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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준
작성일 개국629(2020)년 9월 15일 (화) 12:59  [오시(午時)]
ㆍ추천: 0  ㆍ열람: 10      
[문학회지] 제120호
경기도 조선문학회 발행 - 단체 발행 소식지 제120호 - 개국629(2020)년 9월 15일

시편_01시편_02


거름

보잘 것없는 것은 그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간다지만 과연 이 세상 모든 것은
보잘 것 없다 말할 수 있을까.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 만큼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리라
인간도 보잘 것 없는 이 없이
오늘을 살아가리
거름도 이와 같으리라
보잘 것 없이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
우리는 모두 그런 거름과 같은 존재
짜장면 두 그릇

똑같은 양의 짜장면 두 그릇
두 그릇의 양은 동일하지만
두 젓가락 덜어서 한 그릇에 담아
양은 두 배.
먹고 또 먹고, 그렇게해서
그릇의 반이 없어질 무렵
다시 한 젓가락 덜어내어
나머지 한 그릇에 담아내니
다시 반의반 차버린 그릇 속
그리고 덜어낸 그릇 안 짜장면은
어느새 한 젓가락 밖에는 남지 않았다

아이가 묻는다.
"엄마! 엄마는?"
엄마는 지 두 그릇

똑같은 양의 짜장면 두 그릇
두 그릇의 양은 동일하지만
두 젓가락 덜어서 한 그릇에 담아
양은 두 배.
먹고 또 먹고, 그렇게해서
그릇의 반이 없어질 무렵
다시 한 젓가락 덜어내어
나머지 한 그릇에 담아내니
다시 반의반 차버린 그릇 속
그리고 덜어낸 그릇 안 짜장면은
어느새 한 젓가락 밖에는 남지 않았다

아이가 묻는다.
"엄마! 엄마는?"
엄마는 지그시 웃음지으며
아이 입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짜장을 바라볼 뿐이다.


시편_03시편_04


구름이 좋다.

이 세상 모든 구름은 그 형태가
제각각이다. 그래서 하늘을 올려볼때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역시
하루하루 변해가듯이 그렇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너무 좋다.
변한다는 건 그 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며.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건 그 만큼 우리가
살아왔다는 하나의 증거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구름이 좋다.
구름은 언제나 같은 시간에, 같은 위치에 떠있지 않으니까
바람에 따라서 혹은 시간에 따라서 그 모습이 달라지는 건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일테니까
그래서 나는 구름이 너무 좋다.
한결같은

작은 언덕 위 한 그루의 작은 소나무
큰 태풍이 몰아쳐와도, 우렁찬 소리의 낙뢰가 쳐도
어찌나 단단히 그 언덕에 자리 잡았는지
작디 작은 몸집으로 그 시간을 견뎌내어
지금의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무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왔을 때도
세찬 눈보라를 견디며 다시 그 자리 그대로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석양이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그렇게
그 한 그루의 작은 소나무는
오늘도 그렇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있으며
내일의 태양을 바라볼 것이며, 우리의 모습을 내려다 볼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시편_05시편_06


달고나

하교길에 먹어본 달고나
설탕과 소다의 적당한 비율로
만들어진 달고나 한 입
씁쓸하면서도 달달한 그 맛
적당한 색깔을 띄며
다양한 모양으로 찍힌 달고나
그 달고나 한 입 물고 있는 아이와
모양대로 찍기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달고나
그 달고나의 추억을 통해서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돌아본다
시원한 가을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바람이 불어
시원함을 몰고 온 가을
그 가을 무렵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올려보며
계절을 느낀다
시원한 가을의 어느날
그렇게 우둑커니 서서
시원한 가을을 맞이한다
기운님 시편_01기운님 시편_02


열매

나무 그림자에 새가 앉았다.
익은 열매처럼

하늘로 떨어지더니
또르르
구름 사이로 굴러간다.
동화책

자, 빨리 준비하세요.
빨간모자 소녀는 망토 주름을 펴요.
늑대는 손톱을 날카롭게 갈아두세요.
해님 달님 오누이는 동아줄을 잘 잡아요.
호랑이는 인상을 팍 쓰면서 으르렁 쫓아요.
백설공주 님, 사과가 먹고 싶어도 좀 참으세요.
산신령님은 금도끼 주기 싫다고 떼쓰지 말아요.
팥쥐는 슬슬 콩쥐를 괴롭히기 시작하세요.
이봐요, 성냥팔이 소녀! 불장난 하지 말아요.
자자, 줄을 서요.

앗, 아이가 책을 꺼냈어요.
발가벗은 임금님, 출동하세요.
부끄러워 마시고 홀딱 벗어주세요!

