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
궐내 서각(書閣) - 상소문 등록 공간 (클릭)
작성자 김성
작성일 개국620(2011)년 3월 19일 (토) 00:34  [자시(子時):삼경(三更)]
ㆍ추천: 0  ㆍ열람: 461      
[승정원/주서] <일기> 승정원일기 : 개국613(2004)년 01월
상(上) 2년, 개국613(2004)년 1월 1일 기묘(己卯)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한성부판윤 하빈군 이휘가 박남이 칭송비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주무관청인 예조의 소견(所見)을 듣고 처분하겠소. 예조에서는 해당 의인(義人)에 대하여 '칭송비(稱頌碑)' 설치가 불가(不可)하다고 판단한 사유가 무엇인지 아뢰시오."
하였다.


1월 2일 경진(庚辰)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상(上)께서 4품 이상관 평정 및 과거, 인사 등에 관하여 전교를 내리셨다.
[전교]4품 이상관 평정 및 과거, 인사 등에 관하여
"금일까지 10여 일이 지나도록 홍문관 등에서 계본이 없는 것을 보면, 그만 결심하여 전교하여도 다른 의견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금일 이후로 4품 이상관의 평정기간을 2개월, 즉 60일로 연장한다. 근무일수 가감산 역시 기존과 같이 인사평정상의 근무일수 요건에 의거하여 60일이 차면 집행한다. 세제가 건의한, 필요 근무일수 확대를 참상관 이상까지 넓히는 문제는 추후 시행 여부를 고려하기로 한다.
과거 응시 자격과 급제시 혜택 등은 대전(大典:창국대전)에 정해진 내용이 있으므로 가능하면 그대로 시행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연1회 급제에 한해 가계 혜택을 시행하는 것으로 변경하고, 나머지 급제에 대하여는 장원은 근무일수 40일, 갑과는 30일, 을과는 20일, 병과는 10일을 가산하는 것으로 대치한다. 제도를 더욱 엄격하게 하여, 출사 이후 일생 1회로 제한할지 등의 여부 역시 추후 고려하기로 한다.
대과 또는 중시 급제시, 만약 유품자의 가계 후 품계가 초입사자의 처음 급제시 품계보다 낮을 때에는 그만큼 품계를 올려 준다. 예를 들면, 종9품 신분으로 을과에 급제하여 종8품이 되면 1계를 더해 정8품으로 올려 준다는 것이다.
아울러 인사 문제에 관하여 전교하자면, 이조와 병조 수장은 정5품 이하관에 대한 사령권을 행사하고, 이조와 병조의 전랑(銓郞:정랑과 좌랑)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의 정3품 당하 청직(淸職)에 대한 인사권인 통청권(通淸權) 및 전랑 자천권(自薦權)을 행사하는 것으로 각각의 업무 영역을 명확히 한다. 상황이 여의치 못해 전조(銓曹:이조와 병조) 수장이 곧 전랑일 때에는 해당 권한을 부득불 모두 행사하도록 하겠지만, 서로 다른 관리가 임명되어 있다면 마땅히 직임을 구분하여 대행한다. 즉, 삼사 당하관 및 전조 정랑과 좌랑에 대한 인사는 전랑들이 해당 관청의 상관에게 결재를 받지 않고 알아서 시행한다.
인사와 상벌은 인군(人君:임금)의 대권(大權:큰 권한)을 이루는 양대 축이다. 청직 당하관 및 일반직 5품 이하관의 인사를 의정부 등의 정1품 아문(衙門:관청)이 아닌, 정2품 아문인 이조와 병조의 관리들에게 맡긴 것은, 조정 대신(大臣)들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지, 군주가 관련 인사권을 아예 포기한 때문이 아니다. 인재를 등용하거나 물리치는 것은 오직 군주만이 할 수 있으니, 군주가 이를 행할 수 없으면 한 나라에 임금이 둘인 격이 된다. 교첩 등에 '임금의 명을 받들어(奉敎)' 등의 문구가 들어가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해당 권한을 모두 이조와 병조의 판서에게 일임하지 않고 전랑과 좌랑에게 주요 권한을 부여한 것은, '공론재하(公論在下)'의 원칙을 중시한 때문이고 이조와 병조 수장의 권한이 필요 이상으로 커질 것을 염려한 때문이다. 이들 모두 대체로 국초(國初) 이래 제도이고 내용 또한 받들어 계승할 만 한 것들이니,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옳다.
- 개국613년 정월 초2일"
하였다.
○ 병조정랑 신성룡이  사직소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사직을 윤허한다. 갑산부사의 차자가 있으므로 정랑의 의견을 따르기 어려우니, 병조 차임관으로 하여금 수장직을 수행하게 한다. 병조에서는 수장으로 장기간 근속한 정랑의 근무일수를 30일 가산하도록 하라. 인사 평정을 통한 승품이 더욱 엄격하게 되었고, 지금 정랑의 품계가 정3품 당하이기 때문이다."
하였다.
○ 전옥서주부 강조가 민국의 강철민 이병의 병역이탈 외2건에 대하여 계사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본 계사는 세제가 결단할 사안이지만, 지난 12월에 전교한 바가 있은데 어찌 계사가 이러한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였다.
○ 함경도갑산도호부사 서양갑이 병조 정랑의 사직소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차자한 바를 살펴 조처하였으니, 그리 알라."
하였다.
○ 이조참의 정재안이 작년 11월에 졸한 전 지중추부사 한양군 조조의 추시에 대해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추증이나 추시를 제외하고는 문(文)이나 무(武), 충(忠) 등의 시호를 받을 인물은 없다. 이에 관하여는 일전에 전교한 바가 있는데, 감히 '문(文)' 자를 포함하여 시호를 삼망(三望:3개 후보를 추천)하는 것인가. 진실로 '박학호문(博學好文)'의 '문(文)'이라 한다면, 지식이 산(山)과 같고 학문이 정밀하면서도 또한 광대해야 할 것인데, 실제 한양군의 경우는 그렇다고 할 수 없다. 본조에서 문장이 뛰어나고 학문이 높다고 말하는 것과 조종조 이래 시호를 정할 때 어떤 인물의 문장과 학문이 그렇다고 하는 것에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무(武), 충(忠), 정(正) 등의 글자 또한 같다. 본조 내에서는 병학(兵學:군사)에 밝고 조정과 군주에 충성스러우며 마음과 행실이 바르다고 칭할 수 있겠지만, 어찌 그러한 글자들로 시호를 삼을 수 있겠는가. 시호뿐만 아니라 묘호, 능호, 존호 등을 정하는 일에도 예외 없이 모두 같이 적용할 일이다.
지중추부사 한양군의 시호는 공정(恭定)으로 확정한다. 일을 수행함에 상하(上下)에서 믿고 의지할 만 하였고, 항상 조정과 백성을 생각하여 끊임없이 맡은 바 직책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그 노고를 생각한다면 공정이라 증시(贈諡)함이 여러 모로 합당하다고 여긴다."
하였다.
○ 한성부판윤 하빈군 이휘가 박남이 칭송비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니, 왕세제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주무관청인 예조의 소견(所見)을 듣고 처분하겠소. 예조에서는 해당 의인(義人)에 대하여 '칭송비(稱頌碑)' 설치가 불가(不可)하다고 판단한 사유가 무엇인지 아뢰시오."
하였다.
○ 한성부 백성 김규수가 인구 분포에 대해 상서를 올려 아뢰니, 왕세제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지방별 유효인구(有效人口)의 격차는 해당 지방관(地方官)의 노력 여하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다. 아울러, 조정이 나서서 백성의 거주지를 정해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지방의 발전을 저해(沮害)시키는 요소가 될 것이다. 최근에 호조에서 아뢴 바에 따르면 한성의 유효인구가 16인이고, 경기의 유효인구가 4인이니 도성(都城) 및 도성 주변의 인구편중(人口偏重)을 언급할만한 수준은 아닌 듯 싶다. 세제가 유생의 충정은 기억할 것이다. 다만, 상서(上書)를 보니 유생은 예법(禮法)을 더 익히는 것이 좋을 듯 싶다." 
하였다.


