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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보덕] 시대(時代) 05 제07화
인수대비전에 상감과 중궁이 함께 원자를 데리고 문안드리던 어느 날이었다. 중궁이 보는 앞에서 원자를 어르고 하며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헌데 볼이 헬쑥한 것이 야위어 보이는구나. 중궁에게 물어본다. 젖이 부족하냐? 아닙니다. 젖이 부족하면 봉보부인(奉保夫人)에게 젖을 물립니다. 그래야지, 갓난아이는 어미 품에서 자라야 무병장수(無病長壽)하는 법이다. 그러더니 권숙의(權淑儀)를 불러들인다. 그러면서 말하길, 금지옥엽(金枝玉葉) 같은 원자이니 중전이 잠시도 한 눈 팔지 않고 원자를 거두어야지요. 그래서 내가 권숙의에게 내명부를 단속하라고 명했습니다. 중전이 놀라며 대비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원자가 제손으로 앞가림을 할 때까지는 아가, 번거로운 일은 권숙의에게 맡기고 원자를 양육하는 일에 전념하도록 해라. 만에 하나 원자에게 변이라도 생기면 어찌하겠니? 알아듣겠느냐, 아가? 대비전에서 훈계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궁이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밖을 나서자마자 효손이 되어야 한다며 원자에게도 훈계하니 중궁으로의 체통은 바닥을 향했다. ‘방자한 것.’ 상감이 보다못해 곁에서 중궁이 고뿔에 걸린 탓으로 돌리려 했으나 마냥 두고 볼 인수대비가 아니었다. 권숙의는 동궁 시절에 도원군, 그러니까 의경세자의 측실로 입궐한 사람이었다. 보다못한 인수대비가 중궁의 행실에 지쳐 직접 내명부를 단속하라며 불러들인 것인데 시할머니인 대왕대비에게까지 중궁이 고자질하였다. 그러나 시어머니를 흉보는 것이 무엇인고?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이라고 하지 않느냐? 사가의 시집살이도 그러하거늘 대궐의 집안 살림이라고 다르겠느냐? 돌아온 건 대왕대비의 꾸지람뿐이었다. ‘중전의 처신이 여염집 아낙보다 못하다니.’ 대왕대비의 근심이 드리워졌다. 사방에서 중궁이 고립을 자초하고 있었다. 다른 후궁들의 승은을 입을까 저어하였다. 그날 밤 상감과 언쟁을 벌였다. ‘매정한 양반.’ 원자를 껴안았다. 상감이 돌아간 뒤다. ‘어미는 모진 곤욕을 치렀는데, 어미가 참고 살아야죠. 아기씨가 보위에 오르시는 그날까지 참고 살 겁니다.’ 인수대비는 야심한 밤을 틈타 상감에게 찾아갔다. 그러고는 상감에게 대놓고 후궁들은 권숙의에게 단속하게 하시고 중전을 어미 슬하에 두어야겠습니다. 상감에게 지켜보다 못해 간청하여 보았지만 거절하였다. 그러자 인수대비가 야밤에 대궐 밖에 나가 한치형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며느리의 등쌀에 못 이겨 나가게 되자 중궁의 방자함이 하늘을 찔렀다. 중궁은 사가의 어미로부터 비상(砒霜)을 은밀히 들였다. 용종(龍種)을 잉태한 정귀인을 죽이기 위함이다. 갑작스러운 대비전의 소식에 조정의 원로들이 치형의 집으로 찾아가니 만나는 사람마다 중궁을 폐하는 것이 어떠냐며 하소연을 늘여놓았다. 나는 부덕(不德)한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천하디 천한 며느리를 얻었어요. 폐하려면 지금 버려야죠. 부덕한 어미는 없는 것이 낫죠. 임금도 폐한 적이 있거늘, 국모(國母)라서 폐하지 않을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원로들은 사대부의 아녀자가 악처(惡妻)라도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릴 수 없는 법입니다. 하며 중궁의 폐출에 반대하였다. 이때 인수대비는 코웃음을 쳤다. 악처라도 조강지처를 버릴 수 없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어본 바 없기 때문이다. 인수대비는 치형의 집에서 이틀 동안 기거하였다. 어느새 인수대비의 얼굴은 주름지고 머리에는 반백(半白)이 서렸다. 치형에게 넋두리를 늘였다. 급기야 중궁이 자식과의 관계를 이간질시킨다고 생각했다. 마마, 서운하십니까? 치형이 측은해하는 말씨로 대비에게 묻는다. 서운하다니요. 나는 자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내 아드님이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되신 것이 아닙니까. 설마하니 전하께서 마마를 거역하시겠습니까? 더는 어미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계시니 임금다운 임금이 되신 거지요. 이제 환궁(還宮)을 하셔야죠. 상감을 편히 해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럴 수야 없지요. 중궁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영리한 季執입니다. 제법 정치하겠다고 설치고 있으니. 인수대비의 웃음 속에 깊은 속내가 감춰졌다. 내 아들을 뺏어갔어요. 그것도 부족해서 내 자리를 뺏어가려 합니다. 방자하고 고얀 季執이 아닙니까. 내가 대궐 안에 여우 色基를 불러들였어요. 인수대비는 다시 대궐로 돌아왔다. ‘좋습니다. 주상, 어미가 허리를 굽히지요.’ 중궁의 기세는 어느덧 친잠례(親蠶禮)를 치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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