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 <소설> 여성시대 서막

이곳 전라도 군산에 살고 있는 金茂華(김무화) 씨네 집에 난데없이 이혼을 하자는 제의를 하려고 한 사내가 들어섰다. 그 사내는 바로 김무화 씨네 집의 사위였다. 큰사위였다. 더욱이 큰딸은 아주 성실히 남편을 따르며 살아왔다. 불륜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그러던 그녀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남편이 말한 것은 바로 이혼을 하자는 이야기. 그녀의 눈에서는 당황함이 역력하지만 남편이 매몰차게 말해버리니 그녀는 울부짖고야 말았다. 찬바람은 일고 있는 그런 마음은 더욱 어수선하게 돌아가고 깎아지려는 운명의 장난이 그녀를 휩싸고 돌았다.

때는 1926년 六十萬歲運動(육십만세운동)이 일어난 직후였다. 무화의 언니의 이름은 鮮花(선화). 어머니는 기생이었으나 국치를 겪고 어린 나이에 면천을 받고 남편 김 비서와 혼약을 맺었다. 그리하고서는 바로 혼인을 하니 아들 하나에 딸 둘이었다. 그 중 큰아이가 딸이고 둘째도 딸이며 막내는 아들 하나가 전부. 그러나 단란하다시피 살아왔었지만 庇髪(히사시가미)를 한 서양식 머리모양이면서도 한복을 차려입은 그 자태는 春香(춘향)이를 연상하게 만드니 이 도령이 반해 그녀를 가로채기라도 할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한 그녀에게 가혹하고도 매몰차게 이혼을 하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너무나 울분을 토할 길이 없어 남몰래 숨을 죽이며 울부짖는다.

이혼을 선고하는 남편의 그 말을 듣던 선화의 그 속 아픈 것을 모르는 비정한 남편에게 증오의 말을 속으로 한 기억이 나 너무나 수치스럽게 여긴다.

‘당신이 진정 나를 매몰차게 걷어찼던가요? 김중배가 다이아몬드를 준 것에 반한 심순애라도 되었던가요? 참으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문득 <長恨夢(장한몽)>이라는 일본으로부터 번안된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었다. 그러한 그녀에게 남편을 더욱 잔인하게 말했다.

‘당신은 진정으로 무지몽매한 것보다 더 하구려. 한낱 친일에 귀하게 자라다가 이내 남편을 가지고 놀려먹더니 무어라 했소? 김중배가 준 다이아몬드에 홀린 심순애라도 되었던가요? 그건 내가 할 말보다 더 하겠소?’

선화는 그 근심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선화는 하인을 불러다 자신의 남편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아보고 오라 일렀다. 그러고서 몇 분이 지났을까, 허겁지겁 하인이 찾아와서 말하길,

“어, 아, 아씨. 큰일입니다요!”

“무슨 일이에요?”

“서, 서, 서방님이 감옥에 가셨당께요?”

“감옥에 가시다니.”

선화가 의아해하였다. 그러자 하인은 차근차근히 말했다.

“사, 사회주의운동을 허시다가 뭔 山黨(산당)의 사건인가 허여튼 共産黨(공산당)이라험서 마구잡이로 왜놈 순사들이 잡아가는디 울 서방님도 같이 잡혀갔지 뭐랑가요.”

순간 선화는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서방이 한 그 말이 곧 자신이 친일을 한 돈으로 먹던 그 모습을 가소롭게 바라보았던 남편의 한마디였다. 남편이 연루된 사건이 곧 제이차 공산당사건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이었다. 육십만세운동을 주동한 사회주의자들이 삼일운동을 재현하고자 한단 사실을 첩자를 심어 넣고서 눈치를 챈 일본경찰은 들입다 이들 사회주의자들을 모조리 체포한 것이다.

그 후 선화는 며칠 후 남편이 서울로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접한 뒤 서울로 곧장 上京(상경)하고야 말았다.

그녀는 무작정 서울역에 도착한 대로 남편이 머문다는 감옥으로 향하려 하였으나 자신의 구차스러운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무작정 올라가서는 멍하니 총독부를 바라보았다. 위엄 있는 이 총독부 건물은 그녀에게는 눈엣가시였다. 드디어 그녀는 마침내 분노를 표했다. 남편을 비정하게 만들려고 하는 저 총독부가 무너지는 그 날을 기원하면서. 그녀는 편히 울부짖었다.

세월이 흐른 뒤 1932년 <신동아>라는 잡지를 읽던 한 여인이 모습이 보인다. 그 여인은 한이 많은 세월을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남편의 뒤를 따르기로 하였다. 죽기 며칠 전에 젊은 혈기를 가지고 있는 남편이 保釋(보석)으로 풀려난 뒤 옥바라지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서 감동하였다.

그런 남편은 하나의 씨알을 주었다. 아담과 이브의 첫 모습처럼 그들은 사랑을 속삭였다. 동물인들 식물인들 사랑은 없지 않던가. 그러고서는 남편과 함께 별장으로 가 매각하려고 하던 찰나에 매각을 마친 그날 밤에 그 돈으로 독립자금으로 넘기려는 계획을 다지던 와중에 둘만의 욕조에서 서로 사랑을 속삭이던 중 남편은 그녀의 품에서 편안히 생을 마감하였다. 병이 깊었던 모양이었다. 남편은 그러기 직전 그녀에게 귓속으로 속삭였다.

“나는 장렬히 죽지만 당신은 장렬히 해방을 맞이할 즈음에 잔 다르크처럼 살다가 하늘에서 우리 다시 결혼합시다. I LOVE　YOU!”

그는 그녀의 곁에서 죽었다. 그의 죽은 시신을 여자는 입을 맞추었다. 그러는 즉시 그의 시신을 수습하고 예배당에서 장례를 치렀다. 그 후 남편을 고향에 묻어놓고 스스로 그녀는 아이를 낳았다. 드디어 아이를 남편의 부하에게 맡기고 나서 향한 곳이 月平商會(월평상회)라고 하는 이름의 상점에 이르렀다. 안국동 길거리에서 보이는 허름한 건물에 자리해 있는 이곳에 머리를 깊게 자른 여자는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있는 상점에서 여성동지를 만났다.

“김 동지, 어서 오십시오.”

동지를 맞이하는 여자의 목소리에 희망이 담긴 힘이 강조되었다.

		보덕 정병욱(鄭炳煜)
		자택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