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글] 삼국이 불교를 받아들인 까닭은?

날짜: 2000년 8월 5일 토요일 PM 4:28

우리나라 절에 가 보면 절의 중심부인 곳에 대웅전(大雄殿)이 들어서 있습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곳이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곳이면 석가전(釋迦殿)이라고 불러야지 왜 '큰 남자의 전당' 이라는 뜻인 '대웅전(大雄殿)'이라고 부를까요? 게다가 베트남이나 중국, 일본의 절에는 대웅전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그냥 불당(佛堂)이나 법당(法堂)이라고 합니다. 다시말해서 대웅전이라는 말은 우리나라만 쓰고 있는 명칭인 셈이지요.

저는 이 대웅전이 원래는 한웅(桓雄)을 모시는 곳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웅의 '한'은 우리말로 '큰','임금','하늘' 이라는 뜻인데 이 '한'과 뜻이 비슷한 한자인 클 '대(大)'자를 써서 '한(桓)웅전'을 '대(大)웅전'으로 바꿔 놓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대웅전의 원래 이름은 한웅전(桓雄殿) 이지요.

대웅전(한웅전)은 한(韓. 삼한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시대 천군(天君)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성역인 소도(蘇塗. : 소도는 솟대가 아닙니다. 소도는 중세 서유럽의 성당처럼 하나의 큰 집이고 그 건물 자체가 성역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소도는 서역西域의 절과 같고 신령한 곳으로 여겨 설령 죄인이 ('소도' 로)도망쳐 간다 해도 (소도 안에 있는 한) 잡지 못한다.' 고 되어 있고 소도와 마찬가지로 중세 서유럽의 성당도 세 속의 국가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성역이었습니다. ― 성당 안으로 도망간 죄인은 성당 밖으로 나가면 붙잡히지만, 성당 안에 있는 한은 아무리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국가권력이 함부로 잡아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 솟대는 그 소도에 세워졌던 상징물 ― 마치 교회나 성당에서 십자가를 건물 꼭대기에 세워 놓는 것처럼 ― 일 따름입니다)와 같은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하늘에 제사지내는 장소이면서, 성역이었고 한웅(桓雄)이나 삼신(三神) ― 한인·환웅·단군 ― 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곳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한웅전」이 불교가 들어온 뒤에「대웅전」으로 바뀝니다. 불교는 전통신앙인 선교(仙敎 : 단군조선의 종교)를 밀어내고 국교의 위치를 차지합니다. 하지만「한웅전」에 한웅 영정이나 삼신의 영정 대신 석가모니불을 모셨고,「한웅전」은「대웅전」이라고 이름만 바뀐 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성역으로 남아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단군조선 때부터 내려져온 유산을 아주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그럼 왜 한웅전은 이름을 대웅전으로 바꾸어야 했고 단군조선 때부터의 믿음인 선교(仙敎)는 밀려나야 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잘못 알려졌던 역사의 한 귀퉁이를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지금(서기 2000년, 단기 4333년)의 한국사 교과서에는, 삼국 ― 고구려·백제·신라 ― 이 영토를 넓히고 세력을 뻗어 나가면서 '고대국가' 로 발전해 나가자 삼국이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고유 신앙으로는 백성과 지배층을 한데 묶는 동질감을 발휘하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고유 신앙은 체계적이지 못하고 '미신적인' 성격이 강해서 정신적인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래서 삼국의 왕들은 중국에서 '보다 발달한 믿음'인 불교를 들여왔고 그때부터 삼국의 정신세계가 발전하고 백성과 지배층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삼국이 불교를 받아들인 까닭은 순전히 정치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이유에서이지 옛부터 있던 고유신앙이 형편없어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배달겨레가 불교를 받아들였을 때, 백성들이 스스로 원해서 불교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대개는 왕이나 왕족, 귀족이 먼저 불교를 받아들였고 그 뒤에야 백성들이 서서히 불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삼국사기』나『삼국유사』를 보면, 삼국 모두 왕이나 왕족, 귀족이 외국에서 온 스님을 만난 뒤 불교를 받아들였고 대개 승려는 귀족이나 왕족 출신으로 지배계층에서 나왔습니다.(불교가 들어오고 한참 뒤에야 평민이 승려가 됩니다)

