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회지] 제0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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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조선문학회 발행 - 단체 발행 소식지 제074호 - 개국626(2017)년 3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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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_01 (최준 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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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力士)
난세에 역사의 존재는 한 줄기 빛
그 빛을 지금의 이들은 갈망하고 있다.
단순히 힘이 있는 사람.
덩치가 누구보다도 큰 사람.
그러한 사람이 아닌 모든 이들은
진정으로 백마를 타고와 달려
난세를 구원해줄 자를 원하고 있다다.
백마를 타고 온 그 이의 외침에
모두가 아우성이다.
그 아우성 속에서 그 빛은 더욱 더
발하고 발하여 큰 빛이 될지니
우리는 오늘도 그 력사를
기다리고있는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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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_01 (보덕 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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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고전_楓皐傳_18
- 보덕 작
세자는 대궐에서 나고 자라왔지만 외할아버지에 대하여 특별한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외할머니가 궐에 찾아와 수시로 중궁과 자신에게 문안인사를 드리곤 하였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외할머니 상 때 찾아간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특히 부원군은 주로 공적인 자리에서 아버지를 만날 뿐 사적인 일에 끼어드실 어른이 아님을 일찍부터 깨우치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에 대한 상소가 빗발치고 외척의 등용을 금하라는 신하들의 주청을 그는 듣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은 아버지의 간청에 못이겨 정사를 돌보게 되었는데 제 육신을 준 어른한테 비수를 들이대라는 여론이 갈수록 이어지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등하였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박규수다.
"저하, 부원군께서는 고지식하신 건 흠이지만, 권세를 누리실 만큼 누리셨으니."
"허면 할아버님을 귀양보내란 말요?"
규수의 말을 가로막듯 세자는 성을 냈다. 만일 그리한다면 사도세자처럼 자신이 불가피하게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되면 왕실은 물론이고 종묘사직에 누를 끼치기에 더는 그리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생각한다. 상감이 오랫동안 옥좌에 앉을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외조부인 영안부원군의 힘이었기에 가능했음을. 그런 할아버지가 십년이 지나고 이십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으니, 백성들이 수군거리는 탓이 아닌가.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다고 했다. 그런데 김조순에게로 세도가 몰려 매일 경향(京鄕)의 백성들이 물밀듯 찾아왔다. 하지만 성품 상 사람 만나기를 좋아할 뿐. 돈은 마다했는데, 유근네 집에서는 옳다구나 하여 그 돈을 가로채듯 집으로 들이는 것이 아닌가. 그런 미온적인 외가의 분위기를 세자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런 세자의 의중을 모를리 없는 박규수는 세자의 무기력한 마음을 바로 하여 밤새도록 설득해댔다.
규수가 밤새도록 설득한 것은 이러했다. 김조순은 명실공히 상감의 장인이고, 또 세자에게는 외조부가 되니 그것을 빌미삼아 외숙들이 당장에라도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려고 들 것이라는 점이 핵심이었다. 하여 김조순 일가를 연좌할 바에야 차라리 그 곁가지들이나 다름이 없는 먼 친척들의 관직을 삭탈하는 것으로 수습하도록 당부한 것이었다.
"허면 그 싹은 어떻게 하고?"
세자의 물음에 규수는 그 싹은 세자의 덕으로 누르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자는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부모님의 생신 잔치를 베풀어 두 분 양전의 근심을 덜어내고자 많은 노력을 행했다. 여생을 잘 보내시라는 차원에서였다.
그리하여 금상이 정사를 소홀히 하는 틈을 타 세자가 김조순을 탄핵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잠재우는데 주력하였다. 대신 그 세력의 힘을 약화시키며 자신의 처가인 풍양조씨의 힘을 빌리고자 하였다. 이에 조만영은 물론이고 그 아우인 조인영 등이 조정의 요직을 차지하게 되니 이는 결국 김조순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칼을 겨누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에 학을 떼듯이 찾아온 안동김씨 일문이 김조순에게 찾아가 이를 하소를 하였다. 자신의 세도가 한순간에 풍양조씨의 손에 넘어갈까 심히 불안한 것이다. 그러나 김조순은 코웃음을 치듯 하며 웃을 뿐. 다른 뾰족한 묘안은 없어보였다. 그 대신
'세자, 세자가 정사를 그리 다스리시면 화를 부르는 법이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세자의 건강이 행여 해칠까보아 불안해하였다.
