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병욱
[선안] 사무엘 제07화
사무엘은 판관의 소임을 맡으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 팔레스타인과 암몬, 그 밖에 다른 이민족들에게 시달림을 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지켜내야 했고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을 중재해야 했으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일컫는 땅에서 더부살이처럼 살 수밖에 없는 백성들을 두고 유혹하는 수많은 우상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 와중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살고 있는 땅에 쳐들어와, 이스라엘의 조상 모세가 공들여서 가져온 계약궤를 훔쳐 갔다. 계약궤란 무엇이던가. 이스라엘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몸소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켜야 할 규율과 말씀을 계약한 가장 보배롭고 귀한 성물이 아니던가. 그런 계약궤를 저 이민족들의 손에 뺏겨 버렸다. ‘오, 하느님 아버지시여. 이 불초한 사무엘이 당신께서 손수 만드신 보물을 소홀히 대했으니 이 죄는 달게 받겠나이다.’ 사무엘은 성전 한가운데에서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굳건히 결속시키는 데에 온 정열과 청춘을 바쳤건만 사무엘 자신의 육신은 나이가 듦에 따라 매우 쇠약해졌다. 자신의 정열과 의지는 활활 타오르건만 육신이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이다. 서글프고 서글프다. 사무엘은 자신의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매우 야속할 따름이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통솔하는 사무엘의 주위에서는 사무엘의 노쇠함을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났다. “사무엘 저 사람은 참 융통성 없는 사람일세.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말씀을 백만 년 넘게 들려주면 무얼 하나. 여기저기 이민족들의 눈칫밥을 먹기에 급급한 우리 처지를 생각하지는 못할망정.” “그러게나 말일세. 사무엘 저 영감탱이가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군림할 만큼 했으면 차라리 임금 노릇이라도 할 법하건만. 저 고집불통(固執不通) 사무엘이 어째서 임금의 자리에 오르지 못할꼬.” 지칠 대로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그런 내막을 사무엘은 모르지 않았다. 사무엘은 오직 하느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고자 할 뿐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사무엘을 융통성 없는 줏대 없는 영감탱이로만 알 뿐이었다. 이를 모를 까닭이 없는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으로써 나타나셨다. “저 미련하고 아둔한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너를 가리켜 오히려 퇴물(退物)로 보는구나. 너의 착하고 정직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망정 뒤에서는 우상을 숭배하고나 앉아있고 앞에서는 흉을 보기에 급급하니 내 어찌 이를 지켜보랴.” 하느님의 말씀을 듣던 사무엘은 묵묵히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동안 이스라엘 너희 백성들에게 준 은혜가 얼마나 깊은 줄 아느냐? 은혜를 갚지 못할망정 원수로 대접하니 이 얼마나 괘씸한가. 그렇게 마음을 곱게 먹지 않으니 저 팔레스타인 오랑캐들이 너희들을 우습게 보고 내 말을 적어놓은 궤를 여보라는 듯 훔쳐 가지 않았느냐. 그것을 지켜야 할 막중한 소임을 소홀히 하니 내 더는 지켜보지 않겠다.” 하느님의 말씀은 어느새 노성(怒聲)으로 변했다. 사무엘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내 사무엘 너에게 이르노니 듣거라.” 사무엘은 “말씀하소서.” 하였다. 이에 하느님께선 “너희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수장들을 불러 모아라. 그러고 나서 저 팔레스타인 오랑캐들을 무찔러 내 말이 새겨진 궤를 되찾아 오너라. 젊고 건장하고 씩씩한 장정들을 모두 모아 팔레스타인 오랑캐를 무찔러서 그 궤를 찾아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긴다면 너희 이스라엘의 씨를 모두 오랑캐들에게 한평생 시달리며 살아갈 것이다.” 사무엘에게 엄히 명을 내리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수장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뒤 말하길, “하느님께서 내게 응답하셨습니다. 저 팔레스타인 오랑캐의 손에 있는 계약궤를 찾아오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사무엘은 하느님의 응답을 듣고 난 뒤 먼 훗날을 내다보는 예지(叡智)와 함께 예언(豫言)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이에 나 사무엘은 여기 모여 계신 열두 지파의 수장들에게 명합니다. 각 지파의 가가호호마다 젊고 씩씩한 장정들을 모두 소집하여 군사훈련(軍事訓鍊)을 시키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줄로 압니다.” 