또 기록에는 불교가 들어온 초기에 스님들이 신통력을 발휘해서 귀신들을 내쫓아 버리거나 귀신들이 떼지어 와서 스님의 목숨을 위협하고 절 짓는 일도 방해하는데 이 귀신들은 실제로는 당시의 전통 신앙이었던 선교(仙敎)의 수행자나 제사장,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무리였을 것입니다. 불교가 권력층(특히 왕실)의 호응을 얻으면서 차츰 전통 신앙을 대신해 국교(國敎)의 자리를 차지하자 이제까지 권력을 누리다가 밀려나 '찬밥 신세'가 되어버린 선교(仙敎)를 따르는 제사장이나 수행자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자기들이 쓸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다 써서 불교를 모함하고, 훼방을 놓고, 불교를 믿지 말라고 윽박지릅니다.

그 극단적인 형태가 기록에 나오는 '귀신들과 스님의 신통력 대결' 로 나타났고, 신라의 경우에는 이차돈의 순교로 나타나지요. 물론 결국은 불교가 '호국불교'라는 이름으로 국교로 자리잡게 되고, 전통신앙은 한 단계 밀려납니다.

이런 불교와 전통신앙(:선교仙敎)의 대결은, 비유하자면 조선시대 후기에 천주교와 유교의 대립과도 같은 양상 ― 천주교는 불교에, 유교(:주자학)는 전통신앙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 이며, 오늘날의 기독교(:개신교)와 불교의 갈등과도 비슷합니다.

왕실이 절을 지을 때, 대부분 전통 신앙의 성지가 있던 곳을 골라서 절을 지었는데(그러니까 오늘날로 치자면 유교의 서원이나 절을 허물어 버리고 그 자리에 교회나 성당을 짓는 일과 같습니다) 그 때 전통 신앙을 따르는 세력과 불교 세력의 마찰이 심했다는 전설이나 기록이 여러 군데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이야기를 두 개만 말씀드리면, 어느 절은 원래 신유림(神遊林). 즉 '신(神)이 노는 숲' 이라 해서 숲 전체가 전통신앙인 선교(仙敎)의 성지였는데 왕실이 이 숲을 베어서 공터를 만든 뒤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고 어느 절은 원래 큰 바위가 놓인 곳이었고 그 바위를 중심으로 전통신앙을 섬기며 무예를 닦고 수련하던 세력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왕실이 그곳에 절을 세우려고 하자 이들이 화를 내며 무기를 들고 저항했다. 그래서 스님이 신통력으로 간신히 그들을 제압하고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내려져 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아는 바와는 달리. 불교는 상당한 갈등을 불러 일으키면서(오늘날의 개신교나 조선시대 후기의 천주교, 19세기의 동학처럼) 이 땅에 정착하였고 피지배자 속에 깊이 배인 믿음이 아닌 지배자의 믿음으로 첫 발을 내디뎠던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가 민중에게 파고 든 때는 불교가 들어온 지 훨씬 오랜 세월이 지난 조선시대입니다.

그럼 어째서 삼국의 왕실은 이런 마찰을 일으키면서까지 불교를 받아들였을까요? 불교라는 종교의 교리와 당시의 정치상황이 이 수수께끼를 풀어줄 단서를 제공합니다. 불교에는 '윤회설' 이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사람을 비롯한 여러 살아있는 것들에게는 지금의 삶인 '현생(現生)' 뿐 아니라, 그 이전의 삶인 '전생(前生)'이 있고 죽은 뒤 다시 태어나서 사는 삶인 '내생(來生)'이 있다는 말이지요.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는데 만약 그 사람이 현생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착하게 살면 죽은 뒤 다음 세상에서 다시 태어날 때 사람으로 태어나고, 그렇지 않고 나쁘게 살았으면 죽은 뒤 짐승이나 벌레로 태어나서 비참하게 살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은 다 전생에 한 일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라는 것이지요.

이 주장을 신분질서나 빈부 차이에 적용시켜 봅시다. :

노비나 가난한 사람들은 왕이나 귀족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런데 노비가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노비로 살거나 전쟁 포로로 잡혀 와서 노비로 사는 것은 전쟁을 일으킨 위정자들이나 당시 사회구조 자체의 모순 때문이 아니라, 다 전생에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노비가 될 팔자를 타고났고 따라서 노비 신분은 노비가 전생에 잘못을 저지른 만큼 받는 '죄값' 이므로 현실을 탓하거나 증오하면 안된다.

