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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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상유
작성일 개국616(2007)년 3월 6일 (화) 00:00  [자시(子時):삼경(三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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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원/참군] <상소> 현 본조의 세태에 대하여
현 본조의 세태(世態)에 대하여 경기도 조산대부 김준호, 평안도 선략장군 김현유, 경상도 승의랑 한유찬, 경상도 적순부위 김희종, 강원도 통사랑 이만원, 전라도 효력부위 김세정을 대표하여 신(臣) 한성부 병절교위 임상유는 삼가고 또 삼가는 공손한 마음으로 전하께 상소를 올립니다.

옛 성현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人而無信(인이무신)이면, 不知其可也(부지기가야)니라."라고 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서 믿음이 없으면 무엇을 하더라도 잘되지 않으며, 인간의 사회(社會)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므로 신뢰가 없다면 인간관계도 사회도 이루어지지 않음을 경계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예로부터 본조의 백성은 응당 사람으로서 예의(禮義)와 신의(信義)를 지키매, 위로는 군을 향하여 충(忠)을 다하고 아래로는 서로를 돕고 의지하는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으며, 이와 같은 마음으로 전하께서는 백성들을 돌보시니, 전설의 요, 순임금의 태평성대(太平聖代)가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돌아보니, 몇몇 무리의 무치(無恥)함으로 인하여 예의와 신의가 땅에 떨어지고 서로에 대한 불신(不信)과 원망(怨望)만이 가득하여, 더는 이대로 방치(放置) 할 수 없음을 통감(痛感)한 신(臣)을 포함한 7인은 이들의 염치(廉恥) 없음을 낱낱이 밝혀내고, 저들을 처단함으로서, 본조의 옛 영화를 재현하기 위한 반석(磐石)으로 삼고자 합니다.

전하, 예로부터 군신간의 도리(道理)는 “君使臣以禮(군사신이례)하며, 臣事君以忠(신사군이충)이니라”라고 하여, 이것은 임금이 신하를 대할 때는 예(禮)로서 대하고, 신하가 임금을 섬길 때는 충성(忠誠)으로 섬긴다는 구절로서 공자께서 군신의 도리를 밝혀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쫓아 조정의 대소신료들은 충심(衷心)으로서 전하를 보필(輔弼)하였으나, 그러지 아니한 자들도 있으니, 그들이 바로 충청도 정략장군 정언신과 경상도 장사랑 정한입니다.

충청도 정략장군 정언신은 병조 재직(在職)시 전하께서 하문(下問)하신 일을 아무런 사유도 없이 기한을 끌어 전하의 성심을 크게 상하게 하였으니, 마땅히 그에 대한 죄 값을 받아야 하지만, 전하께서는 신하(臣下)를 예로서 대함으로 그를 호조 정랑으로 체직하여 조정 신료의 녹봉 지급 사무를 담당케 하였습니다. 이에 마땅히 그는 분골쇄신(粉骨碎身)하는 마음으로 충성을 다해 그 임무를 완수(完遂)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취를 감춰, 다시 한번 소명할 기회를 준 전하를 기만(欺瞞)하였으며, 조정의 동료들에게는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러한 자가 낙향(落鄕)한 뒤에도 가벼운 언행(言行)을 일삼으며 어떠한 일말의 가책(呵責)도 느끼지 아니하니, 어찌 신(臣)들은 통탄(痛嘆)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경상도 장사랑 정한은 기망장계와 진배없는 장계(狀啓)를 올려, 인사평점 2점 감산과 함께 파직 당하였으나, 자신의 떳떳함만을 주장하며, 죄를 인정하지 아니한 것도 모자라, 심지어 파직 직후 선전관청을 복설하라는 상소를 올리는 등 자중하지 않고 경망스러운 행동을 일삼으니, 어찌도 이리 불고염치(不顧廉恥)할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으며, 임금을 알기를 우습게 안단 말입니까. 저들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도리도 지키지 아니하고, 활개를 치고 있으니 어떻게 백성들이 교화(敎化)되고, 예의를 지킬 줄 아는 풍속(風俗)이 마련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저런 자들을 사법 기구가 정상화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치죄가 하루하루 미뤄지게 되매, 이제는 충청도 백성 송시열 같은 자가 나타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 주막이나, 게시물에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경박한 언사를 내뱉으며, 일신(一身)의 보잘것없는 능력만 믿고 함부로 날뛰며 편 가르기를 좋아하니, 그가 바로 본조의 분열을 획책한 가장 근본적인 주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는 조정과 대소신료를 업신여길 뿐만 아니라, 일전에 그가 올린 상소에 대하여 전하께서 비답을 내리시기를 “실록에 수록된 옛 신하의 차자[箚]를 약간 편집하여 올리는 것이 무슨 상소인가. 상소한 본의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도를 넘어 가탁하는 것은 군신의 도리에 맞지 않다. 일부 인용도 아니고 소장(疏章)의 전편이 이러하니 과인도 열성조의 비답을 그대로 취하면 되겠는가. 이와 같은 상소를 한 번 용납하게 되면 장차 유생들이 상소하려는 뜻[疏意]를 적절히 담은 옛 성현의 글월을 찾아 거의 그대로 담아 제출하는 풍토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인데, 이는 전혀 권장할 일이 아니다.”라고 비답을 내리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혹자는 베낀 상소가 상소냐 하는데 마침 경우에 알맞는 상소가 있기에 각색한 것일뿐 베껴서 이것이 내 것이오~할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만약에 그럴 의도가 있었다면 출처를 밝힐 이유가 어디에 있었겠습니까?”라는 궤변(詭辯)을 늘어놓으면서, 무엄하게도 금상 전하를 혹자로 지칭하며 능멸(陵蔑)하였으니, 이것이 대역죄(大逆罪)가 아니고 무엇이며, 어찌 죽음으로도 그 죄를 감당키나 할 것입니까. 작금(昨今)에 이르러 저런 자들로 인하여 본조가 깊은 병에 빠졌으니, 이에 의식(意識)이 있는 식자(識者)뿐만 아니라, 지하의 귀신들조차도 저들을 욕하며 미워하지 아니한 자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비록 저들이 범한 죄는 크지만 지방의 활성화에 조그마한 공이 있다하여, 저들을 교화시킬 것을 주장하는 자들도 있으니, 이는 인간의 병을 다스림과 같아서 인간의 병이 깊지 아니하면, 몸을 따뜻이 하고 내장을 튼튼히 하는 음식을 먹인 뒤, 휴식을 취하게 하면 자연스레 몸의 양기(陽氣)가 회복되어 완치(完治)되는 것처럼 저들을 교화시킴으로 본조에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아니하고 이미 병이 깊어 골수까지 영향(影響)을 미쳤다면, 이에 맞는 합당한 처방을 함으로서 그 병을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아니하고 가벼운 병을 대하듯 한다면, 골이 쪼개지고, 염통이 터지는 고통과 함께 다시는 건강을 회복치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저들의 무리로 인하여 본조가 병이 깊어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어찌하여 가벼운 처방(處方)으로서 병을 다스릴 수 있단 말입니까. 비록 깊은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약 또한 쓰고 독하기가 비할 데가 없을 것이나, 그것이 두려워 병을 그대로 방치 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전하, 이제 신(臣)들이 바라기는 비록 현재까지도 사법기관이 복설되지 아니하고 있지만, 종묘사직을 온전히 보전하며, 본조의 옛 영화를 되찾고, 백성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하여 저들의 처단을 강력히 원합니다. 더 이상 사법기관이 복설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저들이 활개 치도록 방치하는 것은 깊은 병이 걸려 신음하는 병자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도록 바라만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전하, 이제 저들로 인하여 바야흐로 본조가 더 이상 분열(分裂)될 수 없을 만큼 분열되어, 백성들은 서로를 시기하며 헐뜯기를 반복(反復)하니, 대행대왕께서 본조를 일으켜 세우신 이후에 많은 혼란(混亂)이 있었지만, 이러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시기에 저 옛날 대동계를 조직하여 본조(本朝)의 전복(顚覆)을 꾀하였던, 정여립같은 자가 다시 살아 돌아와, 저들 무리를 선동하여 백성들을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면, 이 나라의 종묘사직(宗廟社稷)이 위태로움은 물론이요, 그 때에 이르러 저들을 처단하지 않았음을 땅을 치며 후회한들 늦을 것입니다.