1월 3일 신사(辛巳)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이조참의 정재안이 평정기간 변경에 대해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정5품과 정7품의 경우도 있으니, 금번 근무일수 개정으로 인해 새삼스럽게 제기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외관직 연장을 2개월까지 허용할지, 평정이 불가한 기간을 근무일수로 환산할지, 아니면 관계된 관청의 그때그때 의견에 따라 조처할지 등에 관한 이조와 병조의 의견을 묻는다."
하였다.
○ 예조참의 이동진이 박남이 칭송비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었으나, '* 게시물 이전 과정에서의 본문 유실'로 기록이 남지 않았다.
○ 예조참의 이동진이 대부(大夫)의 과거(科擧) 급제(及第)에 따른 승품(陞品)에 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참의가 무엇인가 착오한 듯 하다. 과거 급제시의 혜택 변경은 종4품 이상에 한정한 것이 아니라, 조정 모든 관리에게 해당하는 것이므로 달리 고쳐 전교할 것이 없다.
과거 급제가 응시자 자신은 물론 가문과 지역의 큰 영광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최초 급제에 국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 번 급제하여 자신의 문장과 학문을 내외(內外)에 시험해 보인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리 풍토를 만들어야만, 성실한 근무와 평정을 통해 천천히 승진한 관리들이 비로소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과거 시험을 승품과 승진의 통로로 삼겠는가. 오늘 전교로 이러한 점을 분명히 한다."
하였다.
○ 승문원정자 신대치가 본조의 사법제도에 개선에 대하여 상소를 올려 아뢰니, 비답하기를,
" 불충분한 조사나 심리, 판결 등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대책이다. 백성 가운데 해당 피의자를 변호할 대리인을 우선 임명하여 관련된 사건을 변론하게 하되, 만일 나서는 자가 없다면 관선(官選) 대리인을 임명하여 충분히 반론하게 한다면 지금의 부족한 여러 제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장 좋은 것은 피의자 본인에게 변호 기회를 주는 것이나, 민국 사건의 경우에는 그것이 실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제는 이러한 점을 두루 살펴 시책을 펴도록 하라."
하였다.
○ 예조참의 이동진이 한성부 백성 박남이 칭송건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왕세제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예조의 의견에도 일리는 있으나, 마땅히 칭송비(稱頌碑)를 세워줄 만한 의로운 일을 행하였는데 의인(義人)의 생존으로 차후 신격화의 우려가 있다고 해서 포상의 등급을 격하(格下)하는 것은 옳지 않소. 의인에게 칭송비를 세워주는 목적이 의인이 당시에 행한 아름답고 의로운 행위를 널리 칭송하고 알려 만성(萬姓:만백성)이 본받게 하자는 것이지, 일생의 행적이나 업적 등을 전반적으로 평가하여 칭송하자는 것이 아니지 않소. 참의는 그간 예조의 상신으로 비(碑)를 세워 칭송한 의사자(義死者)의 선행 이전의 행적이 전부 의롭고 아름다웠다고 단언(斷言)할 수 있겠소. 과거에도 생존한 선행자나 효행자에 대하여 칭송비를 세워준 전례(典例)가 여러 차례 있었으니, 의인에게 특별히 드러난 결격사유(缺格事由)가 없는 한 비를 세워주는 것이 합당하겠소.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타 백성의 생명을 구한 효자(孝子) 박남이의 선행은 마땅히 비를 세워 칭송할 만하오. 예조에서는 평안도의 '재중교포 칭송비'에 준하여 칭송비를 한성부에 세우도록 조처하시오."
하였다.
○ 승문원정자 신대치가 사법제도 개선에 대하여 상서를 올려 아뢰니, 왕세제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 전하께서 이미 비답(批答)을 내리셨으니 세제가 별도로 하답할 필요가 없겠소."
하였다.
○ 한성부 유생 김규수가 민국의 선관위 사건에 대하여 상소를 올리니, 왕세제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조정이 민국(民國:대한민국)의 정쟁(政爭:정치상의 싸움)에 관여하여 정쟁을 중단시키는 등의 조처를 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더러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한, 본조의 조처가 민국에 의해 실제로 구현되지 않았을 때의 미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민국의 선관위(選管委: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가 정당(政黨)으로부터 대가성 금품을 수뢰(受賂)한 사실이 있다면 형조나 한성부에서 제반 경위를 살펴 관련자를 논죄(論罪)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의욕이 남다른 유생을 세제가 기억할 것이니 예법(禮法)을 좀 더 익히도록 하라."
하였다.


1월 4일 임오(壬午)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사헌부감찰 한백겸이 12월 포상자 및 징계자에 관한 합계를 올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합계하여 아뢴 바를 잘 알겠다. 전조(銓曹:이조와 병조)에서는 도호부사 서양갑(徐羊甲)과 찰방 조병옥(趙炳玉)에게 근무일수 10일을 가산하라. 지난 1월 2일에 선왕(先王)께서 포상한 전정랑 신성룡(申星龍)과 과인이 별도로 포상할 찰방 이현(李炫)은 제외한다. 금일은 과인이 즉위한 날이니 징계는 행하지 않는다. 다만, 추후로 이러한 일이 없도록 사헌부에서 엄히 경고하라.
- 이와는 별도로 전교한다. 금일 자로 세제시강원과 세제익위사를 폐(閉:닫음)한다. 근무유공(勤務有功)에 대한 포상은 우익찬 이현에게 근무일수 15일을, 보덕 이동진(李東珍)에게 근무일수 7일을 가산하는 것으로 그친다."
하였다.


1월 5일 계미(癸未)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한성부판윤 하빈군 이휘가 한성부 현황에 대하여 장계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병조에서는 하빈군(河濱君)에게 근무일수 10일을, 사용 김현유(金賢柳)에게 근무일수 7일을 가산하라.
- 이와는 별도로 전조(銓曹:이조와 병조)에 전교한다. 금일부터는 4품 이상관의 교지(敎旨)도 과인의 명(命)을 받아 전조에서 직접 조처하도록 한다."
하였다.
○ 황해도곡산군수 김병호가 황해도 현황에 대하여 장계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과인의 생각은 이러하다. 조정에서 민국(民國)에 선전관을 파견하여 본조의 호구(戶口)를 증가시키는 정책은 민폐를 초래할 소지가 다분하고, 나라의 위상을 크게 격하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가급적 지양하는 것이 좋겠다. 이에, 쉽지는 않겠지만 우연한 기회로 본조에 입조(入朝)하는 백성들과 기존에 입조하여 활동을 전개하다가 중단한 백성들을 지방관이 적극적으로 관리해 유효인구(有效人口)로 흡수시키는 정책이 지향할 만하다. 과인이 지방관에게 무리한 일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지방관이 본조와 자도(自道)를 생각하는 애정이 있다면 자도를 본적지로 하여 입조하는 신입백성에게 형식적으로 환영인사만을 해준 뒤, 뒷전으로 물러나 방관하기보다는 지방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신입백성이 단기간 내에 적응하여 자도에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또한, 정기적으로 개별서신(個別書信)을 띄어 그간의 안부를 묻고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 등의 성의있고 지속적인 관리를 행한다면 상호간의 신뢰와 인간관계(人間關係)가 형성되어 팔도(八道)의 사정이 지금보다는 많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기존에 입조하여 활동을 전개하다가 중단한 백성들에게는 활동을 권유하는 서신을 성의없이 통합적으로 띄우지 말고, 활동을 권유할 만한 백성을 소수로 선별하여 전자(前者)에 과인이 언급한 방법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면 점차적으로 활동을 재개하는 백성이 증가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도에 토론요소(討論要素)를 주기적으로 제공하여 토론문화(討論文化)를 정착시키고 관내 교육기관 및 모임을 활성화시켜 백성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요소가 많아진다면 자발적으로 정착하거나 활동을 재개하는 백성도 늘어 날 것이다. 과인도 뒷전에서 방관만 하지 않고 백관(百官)과 더불어 백성의 정착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하였다.
○ 한성부 유생 김규수가 민국의 선관위에 대하여 상서를 올려 아뢰니, 왕세제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조정이 민국(民國:대한민국)의 정쟁(政爭:정치상의 싸움)에 관여하여 정쟁을 중단시키는 등의 조처를 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더러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한, 본조의 조처가 민국에 의해 실제로 구현되지 않았을 때의 미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민국의 선관위(選管委: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가 정당(政黨)으로부터 대가성 금품을 수뢰(受賂)한 사실이 있다면 형조나 한성부에서 제반 경위를 살펴 관련자를 논죄(論罪)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의욕이 남다른 유생을 세제가 기억할 것이니 예법(禮法)을 좀 더 익히도록 하라."
하였다.
○ 세제시강원보덕 이동진이 동궁마마께 서연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아뢰니, 왕세제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 평소 성실했던 보덕이니 세제가 그간의 사정을 능히 짐작할 수 있겠소. 보덕은 죄(罪)를 청하지 말고 조속한 시일 내에 서연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시오."  
하였다.
○ 한성부판윤 하빈군 이휘가 삼가 동궁에 들어 세제 저하를 뵙습니다. 소관이 동궁을 찾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작년 12월 22일 저하께오서 미행하시어 한성부를 찾으셨을때 한성부의 교육기관을 찾지 못하시어 환궁하신 적이 있으심에 소관이 황공하여 백방으로 저하의 심려를 덜어드리고자 하였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오늘 저하의 심려를 덜어드릴 만한 기쁜 일이 있어 그를 아뢰고자 동궁에 들었나이다. 저하께서 노심초사하시며 기다리시던 본조 유일의 서원 청암서원의 강의가 다시 재개되었음을 아뢰옵니다. 한성부에서 정치 등에 식견이 유명한 유생 박상진을 강장으로 초빙하여 드디어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관내에 가득하니, 저하께서는 심려를 덜으셔도 될 것이옵니다. 저하께서 다시 한성부를 찾으신다면 소관이 앞장 서, 청암서원으로 길을 잡겠나이다."
하니, 왕세제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판윤의 노고가 크오. 전하께서 쾌복(快復:쾌차)하시면 잠시 출궁하여 서원을 돌아보겠소."
하였다.


1월 6일 갑신(甲申)
○ 상(上)께서 유교를 내리시고  개국613년(2004)년 1월 6일 자시(子時) 무렵 승하하셨다.
○ 한성부판윤 하빈군 이휘가 동궁전에 한성부 현황에 대하여 장계를 올려 아뢰었다.
○ 황해도곡산군수 김병호가 황해도 현황에 대하여 장계를 올려 아뢰었다.


