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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07/12 (목) 22:54
문서분류 문집
설명 장익현의 문집
구분 보존
저작 장익현
ㆍ추천: 0  ㆍ열람: 149      
수죽문언록
수죽선생문언집록[秀竹先生文言集錄]

언[言]

1. 우째 이런일이  
글을 원체 써본적이 없어 몇자 적지 못합니다마는,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수 있습니까? 무과에 유일하게 응시했던 이희양님이 사망하다니오. 아이고 이제 우리 무관들은 어찌합니까? 간신히 하나가 붙었기에 다행이다 했더니 하필 폐렴으로 사망하다니오. 너무 안타깝습니다.

2. 허탈하도다...  
하늘의 많은 별들이 떨어지는구나.....
왕실의 숱한 종친들은 물론이요
천하제일 고굉지신들까지...
이나라는 그 누가 잡아주고 받들란 말이던가?
해가 빛을 잃어가고 남은 별들은 어둠에 묻히고 있네.....

3. 개탄서  
제가 오늘 할일이 없어 무과시험장에 들러보았더니, 응시자가 단 1인뿐이었고, 그에 비해 문과응시자는 10여명에 달하였습니다.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수 있습니까?
본조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인구수가 좀 더 적었더라면 또 모르겠지만, 이번이 벌써 2번째이고 처음보다 최소한 3-40여명은 더 인구가 늘었는데, 어찌 무과시험에 응시한 이가 이렇게 없을수 있더란 말입니까?  허직장님과 제갈봉사님은 본 사람이 거의 없으니 채점 같은것을 할 필요가 없어 좋으시겠지만, 저는 어이가 없어 말이 안나옵니다. 이러다가 우리 왕조도 저 송[宋]과 조선[朝鮮]조처럼 문치주의, 무약주의로 빠지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아! 개탄스럽고 통탄할 일이로다!

4. 병조부임인사  
안녕하십니까.
새로 병조에 부임한 장익현이라고 합니다.
본조는 갓 출범한지라 모든 점이 미비합니다. 이에 소인이 군기시의 부봉사로 임명되어 병조에 부임했으니 김연님과 협조하여 육조중에서도 최고의 부서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5. 가례도감부임인사  
옛날에 이곳에 선전관으로서 자주 드나들었는데, 이젠 가례도감 부사로 임명되었군요.
잘 해봐야 겠습니다.

문[文]

1. 시제
고려 중엽, 신료들의 권력 강화와 외세의 침범, 내란 등으로 왕권이 실추되고 신료, 특히 문신들이 권력을 독점했을때 이에 불만을 품고 일어난 무신들이 문신들을 대거 숙청해버리고 정권을 잡아 100여년간 권력을 이은 일이 있었다. 이 무신정권기의 다른 지도자들은 감히 이루지 못했던 권력의 세습을 4대 60년간이나 이루어낸 사람 최충헌이 있었다. 그가 어떻게 그의 권력을 자손대대로 물릴수 있었는가. 그리고 그의 통치법은 다른 무신정권 지도자들과 어떻게 달랐는가. 그리고 그의 방법을 오늘의 현실에도 적용할수 있는가를 소신있게 서술하시오.

고려말에 일어났던 위화도회군은 한미한 장군출신 이성계를 일국의 왕위에 오르게 하였고 오백년 가까이 이어진 고려를 무너뜨리게 한 전주곡이 된 사건인데, 이 사건은 장군의 기본자세인 충의를 저버리고 정변을 일으켰다는 부정적 측면과 당시 현실을 직시한 이성계와 조민수가 군사를 되돌려 이상의 달콤한 꿈에 젖은 왕과 대신을 갈았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소견과 그 이유를 서술하시오.

중종연간에 북방의 여진족이 변방을 자주 침입하여 재물을 탈취하고 인명을 살상하니, 조정에서 논의끝에 장수를 보내어 그들의 기지를 기습소탕하기로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조광조는 경연에 들어 이문제를 논하길, 아무리 적이라지만 몰래 기습을 하는것은 도의에 어긋나니 그일을 그만두라 하였다. 이에 격분한 병조판서 유담년이 말하되, 책상에서 글만 읽던 선비의 얕은 지식이 어찌 전장에서 머리가 센 장수의 생각을 따를수 있겠느냐며, 보내려던 장수를 그냥 보내시라 하였다. 이때 당신이 당시의 왕 중종이었다면 어찌 결정을 내렸겠는가? 어느 방법을 쓸지 결정하고 그 사유를 서술하시오.

