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혜공왕 제2회
- 봉당(이후) 작
전 밖에서는 태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때마침 비가 요란스럽게 내리던 때였다.
“전하! 소인이 어찌 왕위를 이을 수 있겠다 하옵니까, 저는 왕위를 이을 수 없사옵나이다.”
왕의 곁에 있던 태후가,
“주상의 감정이 격해져서야 어찌 오래 사신단 말씀입니까.”
하며 으름장을 놓으니, 신료들은 소덕태후의 진노가 하늘을 찔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의들은 잠자코 금상의 환후를 살피기 시작했다. 왕의 눈은 태자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일 중에 태자 내외를 불러들여야 겠습니다.”
하며 내관을 불러다 태자에게 잠저로 물러가라고 명을 내렸다. 하룻밤 취침을 한 왕이 태자를 불러내었다. 태자 헌영이 내외가 인사를 하니, 손사래를 치며,
“앉게, 앉게들.”
바닥을 짚으며 앉으라고 시늉한다.
“짐이 자네에게 선위하는 것은 백성들에게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함이며 또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자 함이다. 한데 이 왕위를 버리고 극락에 가게 된다면 백성들은 그에 따라 굶어 죽으란 말이던가. 그러니 아우야. 이 형의 청을 들어다오.”
눈물어린 왕의 용안을 뵈오는 헌영은 차마 그 얼굴을 들어올려 볼 수도 없었다.
“아우야, 이 형의 청을 부디 들어다주오.”
왕은 아우의 손을 꼬옥 잡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기다렸다는 듯이 왕은 붕어하여 효성왕이라 시호를 내렸다.
선왕의 빈전에서 태후는 태자를 불러다 이렇게 일렀다.
“갑작스럽게 왕이 죽으니, 이제 아우인 태자가 왕위에 올라야할 것이다. 자네가 형의 제사를 맡게. 그리고 황상의 유교에 따라 동해바다에다 유골을 뿌려주도록 하게나.”
문무대왕이 동해바다에 자신의 시신을 뿌려준다면 용이 되어 왜구의 침입을 막겠노라고 유언하던 그 예에 따른 것이다.
이틀 뒤 태자는 왕위에 올랐다. 왕은 선왕을 효성(孝成)이라는 시호를 내리게 하고, 선왕의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을 것을 선언했다.
헌영이 그렇게 왕위에 올랐다. 이때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왕이 새로이 즉위했다는 것을 알리고자 책봉해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당나라 조정에서는 그를 開府儀同三司使持節大都督鷄林州諸軍事兼充持節寧海軍事新羅王(개부의동삼사사지절대도독계림주제군사겸충지절영해군사신라왕)이라 봉하니 왕이 감읍하지 마지 않았다. 하지만 당에 사대를 하는 왕의 태도에 못마땅하게 여겼다.
“폐하, 어찌하여 당나라 조정에 사대를 한단 말입니까.”
이에 왕이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당나라가 있었기에 신라도 있다는 점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오.”
“허나 태종께서는 당나라에 항거를 하셨습니다.”
“항거만을 하였다고 하면 이렇게 당나라에 사대를 하는 이유가 없지 않겠소이까? 그리하면 무엇보다 나라는 곧바로 망할 것이오.”
이런 왕의 태도는 곧바로 당나라의 관제를 그대로 본받는다는 방식으로 나아가고야 말았다. 특히 성골들은 들고 일어나기에 충분했다.
“신라의 천년사직을 버리시고자 하시옵니까.”
“사직을 버리다니요. 그럴리가 없습니다.”
성골들은 당나라와의 관계를 단절하도록 윽박지르기에 이르렀다. 결국 왕의 분노를 사기에도 충분했다. |
박씨부인전 (朴氏夫人傳) 제5화
- 정보덕(鄭寶德) 작
그러나 박 처사의 딸은 자신이 생각했던 미인박명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조금 괘씸한 부분이 있었다. 이 판서는 졸지에 박 처사의 처세술에 넘어간 것에 대해서 수치스러울 법도 하겠지만 그 수치스러움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정작 박 처사가 딸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을 이 판서가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반정세력에 의해 반역자로 몰려 비참하게 몰락당할 수밖에 없었을 법도 했겠지만 딸이 가지고 있는 처세술 자체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처세에 대한 능력을 능가하기 때문에 또 더욱이 남존여비 사상이 엄격해져 버린 조선의 정치적 사상에 叛(반)하기에 보여주기를 꺼려한 것이다. 결국 박 처사의 딸은 조선의 정치사상에 얽매어 있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박 처사는 이중으로 난감해져 버렸다. 더욱이 사윗감으로 점찍혀진 이시백의 스승으로 지낸다는 것은 결코 상상도 못했다.
또 이시백은 아버지의 엄명에 문무를 두루 갖출 것을 주선하였고 이러저러한 스승들을 만나보고서야 이 박 처사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두루 가르칠 스승이 없었던 까닭도 있기도 하였다.
아무튼 이시백은 박 처사의 가르침을 몸소 갈고 닦았다. 무예와, 글 공부는 물론이고 자연에 대한 섭리까지 두루 섭렵하게 되었다. 이를 보던 이 판서는 몸소 기뻐하였다. 기뻐하는 양을 보던 부인은,
“박 처사가 그렇게 듬직해 보였사옵니까?”
그 말에 이 판서는 놀란 눈치였다.
“어험.”
거드름을 피우며 부인의 옆을 피해가듯 스쳐지나갔다.
이윽고 박 처사가 집으로 돌아가자 이 판서는 아들을 불러내었다.
“시백아.”
“네, 아버님.”
고개를 들어 이 판서는 아들을 응시했다.
“박 처사 사람됨됨이가 어떤가. 또 공부할만 하던가.”
“네.”
시백은 대체적으로 과묵하였다. 뭔가 막혀있지만 그 속엔 기품을 다지는 반가의 학풍의 영향이었으리라.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있더냐.”
“없사옵니다.”
또 이 판서는 물어보았다.
“공부하면서 좋은 교훈을 얻었느냐?”
“좀 더 배우면 알 것 같사옵니다.”
다소 이해가 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고개만 끄덕였다. 박 처사의 모습이 그의 얼굴 앞에서 떠올랐다. 박 처사의 비범함과 용맹함, 그리고 학풍에 강한 선비의 모습 그 자체로 이 판서는 만족하였다.
한편 박 처사는 집에 돌아왔다. 부인이 남편을 문 앞에서 맞이했다.
“서방님, 오셨습니까.”
그 뒤를 이어 딸도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버님, 오셨습니까?”
“오냐.”
박 처사는 신돌 위에서 방금 신고 있던 짚신을 벗고 방에 들어선다. 그리고는 부인을 불러내었다.
“서방님, 어인 일로.”
그 순간 박 처사는 딸에 대해서 말했다.
“이 판서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안 눈친가보오. 하기는, 그 인사가 보통 인사라고 하겠소.”
부인은 희미하게 미소하였다.
“그나저나 내 딸이 容顔(용안)이 좋지 못한데 어찌하나. 그게 걱정이로구먼.”
깊은 한숨을 쉬던 박 처사는 이윽고 묘안을 알아보고자 혈안이 되어버렸다. |
[문학회지] 제0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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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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