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의정부서사제 시행에 관하여

과인이 조정 백관(百官:모든 관리)들에게 장차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이미 인심이 조정을 떠났고 내외의 명분(名分)이 사라진 지 오래이니, 번거롭게 좋은 말로 치장한다고 한들 믿고 의지할 백성이 없을 것이다. 옛말에 '대저 인정(人情)은 잘 다스려진 데 익숙해지면 위태로움을 잊게 되고, 기쁨을 오래 누리면 경외심이 해이해지게 된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상황이 바로 그와 같다.

과인이 그간 올려진 계본과 계목, 장계, 상소를 세밀하게 살피지 못하였고, 앞으로도 과인이 국정을 처결하는 것과 관련하여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 확고하게 장담하여 공포하기 어려우니, 사간원의 간언에 따라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를 시행하는 것으로 전교를 그치는 바이다.

금일자로 현재 맡은 바 직임이 없는 전병조정랑 이휘를 의정부사인으로 삼는다. 의정부 수장은 경력과 학식, 품성 등을 살펴 의정부를 구성할 1, 2인 가량의 관원을 추천하도록 하라.

육조에서는 각각의 사무를 먼저 의정부에 보고한 후, 의정부 수장 이하 관원들과 상의하고 협조한 다음에 의견을 정해 계본 또는 계목을 올리거나 알아서 시행한다. 다만 이조와 병조에서 실시하는 인사, 평정 등의 업무와 병조에서 용병(用兵)하는 일, 홍문관과 성균관에서 통상적으로 행하는 사무, 그리고 형조에서 판결하는 것 가운데 형옥(刑獄) 6개월 이하에 해당하는 사건 등은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본래 조(曹)에서 직접 처결하도록 한다.

지금까지 각관청에서 보고된 일 가운데 시급을 요하는 일과 육조의 수장을 임면하는 일, 사간원을 일시 폐(閉:닫음)하여 관원을 융통하고 인사 행정에 신속을 기하는 일, 공신도감의 업무를 본격 재개하는 일, 과거를 시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대책, 내외 관원들을 포상하고 징계하고 탄핵하는 등의 일에 관하여는 묘당(廟堂:의정부)에서 정해 올리는 계책에 의거하도록 하겠다. 의정부와 삼사에서는 각종 사무에 관하여 요점을 정해 계본하도록 하라.

차차 각 관청 사이의 권한이나 업무 범위한 등을 조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니, 우선 시행하여 그 대략의 체계가 세워질 수 있도록 하라. 여러 신하들이 하나같이 마음을 가다듬어 지난날에 하던 것처럼 나라를 이어나갈 계책에 힘쓸 것이다.


- 개국611년 3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