이 처지가 지겹다면 현생의 주인이나 윗사람을 잘 섬기고 따라서 '공덕' 을 쌓아 다음 생애에서는 보다 나은 신분으로 태어나라. 가난한 평민들이 지배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이며 왕이나 귀족들이 높은 지위를 누리는 것은 전생에 공덕을 많이 쌓고 착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이 잘 사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에게 불만을 품지 말고 그들이 누리는 지위를 의심하지도 말라.

― 이렇게 주장할 수 있게 되지요.

따라서 사람들은 현실을 보다 좋게 바꾸거나 사회구조 자체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현실에 순응하고 지금 스스로가 처한 신분을 인정하면서 국가권력에 복종하게 됩니다. 또 지배층도 위의 논리를 내세우면서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 자체를 막아 버리고 권력을 보다 '합법적' 으로 휘두를 수 있지요. 이런 이념의 효용성 때문에 삼국의 지배자들은 불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삼은 것입니다.

또 불교의 전륜성왕(:세상의 악과 싸우며 불법을 전파한다는 왕)을 나라의 왕과 같이 보아 왕의 권력은 '신성한 것' 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 설령 귀족이라도 ― 무조건 왕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었지요. 실제로 신라는 신라 왕을 '부처의 아버지' 로, 왕비는 '마야부인(석가모니인 고다마 싯다르타의 어머니)' 으로 부르도록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왕권은 강해지고 귀족들의 권한은 상대적으로 약해졌지요.('부처의 화신'인 왕에게 창을 겨누거나 반항한다는 것은 곧 '부처님에게 거스르는 악마'로 간주되어 죽음을 당하기 딱 알맞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의문이 남습니다. 불교를 받아들이기 이전에도 신분제도는 있었고 빈부격차도 있었습니다. 또 신분제도를 합리화하며 왕권을 키우고 확실하게 굳히는 이념을 고르라면, 유교가 오히려 더 알맞았을 겁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삼국이 본격적으로 서로 맞붙는 시기에 (유교 대신)불교를 국교로 삼았을까요?

삼국이 불교를 받아들인 시대로 돌아가 봅시다. 고구려는 서기 4세기에 불교를 받아들입니다. 백제도 비슷한 시기에 불교를 받아들이죠. 신라는 조금 늦어서, 5세기 경에야 불교가 소개되고 6세기에야 불교가 국교가 됩니다.

서기 4세기는 고구려가 본격적인 정복전쟁을 펼치며 비려·동부여·숙신·후연·백제·가야를 굴복시키거나 손에 넣었고 왕에게 모든 권력이 주어지는 중앙집권 체제로 나아가기 시작한 때입니다. 백제도 이 점은 마찬가지여서 요서(오늘날의 난하 서부)를 점령하고 군을 설치하고 담로를 두며 왜열도를 정복해서 영토를 넓히지요. 6세기, 신라에는 진흥왕이라는 군주가 나와서 고구려와 백제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신라의 땅을 넓히며 가야를 무너뜨립니다. 진흥왕 때에는 영토확장을 기리려고 진흥왕순수비까지 세우지요. 또 이때부터 신라는 왕권이 강화됩니다.

대규모의 전쟁을 치르면서 국왕은 '귀족들과 동등하게 권력을 나눠 가지는 나라의 상징'이 아니라, '나라의 권력을 쥐고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심' 으로 위치가 바뀌게 됩니다.

전쟁을 치르면 당연히 왕의 직속군대와 귀족들의 군대를 모두 지휘하는 사람은 왕이고 전쟁터에서는 '최고 군사령관' 인 왕의 명령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전쟁을 자주 치르거나 대규모로 치르면, 귀족들은 자신의 재산이나 병사들을 풀어서 왕을 도와야 하므로 그만큼 힘이 줄어듭니다. 반대로 왕의 권력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정복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경우) 더욱 강해지고 위상도 올라가지요.  이런 식으로 서서히 권력이 귀족들에게서 왕으로 넘어갑니다.