1월 7일 을유(乙酉)
○ 국상(國喪) 중이다.
○ 선왕께서 유교를 내리시고  개국613년(2004)년 1월 6일 자시(子時) 무렵 승하하셨다.
[유교]
"세제 이하 문무백관에게 당부하노라.
과인의 몸이 평소와 같지 않아 지난 11월에 교서를 내려 세제를 책봉하고 12월에는 대리청정의 전교를 내렸으나, 끝내 병세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므로 유교(遺敎)를 내려 장차 일에 대비하고자 한다.
대보(大寶:옥새)를 세제에게 전해 과인의 뒤를 이어 즉위하게 하고, 그에 관하여 말한다.
과인이 비록 덕(德)이 없고 공(功:공업) 또한 없지만, 재위에 있으면서 지켜 고수하고자 한 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연두교서를 비롯해 그간 내린 교서와 전교를 살펴 헤아린다면 과인이 뜻한 바를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수 차례에 걸쳐 전교한 명령이 한결같다고 해서, 또 규정과 전례가 시종 일치한다고 해서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朝鮮)'을 '조선'답게 하려는 것만큼은 대체로 분명하게 하였다. 관제, 품계제, 과거제, 천거제 등을 현재와 같게나마 마련하고 유지한 것이나 혜종경렬대왕(惠宗景烈大王:광해군)을 추존하고 충의공(忠毅公:윤봉길), 충경공(忠敬公:최익현) 등을 추증하고 추시하는 일에 전후와 절차를 상세하게 밝힌 것은 대개 그와 같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문숙공(文肅公) 채제공(蔡濟恭)을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정조) 묘정에 배향하고자 하는 생각이 평소에 있었으나, 결국 시도하지 못한 것은 조정에 그보다 중대한 일이 산적해 있고 사업 자체에 선뜻 진행시킬 수 없는 어려움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제는 과인의 이러한 말을 유념하도록 하라.
인재를 등용하고 그 진퇴를 결정하는 것은 임금이 시행하는 매우 특별한 은전(恩典)이다. 때문에 인사 문제는 조정 관리들로 하여금 전담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니, 임금이 결단하여 그 거취를 결정하는 것에 모든 일이 달려 있다. 문관(文官)과 무관(武官), 잡직(雜職), 토관(土官) 가운데 직임을 맡길 자가 누구인지를 신중하게 고려한 후에 관직을 제수하며, 임명이 불가할 때와 다시 등용할 때, 물러서게 할 때 등을 일관되게 하여 전교해야 한다. 세제는 과인의 이러한 말을 유념하도록 하라.
좋은 일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 매우 아름다운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잘못된 일을 문책하고 징계하는 것 역시 조금도 늦춰서는 안 된다. 그리 하여야만 좋은 일을 칭찬하는 모습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될 것이고, 그 칭찬을 받는 사람이 스스로를 명예롭게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금이 시행하는 상벌(賞罰:상과 벌)은 매우 중차대한 일이니, 칭송과 포상만을 위주로 하여 정사를 펼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제는 과인의 이러한 말을 유념하도록 하라.
나라에 기강이 없으면 조정에서 하는 일이 치밀하지 못하고 시행할 명분 또한 없게 된다. 기강이 세워지는 것은 바로 의리(義理)가 모여서 되는 것인데, 의리를 진작하는 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인사와 상벌을 모두 합당하게 하고 시책과 제도, 법령, 행실 등을 모두 사리에 맞게 하는 것에 달려 있다. 또 어제 내린 명령과 오늘 내린 명령이 서로 다르면 백성들이 점차 따르지 않게 되고, 법(法)을 집행함에 항상 공정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점차 진실로 잘못된 것을 느끼지 않게 된다. 세제는 과인의 이러한 말을 유념하도록 하라.
임금이 장기간 국정을 비우게 되면 조정과 백성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된다. 과인이 행한 실정(失政:잘못된 정치)을 돌이켜 고찰해 본다면 능히 그 폐해를 알 수 있을 것이니,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과인이 처음으로 종묘에 고(告)한 내용과 실제 행동으로 보인 정사를 대조하여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다시는 그와 같은 불행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매사 노력할 것이다. 세제는 과인의 이러한 말을 유념하도록 하라.
세제 책봉을 단행하고 대리청정을 명한 것은 천명(天命:하늘의 명령)과도 같은 일이었으므로, 지극히 만류하고 간절히 청원하는 바가 있었다고 하여 도중에 그만두거나 되돌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으니, 당시 신하들 가운데 처신을 분명하게 하지 않은 자를 문책하거나 처벌하지 말라. 세제가 없었더라면 조정의 앞날을 기약할 수 있었겠는가. 아래에서 청하고 원한다고 하여 조금도 지체할 성질의 일이 아니였던 것은 이 때문이다. 세제는 과인의 이러한 말을 유념하도록 하라.
과인은 본래 불민(不敏)한 자로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 올라 만기(萬機:임금의 정무)를 친견(親見:직접 살핌)한 지 어느덧 만3년을 넘게 되었다. 그간 이룩한 성과가 전무한 실정이니, 이것을 보면 과인의 성품과 능력이 어떠하고 또 노력한 것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열성조(列聖朝:선대왕)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 죄가 될 뿐이고, 우둔한 군주를 맞이해 각처에서 임무를 다한 문무백관들의 노고에 미안할 뿐이다. 세제를 성심성의(誠心誠意)로 보필하여 나라가 흥성(興盛)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노력할 것을 제신(諸臣:모든 신하)들에게 마음으로 당부하는 바이다. 관직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조정 신하라면 과인의 이러한 당부를 새겨 듣기 바란다.
장례 문제 등에 관하여 말한다.
왕의 장례는 예의가 극도로 엄중하고 예식이 매우 복잡하였다. 허나 과인의 생전의 재위 기간에 이룬 치적이 없는데, 죽은 후에까지 조정 관리들과 백성들를 번거롭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은 간결하게 시행하고 불필요한 것을 피하도록 하는 것만이 과인이 마지막으로 펼 수 있는 시책이라 생각한다.
예법에 따른다면 빈전도감, 국장도감, 산릉도감, 부묘도감 등을 설치해야 할 것이나, 다만 국장도감만을 구성하여 장례와 관련된 일체 사무를 담당하게 한다.
예법에 따른다면 임종 5일 후에 입관하고 이어 5개월 간 재궁(梓宮:임금의 관)을 빈전에 안치한 상태에서 국장을 치르도록 해야 하나, 1개월을 1일로 계산하는 역월법(易月法)을 적용해 기본적인 장례 절차를 5일 안에 마무리하도록 한다. 즉, 임종 3일 후에 입관하고 이어 빈전에 안치한 지 2일 후에 관을 매장한다.
예법에 따른다면 상복을 입는 기간을 3년상으로 해야 할 것이나, 이 역시 이일역월(以日易月:1개월을 1일로 계산)의 역월법을 적용하여 3년상 27개월을 27일로 갈음한다. 국상이 난 후, 이 기간이 지나면 관리 이하 모든 백성이 상복을 벗고 평상시로 되돌아 가며, 좋은 날을 택해 신주를 종묘로 이관한다.
예법에 따른다면 시책문(謚冊文), 애책문(哀冊文), 비문(碑文), 지문(誌文), 시장(諡狀), 행장(行狀) 등을 의례 편찬해야 할 것이나, 이들 가운데 시호와 묘호 등을 정할 때에 필요한 행장과 시책문, 그리고 비문 정도를 제외하고는 구태여 찬술하지 않는다. 또 신주가 빈전에 있을 때 행장을 찬수를 완료하고 시호, 묘호, 능호 등을 확정해야 할 것이나, 이 역시 예법상의 기한에 얽매이지 않는다. 조정을 안정되게 하고 백성들이 평안하게 하는 실제 사업이 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니, 3년 혹은 5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조급하게 진행할 필요가 없다. 묘호나 시호가 없더라도 당장은 '대행대왕(大行大王)'이라 기술하는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교하니, 시호는 4자를 넘지 말도록 하라. 이는 과인 스스로가 종묘사직에 죄가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묘호는 반드시 종(宗)으로 할 것이다. 감히 조(祖)를 받을 수 없다. - 개국613년 정월 초6일
유교와 별도로 한성부에 비망기(備忘記)를 내린다. 정헌대부 한성부판윤 하빈군 이휘를 병조판서로 명하니, 과인의 사후(死後) 장례 기간 동안에 세제를 대리해 국정을 보좌하도록 하라. 이를테면 원상(院相)과 같은 격이다."
하였다. * 개국613년(서력2004년) 1월 6일 자정 무렵에 붕어(崩御:임금의 사망, 승하)함.
○ 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국장도감에 대하여 세제 저하께 아뢰기를,
"작일 자정 무렵, 금상께옵서 환후로 승하하시는 망극한 일을 당하였으니, 신 등은 통분함을 금할 길이 없나이다. 군주가 승하하시니, 신 등은 마땅히 그 목숨을 함께하여야 할 일이오나, 종사의 안위가 저하께 달려 있는고로 국사가 안정될 때까지 삼가 신의 목숨을 저하께 맡겨두려 하나이다. 백성을 사랑하고, 종사를 심려하는 대행대왕 전하의 유교를 저하께서도 보셨다시피, 저하께서는 전하의 유교를 골수에 새기심으로 향후 국정을 이끌어나가시는데 한 치의 어긋남이 없으시옵소서. 대행대왕께서 유교하신 바대로 신이 어마한 중책을 맡아, 국장을 주관하게 되어 다음과 같이 아뢰옵니다. 우선, 국장을 치루어 낼 국장도감의 인선에 대해 아룁니다. 국장도감에는 마땅히 도제조와 제조, 부제조가 있어야 하나 본조에 도제조의 책임을 감당할만한 자가 없는 고로, 소관이 제조에 봉직하여 국장을 주관하고자 하오며, 부제조로 예학에 능통한 예조참의 이동진을 삼고자 하옵니다. 향후 절차 진행에 필요한 부제조의 충원은 추후 저하께 아뢰고자 하오며, 지금은 시일이 급하매 먼저 이라 인선하고자 하는 것이옵니다. 다음으로 국장도감의 관청에 대해 아룁니다. 국장도감의 관청은 작년까지 녹훈도감이 있던 관청이 가장 나을 것이라 사료되오니, 그리 하시옵소서. 다음으로 대행대왕의 재궁이 능지를 택지하여 안장될때까지 오늘부터 오 일 간, 국장도감을 제외한 모든 관청의 정무를 중단하여, 온 조정이 대행대왕 전하 승하의 슬픔을 함께 하고자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대소신료를 포함한 팔도 각 백성이 상복을 국상기간 동안 착용하여, 호곡하게 하시옵고, 음주가무를 비롯하여 경사를 널리 알리는 일등을 엄히 금하시어, 나라 전체가 대행대왕의 유지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하니, 왕세자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세제는 감당할 수 없는 비통함에 정신마저 혼미(昏迷)하나 정신을 수습하여 상주(喪主)의 소임을 다해야 하니, 병판(兵判)은 유교에 따라 정무를 대리토록 하시오. 다만, 사안이 중한 것은 세제의 재결을 받도록 하시오. 국장도감(國葬都監)은 가급적 고례(古例)에 따라 총호사(摠護使)인 도제조(都提調:정1품)를 제외하고 제조(提調:종1품-종2품). 도청(都廳:정3품-정4품). 낭청(郞廳:종4품-종9품) 등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겠소. 청사(廳舍)는 녹훈도감이 있던 자리로 하겠소. 경(卿)을 국장도감 제조에, 예조참의 이동진을 도청에 명하니 국장(國葬)에 따른 제반 절차를 유교와 고례에 따라 소홀함이 없도록 진행하시오."
하였다. 


