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안] 사무엘 제11화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그대는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겠소?"

소년은 순진무구한 웃음을 띠고 말했다.

"저는 아버지를 따라 양치기를 하고 있죠."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에프라임 산맥은 본래 양치기를 주업으로 삼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곳이었다. 덕분에 양들을 키우기 적합한 환경이 주어졌고, 양의 젖뿐만 아니라 양털을 손수 마련하여 양털로 옷감을 만들어 팔기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오, 그렇구먼."

소년의 뒤를 따라가 보니 집은 흰 벽돌에 거의 두 층 높이로 되어 있었다. 소년이 먼저 앞서서

"어머니, 아버지 나와 보세요."

하고 소리친다.

"밖에 손님 한 분 뫼셔 왔어요."

그러자 소년의 부모인 듯 내외가 어두운 밖을 내다보고는

"이게 웬 일이래."

하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손님이라니?"

아버지인 듯 남자가 소년에게 따지듯 물어본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신데 마냥 무시하고 지나치기에 무엇해서요."

그 말을 듣던 사무엘은 소년의 순진무구함에 감정이 동함을 느낀다.

"아이고 참. 어디 한 번 보자."

소년의 말을 듣고 굳이 믿어지지 않은 듯 소년의 뒤를 따라 사무엘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에그머니나."

소년의 어머니가 사무엘의 몰골을 보고 놀란다. 그도 그럴 게 오랫동안 떠돌이 생활을 한 사무엘의 몰골이 말이 아니게 핼쑥해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거지꼴이 되어 있던 탓이다. 이를 본 뒤 소년의 아버지가

"누추하지만 저희 집으로 드시지요."

한다. 이내 소년의 집에 들어가 보니 강아지 한 마리가 초췌한 나그네를 보고 혀를 내밀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대어 반겨준다. 그리고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의 형에게

"어르신 한 분 오셨다. 목욕탕에 가서 따뜻하게 물을 데워 놓아라."

하고 당부했다. 소년의 형은 군소리 않고 서둘러 목욕탕에 따뜻하게 물을 데워 놓는다. 소년의 어머니는 몸종 하나를 불러다가 나그네가 묵을 방을 마련해 놓고 같이 이부자리를 놓게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몸종과 함께 먹을거리를 마련하였다. 사무엘이 먼저 목욕을 하고 나자, 소년의 아버지가 손수 옷을 마련하여 사무엘에게 전달하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르신에게 옷이 맞을 지 모르겠습니다."

하며 정중히 대하는 것이다. 사무엘은 그 옷을 감사하게 받으며 입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마련된 방에 들어서고 나니,고기 반찬이며 나물들, 그리고 국거리와 빵들을 한 상에 가득 차려 놓아 사무엘에게 정중하게 대접했다. 사무엘은 이렇게 푸짐한 상을 받게 되어 몸 둘 바를 모른다고 하자

"보잘것없는 밥상입니다. 입에 맞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소년의 부모 내외가 정중하게 밥상을 대접하였다. 사무엘은 오랜만의 진수성찬에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나서 소년의 부모 내외를 은밀히 불러들여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내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이고, 판관 어르신을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하고 무릎을 꿇은 게 아닌가. 사무엘은 그런 내외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는

"나 같은 거지를 거둬준 것 만으로도 하느님께서는 매우 고마워하실 게요."

하고 안심하라고 토닥여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기에 혹시 용맹하고 담대한 사람이 있소?"

하며 내외에게 물어본다. 이때 부인이

"네, 있기는 합죠."

하며 대답했다. 그러자 사무엘은 부인에게 물어보았다.

"그가 누구요?"

"아, 그 사람은 사울이라는 청년인데 그 청년의 집안이 매우 가난하다고 들었어요. 그럴 만도 한 게 아버지가 키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슬하에 자식 복이 없어서 인지 자식을 아들만 다섯이나 두었지만 모두 세상을 떠나고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들이라 금지옥엽으로 키웠다지 뭐예요. 그런데 그 집안에 가솔이 없는 입장이고 보면 사울 그 청년은 참 불쌍하게 되었지요. 그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양치기 노릇을 하며 자라다시피 했죠. 어디 그 뿐인가요. 얼마 전에 가나안족 한 패가 나타나서 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뻔한 일이 있었는데 사울 그 청년이 별안간 젊고 힘센 몇몇 청년들과 같이 나타나서 그 가나안족 패거리를 흠씬 두들겨 패서 마을을 내쫓은 일이 있었죠. 그러고 나서 사울이 그 청년을 칭송하는 소리가 한동안 들렸지요."

부인의 입담을 사무엘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사울 그 청년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용맹할 뿐만 아니라, 이웃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묵묵히 몸소 나서서 도와주기도 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마치 내 일처럼 잘 도와주고 해서 인망이 두텁지요. 그리고 부모 양친을 극진히 모시는 착한 효자이기도 하고요."

생각보다 지혜가 깊은 부인이었다. 이토록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부인이 흔치 않아서 인지 모르지만 사무엘은 부인의 말을 진심 어리게 경청하고 있었다. 부인이 입담을 늘어놓는 내내 남편은 맞장구치기도 하였다. 이때 사무엘이 내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서

"저 실례가 안된다면 사울이라는 청년을 만날 때까지 이곳에 머무를 수 없겠소?"

내외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그러자

"아이고, 이르다 뿐인가요. 판관 어르신이 저희 집에 계셔주는 것 만으로 영광이지요."

남편이 흔쾌히 승낙하였다. 부인도

"저희 집이 어르신의 집이나 다름 없습니다."

덩달아 사무엘의 물음에 순순히 응했다. 이후 사무엘은 본의 아니게 사울이라는 청년을 만나기 위해 에프라임 땅에 더 머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