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음] 작금의 조정 현실을 말한다

십여 일이 지나도록 과인이 정전(正殿)에 나아가 정무를 보지 아니 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한마디 간언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음은 무엇 때문인가. 육조는 고사하고 의정부나 삼사언관들조차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참으로 그 의중을 알지 못하겠다. 계본과 계사를 올린 연후에 단지 전교나 비답이 내려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 나서서 직간(直諫)하는 신하가 전무하니, 작금의 조정 현실을 알만 하다.

경상도와 황해도의 여러 인재들에게 교지를 내린 것 역시 십여 일이 지났는데, 이들 가운데 2인에게서 반응이 없음은 무슨 연유인가. 조정의 관리들은 이를 알고도 방관하는 것인가. 한쪽에서는 어명의 지엄함을 말하면서 다른 한쪽에서 그 지엄한 어명이 무너지는 결과를 보이고 있는데, 이를 애써 외면함은 무엇 때문인가. 정실(情實)이나 인정(人情) 때문인가. 공사를 구분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바로 사정(私情)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미 내린 어명을 고쳐 시행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다시 재가(裁可)를 얻어야 할 것인데, 지금 조정 내에서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각조 관원들끼리 서로 이문(移文:조회)하고 타협하는 선에서 알아서 처결할 수 있는 사안인가. 덕(德)으로 다스린다고 하는 것은 법령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조석(朝夕)간으로 변하는 것이 인심(人心)이라 하나, 개별 사안들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것이 크게 차이를 보일 수는 없는 일이다.

군왕이 정무를 멀리 하는데도 나서서 간하는 신하가 없고, 각아문의 업무 인계인수는 규례대로 지켜지지 않으며, 공문의 표어는 아직까지 그대로이다. 도감을 비롯하여 성균관이나 각종 논의, 제도는 그 실시가 한없이 지체되고 있으며, 때를 정해 시행한다 하여도 참여 수준은 매번 같다. 관리들의 직함 사용을 제한하는 교서나 대전(大典)의 문서양식조를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전교, 백성들에게 알려야 할 공문 가운데 시급함을 요하지 않는 문서들을 단 하나의 문서에 정리하여 게시할 것을 명한 전교 등도 이미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이다.

각도 감영에서 장계(狀啓)나 계사(啓辭)가 올리지 않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민국에서는 처벌하고 논죄할 것들이 지척(咫尺)이라 하는데, 이를 찾아 처결하지 않으려 함은 각도 지방관이나 예하 예방, 형방 등의 관속들이 아직까지 그 소임을 알지 못해서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인가. 관찰사들은 해당 도에 개인적인 문서 하나를 더하는 것으로, 백성들에게 널리 알릴 필요가 없는 공문을 게시하여 역시 문서 하나를 더하는 것으로 그 막중 소임을 대신하려 하는가.

초야에 은거하고자 하는 신하들이 늘어나 조정 여러 관아에 관리들을 채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는데, 수차례 독려에도 불구하고 참상관 및 각도 관찰사들이 천거(薦擧)를 활용하지도 않으면서, 별시(別試)는 그 이름이 별시라 하며 매우 특별한 일이 아니면 시행할 수 없다고들 하니, 장차 조정의 상황이 어찌 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분기마다 시행하는 대과 급제자들만으로 관리를 원활하게 충원하고 수급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지금 조정의 신하들이라면 대과가 끝난 후에 호패를 발급받았다고 가정할 경우에, 3개월이나 되는 시간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겠는가.

역시 과인에게 덕이 없음(不德)이 이러한 조정 현실을 낳은 가장 큰 연유인가.


- 개국610년 4월 초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