1월 8일 병술(丙戌)
○ 국상(國喪) 중이다.
○ 국장도감제조 겸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대행대왕 전하의 재궁 입관 및 빈전 설치의 국장과 관련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대행대왕 전하께오서는 갑신년 정월 초엿새에 유교(遺敎)를 남기시고, 자정 즈음에 승하하시어, 망극한 중에도 촉광례(觸광禮: 임금의 입과 코 사이에 솜을 얹어, 혼(魂)의 부재 여부를 가리는 의식)를 행한 후에 호곡(號哭:소리내어 슬피 움)을 시작하여 초혼(招魂:떠나간 왕의 혼을 다시 부르는 의식)의식을 행하였나이다. 대전내관이 대행대왕께서 승하하오신 전각의 지붕 위에 올라가 "상위복(上位復)"을 세 번 외치는 절차까지 이미 마쳤사옵니다. 이미 이와 관련하여 저하의 결재를 득하여, 국장도감을 옛 녹훈도감 청사에 설치하여 이미 업무에 들어갔으며, 각 관청에 파발을 띄워 국장 절차가 마무리되는 5일간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호곡하라 지시하였나이다. 예로부터의 고례에 따르면 급히 진행하여야 할 일이 아니나, 대행대왕 전하의 지엄한 유교가 있으시어, 부득이 내일자로 대행대왕 전하의 시신을 재궁(梓宮:임금의 관)에 입관하여 빈전(殯殿)에 모시고자 하나이다. 이미 대행대왕 전하의 시신을 목욕시키어 새 옷 아홉벌을 입혀 습(襲:염습)을 행하여, 평상에 모시어 "대행왕재궁(大行王梓宮)"이라고 쓴 명정(銘旌:죽은 자의 관직을 쓴 깃발)을 설치하고, 소렴(小殮:19벌의 옷으로 감싸는 것)까지 마친 상태이옵니다. 따라서 내일에 이르러 대렴(大殮:90벌의 옷을 감사는 것)을 한 연후에 대행대왕께서 즉위하신 해에 이미 소나무로 만들어 놓은 재궁에 입관하여 적당한 전각을 택하여 빈전(殯殿)으로 삼아 그 곳에 안치하고자 하오니 재가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적절한 능지를 택하여 모실 때까지 이틀 동안 저하께서 호곡하실 여막을 짓고자 하옵니다. 이 또한 재가하여 주시옵소서."
하니, 왕세제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 유교(遺敎)를 아니 따를 수는 없겠으나 승하(昇遐)하신 지 사흘만에 입관하여 빈전(殯殿)으로 모신다고 하니 세제의 비통함이 더욱 크오. 제조가 아뢴대로 행하되, 결단코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오."
하였다.


1월 9일 정해(丁亥)
○ 국상(國喪) 중이다.
○ 국장도감제조 겸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입관 및 빈전 안치에 대하여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작일 아뢴 바대로 대행대왕 전하의 시신을 전례에 따라 재궁에 입관하고, 빈전에 안치하는 절차가 무사히 마쳤음을 저하께 고하옵니다. 빈전 옆에는 저하께서 호곡하실 여막도 지어, 절차상 문제가 없게 처리하였음을 더불어 아뢰옵니다."
하니, '왕세제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아뢴 바를 잘 알았소."
하였다.


1월 10일 무자(戊子)
○ 국상(國喪) 중이다.
○ 국장도감제조 겸병조판서 하빈군 이휘 등이 저하께 대행대왕 전하의 재궁(梓宮:임금의 관)을 왕릉에 모시는 문제와 저하의 즉위식에 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대행대왕 전하께서 유교하시기를 "예법에 따른다면 임종 5일 후에 입관하고 이어 5개월 간 재궁(梓宮:임금의 관)을 빈전에 안치한 상태에서 국장을 치르도록 해야 하나, 1개월을 1일로 계산하는 역월법(易月法)을 적용해 기본적인 장례 절차를 5일 안에 마무리하도록 한다. 즉, 임종 3일 후에 입관하고 이어 빈전에 안치한 지 2일 후에 관을 매장한다"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내일이 재궁을 빈전에 안치한 이틀째 되는 날이므로 빈전에서 왕릉으로 옮겨야 하는 날이 되옵니다. 이에 재궁은 왕릉으로 옮겨 모시되, 신위(神位)는 궐내에 적당한 전각을 혼전(魂殿)으로 삼아, 차후 국장 종료후 종묘(宗廟)에 봉안할 때까지 혼전에 모시어 두고자 하나이다. 이에 따라 도감에서는 도청 이동진이 초안하여 내부적 논의를 거쳐 전호(殿號)를 삼망하여 아뢰오니, 혼전의 전호로 적절한 것을 택일하여 주시옵소서. 본시 전호란 국상기간 동안 대행대왕의 혼령을 모시는 혼전의 이름을 이르는 것이니, 이 전호는 통상 생각한다는 의미의 사(思), 그리워한다는 모(慕), 공경한다는 경(敬), 슬퍼한다는 애(哀), 영원하다는 뜻의 영(永) 등의 글자를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이번에도 고례(古例)에 따라 전호를 삼망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경애전(敬哀殿)이라 의망(意望)하니 이는 대행대왕께옵서 생전에 만백성을 위하여 하해(河海)와 같은 성은(聖恩)을 베푸신 공덕을 높이 공경(恭敬)하며, 또한 어버이를 잃은 것과 같이 대행대왕의 승하하심을 깊이 슬퍼한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는 모사전(敬慕殿)이라 의망하니 이는 대행대왕께옵서 아조(我朝)를 재창(再昌)하신 큰 뜻을 지극히 그리워하며, 더불어 생전에 만백성과 문무백관들을 널리 보살피시고 가르치신 업적과 공덕을 다시금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세 번째로는 영효전(永孝殿)이라 의망하니 이는 대행대왕의 공덕과 성은을 영원히 기리며, 후사(後嗣)를 이으실 세제저하와 문무백관들이 대행대왕께 이후로도 지극한 효성(孝誠)을 다할 것임을 다짐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더불어 아뢰옵기는 대행대왕 전하께서는 아직 시호나 묘호가 없으시어, 그 신위에 아무런 존칭을 쓸 것이 없으니, 대행대왕의 생전 업적에 비해 그 절차가 너무 초라하여 신하된 자로서 망극할 따름이옵니다. 비록 본국의 여건 상 그 절차는 간소하게 하였다 하더라도, 대행대왕 전하의 업적을 되새기는 것만은 어찌 간소하게 하여 열성조들에게 불충하겠나이까? 작년 개국일을 맞이하여 대소신료들이 합계로 존호(尊號)를 올렸으나, 스스로 높임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던 대행대왕께서 극구 사양하시기로 미처 올리지 못한 적이 있나이다. 이에 도감에서는 시호와 별개로 예전의 존호를 빈전에 올려, 대행대왕의 업적을 후세에 기리는 한편, 국장 절차 간소화로 인한 신하된 자로서의 죄를 만분지 일이나마 씻고져 하오니, 별단에 첨부된 옥책문을 확인하시고, 가부를 하교하여 주시옵소서. 다음으로 왕릉축조와 관련하여 아룁니다. 마땅히 산릉도감을 설치하여 능지를 택하고, 절차대로 하는 것이 가할 것이오나, 대행대왕 전하의 유교에 따라 간소하게 그 직임을 국장도감에서 대신하고자 하나이다. 대행대왕 전하의 재궁을 모실 능지(陵地)로 다음과 같이 삼망하고자 하오니, 저하께서 택일하여 주시옵소서. 마땅히 관상감(觀象監:천문,지리등을 연구하는 관청)의 지관(地官)으로 하여금 풍수지리를 면밀히 분석하여 길지(吉地)를 택하여 모시는 것이 상례일 것이오나, 조정의 여력이 그렇지를 못하여, 부득이 이미 만복(萬福)의 길지로 택일되어진 능지들 중에서 아룁니다. 우선 배산임수(背山臨水)한 지형 중 북쪽의 주산(主山)과 좌우로 흐르는 청룡과 백호의 산세, 남쪽의 안산(案山)이 있는 명당 중, 경기도 고양군 신혈면(현 고양시 신도동)에 위치한 서오릉 경내의 숙종희순대왕과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 두번째 계비 인원왕후(仁元王后) 김씨(金氏)의 능이 있는 명릉(明陵) 근처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현 강남구 내곡동)에 위치한 태종공정대왕과 원경왕후 민씨의 능이 있는 헌릉(獻陵) 근처,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현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영조장순대왕과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의 능인 원릉(元陵) 근처 등 세 곳을 삼망하오니 택일하여 주시옵소서. 저하께서 세 곳 중 한 곳을 택일하여 주시면, 도감에서는 경기도 감영에 명하여 서둘러 능역 조성에 착수할 것을 지시할 것이옵니다. 또한 대행대왕 전하의 재궁을 능에 안장하고 난 이후, 국상의 일 차적인 과정이 종료된 것이니만큼, 저하께서는 보위에 나가시어 대통(大統)을 이으셔야 할 것이옵니다. 이 또한 길일을 택하여 시행할 일이오나, 여력이 그러하지 못하므로 황송하오나 오는 12일에 즉위식을 거행하여야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저하께오서 대행대왕을 잃은 마음이 비통하시어 차마 행하지 못하다 하실까 염려되오니, 부디 선왕(先王)의 유지와 종사(宗社),신민(臣民)을 위하여 절대로 사양하지 마시옵기를 간청하나이다."
하니, 왕세제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혼전(魂殿)의 전호(殿號)는 고례. 선대왕의 전호. 도감의 삼망(三望) 등을 두루 감안하여 공경하여 높이 받든다는 의미의 '숭경전(崇敬殿)'으로 하는 것이 좋겠소. 고례에 따르면 혼전에 첫 번째로 모시는 신주(神主:신위)를 우주(虞主)라고 하는데, 이는 국장(國葬)을 치르는 날에 재궁(梓宮)을 거의 다 매장하였을 때 능(陵)에서 바로 제작하는 것으로 우주에는 시호(諡號)만을 써서 '모호(시호)대왕(某號大王)'라고 했소. 두 번째 신주인 연주(練主)는 국상(國喪) 1년 후에 첫 번째 제사인 연제(練祭)를 지내면서 제작하는데, 이때 연주에는 시호. 묘호(廟號). 존호(尊號) 등을 모두 썼소. 아울러, 우주는 연주를 모시는 날에 종묘 뒤뜰에 매장하였소. 아직 행장(行狀)이 마련되지 않아 시호을 정해 올리기가 어려우니 우주에는 '대행대왕(大行大王)'으로 쓰시오. 연주에 대한 것은 추이를 지켜본 후에 결단하겠소. 다만, 연제는 역월법에 따라 국상 12일째 되는 날에 지내는 것으로 하겠소. 능지(陵地)는 지세(地勢)와 기후를 두루 감안하여 경기도 고양(高陽)이 적지인 듯 하며, 사위(嗣位:즉위) 절차에 대한 것은 고례를 따라 모두 행하기가 어려우니 정무를 대리하는 경(卿)이 맡아서 간소하고 간략하게 준비하시오."
하였다.
○ 한성부 유생 한서후가 귀여니라는 자를 처벌 하라는 상소를 올려 아뢰니, 왕세제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귀여니에 관한 것은 작년 8월 17일에 형조에서 이미 조처하였으니, 유생은 크게 심려치 말고 학문에 정진하라."
하였다.


