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우 <본 잡지 발행인>

수신교과서와 같은 교훈적인 넋두리나 독자에게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너절한 신변잡기는 일종의 활자공해가 아니겠느냐고 힐난하는 어느 독자의 편지를 받았다.
얼굴이 화끈해지고 창피스러워 몸 둘 곳이 없어진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어 구석진 소파의 힘없이 쓰러진다. 서가의 수필집들 하며, 월부 전집물들이 온통 공해물, 공해물로만 밀어닥친다.
나도 어김없이 그 중의 한 사람, 그 공해물 제작의 한 역을 담당했거니 생각하니 나 자신이 자꾸 부끄러워지고 또 슬퍼진다.
酒精(주정) 60도의 위스키로 흥분을 달래고 울분과 슬픔이 교차하는 어구에서 명멸하는 지나간 일들이 안개 속의 빛살처럼 스쳐감을 느낀다.
지난 해의 이른 봄이었다고 기억한다. 신입여사원에게 전직장에서 무슨 일을 했었느냐고 물었더니,
“語尾(어미) 고치는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얼른 알아 듣지 못한 탓이라 생각하고 그것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 일이냐고 되물었었다. 그 여사원의 대답인즉, 이미 번역되어 출간된 외국의 문학 작품을 그대로 가져다 그 문장의 어미만을 고쳐 새로 번역한 것같이 문장을 변조시키는 작업을 해서 무슨 대문학전집인가를 출판했다는 것이었다.
그 책들에 붙여진 역자들 또한 거의 이름만 빌렸을 뿐이요, 따라서 번역료 같은 엄청난 고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었던 까닭에 投賣價(투매가)로 상당량의 책을 판매할 수가 있었다는 얘기다. 공해물 대중전달의 수단이 제대로 둘어맞은 것이다. 물론 그 여사원은 그 후 얼마 있지 아니하고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그 엄청난 일의 공범자라는 이유로 해서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었다.
언젠가 나는 런던의 브리티시 뮤지엄(박물관)에 들렀을 때 그곳에 비치되어 있는 고전작가들의 그 육필원고 한 장 한 장을 뒤져 보며 양심의 가책을 금하지 못했던 일이 있다. 加筆(가필), 訂正(정정) 등 그 낱말 하나하나에 더하여진 그 정성스러운 문필의 원작이, 번역의 도를 외면한 졸속으로 해서 난도질을 당하고 형상을 잃은 골격만으로 선량한 독자들에게 강제되고 있는 엄연한 우리 현실을 어찌하지 못해서였다.
한 달에 한 권씩 헤아려 60권의 수필집을 발행했고 또 수십 권의 문학 서적을 출간했지만 그 어느 하나가 만에 일이라도 공해물 구실을 했다면 이 또한 가슴 미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너절한 신변잡기의 매개를 충고해 온 어느 독자에게 이번엔 또 나의 넋두리까지를 보태는 결과가 되었으니 이 또 어찌 한심스러운 일이 아니랴.
어차피 曲直(곡직)은 가려지고 또 不遠(불원), 역사의 심판은 어김없이 받아야할 것이매도 지금은 우선, 공해지역의 오염수로를 마구 헤엄치는 한 마리 미꾸라지의 생리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