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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산성, 화려한 도성
삼국간의 전쟁은 이렇게 성을 빼앗고 뺏기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성곽은 무엇보다도 유사시에 공격을 방어하는 시설이다. 그러나 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단순히 방어 시설 하나를 더 차지한다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 성 주변에 흩어져 있는 촌락의 주민, 그리고 그들이 경작하는 토지를 아울러 얻는 것이었다. 따라서 삼국은 성곽을 둘러싼 공방전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삼국은 국경의 요충지 곳곳에 성곽을 쌓았다. 그 성곽은 단순한 방어 시설에 그치지 않고 지방 통치의 중심지 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삼국시대에는 많은 성곽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1천여 개가 넘는 성곽의 상당수가 이 때 쌓은 것들이다. 이는 삼국이 한반도 내에서 각축을 벌인 결과이다. 이런 상황은 한반도에서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만주를 차지하고 있던 고구려는 중국 세력과 대결하면서 요동 벌판에 크고 작은 수많은 성을 쌓았다. 이 성들은 드넓은 지역에 별처럼 흩어져 있었는데, 앞뒤로 서로 호응하며 내부적으로 지방 통치의 거점 구실을 하면서 대외적인 방어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하나의 예로 470년(자비마립간 13), 신라는 충북 보은 지역에 거대한 석성을 쌓았다. 이곳은 신라가 상주에서 소백산맥을 넘어 서북쪽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였고, 청주와 괴산 그리고 옥천으로 향하는 교통로가 결집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따라서 신라는 이 곳을 발판으로 백제 땅을 넘볼 수도 있었다. 성이 적군에게 함락되면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끌려가서 노비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런 만큼 성을 잘 지켜내는 것은 바로 자신의 목숨이 걸린 중대한 문제였다. 그리고 후방에서는 방어태세를 갖추고 또 응원군을 보낼 여유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을 잘 지키는 것에 못지 않게 성을 튼튼하게 쌓는 일도 중요했다. 성 하나를 쌓는 것은 한 고을의 일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계획되고 실행되었다. 때문에 엄격히 감독하였다. 한편 성벽에다 직접 '○보○척의 공사구간의 책임자는 누구(또는 어느 지역)'라는 문구를 새겨 넣기도 하였다. 고구려의 평양성이나 통일신라 때의 경주 관문성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책임 고사제의 전통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서, 지금도 해미읍성이나 고창음성의 성벽에서는 공사담당지역이 '공주(公州)'나 '충주(忠州)' 등의 글자가 새겨진 성돌들을 찾아볼 수 있다. 방어시설이 나타난는 것은 바로 청동기 무렵이다. 나지막한 구릉 위에 움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서 마을이 형성되면, 그 둘레에는 나무 울타리【木柵】를 둘러치게 된다. 그리고 그 바깥네는 기리게 튼 도랑【環】을 파 놓는다. 초기의 방어 시설은 이러한 모습이었다. 전쟁이 잦아지면서 크고 작은 권력자들이 차츰 통합되어 국가의 성립될 무렵에는 방어 시설이 더욱 발전하였다. 이때 절구질하듯이 다져 쌓아서 토성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서울 강동구의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 경주 월성 등은 그 대표적인 유적이다.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서 성곽은 웅장한 석성(石城)으로 발전하였다.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진 이러한 석성은, 벽돌로 쌓은 중국 성곽과 구별되는 우리나라 성곽의 특징이기도 하다. 성곽 중에서도 왕이 사는 궁궐과 종묘, 사직이 있는 곳을 둘러싼 성곽을 좁은 의미로 도성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삼국시대 도성의 중심에는 왕궁이 자리하고 있고, 그 주위에는 관청·사찰·민가 등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철기문화가 보급되고 생산력이 발전하고 소국들이 점차 통합되면서 최고 권력자인 왕의 주거시설은 왕권의 강화와 더불어 궁궐로 발전하게 되었다. 도성 안의 시가지는 현대식 도시계획을 무색케 할 정도로 바둑판식으로 정연하게 구획되어 있었다. 도성은 왕족과 귀족 등 최고의 지배층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리고 왕실의 지원을 받아 세워진 사찰들이 도성 내 곳곳에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도성은 정치, 종교, 문화 등 모든 것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전국의 모든 물자가 이 곳으로 모여들면서 화려한 소비도시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었다. 화려했던 신라 도성의 모습은 헌강왕 일의 일화에 잘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화려함도 잠시뿐, 신라는 곧 전국적인 농민봉기에 휩싸이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여기서 그 호사스러운 회형의 이면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신라는 통일 이후 중앙 정부조직 및 지방제도를 정비하고 1세기 가량 안정을 누렸으나, 중앙 귀족들 사이에 격렬한 왕위 쟁탈전이 일어나면서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골품제 또한 이를 불가능케 하였다. 결국 불안정한 정국으로 인해 지방 통치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했고, 귀족과 사원의 대토지 소유가 확대되면서 농민들은 가중된 수탈에 무방비 상태였다. 여기에 연이은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농민들의 몰락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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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