마치 춘추시대에는 단순히 주(周) 나라의 제후국(성 한 개 수준)을 다스리는 일개 제후였을 뿐이었던 중국의 군주들이, 본격적인 정복전쟁이 일어나고 나라들이 통합되어가던 전국시대에는 주나라만이 쓸 수 있던 칭호인 왕(王)을 자처하고 한 나라(여러 개의 성읍이 합쳐진)를 완전히 장악하는 커다란 왕권을 휘두르게 되는 것처럼, 서서히 왕권을 신장시킨 삼국의 왕들은 이 현실을 보다 합리화하고 왕권을 뒷받침해 줄 이념을 찾습니다.

왕의 권력은 하늘이 내린 것이니 (설령 귀족이라도) 반항해서는 안 되며 나라 안 구석구석까지 왕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주장을 찾았지요. 이 때 불교라는 이념이 소개되었고 부처가 세상을 다스리며 불법을 펼치려고 이 세상의 악과 싸운다는 전륜성왕의 이야기는 왕실의 바램과 딱 맞아 떨어지는 가르침 이었습니다. 왕실은 이 개념을 '전륜성왕 = 왕' 으로. 왕과 왕비는 '석가모니 부모의 화신' 이므로 신성하고 아무도 침범할 수 없다. 이 세상은 부처가 다스리므로 이 부처인 석가모니를 낳은 부모의 화신인 왕과 왕비. 그리고 왕족에게 진심으로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단군조선 시대와 열국시대까지는 권력을 왕과 귀족들이 똑같이 나눠 가지고 있었고, 왕은 단지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 이며, 자기 부(部)에 있는 백성들만 직접 다스릴 수 있지 나라 전체의 백성들과 땅을 직접 다스리지는 못했습니다. 귀족들(또는 제후들)은 왕에게 충성을 바치되, 왕이 귀족들의 뜻을 거스르거나 나라를 잘못 다스리면 즉시 처벌하거나 잡아 죽이거나 내쫓고, 왕족 가운데서 새 왕을 뽑아 나라를 대신 다스리게 했습니다. 따라서 왕은 귀족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할 수 없었고 단지 '형식적인 충성' 을 받으며 '나라를 대표하되 직접 다스리지는 않는 최고 지도자' 의 자리에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단군조선이 무너지고 열국시대가 시작된 뒤에도 이 원칙은 한참동안 계속 됩니다. 마치 주나라가 무너지고 춘추시대가 시작된 뒤에도 한동안은 주나라 시대처럼 제후국들이 주나라 왕실을 떠받들고 옛 질서를 이어 나갔듯이, 열국시대가 시작된 뒤에도 한동안은 단군조선 시절의 지배체제를 이어받아 왕실과 귀족 집안들이 협력하는 형식으로 나라를 꾸려 나가지요.

그러다가 나라의 덩치가 커지고 정복지와 피정복민이 늘어나면서 이 원칙이 서서히 도전을 받기 시작합니다. 정복지와 피정복민을 얻기 위해서는 전쟁을 해야 했고 위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그 전쟁의 지도자는 왕이었기 때문이죠. 전쟁을 하면 할수록 왕권은 점점 강해졌고 권력을 휘두를 정당성을 얻게 됩니다. 이런 경향은 대규모로 정복전쟁을 하는 시기에 더욱 심해집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4 세기, 신라는 6세기에 그런 상황을 맞이하죠.

왕권이 강화되면서 기존의 귀족들이 지녔던 권위와 지위는 위협을 받았고 왕실은 점차 귀족들을 버거워 하게 됩니다.(권력의 속성이 나눠 갖기보다는 혼자 차지하고 휘두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 상황을 합리화하고 아예 귀족들의 권한을 빼앗아 버리며 귀족들이 왕에게 복속되어 단지 관리로써 왕에게 복종하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 바로 그 무렵에 불교가 왕실에 소개되었고 왕실은 불교를 받아들여서 중앙집권화와 왕권 강화를 합리화 합니다.

