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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보덕] 연하수아 제14화
5월, 권정의 유배를 풀어주어 조정으로 복직시켰다. 권정은 왕의 사면에 감읍하여 큰절하여 사은(謝恩)하였다. 왕이 강원도관찰사에 명했다. 6월, 연하박연을 직산현감(稷山縣監)에 명하였다. 직산이라는 곳은 충청도에 위치한 곳이다. 7월, 성산태황태후가 세상을 떠났다. 조정에서는 태황태후의 상제(喪祭)를 삼 년을 치르는 것으로 논하였지만, 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일 년을 지내도록 명했다. 8월, 주나라와 그 주변국의 교류를 멈추고 조선국과의 국교만을 채택하도록 명했다. 비록 조선국과는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있지만, 그동안 조선국의 영향력에 있기에 선택한 부득이한 조치였다. 아한 단군 8년 보화 3년 정월에 왕이 황태후의 간청으로 왕비를 맞이했다. 왕비는 백대소의 딸로, 조정에서는 왕비의 존호를 명혜(明惠)로 바쳤다. 2월에 왕비의 아버지 백대소를 충청도관찰사에 명했다. 왕비가 왕에게 간청한 까닭이다. 한편 백대소를 충청도관찰사에 명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연하수아의 아들 연하박연이 직접 충청감영으로 시종들을 거느리어 찾아가 인사하였다. 백대소가 연하박연을 보고서 ‘저자가 대체 왜 나를 찾아왔는가?’ 하며 의심하였다. 지난날 연하수아가 저지른 만행 때문이다. “어찌하여 나를 찾아오셨소?” “소인이 찾은 까닭은 제 여식을 후궁으로 세워주셨으면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할 뿐입니다. 제게는 슬하에 딸 하나와 아들 둘이 있습니다. 그러나 딸아이가 워낙 총명한 데다 아들 둘이 일찍 조졸(早卒)하여 아들처럼 의지하는 처지인지라.” 자신의 여식을 후궁으로 맞이하라는 연하박연의 말에 매우 황당함을 느꼈다. 문제는 자신의 딸을 제치고 박연의 딸이 후궁으로서 덜컥 왕자를 낳는다면 자신의 집이 풍비박산이 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에 박연의 얼굴에 대고 거절하지 않고 알겠다고 하며 정중히 보내도록 했다. 이에 백대소는 계패소에게 은밀히 죽간을 써서 보내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연하박연이 나를 겁박하여 제 딸을 후궁으로 맞이하라고 하였다. 나는 알았다고만 했네만, 만약 정히 후궁으로 간택하라 한다면 자네의 딸들을 후궁으로 삼을 것일세. 그러니 내가 황태후전에 아뢰기 전까지는 자중하고 계시게. 죽간을 쓰고 난 뒤 백대소의 심중에서는 계패소의 딸들을 간택하기로 굳게 정해졌다. 다음날 곧장 백대소는 황태후전에 직접 찾아가 문안을 드린 뒤, “마마, 연하박연이 제 딸을 후궁으로 맞이하라고 겁박하였습니다.” 이에 황태후가 놀라 당혹해하여 얼굴을 붉히더니 “일개 지방관인 주제에 후궁을 간택해달라 운운하다니. 괘씸한지고. 제가 조정으로 돌아와 권세를 누리려고 학수고대(鶴首苦待)한 것이 아니냐!” 하며 격노했다. 이에 황태후는 직접 명을 내려 연하박연을 직산현감의 직에서 박탈하고 대역죄로 다스려 죽이게 하였다. 그 명령은 이렇게 전해졌다. 직산현감 연하박연은 그 아비 연하수아의 극악무도함을 물려받아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고 설쳤다. 매양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나라에 대한 잘못을 뉘우쳐 직산 백성들의 목민에 더해야 함이 옳거늘 감히 자신의 안위에 급급하여 다시 조정에 나아가 권세를 함부로 하고자 하는 욕심을 끝끝내 저버리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큰 수치가 아니랴. 이에 명하노니 연하박연을 사사하고 그 딸 성(姓)을 서인(庶人)으로 삼아라. 갑작스러운 분부에 연하박연이 당황해하였으나, 왕명에 따라 연하박연은 변변히 해명하지 않고 죽임을 당했다. 처음에 사약을 완강히 거부하다가 끝끝내 백대소의 시종들 손으로 사약을 받아 마셨다. 뒤이어 그의 딸 연하성은 명에 따라 서인으로 삼았다. 