임진왜란이 종식되고, 이순신, 김덕령, 곽재우 등으로 대표되는 의병의 장수들은 큰 공을 세우고도 국가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살해당하거나 스스로 현실을 회피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이순신 또한 전사한 것이 아닌 피한 것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공이 큰 무인들에 대한 조정의 박해는 심각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응시자 자신이 무인이라면 조정의 핍박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킬 것인가, 아니면 피할 것인가. 또는 전쟁중에 순국할 것인가? 응시자 자신이 임진왜란 전후 무인의 입장이 되어 의견을 말하여 보아라.

고려중엽에 묘청, 정지상 등이 국토회복, 금나라로부터의 항쟁 등을 기치로 내걸고 서경 천도운동을 벌이다 실패하자 서경에서 난을 일으켜 그 주변 여러 고을을 장악하고 나라를 세운 바가 있다. 그러나 김부식에 의하여 결국 난이 진압되고 묘청과 정지상은 참수를 당했다. 만약 이 사건이 성공했더라면 그들의 주장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겠는가.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소신있게 서술하라.  

2. 상소

전하!
고래古來로 군왕들이 나라를 세우면 사초史草를 써서 실록實錄을 편찬해 뿌리를 굳건히 하고,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문文무武충忠의義예禮법法를 가르쳤으며, 법을 제정制定하여 질서를 바로잡았나이다. 저희도 옛 선현들을 본받아 실록이나 시정기時政記를 편찬하여 후세에 보이고, 한 도道에 적어도 하나씩의 향교鄕校나 서당書堂을 하나씩 세워 백성들이 자유로이 배울수 있도록 하여 지식을 넓힐 기회를 주시옵고, 성종강정대왕대의 경국대전經國大典이나 사이버 조선왕조의 창국대전昌國大典 못지않은 법전을 만드소서.

전하!
지금 옛 조선조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은 현재 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중수-복원공사가 한창이옵니다.
허나, 지금 현재 궁내에 무수히 세워져 있는 부도, 석탑, 불상들을 철거하야 그터에 옛 건물들을 복원케 하여야만이 흥선대원군 시절의 경복궁이 조금 더 원상으로 돌아가리라 사료되옵니다. 그곳에 옮겨 세워져있는 유물들이, 유교이념을 국가의 통치제도로 내세웠던 조선왕조의 궁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신라-고려조의 불교관련 유물들이옵니다. 더군다나 경복궁의 건물터를 차고 들어앉아있는 이 유물들은 일본제국주의가 경복궁의 건물들을 뜯어서 '시정5주년기념물산공진회' 라는 것을 열 무렵인 1915년 무렵에 전국 심산유곡에서 옮겨진 것으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자하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이렇게 남아있사옵니다.
전하!  하루속히 이 석조유물들을 원래의 터나 박물관같은 곳으로 잘 이건하여 경복궁의 원형을 더욱 되살리고, 석조유물의 보존에 하자가 없게 하여주시옵소서.

전하!
소신들의 덕이 부족한것인지 하늘이 도우지 못하신 것인지, 이번 무과에 단 한명만이 응시를 하였고 그 응시생도 돌연 사망하고 말았나이다. 반면 문과응시생은 9명이나 되는 대풍작이 들었으니, 저희 무신들의 소치로 제대로 과시진행을 못한것 같사옵니다. 이러다가 1년정도 지내면, 문관들은 자리를 꼭 채우고도 남을것이나 무관은 가뭄에 콩이 나듯 듬성듬성하게 자리만 채울것이 아니겠나이까?
소신에게 죄를 내려 주시옵소서. 소신이 일을 제대로 하였던들 이러한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무지한 소신에게 벌을 내려 주시옵소서. 재삼 청하나이다.