물론 귀족들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는 없지요. 신라에 관한 기록을 보면. 맨 처음 신라에서 절을 지으려 할 때 귀족들이 집단으로 반대하며 상소하기를. "지금 백성들이 살기가 어렵고 나라의 살림도 넉넉하지 못한데 이제 절을 짓겠다면서 백성들에게 힘든 일을 시키고 나라의 재물을 낭비하시면 옳지 못한 일인줄로 아옵니다." 라고 합니다. 구실은 참 좋지요. '백성들이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실이었고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불교를 받아들이면 그만큼 왕권을 강화하며 왕이 나라의 구석구석까지 직접 다스리는 이데올로기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얘기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동안 왕실과 비교적 동등한 권력을 누리고 살던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잃어버리고 한낱 왕의 신하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전통 신앙과 불교의 갈등도 한 몫 했지요.

그래서 왕실은 이차돈의 순교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 불교를 보급하였으며, 불교는 지배층의 신앙으로써 기능하며 왕실을 옹호하게 됩니다.(들어온 과정에서부터 왕실의 도움을 받았으므로) 나중에는 반발하던 귀족들도 불교를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 뒤 불교는 조선시대에 국교 자리에서 쫓겨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지배자를 위한 사상으로 작용합니다.(러시아의 동방정교나 중세 서유럽의 천주교처럼)

그리고 당시까지는 전쟁이나 충돌이 있었어도 대규모이지가 않았고, 따라서 많은 전쟁포로가 생겨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광개토왕의 시대나 근초고왕, 진흥왕 때에는 전쟁의 규모가 보다 커졌고. 그런 만큼 전쟁포로도 많이 생겨났고 대량 살육(표현이 끔찍합니다만)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부산물로 생겨난 포로들은 노비가 되거나 끌려간 나라의 하층민이 되었죠.

이런 상황을 합리화하고 노비나 하층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나라의 지배체제에 불만을 품는 일을 막아야 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불교의 윤회전생설은 노비나 가난한 사람들이 생겨난 '까닭' 을 '훌륭하게' 설명해 주었고 반대로 왕이나 귀족들이 생겨난 까닭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층민이나 노예들의 저항의지를 아예 꺾어 버렸죠. 다시말해서 신분제에 도전할 가능성 자체를 막아 버린 겁니다. ― 이는 왕실 뿐 아니라 귀족들에게도 이로운 일이었죠.

전쟁의 성격도 한몫 했습니다. 열국 ― 북부여, 동부여, 고구려, 백제, 예, 맥, 한, 신라, 가야 등 ― 은 원래 단군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뿌리가 같은 나라들 이었습니다.(마치 춘주전국시대의 나라들이 원래는 주나라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들 이었던 것처럼) 이들은 단군조선이 무너진 뒤에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흩어졌다가 곧 단군조선의 자리를 이어 자신이 종주국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이웃나라들을 복속시키거나 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딜레마에 부딪히게 되지요.

전쟁이 이민족이나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 원래는 같은 나라에서 같은 핏줄로 살아가던 세력을 쳐서 복속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치는 나라나 공격을 받는 나라나 다 원래는 같은 단군조선의 거수국(제후국)이던 나라이고 다 같은 단군의 신하였는데 '네가 나보다 뭐가 더 잘 났다고 같은 단군의 신하였던 나를 치느냐? 무슨 자격으로 그러느냐?' 는 항의와 저항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단군이 있을 때에는 같은 신하로 복종하면서 같은 나라의 구성원으로 살았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자기는 왕이 되고 나는 신하국이 되어 복종해야 하느냐는 항의에 직면합니다.

전통 신앙인 선교를 모시는 경우에는 이런 문제점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하지요. 선교(仙敎)에는 단군을 모시고 신하로써 복종하라는 말만 있지, 단군이 사라졌을 경우에 어떻게 하라는 말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삼국의 왕실은. 불교에서 '세상의 마귀나 나찰, 악귀들과 싸워서 극락정토를 가져오고 불법을 퍼뜨리는' 전륜성왕의 이미지를 빌려옵니다. 그러니까 '나는 전륜성왕으로, 세상에 불법을 퍼뜨리고 악을 없애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는 것이다. 내가 전쟁으로 정복하는 대상은 마귀나 나찰이기 때문에 내가 정복해야 하고 그것이 불법을 퍼뜨리고 나라를 구하는 길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가져와서 퍼뜨린 것이지요.

