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안] 사무엘 제12화

"사울이 돌아왔다!"

이곳 에프라임 사람들의 신망을 받은 사울이라는 청년의 이름이 동네에 메아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사울의 용맹함이 이곳 고을에 쟁쟁하게 들릴 정도라면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군림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그제야 사무엘은 사울의 귀환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였다. 이때였다. 사무엘이 머무는 집에 웬 노인 한 사람이 찾아왔다. 나이는 거의 사무엘 또래쯤 되어 보인다.

'무슨 일로 찾아왔을까.'

사무엘은 노인의 뒷모습을 보며 은근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고, 어르신. 어쩐 일로 오셨나요?"

이 집 아낙의 물음에 노인은

"우리 집에 나귀 한두 마리 키운 게 있었는데 아 그것들이 글쎄 울타리를 벗어나 줄행랑을 치듯 달아났지 뭐요."

그때 사무엘의 귀에서는 무언지 알 수 없게 이런 말이 들렸다.

'사무엘아, 나귀 암수 한 쌍은 에프라임 아무개의 집에 있다.'

하며 일러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나.'

갑작스러운 말에 사무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무엘아, 나귀 한 쌍이 에프라임 아무개의 집에 있단 말이다.'

연이어 사무엘의 귀에서 '에프라임 아무개의 집'에 암수 나귀 한 쌍이 있다는 말이 들렸다. 사무엘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 아낙네에게 잠깐 바깥에 외출하고 온다고 이른 뒤 귓가에 들린 그 '에프라임 아무개의 집'을 찾아간다. 지나가는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가며 그 집을 찾아가 보니 생각보다 허름한, 찌그러져 손가락 하나로만 건드려도 금세 무너질 것 같은 초가집이 눈에 띄었다. 그 집 근처에 다다르고 보니 집 주위로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 있었다. 사무엘도 그 무리에 본의 아니게 끼게 되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영문이래. 온 동네를 샅샅이 뒤져도 찾을 수 없을 듯 싶더니 이곳에 얌전히 있을 줄이야."

저마다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사무엘이 나귀 두 마리의 모습을 바라보고자 조심스레 다가가 보았다. 다가가 보니 두 마리 모두 양쪽 콧구멍에 구멍을 뚫고 밧줄 같은 것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는데 거의 손때를 많이 타서 삭은 모양이다. 끊어진 흔적이 역력했다. 그제야 사무엘은 자신의 귓전에서 맴도는 말의 진위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이에 사무엘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마을에 젊은 장정들을 불러다가 두 마리의 나귀가 뛰쳐나가지 않도록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해 놓고 자신이 묵고 있는 집으로 뛰어갔다. 그곳에 다다르니 노인은 안절부절 못하며 울고 있었고 아낙네는 그런 노인을 위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무엘은 안심한 듯 깊은 숨을 들이내쉬고

"어르신, 혹시 나귀 두 마리를 잃으셨소?"

하며 조심스럽게 노인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노인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 그걸 어찌 아셨소?"

사무엘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산보를 하는 동안에 보니까 웬 나귀 두 마리가 얌전히 있는 것을 보았소. 그것도 여기서 스무 걸음이 넘는 허름한 집 앞에서 얌전히 있었소."

사무엘의 대답에 노인이 짚이는 것이 있었는지

"혹 두 나귀의 코가 모두 밧줄을 고리처럼 달고 다니지 않았소?"

하고 물어보는데 사무엘이 깜짝 놀라며

"그렇소."

하며 대답하자 노인네는 별안간 무릎을 꿇으며

"아이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며 큰절을 한다. 사무엘은 노인네를 부축하며 나귀들이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 나귀들은 여전히 얌전히 앉아 있었다. 사무엘은 노인을 앞장 세우고 두 나귀를 잘 다독여 노인의 집까지 바라다 주었다.노인의 집은 그 근방에서 오십 걸음 되는 곳에 위치했다. 흙집이었고 널따란 마당에 양 열 마리와 나귀 열두 마리가 허술한 울타리가 쳐진 곳에서 풀때기를 먹어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도와주시다니 매우 감사합니다."

노인이 사무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별 말씀을. 하느님께서 어르신의 보살핌을 잊지 않고 계신 덕분인 줄 압니다."

사무엘이 겸양을 드리는데 갑자기 젊은 남자가 다른 젊은 남자 하나와 같이 나타나서

"아버지! 어디 계셨어요?"

하며 걱정스런 말씨로 노인을 찾는 것이었다.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한 나귀들을 잃을까 봐서 이 동리 저 동리를 헤매다 그랬다."

그러면서 사무엘에게 눈길을 돌린 뒤

"이분이 우리 나귀들을 찾아주신 은인이시다. 정중히 인사 드려라."

하고 노인은 젊은 남자에게 인사를 시킨다. 사무엘을 바라본 젊은 남자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공연히 폐를 끼쳤습니다, 어르신."

굵직한 목소리로 인사말을 꺼낸다. 사무엘의 눈이 그 남자를 쳐다보는데 아낙네의 말처럼 용맹하고 늠름했으며 오랫동안 양치기를 한 사람 답지 않게 몸집이 단단해 보였고 우람했다. 그리고 팔뚝이며 뱃살이며 군더더기 없이 근육이 두드러졌다. 맨손을 휘두르면 웬만한 남정네들이 다 쓰러질 것 같이 두툼했으며, 골격이 매우 단단해 보였다. 사무엘은 그 집에서 나온 뒤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는 아낙네가 있었다.

"판관 어르신, 어디 갔다가 오시나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사무엘은 나귀 두 마리를 사로잡아 제 주인의 곁으로 돌려 보냈다고 하자 아낙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그게 정말이에요?"

믿기지 않은 눈치다. 이에 사무엘은 한참 동안 부인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부인의 모습이 생소해서 일까.

"저 어르신. 그 나귀들의 주인은 다름이 아니라 제가 말씀드린 바로 그 사울이에요."

그러자 사무엘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에프라임 아무개의 집'이라고 말한 존재가 바로 하느님의 천사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고 사울이라는 청년의 나귀들을 손수 데려다 준 것 또한 하느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