죄인 장익현, 전하의 성은에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옵니다. 저는 태조 강정대왕의 친림시에 합격하여, 지금껏 여섯 임금을 섬기며 살아왔나이다. 이날 이때껏 병조의 임무에 소홀한 적이 많았고, 사무를 제대로 처리못한점 또한 많았나이다. 그러나 선대왕들의 크신 덕으로 지금까지 근무를 할수 있었사옵니다. 그러나 민국에서의 일이 이때와 같이 화급하고, 저의 재능이 이렇게 초라해보인적이 없었나이다. 그리하여 며칠간 컴퓨터에는 손도 댈수 없었사옵니다. 아! 소신의 죄 크고도 크옵니다. 하나 전하께오서 등청의 흔적만 남기면 그 대죄를 감해주신다 하오니, 마땅히 죽어야할 대죄인이 눈물을 흘리며 궐문 앞에 엎드려 謝를 하옵니다. 하오나 소신은 병조의 일을 맡을 능력도, 자격도 없사옵니다. 소신의 관직을 거두어 주옵시고, 새로운 인재들을 많이 등용하시어 전하의 시대를 여시옵소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했사옵니다. 이제 저는 너무 늙고 굼뜨옵니다. 전하께서 새로운 시대를 여시어 더욱 이 나라를 발전시켜야 하옵니다. 사나이 한번 태어나서 이정도면 성공한 것이 아니옵니까. 다시한번 엎드려 바라옵건대, 소신의 관직을 거두어 궁유한사[窮儒寒士]의 도를 늙은 무관으로 하여금 알게 해주시오소서.

군기시 직장 신 장익현. 계미년 새해를 맞아 삼가 하례드리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 다사다난했던 지난 임오년을 치르고 나서 이렇게나마 전하의 용안을 뵈옵고 하례를 드리니 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전하, 새해에도 만사가 형통하시어 어사조의 번창을 이끄시는 국왕폐하의 모습을 바라오며 소신은 이만 물러가옵니다.

군기시 직장 신 장익현, 소신의 품계문제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소신은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직과 병조의 여러 일들을 맡아 보면서 묵묵히 일을 하였나이다. 그러면서 유품자들이 치르는 과거 정시를 보면서 품계가 6품이 되어 이제 참상관에 이르렀었나이다. 이것은 문무과 방목과 서경덕공의 차자에 나와있나이다. 그러나 소신은 평정업무가 시작되어 근무일수가 10일 가산되었다는 소식을 알고 성은에 감사드리오나, 저의 품계가 8품이 되었다는것을 알고 깜짝 놀랐나이다. 아마 제가 부봉사직에 보임받아 일하고 있을 무렵의 일로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일한지 거의 여덟달이 다 되어가옵니다. 상식으로도 그때로부터 품계가 오르면 오르지 내려갈리는 없지 않사옵니까? 다시한번 고증해 주시기 바라옵나이다.

군기시 부봉사 신 장익현, 본조의 미비한 문제에 대하여 아뢰옵니다.

전하께오서 금월 10일부터 문무과거를 실시하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과거'창을 열어보았나이다. 하온데 새 과거를 시행한다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고, 전에 저희 미신[微臣]들이 관직에 올랐던 1차 과거령을 종료한다라는 문귀밖에 없었나이다. 또, 저희들이 품계를 받고 관직에 올라 업무를 시작한지 몇달이 넘었건만, 아직까지 '관제'창에 품계밖에는 나온것이 없고 저희들의 관직은 기재된바가 없었사옵니다. 이러한 작금의 현실을 어찌 하여야 하옵나이까. 마땅히 올라야 할 것들이 기재되지 아니하였고, 사라져야 할 낡은 정보들을 그대로 올려두는 일이 어찌 전하의 치세하에 있을수 있사옵나이까.
속히 새로운 정보들을 올려두어야 마땅할줄 아뢰옵나이다.

3. 시

-석불(石佛)  

천년의 세월을 비집고
한결같이 서있는 돌부처.

돌속에 숨은 부처를
석공이 찾아 세운것인가.

듬직한 어깨로는
세상의 악업 짊어지고

자애로운 눈매로는
천하선행 굽어보네.

하지만
그 누가 알까.

묵묵히 서있는
저 돌부처의 마음을.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오직
저 자신만이 알리라.

-월[月]

달.

어제건 엊그제건
백년전이건 천년전이건
늘 떠왔던 달.

험한 고갯마루턱를
숨몰아쉬며 넘던
장돌뱅이도 보고

가마타고 시집가던
아리따운 신부도 봤네.

세월이 흘러흘러
전구가 나오고
형광등이 켜졌건만

옛날이나 다름없이
늘 떠오고 져왔네.

앞으로 어떠한 세상이
된다 하더라도
달은 변함없이 뜨고 지리라.

-한시[閑詩]

물은 조용히
흐르는듯 보이지만

돌을 다듬고
자신의 길을 만든다.

돌은 절대
변하지 않아보이지만

부딪히고 씻기면
깨지는 것도 돌이다.