1월 11일 기축(己丑)
○ 국상(國喪)을 마쳤다.
○ 국장도감제조 겸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국장 및 신주 봉안 완료와 관련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갑신년 정월 초열하루, 국장을 치루기 위해 빈전(殯殿)에 나아가 계빈의(啓殯儀:빈전의 문을 여는 의식)을 치루었나이다. 국장도감의 제조인 신이 "삼가 좋은 날 빈전을 열게 되었음"을 아뢰고, 빈전을 열어 재궁(梓宮:임금의 관)을 대여(大輿)에 옮겨 조전의(祖奠儀:먼길을 무사히 가길 비는 의식)와 견전의(遣奠儀: 상여를 떠나보내는 의식)를 행한 후, 발인하였나이다. 군사들과 상여매는 자, 대소신료들이 행렬을 호위하며 뒤따라 숭례문 밖에서 노제(路祭)를 지낸후 정해진 능역(陵域)인 경기도 고양군 신혈면(현 고양시 신도동) 명릉(숙종대왕릉) 근처로 행하였습니다. 국상행렬이 능역에 도착하여 현궁(玄宮:재궁을 모시는 지하석실)에 잡귀를 막기위하여 사방 모퉁이를 친 연후, 재궁을 현궁에 들이는 하현궁(下玄宮)을 진행하였나이다. 대행대왕께서 살아생전에 사용하시던 부장품을 함께 묻은 연후에, 신이 흙을 아홉삽 퍼서 현궁위를 덮었고, 다음으로 역꾼들이 봉분을 조성하는 일을 마무리하였고, 대여 등은 불에 태우는 전례에 따라 그리 하였나이다. 봉분을 만들고 동,서,북 3면에 곡장(曲墻:봉분 주위로 두루는 붉은 나무담)을 두르고, 봉분 밑부분은 12각의 병풍석을 둘러 보호하였고,병풍석의 중앙 면석(面石)에는 십이지상을 해당 방위에 맞게 양각하여 새겼사옵니다. 또한 병풍석을 둘러싸고 있는 봉분 주우에는 난간석(欄干石: 봉분 주위에 돌로 두른 난간)을 둘러 쳤고, 난간석 바깥으로 석호(石虎) 네 마리와 석양(石羊) 네 마리를 밖으로 향하게 세워 봉분을 호위하게 하였고, 봉분 앞에는 상석(床石)을 세웠고, 상석 좌우에는 망주석(望柱石)을 세우고, 그 아래에는 장명등(長明燈)을 세웠나이다. 장명등 좌우에는 문인석(文人石) 1쌍을 석마(石馬)를 대동시켜 세웠으며, 아래로 무인석(武人石) 1쌍을 시립시켜 봉분을 호위하게 하였나이다. 무인석으로 부터 아래로 사초지(莎草地)를 조성하였고, 향후 제향(祭享)을 위하여 정자각(丁字閣)을 세웠고, 정자각 앞으로는 참도(參道)를 닦고, 능 어귀에는 홍살문을 세워 신성한 권역임을 표시하였나이다. 또한 저하께서 하교하신대로 대행대왕 전하의 우주(虞主:신주)를 숭경전(崇敬殿)이라 칭한 혼전(魂殿)에 봉안하는 절차까지 완료하였나이다. 능역의 공사와 관련하여 해당 지방관인 경기도 관찰사 해원군 최영과 그 역꾼들의 노고가 많았사옵니다. 상기의 모든 절차는 전례대로 국조오례의를 따라 행하고자 하였으나, 부족한 점이 많았나이다. 향후 조정의 여건이 허락되는 대로 능참봉을 임명하여 능을 수호하게 할 것이며, 도감에서 절차대로 진행하여 마땅한 능호(陵號) 등을 정하여 아뢸 것이옵니다."
하니, 왕세제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도감과 경기감영이 수고한 바를 잘 알았소. 이는 추후에 치하토록 하겠소."
하였다.
○ 국장도감제조 겸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대행대왕께 원상(院相)대행으로 명을 받음으로 인하여, 명일(明日) 이루어질 세제 저하의 즉위절차와 관련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나라의 국통(國統)은 하루라도 비워둘 수 없는 것이므로, 비록 대행대왕의 승하와 관련하여 만 백성의 슬픔이 가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저하께서 보위(寶位)를 이으시는 일은 하루도 늦출 수 없는 고로, 명일에 저하의 즉위절차를 다음과 같이 거행하고자 하나이다. 우선 저하께서 머무실 천막을 빈전의 문밖, 동쪽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용상(龍床) 역시 그 안에 남향하여 설치 할 것이옵니다. 이어 승지가 대행대왕의 유교를 넣은 함(函)을 빈전의 찬궁 남쪽에 놓은 후, 옥새(玉璽)를 그 남족에 놓을 것이옵니다. 다음으로 예조참의가 저하께서 계오신 천막에 가서 면복(冕服:임금의 의복)을 입으시길 청하오면, 저하께서 상복(喪服)을 벗으시고, 면복으로 갈아입으시면 그때서야 저하께서는 왕세제가 아닌 사왕(嗣王:후계왕)으로 불리시게 되옵니다. 이후 저하께서는 천막에서 나오셔서 빈전 앞에 서시고, 신이 대행대왕 전하의 유교가 들어 있는 함과 옥새를 받들고, 사왕이 되신 저하 앞에 부복(俯伏:고개를 숙이고 엎드림)하여 꿇어 앉으면, 사왕이 되신 저하께오서는 빈전의 동쪽계단을 통해 오르시어 찬궁앞에 꿇어 앉으시면 되옵니다. 신이 유교를 사왕이 되신 저하께 올리오면, 사왕이 되신 저하께오서는 이를 받어 보시고, 근시(近侍:가까이 있는 신료)에게 주시고, 옥새 역시 그리 하시면 되옵니다. 그 절차를 마친 후 사왕이 되신 저하께오서는 다시 동쪽 계단으로 내려오시어 천막으로 돌아가시고, 용상(龍床)을 정전(正殿) 한복판에 남향하여 설치할 것이옵니다. 그리되면 사왕이 되신 저하께서는 천막에서 나오셔서 여(輿:수레)를 타시어, 옥좌에 오르신 후 향로를 피우시고, 문무백관들이 천세(千歲)를 외치며 하례드리는 것으로 즉위절차를 마치시게 되옵니다. 본조에서는 이 즉위절차를 모두 간소화하여, 저하께오서 내일 국왕게시판에 즉위교서를 올리시고, 이에 맞추어 조정신료들이 어전게시판에 '하례(賀禮)'를 올리는 것으로 저하의 즉위 절차를 가름하고자 하오니, 삼가 하교를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내일 저하의 등극 절차 완료 후에 지금껏 중단되었던 조정의 각 관청과, 지방의 감영들의 정무를 재개하여 정상화하고자 하오니, 이 역시 하교하여 주시옵소서."
하니, 왕세제가 전하를 대신하여 비답하기를,
"즉위에 관한 것은 아뢴대로 하겠소. 명일부터 조정의 정무를 재개토록 조처하시오."
하였다.


