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회지] 제0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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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조선문학회 발행 - 단체 발행 소식지 제013호 - 개국622(2013)년 3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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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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走馬圖(주마도)
3. 서른 살 (7)
“자네, 우리 회사 회장 감투 쓰지 않겠나? 재력이 있겠다. 총독부(總督府)와 손을 잡았겠다, 그렇지 않았던들 손쉽게 이리 부탁을 하겠는가마는.”
명석이 이렇게 자기에게 청하니 그 익살스러운 모습에 남석은 더욱 우스웠다. 그리고,
“이보게, 남석이. 내 친구 형네 집에 아들이 하나 있어서 장가갔던 터로 며느리를 보았는데, 아 그 왜 최병조 딸있잖은가.”
그 순간 안남석이 명석의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성을 내었다.
“최병조, 그 자식. 뭐 하러 딸자식을 거기다 며느리로 맡겨, 웃기는 놈이로구먼.”
최병조와 안남석이 가타부타 싸움이 일어난 것은 일본유학 시절부터 불거진 연애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여자를 두고 티격태격 다투는 꼴이란 명석으로서는 따 놓은 당상처럼 더욱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 왜 그러나. 그래서 다들 잘 먹고 잘 살지 않았던가. 그래서 자네는 사교계를 병조 그 자식도 나처럼 산업계를 주름잡지 않았던가.”
그러고서 명석은,
“그러니 그 과거지사 잊고 자네 딸, 아니 아들과 사돈을 맺어보세. 그 집도 만주에서는 갑부소릴 듣는데.”
“아니, 만주로, 내 아들을 그리로 보내다니. 안될 말이네.”
그러자 명석이 우스갯소리로,
“자네 아들이 대장부로서 만주로 간다면 내 말대로 회장 자리에 앉게 마련이고, 장씨 집안과 사돈을 맺는다면 그야말로 지화자가 좋지 않은가. 내 말은 따 놓은 당상이 아니냐 이거지. 알겠나?”
실실 까며 고지식한 성격을 가진 안남석의 속을 풀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한다면.’
그런 느낌을 받은 안남석은 아들로 하여금 장영인에게 장가를 들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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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 하나가 뭐 어때서. 내 부인이 무사하기만 하면 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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走馬圖(주마도)
3. 서른 살 (8)
집에 돌아온 안남석이 마누라에게 시달림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이런 맙소사! 당신, 당신 미쳤어요? 우리 아들더러 만주로 가라니.”
“그러잖아도 내년엔 졸업하잖소. 그러니 내 자식을 장가보내도 상관은 없잖소.”
“상관이 왜 없어요. 그 엄동설한 만주로 건너가다간 비적(匪賊) 떼들을 만날 테고 그러다가 애가 변을 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아, 부인. 그럴 일은 없을게요.”
성이 난 부인을 달래려고 무진장 애를 쓴 남석은 겨우 허락을 받고 아들 성구에게 명석을 따라 만주로 건너갈 것을 권하였다. 장가를 보내기 위해서다.
영철은 나이 서른에 이를 즈음에 별선의 임신소식을 들었다.
남편으로서 무심히 대하던 자신의 지난날을 뉘우치기라도 하듯 그들은 고국인 조선으로 향하기 위해 기차역에 이르렀다.
기찻길 안에서 두 사람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시간이 지나 조선 땅을 밟을 적에 별선은,
“여보, 당신의 신변이 안 좋아서 두려우실 텐데.”
하며 염려를 아끼지 않았다.
“내 몸 하나가 뭐 어때서. 내 부인이 무사하기만 하면 되지요.”
영철은 비로소 부인의 속을 달래주고 있었다.