그런데 그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세자가 폐병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정사를 다스린 지 거의 5년이 되어갈 즈음이었다. 세자빈 조씨 사이에 여섯 살이 되는 세손 아기씨를 두었다. 갑작스런 비보에 상감은 급히 어의를 불러다 맥을 짚어보도록 하였다. 하지만 어의는 맥을 짚어보지 못하며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고 우기니 상감의 답답한 심사는 갚을 길이 없었다. 대신 생각이 난 김에, 선왕의 신임을 입은 바가 있던 전 승지 정약용을 수소문하여서라도 찾아 부르라고 아랫것에게 이르니 곧바로 그를 찾으러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정약용은 마과회통을 저술할 정도로 의학에 일가견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금상이 무한히도 정약용을 신뢰한 것이다. 마침 정순대왕대비가 하세한 뒤인지라 유배생활을 마치고 경기도 마현에 자리하고 살아가니 이를 알아채고 임금이 은밀히 그를 불러다가 치료를 하도록 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보는 어의들은 모두들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지라 다시 정약용을 내쫓으려는 꼼수를 부리기는 하였으나 그의 실력을 알아본 김조순이 그를 포용하는 자세를 유지하자 세도를 부린다는 이들은 모두 김조순의 서슬 아래에서는 입을 벌리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여 정약용이 자연스레 상감을 찾아뵙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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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면 그 싹은 어떻게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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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자의 병을 살펴보던 정약용이 세자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청천벽력한 통보를 할 제 상감은 물론이고 중전과 세자빈이 모두 통곡을 해대었다. 결국 대리청정을 행한 지 5년이 다 될 즈음 스물 하나의 창창한 나이에 요절을 하고야 말았다.
김조순이 세자의 부고를 듣게 된 건 물론 세자를 문진한 정약용에 의해서였다.
"소인을 죽이십시오."
정약용이 김조순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명하니,
"어찌하여 자네를 죽이겠는가."
늘그막의 쉰 목소리로 조순이 답했다. 물론 세자를 잃은 슬픔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인이 미천하여 감히 세자저하를 바로 모시지 못하였으니."
"자네도 자식들을 잃었다지."
"소인은 자식 넷을 모두 마마에 걸려 잃어버렸나이다."
약용의 대답에 조순은 가벼이 한 숨 쉬며
"그걸 두고 참척이라고 한다지."
조순은 덤덤한 듯 대하는 것이었다.
"상감을 찾아뵈올 수 없나이다."
약용이 이윽고 흐느끼는 것이었다. 울음을 터뜨리는 약용의 모습에 조순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그 아픔을 중전이 대신 앓고 있으니 인생이 참으로 무기력함을 새삼 느끼는 조순이었다.
젊은 혈기나 다름이 없는 세자가 아버지를 대리하여 만기를 친정하다가 세상을 하직하였다. 그리하여 금상이 다시 전면에 섰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정사라고 하던가. 전보다는 많이 무기력해졌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세손을 보았다는 것이다. 금상은 세손을 국본으로 삼게 된 것이야말로 큰 다행이 아닐 수 없었으리라.
그런 임금을 바라보던 조순 자신도 나이가 들어 밖으로 드나들지 못하였다. 대신 유근을 비롯한 세 아들이 밖을 드나들어 조정 일을 보니, 이제 남은 것은 자리보전이리라.
하지만 조순에게 한 가지 낙이 있었다. 바로 그 젊은 시절에 즐겨 듣던 패설(稗說) 이야기였다. 하여 패설을 비롯한 여러 소설들을 전해주는 전기수(傳奇叟)를 불러다 놓고 장안의 양민들을 불러다 그들에게 구경거리를 만들어주고 자신도 그 틈에 끼여 전기수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심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걸출하니 소리 잘하는 명창을 불러다가 춘향가며 적벽가 등 판소리를 직접 듣기도 하였다. 그러니 애첩을 둘 새가 없었다. 그러니 자식들의 들볶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버님. 그 시정잡배(市井雜輩)들을 불러다가 어이하여 아버님 집에 난장판을 만드십니까?”
그러자 아버지가,
“그렇게 불편하면 느이들이 직접 집을 나가거라.”
하며 오히려 자식을 나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유일한 낙을 모르는 자식이 더욱 무심하기는 했다. 하지만 김조순의 세도는 자식 대에 이르러서 절정에 이른 것은 사실이었다. 임금은 매형인 유근을 더욱 신뢰한 탓이었다. 한때 세자가 신임하였으니만큼 상감 또한 그 신뢰를 굳건히 한 것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도광(道光) 12년 어느 날. 영돈녕부사 김조순이 큰며느리의 부축을 받아가며 산책을 하는 도중, 갑자기 병이 들어 쓰러지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듣던 임금이 화들짝 놀라 시급히 어의를 불러다 진찰하였으나 다음날 아침에 험한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조순은 죽기 직전에 유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말라. 장차 처신하고 또 처신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우리 상감마마를 극진히 잘 모셔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그 근심을 이야기하고 한숨을 쉬더니 작은아들인 원근을 근심하며 이러저러한 이야길 주고받던 조순은 편안히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예순 다섯 살이었다.