1월 12일 경인(庚寅)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왕세제께서 금상에 등극하시었다.
○ 상(上)께서 즉위 교서를 반포하셨다.
[교서] 즉위교서
"왕(王)은 이르노라. 내가 일찍이 세제(世弟)의 자리에 오를 때에도 덕(德)과 자질이 크게 부족하여 이를 겸손하게 사양하려 하였으나, 종사(宗社:종묘사직)의 훗날을 염려하시는 선왕(先王)의 지극하신 뜻을 헤아려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헌데 세제에 책봉된 지 한 달여 만에 선왕께서 갑작스럽게 승하하시니, 이제 내가 존위(尊位:왕위)를 마다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나 종사의 안위를 생각하여 삼가 천명(天命)을 받들어 옥좌(玉座)에 올라 교시(敎示)한다. 일찍이 내가 사책(史冊:역사서)을 살펴보건대 삼황오제(三皇五帝) 이후로 제왕의 자리에 오른 이의 수(數)가 대개 오백을 헤아렸다. 허나 그 가운데 천덕(天德:하늘의 덕)을 행하여 성(聖), 명(明), 덕(德), 인(仁) 등의 이름을 얻은 이는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오히려 백성들에게 신의를 잃어 배척을 당한 끝내 나라가 쇠하여 쓸쓸하고 이름도 없이 죽어간 제왕의 수가 많은 지경이었다.
무릇 군왕(君王)이 된 자에게 있어서 '천륜지경(天倫地經)'이라 함은, 위로는 하늘을 공경하고 아래로는 땅을 섬기며 종묘(宗廟)에 나아가 제사를 지낼 때에는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열조(烈祖:선대왕)를 모시고, 제신(諸臣:모든 신하)과 만백성을 경영함에는 신(信)과 의(義)를 다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성명덕인(聖明德仁)의 이름을 얻은 제왕들은 일찍이 이러한 '정경대원(正經大原:바른 길과 큰 원칙)'의 이치를 지켰기 때문이며, 그러하지 못한 이들은 군왕으로서의 그러한 바른 길과 큰 원칙을 지키지 못한 때문이다.
이제 비로소 그대들 문무백관 이하 만백성에게 이른다.
본디 정치(政治)는 이론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영하며 배우는 것이니, 이제 나는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섬김에 열(熱)과 성(誠)을 다할 것이다. 또한 종묘에 나아가 열조를 모시고 그대들 신하들과 백성들을 경영함에 몸소 모든 힘을 다 쏟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제 내가 제모(帝謨:군왕의 계책)를 다하여 만물을 생성하여 기르고, 태화(太和:신라 진덕여왕 때)와 옹희(雍熙:고려 성종 때)의 치(治: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마땅히 나를 도와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항상 나에게 이치에 맞고 도리(道理)에 준하는 바르고 옳은 말로써 규간(規諫:간쟁)하여 허물을 고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잊지 말 것이다.
행신(行身:처신)의 기준은 오교(五敎:오륜)로 삼도록 하라. 스스로의 몸과 마음에 바르지 못한 기운을 담지 말고 사기(士氣)를 이루어 도야(陶冶:심신 수양)에 정진하고 풍속과 문화를 아름답고 바르게 꾸미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변함없는 '지공무사(至公無私: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음)'의 마음으로 위로는 군왕의 정사를 돕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타이르고 경계하는 것으로 나를 받들도록 하라.
아아, 옛말에 이르기를 무릇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創業易守成難)'고 하였거늘, 선왕께서 재창(再昌:다시 일으킴)의 어려움을 감당하셨으니 이제 마땅히 내가 수성의 어려움을 감당해야 하는 바, 그대들이 나를 도와 힘을 써준다면 어찌 내가 후일에 천덕을 몸으로 행하지 못하였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모두 힘써 받들어야 할 것이다. - 개국613년 정월 12일"
하였다.
○ 국장도감제조 겸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금상 전하의 즉위하심에 대하여 하례를 드렸다.
○ 이조참의 정재안이 주상전하의 즉위하심에 삼가 하례를 드렸다.
○ 호조산사 김지수가 금상 전하의 즉위하심에 삼가 하례를 드렸다.
○ 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병조 수장 평정과 관련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전정랑 신성룡(申星龍)의 평정결과는 조만간 병조로 내리겠소. 병판의 근무일수는 8할(割)을 보존토록 하시오."
하였다.
○ 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제16차 소과 채점에 참여한 시관진 포상에 대해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 병판(兵判)이 아뢴 바를 잘 알겠소. 예조의 계본을 본 후에 조처하겠소."
하였다.
○ 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4품관 평정기간 연장으로 인한 후속조치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이조의 의견을 듣고 결단하겠소."
하였다.
○ 이조참의 정재안이 지방관 평정등에 대해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덕수군 이완(李浣)과 해원군 최영(崔瑩)의 근무일수는 각각 7할(割)을 보존토록 한다. 다만, 금번에 왕릉을 축조하는데 공로를 세운 해원군은 1할을 더해 보존토록 한다. 지방관 근무를 연장할 수 있는 기간은 종전처럼 1개월을 원칙으로 하되, 평정과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전조(銓曹:이조와 병조)에서 1개월을 더 연장해 주도록 한다. 지방관 임명을 참상관 이상으로 제한하는 문제는 과인이 쉽게 용단(勇斷:결단)할 사안이 아니다. 일단, 병조와 삼사(三司: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의견을 들어 보겠다. 참의 이동진(李東珍)의 가자를 논의하게 하는 문제는 좀 더 상량한 후에 결단하겠다."
하였다.
○ 이조참의 정재안이 인사문제 등에 대해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과인도 조만간 당상관 인사를 단행하여 조정의 분위기를 쇄신할 계획이니 참의는 크게 심려치 말라. 소과 입격자 중에서 특별히 등용하던 제도를 폐지하거나 천거를 제한적으로 행하는 문제는 일단, 병조와 삼사(三司: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의견을 들어 보겠다."
하였다.


1월 13일 신묘(辛卯)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사헌부감찰 한백겸이 금상 전하의 즉위하심에 대하여 삼가 하례를 드렸다.
○ 전옥서주부 강조가 금상 전하의 즉위하심에 삼가 하례를 드렸다.
○ 국장도감제조 겸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국장도감 관원 추가 임명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조만간 당상관의 인사를 단행할 예정이니 제조의 뜻을 반영하여 조처하겠소. 헌데, 이 달 18일에 지낼 연제(練祭)는 어찌 할 계획이오."
하였다.


1월 14일 임진(壬辰)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계공랑 홍문관저작 박영효가 금상 전하의 즉위하심에 대하여 삼가 하례를 드렸다.
○ 함경도갑산도호부사 서양갑이 이조 참의의 주청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도호부사가 아뢴 바를 잘 알겠다. 일단, 병조와 삼사(三司: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의견을 들은 후에 결단하겠다."
하였다.
○ 이조참의 정재안이 자신의 평정과 한성부 백성 개명에 대해 계목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개명은 아뢴대로 하라. 평정결과는 승정원을 통해 내리겠다. 금일 이후로 전조(銓曹:이조와 병조) 수장의 평정은 승정원에서 계(啓:보고)하라."
하였다.
○ 예조참의 이동진이 주상전하의 즉위하심에 삼가 하례를 드렸다.
○ 예조참의 이동진이 제16차 소과 채점에 참여한 시관진 포상(褒賞)에 대해 계목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금번 소과에서 시관직을 성실히 수행한 관리들은 전례에 따라 근무일수 5일을 가산하라. 시관직을 수행하지 못한 곡산군수 김병호(金炳昊)와 판관 조운(曺雲)은 파직한다. 아울러, 지난 8월 15일자 전교에 따라 해당하는 근무일수를 감하라."
하였다.
○ 한성부 생원 양귀헌이 조정에 백제사 연구를 명하라는 상소를 올려 아뢰니, 비답하기를,
"이는 본 조정(朝廷)의 여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생원이 개인적으로 '백제사 연구회' 같은 모임을 개설하여 민간 차원에서 연구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1월 15일 계사(癸巳)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상(上)께서 주요 당상관에 대한 인사를 단행 하는 전교를 내리셨다.
"주요 당상관에 대한 인사를 단행한다.
- 전평안도관찰사 덕수군 이완(李浣)을 이조참판 겸 군자감제조로 삼는다. 전경기도관찰사 해원군 최영(崔瑩)을 예조참판 겸 선공감제조로 삼는다. 이조참의 정재안(鄭宰安)을 형조참의 겸 국장도감도청으로 체직한다. 예조참의 이동진(李東珍)을 승정원우승지 겸 경연참찬관으로 체직한다.
- 과인이 행한 이번 인사는 경륜이 있는 당상관들을 주요 수장직(首長職)에 기용하여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도모하고자 함이다. 차후에는 전조(銓曹)의 전랑(銓郞)급 인사를 단행하여 전랑들로 하여금 참신한 당하관들로 삼사(三司)를 구성토록 하겠다. 이는 혁신적인 정치를 펼치기 위함이다.
- 이조에 명(命)한다. 금일부터는 호조와 공조에 겸직 제조를 두어 그 수장직을 대행토록 하겠다. 이에, 과인의 별명(別命)있을 때까지 호조와 공조에는 별도로 관원을 두지 않는다. 아울러, 금번 인사로 근무일수에 손해가 발생한 당상관은 8할(割)로 보전해 주도록 한다.
- 끝으로 이조에서 계청(啓請)한 이동진의 가자는 당상관 승품의 새로운 선례(先例)를 남기고자 윤허하지 않는다. 다만, 이동진을 우승지에 기용한 것으로 과인의 신임을 표한다.
- 개국613년 정월 15일" 하였다.
○ 사헌부감찰 한백겸이 지방관 임명에 대한 품계 제한 문제와 관련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병조와 옥당(玉堂:홍문관)의 의견을 듣고 결단하겠다."
하였다.
○ 충청도 진사 이덕무가 소과 시돤에 대하여 상소를 올려 아뢰니, 비답하기를,
"소과 시관직을 미수행한 관리들은 전례에 따라 파직하였다. 과인이 즉위 후에 일부 당상관들의 근무일수 보존과 포상을 후하게 조처한 것은 달리 생각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니 진사는 크게 심려치 말라."
하였다.
○ 한성부 유생 한원배가 관닥을 되돌려 주옵소서라며 상소를 올려 아뢰니, 비답하기를,
"봉작 후에 아무런 고지(告知:사실을 관청에 알림)없이 장기간 활동을 중단하였다면 '승품체직절목'에 근거하여 품계를 몰수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이번에는 급제(及第)의 의지를 감안하여 다시금 출사할 기회를 주도록 하겠다. 이조에서는 지난 전례에 따라 급제의 품계를 종9품 장사랑으로 회복해 주도록 하라."
하였다.