나이는 이제 서른 살. 이날 윤봉길(尹奉吉)이 일으킨 의거로 인해 독립운동의 열기는 다시 타올랐다. 그러나 갑작스런 의거에 충격을 받은 일본은 이를 수습하느라고 분주하기 그지없었다. 영철 내외가 탄 기차에서도 이런 시국이 염려스러웠는지 일제히 경관 둘이서 감시를 하고 있었다. 다행이도 영철은 위기를 모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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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맙소사! 당신, 당신 미쳤어요? 우리 아들더러 만주로 가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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走馬圖(주마도)
3. 서른 살 (9)
서울에 온 영철 내외는 잠시 인사동 교당(敎堂)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거처를 마련하여 잠시나마 살았다. 물론 영철은 채근식의 청으로 자신의 지인이 소유하고 있는 별장에 집사로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 영철은 밤중에 다른 동지들을 불러다가 추후의 일들을 모색하였다. 다시 만주로 건너갈 것인지에 대해 의논을 하였다. 그러고서 황해도가 고향인 동지 하나에게서 영철은 백부가 황해도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석 달이 지난 뒤에 서둘러 별선과 걸음을 옮겼다. 자식이 하나인 딸을 놔둔 채.
“여긴 웬일이냐?”
웃으면서 백부 호균이 웃는다.
“못 올 곳에 왔습니까?”
영철이 농담으로 툭 던진다.
“이 철없는 것이.”
호균이 쥐어박으려는 듯 영철을 웃겨본다.
“나는 여기서 여생을 보내다 죽으련다.”
“큰어머니께서 많이 힘들어하십니다.”
“내일모레를 한다나.”
“네.”
후처를 얻은 것은 재작년이었다. 나이는 마흔으로 젊었으나 잔병이 잦았다. 그렇기에 호균의 근심은 더욱 깊어갔다. 그리하여 그는 멀리 후처를 서울로 보내 요양토록 했다. 최근에는 장씨 집안에 양자를 하나 얻어다 성불사에서 곁에 두도록 했다.
“그럼 일은 없네. 예서 머물다가 그냥 가소.”
모른 척 하는 백부의 주름진 모습에 영철 내외는 눈물을 붉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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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기서 여생을 보내다 죽으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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走馬圖(주마도)
3. 서른 살 (10)
그로부터 3년이 지나고 조선에서는 농촌계몽(農村啓蒙)이니 무어니 한창 떠들썩한 때였다. 이때 영인의 부인인 운희가 고국에서 피아니스트로 있다는 사촌동생을 하나 불러들였다. 그 여류 피아니스트가 만주로 오다니. 운희가 살고 있는 동네의 유지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마중을 나왔다.
그러고 난 뒤 운희는 자기의 동생을 소개했다.
“여기 제 사촌동생입니다.”
검은 스웨터를 차려입은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여자는 고개 숙이며,
“고향미(高享尾)라 합니다.”
하며 여기저기에서 환호하는 틈에 꾸벅 절하였다. 그러고 한 시간 뒤에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 나가고, 운희와 둘이서 영인의 집으로 걸어간다.
“이렇게 오니 기쁘기 그지없구나.”
“그나저나 그게 참이우?”
향미가 언니의 귀에다 대고 그 시댁이라는 데에 있는 영화에게 올케가 되느냐는 물음이었다.
“응.”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잖아도 어준하라는 이를 만났어요. 여기 오기 며칠 전에 북경에서 만난 일이 있었거든요.”
사실 어준하는 북경에서 세 명의 동지들과 일경에게 체포되어 이곳 만주로 옮겨와 취조를 받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향미는 순간 운희에게 이실직고를 하게 된 터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다니?”
“재작년에 윤봉길이라는 이가 의거를 일으킨 뒤로, 경비가 삼업 합디다. 그래서 말인데 이곳에서 계속 사업을 유지하다간.”
“그만. 그 정돈 알고 있어.”
운희의 표정은 시원찮다.
“언니, 영화는 잘 있대요?”
운희는 빙그레하며 끄덕인다.
“애도 생겼나요?”
똑같이 운희가 끄덕인다.
“나한텐 조카뻘이구먼.”
저 혼자서 향미는 좋아라고 한다.
운희는 자신의 집에 향미를 불러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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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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