 영철이 주도한 일경의 감시로 일망타진으로 해산계를 내었던 것이다. 그 해산계로 말미암아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들 흩어져 새로운 조직을 모색했고, 영철도 이를 알고 있기에 어준하가 석방하는 대로 서울에서 살고 있는 극선의 거처로 은신처를 삼아 새로운 조직을 결성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를 알고 있던 덕분인지 극선이 영철로 하여금 그의 신변이 유출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당분간 자기 거처에 머무를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하여 그에게 신임을 얻었다.
영철의 실질적 살림은 별선이 직접 꾸리기로 서찰을 주고 받으며 다짐받았다.
그러고 나니 영철은 마음 편하게 조직의 재건을 위해 부정기적이지만 어준하와 면회를 마다하지 않고 다짐을 다지고 있었다.
2년이 지나고 어준하가 풀려나자, 영철의 거처방에서 네 사람이 모여앉아 조직의 재건을 위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짜내기 시작했다.
장영철을 위시하여, 방금전 풀려난 어준하, 의주에서 온 서종필, 그리고 그의 지인인 이원익(李元翼)이 있었다. 그 발기인으로 김명석, 안남석, 그리고 채운도(蔡雲道)―채운희의 오빠―와 최병조가 있었다.
아무튼 네 사람은 마르크시즘에 심취한 지식인으로 서울에 있는 사회주의 경향이 있는 조합과 연락을 취하여 그들 단체의 막중한 일을 도맡아 하면서 총결합을 다짐하였다. 뒤이어 추후의 독립투쟁에 나설 것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그 중에 머뭇거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당초에 제명을 한 사람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면서 자신의 심경을 신문지에 기고하였던 것이다. 그러잖아도 프로예맹에 탈퇴한 사람이 신문지에 기고한 것과 비슷한 맥락을 지닌 이 사건으로 인해 김명석이 혀를 끌끌 찼다.
“그런 일이 있을 줄은 진작에 알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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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극선이 (2)
며칠 뒤에 영철에게 찾아온 김명석이 그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지금 정국이 어수선하다는 것을 꼽았다.
사실 만주를 침략한 일본이 기고만장한 나머지 중국으로 침략하는 행보를 보인다는 것과 그 낌새를 눈치 챈 소련이 자기 국가에 있는 조선 사람들을 모두 일본의 스파이라는 이유로 코민테름에 소속된 조선 지식인들을 모두 숙청하고 그 나머지 서민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는 등 혹독한 통치로 일관했다. 중국과 조선, 소련과 조선, 이 두 관계에서 보듯이 단지 일본의 식민지에서 왔다는 이유로 무지막지한 박해를 당해야만 했다.
그러던 것이 일본은 이를 모른다는 듯이 ‘지나’라고 욕을 퍼부어 전쟁놀이를 벌이는 중국대륙을 침략하고자 조선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총알받이를 맡도록 한 것 등 영철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는 연유로 영철의 조직은 철저히 무너지는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민족주의 계열의 인사들은 무지몽매하다는 조선을 일본화하는데 독실한 나머지 조선사람들을 황국신민으로 삼아놓고 말았다. 이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영철은 만주에 있는 형으로 하여금 서찰을 남겼다.
형께 수고롭게도 청이 있어 이리 몇 자 적습니다.
매제(서종필)에게 연락을 받았다시피 우리 조직이 전멸될 수밖에 없는 중대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터에 부탁합니다만 단체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오직 자금을 구하는 것밖에 없을 듯 싶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제 청을 미약하게나마 청합니다.
보잘 것 없는 이 못난 아우가 씁니다. |
정병욱
[문학회지] 제0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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