전쟁에 '성전'의 개념을 불어넣고 불교를 '호국 불교' 로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정복전쟁도 단순히 영토를 얻고 세력을 넓히기 위한 싸움이 아닌, '불법을 퍼뜨리고 악을 무찌르는' 「성전」이 되어서 성격이 바뀌게 됩니다. 물론 왕들은 전혀 꺼리낌이 없이 전쟁을 할 수 있게 되지요.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당시 단군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삼국은 단군조선 때부터 내려져온 믿음인 선교(仙敎)를 믿고 있었는데 이 선교(仙敎)는 우리 민족만이 믿던 신앙이었고 따라서 다른 나라나 세계와 교섭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실은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보다 보편적인 종교이자 사상' 인 불교를 받아들여서 보다 보편적인 사상으로 세계와 통하고, 외국의 정신세계와 이어지려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북유럽이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들 대신 '보다 보편적인 사상' 인 천주교를 받아들여서 서유럽과 통하고 정신세계를 이었듯이. 러시아의 슬라브족이 비잔틴 제국의 동방 정교를 받아들여서 그리스와 통했듯이. 삼국의 군주들도 당시 동남아시아나 북중국, 남중국, 중앙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던 불교를 받아들임으로써 보다 보편적인 사상을 통해 세계와 교섭하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지요.

또 삼국이 유교를 국교로 삼지 않고 불교를 받아들인 까닭은. 유교와 불교 질서에 차이점이 있었고, 불교 질서가 유교 질서보다 삼국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유교 질서는 아시다시피 중화사상을 강조합니다. 당연히 다른 민족이나 나라의 '독자적인 천하' 나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지 않지요. 또 그 민족의 문화도 부정하고 말살시킨 뒤 유교 문화를 심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불교는 다릅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불교를 믿는 모든 민족이 '평등' 하며, 유교나 개신교·천주교·동방정교에 비해 다른 사상이나 믿음을 기꺼이 끌어안고 인정합니다. 그러니까 유교와는 달리 한 민족이나 나라의 '타고난 우월성' 을 인정하지 않고, 그 나라의 전통적인 믿음이나 문화를 말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끌어안고 기꺼이 인정하지요.

그래서 불교는 들어간 나라의 문화와 섞이면서 발전하거나. 그 나라의 문화를 오히려 살찌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국 초부터 한족과 싸우면서 큰 나라인 고구려·백제나, 강대국들에게 시달리며 살아온 신라에게 있어서는, 중화사상을 강조하고 전통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유교질서보다, 불교를 믿는 나라가 바로 부처님의 나라인 불국(佛國)이고 전통문화를 인정하고 키워 주는 불교질서가 더 매력적으로 비쳤을 겁니다.

지금까지 불교가 삼국시대에 들어온 까닭을 살펴 보았습니다. 정리하자면

1. 정복전쟁으로 많은 노비와 하층민이 생겨나고 신분질서의 불평등이 커진 현실을 옹호하고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 자체를 막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는데 불교의 윤회설이 이 역할을 잘 맡아 주었고

2. 원래 같은 단군조선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들이 싸울 수 있는 명분 ―나는 같은 제후국을 치는 것이 아니라 불법을 퍼뜨리는 전륜성왕으로 마귀와 나찰들을 쳐 없애려고 전쟁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전쟁은 성전이다. 라는 ― 을 제공해 주었으며

3. 미약하던 왕권이 정복전쟁으로 점점 커지면서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사상을 찾았던 왕족의 입맛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고(왕이 부처의 화신이라거나 왕과 왕비가 석가모니 부모의 환생이라는 식으로 주장해 중앙집권과 왕권 강화를 합리화함)

4. 나라 안에서만 통하는 전통신앙으로 세계와 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당시 보다 보편적으로 믿어지던 불교를 수용해 '보편사상으로' 세계와 교섭하고 통하려고 했고

5. 삼국의 지배층이 중화사상을 내세우며 다른 나라나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유교질서 보다는 민족 고유의 문화나 사상을 인정하고 그 나라의 천하를 인정하는 불교질서에 더욱 매력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전통신앙이 미개했기 때문에 삼국이 불교를 받아들였다' 는 교과서의 설명은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지루한 긴 글을 읽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출처:역사21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