일설에 의하면 연하성은 평민인 남편과 결혼하였다는 소식 이후로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3월에 죽은 모선주의 딸이자 모삼려의 누이 모단금(毛旦錦)을 조선국왕의 후궁으로 바쳤다. 이때까지 타국 임금의 궁인으로 보내어 권세를 부릴 일이 없었는데, 모삼려가 제 누이가 조선이라는 나라에 바친 것을 빙자하여 권세를 누리려고 하였다. 자신의 시종들을 시켜다가 백성 가운데 돈이 많은 평민이 있으면 자신의 휘하로 받아들여 앞다퉈 벼슬을 청탁하고자 하였으니, 삼려의 집 앞에는 온통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소식은 자연히 황태후의 귀에 들어갔고, 황태후가 이에 격노하여 연하박연의 전례에 따라 모삼려의 직(職)을 박탈하여 그 자리에서 사사하였다. 그 아들 모화안(毛和安)을 멀리 탐라(耽羅)에 유배를 보냈다. 이때 탐라는 비록 본국에 귀속되어 있었지만, 불모지나 다름없는 땅이었다. 4월에 황태후의 명에 따라 계패소의 두 딸을 후궁으로 삼았다. 계패소의 두 딸은 각각 상침(尙寢)과 상공(尙功)으로 삼았다. 5월에 의정부의 대신들이 왕에게 과거를 시행할 것을 주청하자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때 과거에서 엄운의 손자이자 엄충의 아들인 엄신(嚴信)이라는 사람이 급제하였다. 왕이 엄신에게 여절교위(勵節校尉)에 명하도록 했다. 곧이어 연하박연의 죄를 고려하여 그 동생 연하박빙에게 집에서 근신하도록 명하였으나 조정에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반발하였다. 그러나 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6월에 엄남이 세상을 떠났다. 엄남은 나라에 공을 세웠음에도 조정에 발을 들이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어 왔으나 묵묵히 자신을 더욱 낮추는 것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엄남은 지난 과거에 급제한 엄신과는 같은 집안으로 먼 친척이었다. 엄남의 후손들은 강원도 평릉 땅에서 세거하여 살았다. 7월에 명혜왕비의 부친 백대소에게 벽란부원군(碧瀾府院君)으로 삼았다. 8월에 충청도 땅에 늦은 장마가 찾아와 해안 쪽으로 큰 물난리가 났다. 왕은 충청도 관찰사에게 명하여 관민(官民)이 힘을 합하여 수습하도록 명했다. 9월에 궁선주를 직산현감으로 명하고 정동대사를 혁파하였다. 전조의 관제를 혁파한 것이다. 궁선주를 직산현감에 명하여 놓고 왕이 직접 명하기를, “지난달 충청도 해안에 때아닌 물난리로 신음하는 백성들의 동태를 파악해 그들의 위무(慰撫)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이에 궁선주가 부복하여 관직을 받아들이고 임지로 떠났다. 이어 전임 예조참판 현덕구를 중용하여 황해도관찰사에 명하였다. 이때 조선왕 아한이 요하(遼河) 동쪽을 정복하여 순시하여 순수관경비(巡狩觀境碑)를 세웠는데, 순수관경비에다 역대 제왕의 업적들과 명호를 적도록 신민들에게 분부하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때의 일이 아한 단군 재위 2년에 일어났다고 기록하였다. 10월에 안기진을 조선국의 사절단으로 보내어, 조선왕 아한을 알현하고 오도록 명했다. 조선왕 아한이 안기진 일행을 환영하여 조선국과의 조공 관계를 폐하고 수교(修交) 관계로 바꿀 것을 청하였다. 안기진이 돌아와 이를 왕에게 아뢰자, 왕이 이를 수락하여 조선국과 본국이 서로 수교와 화친(和親)으로 관계를 이어가게 되었다. 덕분에 변방의 문제에서 더욱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다. 11월, 황태후 이하 왕비 등 내명부들이 직접 혜민사에 들러 예배드리기를 간청하자 왕이 이를 수락했다. 이후 내명부들이 직접 혜민사에 찾아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다. 12월, 안기진을 평안도관찰사에 명하였다. 아한 단군 9년 보화 4년 정월에 전임 영의정 옥강을 대광보국숭록대부에 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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