김조순의 부고를 듣던 임금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이에 하교하길,
“애통하다, 애통하다. 이것이 웬 일인가? 지난 경신년에 아바마마께서 말씀하시길, ‘지금 내 이 신하에게 너를 부탁하노니 이 신하는 비도(非道)로 너를 보좌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그리 알라’고 하신 것이 엊그제건만 보위에 오른 지 삼십 년이 되어서야 그 고마움을 왜 몰랐던고.”
울먹이며 장인의 마지막 길을 바라보니, 조정의 신료들을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장안의 백성들은 그의 죽음에 대성통곡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장지는 경기도 이천 땅 선산에 안장되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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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_02 (선안 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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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여 제18화
- 선안 작
외국의 경우, 중국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이 서로의 세력을 과시하는데 여념이 없고, 일본은 군부 쿠데타로 인해 나라가 어수선하였다. 식민지배를 받는 조선의 상황도 별반 다르기 않았다.
만주로 이민을 가기도 하고, 대지주와 소작인들의 대립, 그리고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연평의 청년단도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일부 사회주의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고자 연평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기회가 아니면 누가 있어서 투쟁하겠소."
그들은 모두 자신의 단체를 이용하여 "투쟁"으로 합리화시키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자신이 공들여 조직한 단체가 한순간에 반대되는 행보를 보여 친목단체라는 구실이 퇴색될까 염려한 연평이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여 토론회라는 명목으로 대표의 권한으로 개최하였다. 종로 청년회관에서 개최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의외의 인물들이 자리해 있었다. 국내에서는 자선가 행세를 하면서 국외에서는 기꺼이 독립자금을 대주는 의로운 유지들이 자리했다. 이 중 당진(唐津)에서 올라온 정양림(鄭陽霖)이라는 이가 단연 눈에 띈다. 안대치와는 막역한 사이로 안대치의 집에 왕래할 적마다 연평이 술시중을 들었기에 연평의 초청에 따라 참여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자선가들뿐만 아니라 각계 학자들과 유명 인사들이 두루 모여왔으며, 명망있는 이들이 온단 소식을 듣고서 청중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랬기에 일경의 감시가 엄해진 것은 당연지사였고, 각 신문사들에서도 이를 취재하고자 모여들어 큰 관심을 보였다. 이곳 청중들 중에는 특이하게도 사회주의에 물든 청년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좌우통합을 추구하고자 하는 신간회의 방향과 같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안연평의 부친인 안대치 영감의 현명한 대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일 사회주의자들을 배제한 채 토론회를 개최했더라면 애초에 보복을 받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특히 이날에 사회주의자들은 정양림을 타깃으로 삼았다. 그가 단순히 지주라는 면도 있지만 자신들과는 성향이 틀리다는 인식 때문에 이를 경계하고자 찾아온 까닭도 있었다.
이번 토론회의 주제는 물론 민감한 사안인 좌우통합에 대한 내용이다. 이 내용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쉽사리 매듭을 지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중에는 당당히 정양림에 대한 정체를 밝히고자 하는 청년의 목소리도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 사회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을 던진 청년을 바라보던 정양림의 표정이 씁쓸하면서도 참으로 한창 혈기가 왕성하고 하니 식은 죽 먹기로 보고자 했다.
"사회주의라."
정양림은 청중들 한복판에 응시를 하였다. 그러자 관중은 조용해졌다.
"우리들이 단지 활빈당들처럼 지주들의 땅과 재산을 가로채어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준다는 식으로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그것과는 틀립니다."
열변을 토하는 청년의 말 속에는 굳은 의지와 투지가 있었다.
"우리 백성들은 재산의 많고 적음과 신분이 귀하고 천하고를 떠나 공평히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그 이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식민지에 있는 우리 백성들이 같은 환경에서 사는데 누구는 귀하고 누구는 천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들은 이를 통해 진정한 '투쟁'에 초점을 두어 말씀을 드리는 것이올시다."
순간 정양림은 껄껄거리며 웃어댔다.
"그렇군요. 젊은 청년의 패기가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툭 까놓고 말씀을 드리겠소. 나는 그대의 말처럼 초반에는 혐오를 했었소이다. 하지만 내 아는 벗이 그것 또한 하나의 방법일 뿐. 가타부타할 거리가 아니라고 했소이다."
집회의 뒤에서 지켜보던 일본 경찰들의 표정이 점차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옳소이다!"
또 다른 젊은이가 소리치자 호루라기를 불며 제지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울분을 금할 길 없던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겉만 자치를 인정해주는 척해주는 총독부 당국이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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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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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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