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회지] 제0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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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조선문학회 발행 - 단체 발행 소식지 제015호 - 개국622(2013)년 5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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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욱의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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走馬圖(주마도)
3. 서른 살 (11)
“내 친구 중 하나가 하얼빈에 산대요. 근데 거기에서 하필 러시아 사람을 만났다지 뭐에요.”
“거긴 거의 노서아 땅이니, 그래서.”
“그래서 처음에 거길 갈까 싶었죠. 그런데 제 남편이 오지 말라나요?”
운희는 쓴웃음을 짓고,
“그런데 향미 너는 남의 일처럼 얘길 하는구나. 쩝.”
운희는 갓 열하나가 된 딸을 불러다 담배를 달라고 한다.
“어머 언니.”
향미는 놀랐다. 운희는 고향에 대해 쓴맛을 느끼는 찰나였다.
“네 그 입방정이 우리 집안을 망한 거 알고 있니?”
“그게 무슨 소리요?”
운희의 말에 의하면 이곳 그가 운영하고 있는 영업점들이 잇따라 파산을 맞았다. 원인은 영인과 이웃해 있는 양 참봉이라는 이의 딸이라는 사람이 내놓은 입방아 때문이었다.
“우리 작은아버지가 사회주의자세요. 근데……”
이렇게 술김에 말한 영인의 큰아들의 말을 들은 것이 화근이었다. 다음날에 그 여자가 상류사회에 있는 여자들과 말을 주고받다가 그것이 소문나서 그의 음식점에 일본인들이 몰려와서는 행패를 부리게 되었다.
마늘 냄새가 어떻다는 둥 뭐라는 둥 별 소리를 다 하고는 난장판을 만들어놓았다. 그로부터 나흘 뒤에는 일본인 순사가 그의 가게에 오더니 난데없이 배일(排日) 사상을 내세운 이들의 출입을 허락했다는 혐의로 가게 문을 닫게 하였다.
그 뒤로 이곳에는 알 수 없게 일본인 상점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영인의 집 주변에 우후죽순 늘어선 일본인 상점을 보고서 영인은 한숨을 쉬었다.
‘자칫하다가 우리 집안이 몰락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두 달 뒤에 영인은 하는 수없이 상점을 정리하고야 말았다. 이때 이웃인 양 참봉이 미안하다는 말을 표하고 자신의 사놓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 건물을 사다가 상점(商店) 하나를 만들어놓으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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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도리어 양심이 찔려 조선에 갈 수 없구나. 매국노라고 손찌검을 당할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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走馬圖(주마도)
3. 서른 살 (12)
영인은 잠시 머뭇거렸으나, 하는 수 없이 상점을 하나 차려놓았다. 그곳에는 오족협화(五族協和)라는 기치 아래에 수많은 식재료들을 진열해 팔고 있었다.
“고생이 많소.”
나이가 예순을 넘은 할아버지가 영인의 상점에 이르렀다.
“어서 오십시오.”
영인의 아들 德重(덕중)이 맞이했다.
“자네 아버지는 어디 가셨나?”
“몸이 편찮으셔서 잠시 쉬고 계십니다.”
“온, 저런.”
양 참봉은 이내 자리를 떠났다. 그동안 자신의 철딱서니 없는 딸을 대신해서 용서를 청하려고 마음을 간신히 붙잡았건만. 이곳에 와서는 정작 박대(薄待)를 당한 양 참봉은 이틀 뒤에 사소한 이유 하나로 유서를 남겼다.
다음날 이웃집 양 참봉의 집에서는 여자의 가냘픈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주의 영인의 집에 이른 영철이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여기 더 있다가는 우리 모두 죽겠소. 그만 조선으로 돌아갑시다.”
영인은 껄껄 웃었다.
“왜? 난 조선에 안 간다. 차라리 영화와 같이 가거라.”
이들 곁에 있던 영화가 칭얼대는 어린 애를 업은 채
“오라버니. 어떻게 하시려고.”
“난 도리어 양심이 찔려 조선에 갈 수 없구나. 매국노라고 손찌검을 당할지도.”
“왜 아둔한 소릴 합니까.”
“큰아버지처럼 당하지나 않으려나.”
“걱정두 팔자유. 아무튼 조선으로 갑시다.”
그러나 영인의 고집은 꺾이질 않았다. 그래서 영철 내외와 영화 내외는 조선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영방은 학업을 마치고 나서 조선에 돌아와 큰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고 보통문관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도는 형과 같이 거처하면서 보통학교 교사로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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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준의 시 (2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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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깔이 칠해진 부분이 제목임.
우천(雨天)
구멍뚫린 듯 쏟아지는 빗방울 사이로
답답하고 갑갑했던 이내 마음도
구멍뚫린 듯 시원해지니
빗물사이 사이 새어나오는 한기로 인해
무덥던 하루하루가 지나가네
兒
작고 귀여운 눈망울
작은 코에
작은 입술에
작은 손가락과 발가락
작은 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신과 함께하는 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하게
밝은 표정을 내비추는
그런 나 또한 그리 되고싶어 아무생각 없는 아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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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준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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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題
한 동안 잊고 살았다가도
한 순간 잊고 살았다가도
어느 순간 잊고 살았다가도
언젠가 잊고 살았다가도
어느 새인가 잊혔다고 생각했더라도
두 눈 감고 생각해보니
다시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나더라
어두운 터널을 지나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블랙홀에 갇힌 듯 빨려들어가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때 시간으로 들어와버려 있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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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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