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혜공왕 제08화
- 봉당(奉堂) 작
그런데 그 꿈에서 누군가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은 무엇인고 하니 만월이가 앉아 있는 왕비 자리의 주인이었던 삼모의 모습이었다.
"어머니."
쩌렁쩌렁 울리던 기괴한 소리에 태후는 소스라쳐 놀라 깼다.
헛꿈이려니 하던 차에 태후에게 찾아온 나인 하나가 왕자의 기괴한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한 채 바로 아뢰니, 태후의 큰 호통이 하늘을 찔렀다.
"사내가 치마를 입다니!"
"그것 뿐만이 아니오라 궁녀들이 치장하는 것들이라면 해달라며 조르고 있더라고 하옵니다. 그리고 그에 성이 차지가 않던지."
민망한 말을 하기가 꺼내기 어려운 나인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바로 말하거라."
태후가 이윽고 재촉을 하니,
"마마, 그뿐만이 아니라. 사내의"
"사내의 무엇을."
"사내의 ××을 만지작거린다 하옵니다."
그러자 태후가 펄쩍 뛰기 시작한다.
"뭣이!"
바로 태후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런 고얀 일이!"
전에 며느리였던 왕비 삼모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태후는 그 꿈이 예삿 꿈이 아니라는 점을 실감했다. 만월을 왕비로 삼게 했던 그가 아니던가.
태후의 진노하였다는 소식이 왕에게도 전해졌다. 왕은 이미 각오가 되었던 눈치다.
"주상! 이를 어찌하면 좋소!"
태후가 나아가서 왕에게 하소를 하였다. 그러나 왕은,
'어머니께서 자초하신 업보이니 소자가 어찌 감당하오리까.'
하며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박씨부인전 제13화
- 보덕 작
"게 있느냐!"
가달이 죽은 지 두 시간 뒤. 난을 주도한 가달의 수하를 불러들여 누가 출정하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선 사람 둘이 장수로 출정했나이다."
하며 대답했다.
"조선?"
누르하치의 눈에서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생소하게 여겨지기만 했다. 조선, 자고로 명나라의 조공국으로 적극적으로 나서던 나라가 아니던가. 그런 나라에서 명나라의 군사를 도와주다니. 천지를 개벽하려고 한 누르하치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저것도 죽여라."
태조 누르하치는 그렇게 그를 죽이고서 여동생을 자리에 앉힌다.
"네가 조선으로 가야할 게다."
조선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기룡대는 난생 처음 조선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어안이 벙벙하기는 물론이었다. 그러나 조국을 위해서라면 헌신해야하는 것이 한 나라에 대한 도리가 아니던가.
"명에 대한 정보에 의하면 조선 장수가 난을 평정하여 승전보를 울렸다고 한다. 조선에서 그들을 급작스럽게 우의정과 대원수로 각각 명하였다더구나."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러는 저들을 이해할 수 없다. 네가 조선으로 가 죽이도록 하라.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네, 폐하."
"헌데 네가 조선말을 할 수 있겠느냐?"
"물론입죠. 조선말은 능히 할 줄 아옵니다."
그러자 누르하치는 기룡대를 평민으로 위장하여 조선으로 보내었다.
기룡대는 기어이 조선에 이르고야 말았다. 이때 후금과의 관계를 버리고 간교한 신하들로 우글거리는 명나라를 오직 사대로서 어버이를 대하고 있었다. 역사의 소용돌이로 성할 날이 없는 명나라는 후금의 침입에 시달리는데다 왕은 사치와 향락에만 취하여 백성들의 생활도 궁핍할 대로 궁핍해져 있었다.
그러나 정묘년의 호란이 일어나면서 인조는 여러모로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이시백이 그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줄 것을 선언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룡대는 그 이시백의 집에 공교롭게도 들어오게 되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박씨부인이 두텁고 누추한 옷차림으로 기룡대에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제가 워데서 왓는고 허면 저 멀리 의주서 온 사람입네다."
평안도 말투로 기룡대가 선뜻 나서니,
"어서 들어오너라."
그러고는 그녀를 데리고 박씨부인이 피화당으로 이르렀다.
들어서는 기룡대의 눈에서는 의욕이 승천하였다.
"그래,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고."
그러자 거침없이,
"여기서 살게 해주시와요. 제 아바이는 워데서 살았는지 소식도 감감하고, 또 오마니는 병들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신세질 데가 없는데 어떻게 아는 친척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고로 박씨부인은 하는 수 없이 하인으로 있게 해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박씨부인은,
"저 여인의 모습이 어쩐지 범상치 않다."
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하인으로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계속 그리하면 된다고 인식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느낌은 적중해졌다.
그날 밤. 이시백이 이 미모의 기룡대를 사모하여 사통하고자 하는 마음을 얻고야 말았다. |
정병욱
[문학회지] 제0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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