또한, 작일(昨日)에 한성부 판관의 주관으로 열린 대질심문에 참여한 저들 무리는 평소(平素) 조정을 능멸(陵蔑)하는 언사를 일삼은 것도 모자라, 대질심문을 진행하지 못할 정도로 소란을 피우며, 한성부 판관의 통제(統制)를 따르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한성부 판관을 강박(强迫)하며 협박(脅迫)하기까지 하였으니, 결국에는 대질심문(對質審問)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아니하고 종료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전하,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저들의 목숨이 도대체 몇 개라도 되기에 이리도 조정을 능욕할 수 있단 말입니까. 태조께서 이 나라를 세우신 이래로 이처럼 조정을 능멸하고, 대소신료를 업신여긴 전례(前例)를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으니, 이들의 횡포(橫暴)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하, 그 동안 신(臣)을 포함한 7인은 눈을 떠 저들의 횡포를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움에 눈물이 앞을 가렸으며, 숨을 쉬고자 입을 열면 오로지 종묘사직을 위한 탄식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신(臣)들은 나라의 기강(紀綱)과 법도(法度)를 바로 세우지 아니하면 나라의 질서(秩序)가 무너진다고 하였던, 옛 성현의 말씀을 받들어 본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저들에게 나라의 기강과 법도를 통하여 잘못을 일깨워 주고, 다시금 전날의 태평성대를 이룩하는데 일조하기를 원하고, 또 원합니다.

또한, 신(臣)들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저들을 처단(處斷)하지 못한다면, 훗날 무슨 낯으로 지하에 계신 열성조(列聖朝)를 만나 뵙겠습니까. 다만 신(臣)들은 죽음으로서 불충을 씻고, 지하에 계신 열성조 앞에서 망국(亡國)을 막지 못한 대죄를 청할 것입니다.

전하, 부디 이러한 신(臣)들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개국616년 3월 6일.
경기도 조산대부 김준호, 평안도 선략장군 김현유, 경상도 승의랑 한유찬, 한성부 병절교위 임상유, 경상도 적순부위 김희종, 강원도 통사랑 이만원, 전라도 효력부위 김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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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휴민
616('07)-03-08 14:03
한성부에 관련 사건의 처분을 하명한 바가 있으므로 일단은 판결을 기다리는 것이 당연하다.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그 후에 조치하여도 늦지 않다. 조정 관원으로서 관청의 수사와 판결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 일이지, 약간의 논란이 있는 것을 두고 마치 역적이라도 나타난 것처럼 분기하거나 동요하는 것이 어찌 합당한 일이겠는가. 중심을 잡고 차분하게 대응한다면 그리 확대될 사안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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