1월 16일 갑오(甲午)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상(上)께서 정기 대과에 대하여 예조에 전교를 내리었다.
"정기 대과 시행에 관하여 예조와 병조에 명(命)한다.
과인은 선왕(先王)의 유지를 받들고, 조종조의 전례를 감안하여 대과(大科)를 정상적으로 시행하고자 하니 예조와 병조에서는 서둘러 준비하라. 대과는 설 연휴를 피해 정월 26일부터 30일까지 만 5일간 시행하는 것으로 한다. 시관(試官)의 명단과 시제(試題)는 20일 이전에 직계(直啓:직접 아룀)하되, 시제는 비문으로 계하라.
하였다.
○ 한성부판윤 대행 하빈군 이휘가 한성부 백성 김규의 개명과 관련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정무(政務)를 가벼이 처결한 과인의 책임도 적지 않소. 경(卿)도 이후론 주의토록 하시오. 이조에서는 판윤대행이 아뢴 사안을 수정한 뒤, 처결하라."
하였다.
○ 홍문관저작 박영효가 지방관 임명 등에 관련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아뢴 내용은 잘 알겠다. 다만, 불필요한 군역(軍役)을 부과해서 강제로 백성을 동원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나라를 흥하게 하는 것인지, 망하게 하는 것인지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라."
하였다.
○ 형조참의 정재안이 김규의 개명건에 대해 죄를 청하는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과인의 책임도 적지 않다. 참의도 이후론 주의토록 하라."
하였다.


1월 17일 을미(乙未)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국장도감제조 겸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도감 업무및 낭청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기를,
"대행대왕께서 승하하신 이후 1년째 드리는 연제(練祭)의 날짜가  1개월을 1일로 계산하는 역월법(易月法)으로 인하여 열이틀이 되는 내일에 치루는 것으로 되어 있나이다. 재궁을 능(陵)에 모실때 혼전(魂殿)에 모셨던 우주(虞主)를 내일 종묘에 묻고, 새로이 연주(練主:연제 후에 혼전에 모시는 대행대왕의 신위)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국조오례의나 예전의 관례를 보면 마땅히 연주에는 대행대왕의 시호(諡號)와 묘호(廟號),존호(尊號)를 모두 써서 혼전에 모시고, 이후 좋은 날을 받아 그를 종묘에 보셔야 하는데. 아직까지 대행대왕의 시호나 묘호를 정하지 못하였으니, 연주에 아무 것도 적지 못하는 불충을 저지르게 되었나이다. 그렇다하여 관례를 어기고 우주를 그대로 둘 수 없는 일이며, 처음으로 드리는 제사인 연제를 생략할 수 도 없는 일이라, 이리 전하께 아뢰는 것입니다. 대행대왕의 연주에는 무엇이라 써야 할 지 전하께서 하교하여 주시옵소서. 다음으로 도감의 충원에 대하여 아룁니다. 도감에 실무를 담당할 낭청을 물색하던 중 마침 예조 권지교서관저작 조광윤이 그 직임을 맡을 수 있다하니, 이 어찌 반가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권지 저작으로 하여금 국장도감 낭청 직을 수행하게 하시어 대행대왕의 국장이 성대하게 마무리 될 수 있도록 하교하여 주시옵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일전에 도감에서 아뢴 존호(尊號)는 윤허할 수 없으니, 연주에는 '대행대왕(大行大王)'으로 쓰시오. 조광윤(趙匡胤)을 낭청으로 임명하는 문제는 좀 더 상량한 후에 결단하겠소.
- 조광윤이 권지로 등용된 지 1개월이 지났으니, 이조에서는 정직(正職:실제 관직)에 관한 의견을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 승문원부정자 한원배가 관직 회복시 품계 강등에 대하여 상소를 올려 아뢰니, 비답하기를,
"활동을 재개하였다고 하여 어떠한 불이익도 없이 과거의 관작(官爵:관직과 작위)을 모두 회복해 준다면 조정의 기강은 어찌 되겠는가. 과거에 종7품에서 품계가 몰수되었던 급제 권율(權慄)은 몰수 전 행적이 바르지 못하여 3계를 강등하여 정9품으로 회복해 준 전례도 있다. 아울러, 과인에게 상소를 올렸다고 하여 모두가 관작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인이 부정자의 의지를 받아들였기에 별다른 절차 없이 바로 이조에 명(命)하여 관작을 회복해 주었던 것이다."
하였다.
○ 한성부 진사 김규가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며 상소를 올려 아뢰니, 비답하기를,
"상소한 내용만으론 사정(事情)을 판단하기가 어렵다. 형조에서 경위를 조사하여 규례(規例:규정)에 따라 처결하라."
하였다.
○ 승문원부정자 한원배가 여의정 공석에 대하여 상소를 올려 아뢰니, 비답하기를,
"현재 정1품에 오른 당상관이 없으니 상소한 바는 가납(嘉納)할 수 없다. 부정자는 행신(行身:처신)이 가벼운 듯 하다."
하였다.


1월 18일 병신(丙申)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국장도감제조 겸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대행대왕의 연제를 오늘 거행하였기로 계목을 올려 아뢰기를,
"오늘이 역월법으로 계산하여 대행대왕의 연제를 지내옵고, 우주(虞主)를 혼전(魂殿)인 숭경전(崇敬殿)에서 내어 종묘 뒷 뜰에 파묻고, 밤나무로 연주(鍊主)를 만들어 하교하신대로 '대행대왕'이라 적은 연후에 또다시 숭경전에 봉안하는 절차를 완료하였나이다. 차후 국상이 끝나는 날에 좋은 날을 택일하여 이 연주를 종묘 정전에 봉안하고, 추후 도감에서 묘호와 시호를 어명받아 확정되오면 이 연주에 그를 새기어 다시 봉안하는 절차를 밟고자 하오니, 이를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국상 2년째 되는 날에 지내는 상제는 생략할 것이니, 국상이 종료되는 익월 초2일에 담제를 지낼 수 있도록 준비하시오. 이 날부터는 상복을 벗고 평상시의 의복으로 환복(換服)해도 좋소. 담제를 지낸 후에는 별도로 부묘도감을 설치하지 않을 것이니, 국장도감에서 부묘제(혼전의 신주를 종묘로 모시는 의식)를 행할 길일을 정해 아뢰시오."
하였다.
○ 사헌부감찰 한백겸이 소과 입격자들의 등용 폐지와 천거제 문제에 대한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아뢴 바를 잘 알겠다. 다른 의견들을 듣고 결단하겠다."
하였다.
○ 병조판서 하빈군  이휘와 용양위사용 김현유 등이 하교하오신 소과 입격자 등용 폐지 등에 대하여 병조의 의견을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아뢴 바를 잘 알겠소. 다만, 이조의 수장이 교체되었으니 이조의 의견을 다시 듣고 결단하는 것이 좋겠소.
- 이조에서는 이에 관해 의견을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1월 19일 정유(丁酉)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이조참판 덕수군 이완이 이조참의 통정대부 정재안 평정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평정한 결과와 아뢴 내용을 잘 알겠다. 권지교서관저작 조광윤(趙匡胤)을 국장도감낭청으로 명(命)한다."
하였다.
○ 충청도 진사 이덕무가 천거 문제에 대하여 상소를 올려 아뢰니, 비답하기를,
"아뢴 바를 잘 알겠다. 과인이 깊이 상량한 후에 결단할 것이니, 진사는 크게 심려치 말라."
하였다.


1월 20일 무술(戊戌)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제12차 대과 무과 시제를 계봉을 올려 아뢰었다.
○ 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금번 제12차 대과 무과 시관진에 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달리 방법이 없다니 시관은 아뢴대로 하시오. 별도로 계(啓:보고)한 시제도 윤허하오."
하였다.
○ 사헌부감찰 한백겸이 삼가 계하(階下)에 꿇어앉아 죄를 청하는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사직을 청한 것으로 알겠다. 후임이 정해지면 직을 면(免)할 수 있도록 조처하겠다. 이조와 병조에서는 헌부의 직임을 감당할만한 관리를 탐문하여 계(啓:보고)하라."
하였다.
○ 예조참판 해원군 최영이 제12차 대과 문과 시제에 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었다.
○ 예조참판 해원군 최영이 12차 대과 문과 시관진에 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시관과 별도로 아뢴 시제를 윤허한다.
- 이와는 별도로 명(命)한다. 전례에 따라 설 연휴인 명일부터 25일까지 상소를 제외하고는 조정의 공무(公務)를 중지한다."
하였다.


