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학록] 중시 문과 응시
<책문> 사기(史記)에서 사마천이 말하기를, '하늘이 착한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면 이러한 일들은 대체 어찌 된 때문인가'라며, 하늘의 도(道)가 실제로 있는 것인지를 한탄한 부분이 있다. 오로지 악행만을 저지르고 살면서도 종신토록 호강하며 천수를 누리고 죽은 자가 있는 반면, 정도(正道)에 치중하며 올곧게 살면서도 오히려 재앙을 당하는 자가 적지 않다. 민국(民國:대한민국)에도 이러한 경우가 태반인지라, 백성들이 법령과 질서를 무시하는 등의 부도덕한 기류가 널리 퍼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하늘의 도가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있지 못하기 때문인가. 그리고 이를 개선할 방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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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에서 이르기를, '하늘이 착한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면 이러한 일들은 대체 어찌 된 때문인가'라 하였는데, 신이 듣기로는 당시의 배경으로는 사마천 자신이 궁형에 처해짐을 은유하는 '구우일모(九牛一毛)'라는 고사뒤에 담긴 비장하고 처절한 심정이 담겨있었으며,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주나라의 백이와 숙제에 의탁하여, '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 즉 하늘의 도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라며 원망스럽게 탄식했다하였습니다. 다시 책문에서 이르기를, '오로지 악행만을 저지르고 살면서도 종신토록 호강하며 천수를 누리고 죽은 자가 있는 반면, 정도에 치중하며 올곧게 살면서도 오히려 재앙을 당하는 자가 적지 않다.'라 하였사온데, 그다지 많은 세월을 살진 않았지만, 신도 적잖이 그러한 면을 보아왔다 말할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순종하는 자는 살고, 하늘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 하였사온데, 만약 그 글의 틀린 점이 없다 한다면, 정도에 치중하는 것이 하늘을 거역하는 꼴이 되오니, 정말 어떤게 하늘의 도인지 혼란스러울게 분명하오나, 여기엔 분명 그 까닭이 있을 것이며, 또한 그 방책도 있을 것이니, 신이 아둔하기 그지없고, 문장이 졸렬하다 하더라도, 이 어찌 생각이 없다하겠습니까. 미련하나마 신의 생각을 필해보니, 상께서는 살펴보소서.
앞서 이르기를, 사마천은 백이 와 숙제에 그 심정을 의탁하였다하였는데, 이는 백이 와 숙제처럼 진정한 충신으로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은 그 천수를 누리지 못한 채 수양산에서 굶어죽은 반면에, 그 두사람이 모시던 무왕은 은나라를 훔친 대 도적인데도 불구하고, 천수를 다하였으니, 하늘의 도가 당시 무왕에게 있었다하는 것은 명백한 일일 것이니, 이 어찌 탄식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 또한, 흔히 알고있는 후한말 삼국시대서도 현세에선 그 해석이 많이 달라지긴 합니다마는, 분명한 것은 시대의 간웅인 조조가 - 물론, 당대에서는 아니지만 - 삼국을 통일한 것을 볼 때에도, 그러하다는 것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작금에 와서도, 이러한 행태가 비일비재하고 있사오니, 흔히 상류층이라 불리는 무리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가까운 우리 이웃들에게서도 종종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는 분명 현시대에는 하늘의 도는 상실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며,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은 고사하고, 그 부끄러움조차 모르니, 이 어찌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칙이 무시되고, 융통만이 강조되며, 그러하지 못한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또한 이 어찌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세워졌다 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이에 대한 방도가 필요할 진대, 신이 생각하기로는, 법과 원칙의 강력한 적용이 현시대에는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물론, 그에 대한 적용은 위로부터의 적용이 되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자연히 나라의 기강도 잡힐 것이며, 백성들의 흐름도 자연히 그에 따라 갈 것이라 신은 감히 말씀드릴 수 있사옵니다.
다만, 신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위의 방도는 너무 일반적이고 뻔할 뿐 아니라, 그 끝도 보이지도 않는 해결책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늘의 도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옵니다. 또한, 만약 하늘의 도가 있다 한다면 그것은 그 시대와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옵니다. 이전에 백이 와 숙제의 예를 들었사온대, 다시 그들의 예를 빌어오자면은, 백이 와 숙제는 분명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진정한 충신이었다는 것은 명약하오나, 당시가 은나라말기 폭군 주왕의 시대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정말 어떠한 뜻을 가지고 그러했는지 무지한 신이 알 리가 만무하나, 은나라를 망케 하고 새 나라를 건국한 무왕이 결과적으로는 위민 했다 할 수 있사온대, 그것은 주나라가 그 후로 한동안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의 도가 무왕에게 있다는 것은 하등 문제가 있을 수 없을 것이며, 사마천의 탄식 또한 부질없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금의 예를 든다 하더라도, 이는 크게 다르지 않을진대, 이는 하늘에 스스로의 운명을 맡기기엔 그 시대가 너무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옵니다. 물론, 시대를 찬찬히 뜯어본다면, 너무도 부정하고 억울한 일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허나, 이 모든 것들도 함께 공존하는 다양성의 한 모습들이고 나름대로의 필요성을 생각한다면, 그리 답답할 것도 없다 할 수 있사온대, 이 것은 모두 스스로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며, 비판은 하되, 인정해야 될 우리 각자의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만약 서로의 위치가 바뀌어져 있다 하더라도 크게 무엇인가가 달라질 게 있을 것인지 신은 심히 의문스럽기 때문이옵니다. 다시 말해서, '도지재인심(都只在人心)', 즉,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할 수 있사온대, 이것은 세상이 이렇게 혼란스럽게 변한 것에 대해서, 대체 누구를 탓할 것이며, 누구를 원망할 것입니까. 또한, 그 대책을 세워, 어떠한 제도를 도용한다 하더라도, 결국 이는 모두 사람이 만든 것이니, 그 사람의 마음가짐을 바꾸지 않는 한, 어찌 무엇하나 제대로 달라질 게 있겠습니까. 신이 감히 말씀드리건데, 나라의 기강을 탓한다 하더라도,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질책일 뿐이며, 그 위계가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이 역시, 사람이 정해놓은 것일 뿐, 하늘아래 누구나 공평한 것은 뻔한 이치일진대, 언제까지 하늘의 도를 찾을 것이며, 나라의 기강을 탓할 것입니까. 이것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으며, 결국에는 어떠한 해결책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이 생각하건데, 현 시대의 혼란은 그 필연성을 이해해야 하며, 그 해결책은 스스로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마음을 정케 하고, 나름의 원칙을 정하여, 맡은 바를 행한다면 지금과 같은 혼란은 더 이상 존재치 아니할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가 각자의 우월성을 인지함으로써 세상의 변화는 개인 각자의 마음먹기에 따라 달려있다는 사소한 생각으로부터 그 시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생각하오며, 아둔한 신은 이로써 위 책문에 대한 답변을 대신할까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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