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문관/봉교] 임오변척소(壬午辨斥疏)

예조 예문관 봉교 신 최사강(禮曹 藝文館 奉敎 臣 崔士康)은 두렵고 무거움에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주상 전하께 상소(上疏)를 올립니다.

신이 일찍이 듣사온즉 고려조(高麗朝)의 권섬(權暹)이라는 인물은 명종조(明宗朝)의 흔적신(昕迪臣)이란 사람의 후손으로서 본성(本姓)은 흔(昕)이었으나 당시의 왕인 충목왕(忠穆王)의 이름이 흔(昕)이 었기 때문에 그 성이 "국휘(國諱)를 범한다." 하여 그의 성을 외가성(外家姓)인 권씨(權氏)로 고치게 하였다 하옵니다.

또한 조선 중종대왕(朝鮮 中宗大王)때의 문신인 권벌은 연산군(燕山君)때 문과(文科)에 책문(策文)을 써서 급제하였으나 그 답안에 당대(當代)의 내시인 김처선(內侍 金處善)의「처」자가 들어가 있다하여 급제가 취소된 적이 있었다고 하옵니다. 이는 연산군이 바른말 잘하는 김처선을 미워하여 그를 죽이며 차후에는 어떠한 글에도 그의 이름자인「처선」을 쓰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옵고 다시 되돌아 보자면 전하께오서는 일찍이 지난 경진년(庚辰年)에 승정원(承政院)을 통하여 전하의 휘(諱)와 탄신일(誕辰日)에 대하여 비명(批命)하옵시며 앞으로 각종 문서에서는 대자(代字), 개자(改字), 결자(缺字)등의 방법으로 전하의 휘를 피하여 작성하게 하셨사옵니다.

신은 다시금 의관을 바로잡고 전하께 아뢰옵니다.

이제 신이 비로소 사조에 들어와 보니 지난밤 현직 관리들을 대상으로 하여 시행된 전반기 중시의 급제자(及第者)가 모두 발표되었나이다. 신을 포함하여 문무 양과(文武 兩科)에 걸쳐 12명 정도의 급제자들이 저마다의 답안을 올려 급제되었나이다. 하오나 신은 전하께 삼가 아뢰오니 무과 병과(武科 丙科) 급제자인 경기도 적순부위 서양갑(京畿道 迪順副尉 徐羊甲)의 급제는 당장 취소하심이 참으로 옳다고 여겨집니다.

경기도 적순부위 서양갑은 답안의 세 번째 단, 여섯 번째 줄에서 월남파병(越南派兵)에 대하여 민국(民國)의 박정희 전 대통령(朴正熙 前 大統領)의 공실(功失)을 논하며 전하께오서 경진년에 승정원을 통하여 비명하신 전하의 휘를 두 번이나 거듭 범하였나이다. 하니 이는 당연히 전하에 대한 불충으로 다스려야 하지 않겠나이까.

실로 전하께오서는 지난해 <문체를 바르게 하는 것에 관한 교서>에서 이르시길, "과거 답안 가운데 만일 한 글자라도 통신체를 띄는 것이 있다면 비록 그 글 전체가 주옥(珠玉:잘된 글)과 같을지라도 물리쳐 하점(下點)으로 처리하고 이어 그 자의 이름을 발표하여 통신체가 극복되지 않는 한 급제나 입격을 시키지 말이야 한다. 또 공문서에 통신체를 사용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파직시켜 개선될 때까지 추호도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 이 교서는 각급 교육기관의 교수나 훈장, 유생들에게도 우선 적용되도록 한다."라고 하셨나이다. 물론 신은 전하의 휘를 통신체와 같게 여기지 않사옵고, 같게 볼 수도 없사옵니다.

하오나 전하의 휘를 범한 것은 명백히 사조의 법도(法度)에 어긋난 것이요, 통신체를 사용한 것 또한 사조의 법도에 어긋난 것입니다. 하여 전하의 휘를 범한 것이 사조의 법도에 어긋난 것이라면 이는 응당 불충의 죄로써 논해야 하며 통신체를 사용하는 것이 사조의 법도에 어긋난 것이라면 이 또한 불충의 죄로써 논해야 하지 않겠나이까. 하여 서양갑이 과거의 답안에서 전하의 휘를 범한 것의 상벌(賞罰) 또한 통신체를 사용하였을 때와 같이 여겨야 할 것이옵니다.

하고 신이 예로써 설명한 권벌의 전례(典例)에서 보듯 왕명으로 금지된 글자를 사용하여 과거에서 급제를 하고도 그것이 다시 번복되어 급제가 취소된 경우는 실지로도 있었사옵니다.

신, 예문관 봉교 최사강은 오로지 성충(誠忠)으로써 결단하여 전하께 삼가 아뢰옵니다. 금번 중시무과에서 전하의 휘를 범하고서도 급제된 경기도 적순부위 서양갑의 입격(入格)을 취소하시옵소서. 하옵고 시관(試官)된 신분으로서 이를 적발해내지 못한 금번 중시의 무과시관(武科試官)들인 병조정랑 신용호(兵曹正郞 辛庸浩), 의흥위 사정 신대웅(義興衛 司正 申大雄), 군기시 봉사 신성룡(軍器寺 奉事 申星龍) 또한 불충과 업무 소홀의 죄를 물어 엄중히 벌하시옵소서.

신은 진실로 전하께 바라옵건대 전하께오서는 부디 천하의 법도가 바로 서고 무너짐의 이득(利得)을 올바로 깨우치시옵소서. 하시어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사조가 그 기둥을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주시옵소서. 하되 전하께오서 진실로 신의 말에 공동(共同)하오시어 법도가 바로 서고 사조가 바로 나가기를 바라신다면 금번 중시무과에서 전하의 휘를 범하고도 급제된 서양갑과 시관된 신분으로 이를 적발해내지 못한 시관진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 벌하시옵소서.

신은 진심으로 전하께오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어 앞으로 사조가 그 기강을 바로잡고 올바로 나아가기를 바라옵나이다.


開國 611年 6月 30日
藝文館 奉敎 崔士康 謹上

국왕 () 07/01[02:05]
전사맹 서양갑이 시권(試券:과거 답안)에서 언급한 '그 근거를 더욱 탄탄히 한다.'는 문장에서 '탄탄'이라는 단어는 '평평하고 넓다'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라, '견고하고 굳다'의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약 후자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라면 이는 곧 '튼튼하다'라는 단어와 비교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과인이 알기로, '튼튼하다'의 작은 의미인 '탄탄하다'라는 단어는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이므로 실제로 그러하다면 상소에서 지적한 것처럼 휘(諱)를 범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관하여는 더욱 상세히 고찰할 필요를 느끼니, 예조에서는 시권에서 언급된 단어의 본래 용도와 단어 '튼튼하다'의 작은말인 '탄탄하다'의 한자어 여부 등을 살펴 계본으로 아뢸 것이다. 관련된 처분은 그 이후에 내리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