1월 21일 기해(己亥)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월 22일 경자(庚子)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상(上)께서 개국613년 갑신년 연두교서를 반포하셨다.
"갑신년(甲申年) 정월에 교서를 내린다.
선왕께서 갑작스럽게 승하하시어, 덕과 자질이 크게 부족한 과인이 군주의 자리에 오른 지 이제 고작 십여 일이 지났을 뿐이다. 즉위하면서 그대들 제신(諸臣:모든 신하) 이하 만백성에게 간곡한 당부를 한 지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달리 교서를 내려 명령할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또한, 나랏일에 밝지 못한 과인이 어찌 쉽게 결심하고 결단하여 한 해의 국정 지표(指標)를 정해 반포할 수 있겠는가. 즉위 초이니, 그대들 제신 이하 만백성에게 과인의 평소 심중을 전하는 것으로 연두교서(年頭敎書)를 대신하고자 한다. 과인이 성조(聖祖:열성조)의 큰 사업을 이어 받았으나, 깊은 연못가에서 살얼음을 밟은 것과 같이 밤낮으로 항상 두렵기만 하다. 삼가 생각하건대 열성조께서는 효(孝)와 충(忠)을 근본으로 하여 어진 정치를 펴셨다. 과인 역시 열성조의 공덕을 배우고 계승하여 이를 만년사직의 흥성을 위한 초석으로 삼을 것이다. 과인이 선왕의 자리를 이어 받았으면서 감히 선왕의 뜻을 높여 받들지 않을 수 없으므로, 옛 조정의 좋은 정사를 본받아 나날이 현명한 시책을 베푸는 것으로 선대조의 뜻과 사업을 계승하려 한다. 민본(民本), 교육(敎育), 인사(人事), 법령(法令) 등의 제반 국정 운영에 있어서 조정 신하들에게 기대하고 의지하는 바가 매우 크니, 이러한 과인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도록 하라.
조정 신하들은 나아가고 물러가는 '진퇴(進退)' 문제를 보다 신중히 하도록 하라. 대행대왕 시절에 여러 관리들이 진퇴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것을 과인이 잠저(潛邸:즉위하기 전에 거처하던 집)에 있을 적에 여러 번 보았다. 관리들의 이러한 풍토가 초야의 백성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니, 그 염려하는 바가 크고 무겁기만 하다. 사직지신(社稷之臣:나라를 지탱할 만한 신하)의 구분을 어찌 공적과 공로만으로 따지겠는가. 바로 처신이 어떠한지에 의거해야 한다. 과거에 창국공신으로 책봉된 신하들의 면모를 따져 보면, 그들이 공신이 된 것은 공적과 공로가 동해처럼 넓고 태산처럼 높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로지 종묘사직을 위해 모든 열정을 다하고, 매사 처신을 신중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공적이 더욱 빛났기 때문이니, 제갈무후(諸葛武侯:제갈량)과 같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평소 처신이 올바르지 못하면 이는 한낱 촌부에도 미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조정 관직에 있는 뭇 신하들은 자신의 집안을 걱정하듯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열(熱)과 성(誠)을 다해 과인을 바른 길로 인도할 것이며, 향리의 유생, 선비, 백성들도 생각하는 바가 있거든 상소하여 그 뜻을 알리도록 하라. 이 나라 선비들의 소리가 곧 열성조의 말씀이요, 이 나라 백성들의 말이 곧 하늘의 가르침이니,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언로(言路)'를 분명하게 열어 두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과인의 뜻을 십분 헤아려, 나라를 다스리는 바른 도리가 천하를 밝게 비출 수 있게 하라.
한 자루 명검을 만드는 데에는 주형(鑄型)이 반듯하고, 그 재료가 좋으며, 공인(工人)의 솜씨가 뛰어나고, 화력이 알맞아야 한다. 또 그 검이 아무리 훌륭하게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부지런히 손질하고 숫돌에 갈아 다듬지 않으면 종래에는 새끼줄조차 끊을 수 없게 된다. 국가를 경영하는 것 역시 명검을 만들고 날을 세워 유지하는 것과 같다. 국가 체제와 법령을 분명하게 세운 후, 좋은 시책과 제도를 통해 백성들을 교화하고 보살피지 않는다면 종묘사직이 영원토록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조정 신하의 위치에 있는 자라면, 한 자루의 명검을 만들고 간수하는 수고로움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이와 같은 이치를 생각하여, 그대들 모두 힘써 노력할 것이다.개국613년 정월 22일 (음력 갑신년 정월 초1일)"
하였다.
○ 승정원우승지 이동진이 갑신년 새해 아침에 삼가 하례를 드리렸다.
○ 국장도감제조 겸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갑신년 새해를 맞아 어전에 들어 조하드렸다.
○ 이조참판 덕수군 이완이 신년 하례를 드렸다.
○ 형조참의 정재안이 설을 맞아 삼가 하례를 드렸다.
○ 홍문관저작 박영효가 갑신년 새해를 맞아 조하드렸다.


1월 23일 신축(辛丑)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권지예조교서관저작 조광윤이 궁문 앞에 엎드려 상소를 올려 아뢰니, 비답하기를,
"아뢴 바를 유념하겠다. 이후로도 바르고 옳은 말로써 간(諫)하여 과인이 바른 정사를 펼 수 있도록 조력(助力:도움)하라."
하였다.


1월 24일 임인(壬寅)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월 25일 계묘(癸卯)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예조참판 해원군 최영이 새해 하례를 드렸다.


1월 26일 갑진(甲辰)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월 27일 을사(乙巳)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1월 28일 병오(丙午)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승정원우승지 이동진이 돈수백배하옵고 관속에 대한 잡직품계 제수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우승지가 아뢴 내용은 시행을 고려할 만하다. 일단, 이에 관한 전조(銓曹:이조와 병조)와 삼사(三司: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의견을 들어 보겠다."
하였다.


1월 29일 정미(丁未)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사헌부감찰 한백겸의 사직으로 인한 후임 사헌부 인사와 관련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아뢴 바를 알겠소. 이조의 계본을 본 후에 결정하겠소."
하였다.
○이조참판 덕수군 이완이 소과 입격자의 권지 등용 폐지에 대해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이조. 병조. 삼사(三司). 갑산도호부사. 진사 이덕무 등의 의견을 듣고, 충분히 상량하였기에 결단하여 말한다. 현직 관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방관을 참상관 이상으로 제한하여 임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또한, 기존에 지방관으로 임명되었던 참상들과 당상들의 임기간 성과가 참하 지방관의 임기간 성과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과인은 구태여 지방관을 참상관 이상으로 제한하여 임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아울러, 소과 입격자 중에서 특별히 등용하던 제도를 폐지하는 문제와 천거를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문제도 유생들의 대과 응시가 매우 저조한 현실에서 관리 충원의 대안임으로 윤허할 수 없다.
이조참판이 이외로 아뢴 사안들은 과인이 좀 더 상량한 후에 개선할 부분이 있다고 판단되면 별도로 전교하겠다. 또한, 잡직에 관한 것은 다른 관청의 의견을 모두 듣고 결단하겠다."
하였다.


1월 30일 무신(戊申)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승정원우승지 이동진 승정원 가주서 충원에 대하여 차자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아뢴대로 하라."
하였다.


1월 31일 기유(己酉)
○ 상(上)께서 경복궁에 계신다.
○ 형조참의 정재안이 민국 국회의원 카지노 도박 사건과 아나운서의 음주운전 사건에 대해 계사를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계사는 여전히 미흡하다. 노현정은 아뢴대로 하고, 송영진의 형량(刑量)은 매우 과도한 듯 하니, 절반으로 감(減)하여 형옥 2개월에 처하라. 아울러, 금일은 선왕(先王)의 담제를 지내는 날이니 형(刑)은 명일에 집행하라."
하였다.
○ 형조참의 정재안이 일전에 하교하신 김규의 상소에 관해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상소와 계본을 비교하여 보니, 김규(金規)와 이연(李然)이 동일 인물일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형조에서 이에 관해 조사한 바가 있는가. 참의의 의견을 듣고 결단하겠다."
하였다.
○ 병조판서 하빈군 이휘가 승정원에서 제기한 잡직 시행에 관하여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아뢴 바를 알겠소. 헌부와 옥당(玉堂:홍문관)의 의견을 듣고 결단하겠소."
하였다.
○ 이조참판 덕수군 이완이 후임 헌부 관원 충원에 관해 계본을 올려 아뢰니, 전교하기를,
"이 달 8일에 감찰 한백겸(韓百謙)의 사직을 윤허하고, 갑산도호부사 서양갑(徐羊甲)을 사헌부 집의로 삼겠다."
하였다.
○ 충청도 진사 이덕무가  통신의 자유 침해에 대하여 상소를 올려 아뢰니, 비답하기를,
"추후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조처하겠으니, 진사와 생원은 심려치 말라.
각급 지방관에게 분명히 전교한다. 수사(搜査)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할지역에 비문으로 올려진 타인의 문서를 무단으로 열람하지 말라. 이를 위반할 시에는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엄벌에 처하겠다."
하였다.





승훈랑 행승정원주서 김성이 쓰다.



개국620년 3월 22일 기록 : 승훈랑 행승정원주서 김성

http://www.1392.org/bbs?sajor11:541 게시물 링크 (클릭) 게시물 주소 복사하기
답글 : 제한 (접속하십시오) 서찰(메일) 수정/삭제 : 제한 (접속하십시오)     윗글 밑글 목록 쓰기
[1] 김성
620('11)-03-19 01:48
0232
   
[2] 김성
620('11)-04-01 22:54
서각 입고완료.(620. 04. 01)
   
 
  | 비공개 설정 사조 백과사전 맞춤법 문법 검사기 0
2000
저장(입력)
승정원 기관장 : 승지 정예림
번호 분류  문서 제목  이름 작성일 열람
737 [승정원/주서] <일기> 승정원일기 : 개국619년 04월 (교정 완료.. [2] 이수현 619('10)/08/24-23:24 646
736 [승정원/좌승지] 승정원 일기 614년 3월(2) 이동진 614('05)/07/20-15:41 569
735 [승정원/우승지] <일기> 613년 1월 이동진 613('04)/01/27-00:21 552
734 [승정원/주서] <문서> 각 관청 주요 업무 현황표 [2] 손오공 613('04)/08/08-00:30 530
733 [승정원/동부승지] <문서> 어명 해석 이완 611('02)/08/18-14:57 512
732 [승정원/주서] <일기> 승정원일기 : 개국614(2005)년 3월 [2] 김성 620('11)/03/14-23:39 474
731 [승정원/주서] 승정원일기 : 개국622(2013)년 8월 上 이정윤 623('14)/03/23-00:31 468
730 [승정원/주서] <일기> 승정원일기 : 개국613(2004)년 01월 [2] 김성 620('11)/03/19-00:34 461
729 [승정원/우승지]<현황> 613년 2월 조정업무현황 이동진 613('04)/02/03-00:19 442
728 [훈련원/참군] <상소> 현 본조의 세태에 대하여 [1] 임상유 616('07)/03/06-00:00 438
727 [국왕] 승정원에 전교한다 [1] 국왕 613('04)/02/06-18:19 438
726 [국왕] 승정원에 전교한다 국왕 613('04)/02/08-17:38 435
목록다음쓰기 12345678910,,,62

[13920] 한성부 북부 육조대로 1 승정원 (경복궁)
Copyright(c) 2000-2021 by Seungjeongw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