열두 지파 수장들은 모두 사무엘의 명에 따르는 마음은 한결같았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들 수장의 말에 의심하여 따르지 않으려고 하였다. 민심이 돌아선 것이다. “만약 계약궤를 되찾아 오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는 필시 우리 이스라엘에게 응분(應分)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팔레스타인 오랑캐를 쳐야 한다고 말씀하신 하느님의 뜻을 듣기는 했으나 열두 지파의 수장들이 진위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사무엘은 비록 나이는 많았으나 노익장(老益壯)이 있기에 건재(健在)하며 눈치가 빨랐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존망이 달린 일입니다. 여기 모인 수장들께서 듣지 않으시다면 이내 몸이 나서서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하나 만나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설득할 각오가 서 있소이다. 그러니 여기 모인 모든 수장께서는 내 이 의지를 받아들여 협조해 주시기를 간곡히 청하는 바이올시다.” 사무엘은 열두 지파의 수장들 하나하나 대하면서 눈물로써 간곡히 청하였다. 사무엘은 그만큼 계약궤를 되찾는데 더욱 간절했다. 계약궤는 이스라엘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사무엘에게 있어서 목숨이자 살아있는 생명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결속하는 동안 팔레스타인 오랑캐의 수장인 다곤은 하느님의 궤를 자기 집에 보관하고 있었다. “하하하……, 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줏단지처럼 모신 물건이 어떻게 생겼는지 내심 기대가 컸는데.” 다곤이 보기에 그 궤는 한낱 하찮은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차라리 저것을 불쏘시개로 만들면 어떨지요.” 부하들 가운데 하나가 다곤에게 제안하자 다곤이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좋다. 저깟 종이 쪼가리 하나 태운다고 벌이야 받겠느냐.”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계약궤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들이 모르는 틈을 타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가가호호를 찾아가 하루빨리 팔레스타인 오랑캐를 무찔러야 한다고 설득하고 다녔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젊고 씩씩한 장정들을 소집하여 군대를 만들어 내어 군사훈련을 시키니 이때 사무엘은 군사훈련 받는 장정들에게 말하길, “저 극악무도(極惡無道)한 팔레스타인 오랑캐들이 우리 생명이자 귀한 자산(資産)인 계약궤를 훔쳐내어 하느님의 말씀을 모독(冒瀆)하고 있소. 하느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길 계약궤를 반드시 찾지 않으면 평생을 더부살이로 살 것이며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영영 잃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마냥 지켜보기만 할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 계약궤는 공동체의 근원이며 하나로 뭉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그 계약궤가 없어진다면 우리 이스라엘은 영영 이름을 떨치기는커녕 오히려 티끌만 한 먼지처럼 사라져갈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저 팔레스타인 오랑캐를 무찔러 계약궤를 되찾아 이스라엘의 용맹함을 보여줍시다!” 사무엘의 말에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사무엘의 뜻에 따라 군대가 편성되고 오천이 넘는 군사들이 일제히 팔레스타인 땅으로 진군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팔레스타인 백성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에 다곤은, ‘흥, 그깟 오합지졸에 진배없는 이스라엘이 쳐들어온 게 무슨 대수인가.’ 하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침실 한구석에 둔 계약궤를 마주하였다. 그리고서 손끝으로 계약궤 한쪽을 넘기려는데 갑자기 다곤이 멈칫하였다. 다곤의 눈은 순식간에 시뻘겋게 핏기가 몰리고 목구멍이 서서히 막혀갔다. 그러더니 입에서 시커먼 피를 토하였다. 피를 다 토해낸 다곤은 그 자리에서 절명(絶命)했다. 자신들의 족장(族長)이 죽자, 팔레스타인 백성들은 일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 이튿날로 이스라엘 군사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쳐들어가 보는 사람 족족 닥치는 대로 쳐 죽였다. 그러고서야 계약궤를 되찾았다. 팔레스타인의 족장 다곤의 죽은 시신을 마주한 이스라엘의 군대는 다곤의 목을 베어다 사무엘에게 바쳤다. 그리고 난 뒤 계약궤도 함께 사무엘에게 바쳤다. 이에 사무엘은 계약궤를 되찾은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에게 축복하고 계약궤를 자신의 성전에 다시 모셨다. 이후 팔레스타인에 사는 모든 사람은 종기가 생기는 역병으로 한동안 고생하였다.
|
http://www.1392.org/bbs?history23:485  
|
| 
|
| 창작 역사소설 최근 댓글 | ||||||||||||||||||||||||||||||||
|
정병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