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여 제36화
- 선안 작
옥선이는 자신이 병든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아픈 내색을 해봐야 득이 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투기는 매일 반이었다.
"숙향아. 이 권번 문 닫기만 하면 몸 파는 기생밖에 더 되겠니. 차라리 이 권번의 명맥을 이어서라도."
"언니는 구더기 나는 옷을 입고 싶소, 아님은 깔끔한 비단 옷을 입고 싶소?"
시비조로 대하는 숙향의 태도에 쟤는 낯짝이 두껍다고 생각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옥선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병색이 짙어보이지는 않았지만 사실 시한부나 마찬가지라서 숙향에게 믿고 물려주려는 간절한 마음이 샘솟았다. 그러나 식도원 얘기가 나오자 자신의 의지가 가로 막혀 있다는 현실에 많은 갈등을 겪게 되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호형호제하던 두 여자가 하루 아침에 불구대천지 원수가 되어 앙숙이 된 비참한 현실을 눈뜨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평소 집념이 강했던 옥선은 숙향에게 펄쩍 뛰며 식도원은 가당치 않은 소리라며 윽박지르고 펄쩍 뛰어대며 끝까지 권번의 명맥을 이어가야 하며 식도원 내에서 벌어진 기생들의 수모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자 노력했다.
이들은 밤이 깊도록 대화가 그칠 줄 모르고 있었다. 권번은 조선에 있어 자존심과 맞먹는 격이라며 옥선이 추켜세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숙향에게 대뜸 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숙향은 이제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 은퇴해야 할 나이인 것이다.
"너도 인제 이 권번을 지켜야지 않겠니?"
하며 숙향에게 종용했다. 그러자 생각할 말미를 줄 것을 옥선에게 요구한 숙향이, 일 주일 뒤에 심사숙고하여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고맙다. 고마워."
병석에 누운 옥선이 결국 동기인 숙향에게 권번을 물려주게 되었고 일주일 뒤에 편안히 눈을 감았다.
죽은 친구의 시신을 보고 오열한 숙향은 간곡한 옥선의 청을 받아들였다. |
조선(朝鮮)의 봄_03(마지막회)
- 보덕 작
이들은 작심한 듯 유원복을 없앨 궁리를 하고 있었다. 유원복은 정현수에게도 눈엣가시였다. 사랑하는 문옥희를 차지하려면 우선적으로 제거되어야 할 사람이 바로 그 유원복이었다. 형과는 다르게 별다른 일을 꾸미지 않고 오직 귀공자처럼 자라야만 했던 그를 그 누가 알아주랴. 정현수는 눈에 독기를 품고 유원복을 어떻게 죽일까 하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문옥희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제 시동생을 없앨 수 있을지. 고민을 한참동안 해댔다. 그러자 그 고민은 비로소 실마리를 풀었다. 바로 유원복을 독살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유씨 집안이 본래 빈한하니 생선 독으로 이용하면 되지 않은가. 해서 복어 독을 풀어서 시동생을 죽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일전에 아는 사람들 중 왜정 때 일식업을 해왔다는 사람을 불러다 현수가 직접 복어의 독을 가져왔다. 몰인정한 정현수는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다 마쳤다.
그로부터 나흘 뒤. 문옥희의 손에 넘겨진 독은 유원복이 먹는 국물에 담겨져 있었다. 마침 음식이 상하기 전에 하루빨리 음식을 데워야 한다며 그녀가 가마솥에 그것을 끓였다. 그러고서 원복에게 한 상 푸짐하게 차린 채 먹을 것을 주었다. 그렇게 원복이 다 먹은 뒤에 몇 시간이 지났을까. 원복이 힘껏 소리를 질러댔다.
"혀, 형수!"
괴로워하는 모양을 한 원복이 형수에게 다가가려고 발버둥을 치자 옥희가,
"에그머니!"
하며 소스라치게 놀란 채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마침 그 독이 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더 시간이 지나서 원복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다음날 동네 사람들이 자세한 상황을 알기 위해 유씨네 집에 몰려들었다. 경찰은 독극물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결론을 내린 채 별다른 조사를 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식집에서 일했던 그 사람이 밀고를 해버리는 바람에 정현수는 졸지에 체포되고 말았다.
살인 교사 혐의였다.
"아이고, 나는 억울하네, 억울해!"
정현수가 울먹이며 경찰에 끌려가자 동네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그 여자부터 잡아들이지."
정현수는 누워서 떡먹는 식이라는 듯 방관만 하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정현수가 경찰 조사과정에서 문옥희라는 여자와 공모를 했다고 하니 경찰은 매섭게 그녀의 행방을 쫓기 시작했다. 유원복이 살해된 뒤 그녀는 어디론지 달아났는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해서 옥희의 친정 집은 물론이고, 그 밖의 친인척 집을 샅샅이 뒤져대고 대질해보고 했으나 아무도 그것을 몰랐다. 그런데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바로 남편의 묘소에서였다. 그녀는 목숨을 끊으려고 했었는지 과일칼로 손목을 그었던 것이다. 그때 그 근처에 사는 남자에 의해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결국 문옥희도 체포되었다.
문옥희와 정현수는 둘이서 재산을 탐내어 가로챘다는 혐의를 인정하고 감옥에 갇히고야 말았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비극을 내닫고 있었다. 옥희는 반이 미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실성한 채 사방이 유씨네 남자들로 보이는지 걸핏하면 욕지거리를 해대는 것이었다. 그 감방 주위에 여자들만 득실거리는데, 무엇 잘 못 했다 하면 들입다 손가락질을 해대며 욕을 해대는 것이다. 결국 풀려난 뒤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정현수는 징역을 살다가 나와 전처에게 되려 이혼을 당해 제 집에서 목을 매 죽고 말았다.
- 끝. |
정병욱
[문학회지] 제0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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