4. 기타

지나가는 이야기-기구한 역사의 증인
여러분들은 혹시 덕수궁에 가보셨는지 모르겠네요. 그곳의 정문이 대한문이죠? 그곳 앞에 사람들이 벌떼같이 모인게 정확히 네번이었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1919년 고종황제폐하의 국장때. 비운의 황제 마지막 거둥하시는 길을 보려고 지방에서도 서울 장안에서도 대한문 앞으로 몰려들어 그야말로 흰옷의 인산인해를 이루었다합니다. 두번째는 1960년대 초. 서울시 도시계획으로 덕수궁 담장이 뒤로 밀려나고, 대한문만 덩그렁하게 도로에 나앉아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흉하고 이상했겠어요. 당시 문화계 인사들과 시민들의 반대에도 서울시는 끄떡않고 대한문의 이전을 강행했지요. 유명했던 드잡이[무거운 것을 옮기는 장인] 고 김천석씨와 나라 최고의 대목[집을 짓는 못수] 고 이광규씨가 이 일에 동원됬어요. 그것을 옮기려는데, 지붕의 기와를 다 벗겨내고 기등을 꽁꽁 묶었어요. 여기까지는 누구나 생각할수 있는 부분이지만, 웬걸 집을 뜯는게 아니라 주초석도 같이 묶고는 끌어당기기 시작하는 겁니다. "세상에 저 큰 문이 걸어가다니!" 그때 근처 회사의 직원들은 물론이고 시청의 직원들까지 저 신기한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몰려나와서 그때를 방불케 했습니다. 세번째, 네번째는? 그렇습니다. 바로 2002 한일월드컵때, 반미 촛불시위때입니다. 저는 지방에 있는 사정상으로 가보지는 못했는데, 앞으로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모일때가 언제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던가 시청앞광장문제로 여러 안건들이 제시되었는데, 그렇게 되면 앞으로 우리들이 그 앞에 더 많이 모일테고, 언젠가는 다섯번째의 운종[雲從]을 볼수, 또 거기에 있을수 있을까요?

1.선전관에서 작성할 어사조 선전 공문에 우도,좌도에 호적신고를 하는 분께 혜택을 준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2.좌도, 우도로 이주하는 사람에게는 과거 급제시 0.1점을 더 붙여준다.

3.그곳(사조) 처럼 지방마다 특색을 정하여 관심있는 분야에 관심있는 백성이 고루 퍼질수 있도록 한다.  

4.활발한 지방의 지방관에게 포상을 하여 지방관으로  하여금 활성화를 돕게한다.

5.활동력이 좋고 특히 양도에서 많은 활약을 하는 백성및 관리를 뽑아 명예백성으로 삼고 명단을 작성해 대대로 이름을 남긴다.

6.양도 출신 관리를 우대하여 평정시 반영한다.

7.앞으로 1-2달간 호적신고를 좌도, 우도만 받는다.

8.재임시 인구를 10인 이상 늘리는 지방관에게는 2계 승급의 기회를 준다.

발문[跋文]

단기 4336년 - 서기 2003년 5월 전 병조좌랑 장익현공의 족적을 모아 이 책을 편찬하니, 세상이 몇번 바뀌더라도 수죽선생[秀竹先生]의 아름다운 글은 남을 것이다. 어사조 서책보관소에 세장[世藏]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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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편람 병조 선생안 역대 병조 관원 (2002.02-2004.09) 보존 이율곡 2007/07/12
13 기록 인물략전 제11대 국왕 이후 주요 인물 기록 (2004.07) 보존 박정우 2007/07/12
12 편람 한성부 전서 한성부 역대 관원 관속 훈장 (2004.08) 보존 한성부 2007/07/12
11 기록 삼훈록 제3권 역대 국왕의 전교 : 상소편 (2003.12) 보존 형조 2007/07/12
10 기록 삼훈록 제2권 역대 국왕의 전교 : 업무지침편 (2002.02) 보존 형조 2007/07/12
9 기록 삼훈록 제1권 역대 국왕의 전교 : 어전편 (2003.12) 보존 형조 2007/07/12
8 편람 호조 약사 전현직 호조 관원 명단 및 기록 (2004.08) 보존 호조 2007/07/12
7 편람 관원인명록 전현직 관리 명단 (2003.10.28) 보존 정태수 2007/07/12
6 문집 수죽문언록 장익현의 문집 보존 장익현 2007/07/12
5 편람 삼사 선생안 전현직 삼사(三司) 관원 (2003.03 기준) 보존 삼사 2007/07/12
4 편람 형조 약사 형조 관청 주요 기록 (2002.02-2003.05) 보존 형조 2007/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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