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전 : 국정 사무 재가 공간 (어전)
작성자 임랑
작성일 개국619(2010)년 8월 11일 (수) 12:33  [오시(午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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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주서] <봉입> 한성부 생원 최명길의 상소
행승정원주서 신 임랑, 한성부 생원 최명길이 상소를 올렸기에 삼가 봉입하여 올립니다.


한성부 생원 신 최명길(崔鳴吉), 삼가 부복(俯伏)하고 아뢰옵니다.

우리 혜종경렬성평민무헌문대왕(惠宗景烈成平愍武獻文大王)은 위대한 자질로 전란으로 인해 엎어진 묘사(廟社)를 다시 일으키고 도탄(塗炭)에 빠진 백성을 구해냈으니 선어(仙馭)이후에 태묘(太廟)에 들어가시어 흠앙(欽仰)하는 마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북쪽의 집에 모여 권력을 천단(擅斷)하는 여러 난신(亂臣)들의 속임을 당하여 불행히도 손위(遜位)의 재앙을 피하지 못하시었으니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를 가슴 아프게 여기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장종 대왕(章宗大王)께서 혜묘(惠廟)를 복위하여 인군(人君)의 칭호를 더하고 종묘에 받들어 모신 것은 중외(中外)에 효(孝)를 보이신 것이지만 이러한 만인(萬人)의 간절한 뜻도 헤아리신 것이니 유학하는 선비들은 이를 가리켜 대의(大義)라 칭송합니다.

하지만 신은 대왕의 묘호(廟號)에 '혜(惠)' 라는 한글자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부당하게 여깁니다. 시법(諡法)에," 백성을 사랑하여 베풀기 좋아한 것을 혜라 한다(愛民好與曰惠)"하였으나 또한 이르기를 "공자(孔子)는 자산(子産)을 은혜로운 사람이라 했으나 맹자(孟子)는 다시 그가 은혜로우나 정치하는 요체를 모른다 나무랐다. 그렇다면 혜(惠)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맺어주지만 예(禮)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라 하였습니다. 아울러 주나라 혜왕(惠王)은 대부 변백(邊伯)에게 쫓겨났다가 정군(鄭君) 등의 도움으로 겨우 대위(大位)를 회복하였고, 양혜왕(梁惠王)은 이익만을 탐하다가 문후(文侯)때의 강성함을 잃었으며, 진나라 혜제(惠帝)는 굶주린 백성에게 고기를 먹으라 하였고, 원혜종(元惠宗)은 선조의 대업을 잃고 초원으로 도망하였으며 명나라 혜제(惠帝)는 제후를 도모하려다가 끝내는 불 속에서 타 버린 몸조차 보존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려의 혜종(惠宗) 또한 아랫사람에게 시해(弑害)되었다는 의혹이 있으니 신은 이 글자에 반드시 숨겨진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조대왕(仁祖大王)의 묘호는 처음에는 열조(烈祖)였는데 남당(南唐)의 군주 서지고(徐知誥)와 칭호와 겹친다 하여 인묘(仁廟)로 고쳐 정하였습니다. 이는 서지고의 인물됨이 인조대왕과 나란히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역대 군왕의 시호와 묘호에는 공(恭)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이들이 적지 않고, 고려의 원종(元宗)이후에는 조종(祖宗)은 빼앗기고 원나라부터 충(忠)이라는 시호가 더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시법에 적힌 공(恭)이 가진 뜻은 매우 아름답고 충(忠)이란 한 글자는 북면(北面)하여 임금을 섬기는 이에게는 실로 광영이나 공(恭)은 곧 종사(宗社)를 잃은 군주의 또다른 이름이고, 충(忠)은 아랫사람에게만 내리는 것이니 사직의 주인에게는 가릴수 없는 치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은 국휼(國恤)이후나 뒷날에 추숭시에 여러 호칭를 정함에 있어 단지 시법에 기록되어진 글자의 뜻만을 취할 것이 아니라 이전의 제왕들이 어떠한 시호나 묘호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의당 살피어서 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폐위(廢位), 손위(遜位), 혼군(昏君), 축출(逐出)이라는 말이 혜(惠)의 자의(字義)에 합당하다 상하(上下)가 여기어 그리 정하였다면 신의 상소는 한 낱 망발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왕의 찬란함을 생각하고 전대의 임금들의 칭호에 비추어 볼 때 천신(賤臣)은 대왕의 묘호를 개정함이 마땅하다 여깁니다. 본래 시(諡)라는 것이 천하의 공론에 의하여 한번 정해지면 하늘아래 일인(一人)이라도 함부로 고칠 수 없는 것이니 신의 소가 봉입(捧入)된다 하여도 개정을 기약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하여 신은 임야(林野)의 무지한 백성에 불과하여 나라의 일은 알지 못하고 조정의 주석지신(柱石之臣)에 비한다면 섬돌 아래 잡초에도 오히려 부끄럽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왕에게 올린 아름다운 칭호가 폄시(貶諡)라 한다면 대왕을 높이는 선왕의 뜻이 손상됨을 면하기 어려우니 신은 그것이 염려될 뿐입니다. 원하건데 불학무식(不學無識)한 백신(白身)의 소를 들인 종반(從班)의 신하를 꾸짖지 마시고 해조(該曹)에 내리시어 이를 논의하게 하소서.

개국619년 8월 10일
한성부 생원 신 최명길


이상입니다.

삼가 물러나 하교를 기다립니다.

개국619년 08월 11일
행승정원주서 신 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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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왕
619('10)-08-14 12:11
선왕 장종대왕의 시호를 의정할 때에 평(平) 자 시호에 대해 지적하면서 다른 글자를 채택하였으나, 혜종대왕의 시호에 있던 평 자에 대하여는 따로 조처하지 않았었다. 시호와 렬(烈) 자가 겹치는 혜종대왕의 존호 여덟 자를 제외하였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인데, 바로 혜종대왕의 시호가 당대의 공론을 결집하여 정한 후에 고묘(告廟)한 것이고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그 칭호가 굳건하여졌기 때문이다.

혜종대왕의 묘호를 정할 당시에 혜(惠) 자에 그러한 시주(諡註)가 있는지 자세히 살폈는지 알 수 없지만, 반정(反正)의 명분을 제공하였던 혜종 시기의 여러 사건을 생각해 보면 예(禮)에서 미흡하였던 점이 시호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열성조의 묘호나 시호를 정함에 허물을 덮고 좋은 부분만 취하는 것이 당연하나, 묘호와 관련된 결과만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러하다는 것이다. 상소한 뜻은 알았으나, 묘호 개정에 관한 논의는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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