소설

대령원의 겨울 3화
대령원의 겨울 3화
“어서 오세요. 대령원의 실질적인 책임자, 들명이에요.”
들명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나는 수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네가 여기 책임자라고?”
수동은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보현사 스님은 고기 맛에 길들여져서 아무 일도 안한다니까요. 평소라면 괜찮지만, 지금 폭설로 수십 명이 고립되어 정신이 없으니 어쩌겠어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오줌으로라도 끄자! 해서 내가 나선 거죠. 방이 필요하죠? 여럿이 같이 묵는 남쪽 초가행랑의 큰 방과 서쪽 행랑채에 방 한 칸이 남았어요. 식사 값까지 큰 방은 무명 한 필 또는 쌀 두 말, 행랑방은 무명 두 필이나 쌀 두 말이에요.”
들명은 비 갠 아침의 새처럼 기운차게 재잘댔다.
“눈이 온다지만 비싼대?”
“여행자의 위기가,” 들명은 눈발이 더욱 거세진 하늘을 올려다봤다. “객점의 기회라는 말이 있잖아요.”
“와- 처음 듣는 말이네. 순날강도네.”
“바로! 여기서! 오늘! 나한테! 들어본 거죠! 헤-.” 들명은 턱짓으로 2층 객점을 가리켰다. “술과 북어는 당장 준비할 수 있어요. 대신 저녁식사는 술시 정각(戌時, 오후7시)이에요. 종을 울릴 거예요.”
“식사시간도 정해져 있냐?”
들명은 당당이를 끌고 대령원 동쪽의 초가행랑으로 향했다.
“어쩔 수 없어요. 손님과 일은 많고 일꾼은 적으니까. 꿩만두와 두부는 주문하면 만들어드릴 수 있어요. 물론 값은 미리 계산해야 해요. 참, 이건 비밀인데요….” 들명이 귓속말로 소곤댄다. “말고기가 좀 있을 예정이에요. 미리미리 예약하세요.”
들명이 입을 더 크게 찢으며 웃었다.
숙소로 움직이던 수동은 길에 면한 행랑채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또래의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얼굴과 행동거지가 반듯하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기상이 느껴지는 청년이었다. 그는 마루 끝에 엉덩이를 놓고 앉아 들이치는 눈발도 아랑곳없이 생각에 잠겨있었다.
“2인조 중 하나에요.”
들명이 속삭였다.
“2인조?”
“오빠랑 저 오빠. 대령원의 미남 2인조.”
“어느새?”
“지금 정해진 거죠. 내가 정했어요. 미남 2인조.”
“뭐래? 내가 훨씬 낫지. 저쪽은 어딘지 무섭잖아. 무겁고. 나는 부드럽고.”
“취향 나름이죠.”
들명은 지지 않고 대꾸했다. 수동은 당나귀의 고삐를 그녀에게 건넸다.
“얘나 데려가서 여물과 물 좀 넉넉히 줘. 나는 알아서 찾아갈 테니까.”
수동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청년을 향해 걸어갔다.



[세종 4년, 섣달, 열나흘 날, 신시(申時)]
_1422년, 12월 14일, 오후 3시~5시

“어휴- 눈이 멈추지 않네.”
수동은 청년 옆에 엉덩이를 놓고 앉아 묵빛 하늘을 살피며 말을 걸었다.
“누구요?”
청년이 물었다. 몸은 바위처럼 단단하고, 얼굴에는 한 점 티끌이 없었다.
“엽괴(怪)야.”
“엽괴라면 요괴 사냥꾼이군.”
“응. 요괴를 좇아서 여기까지 왔어. 한양과 경기도에서 까닭모를 연쇄 살인, 살귀 사건이 벌어졌거든.”
“물어봐도 되나? 요괴는 왜 자꾸 인간의 일에 끼어드는가?”
“오해가 많아. 사실 요괴는 특별한 원한이나 까닭이 없다면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않아. 관여해도 나쁜 짓을 하지 않지. 죄업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걸 직접 경험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꼭 선을 넘는 녀석들이 있거든.”
“원한 때문인가?”
청년은 허공을 보며 짧게 한숨을 뱉었다. 마치 원한 맺힌 일이 있다는 듯.
“원한 맺힌 놈들도 있고, 헛된 욕망을 가진 것들도 있지. 또 호기심이 많은 놈들도 있고.” 수동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입으로 간단하게 주문을 榴 그런 다음 허리를 굽혀 마루 밑으로 쑥 팔을 집어넣었다. “이 녀석처럼 말이야.”
아야! 마루 밑에서 새된 소리가 흘러나왔다. 곧장 수동의 손에 가장자리가 흐릿한 검은 물체가 잡혀 끌려나왔다. 사람의 그림자 같았다.
“뭔가?”
청년은 놀라지도 않고 무심한 얼굴로 되물었다.
“망량이라고 해. 사람 그림자에 숨어사는 요괴지. 이렇게 빛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점차 형체가 분명해져. 물론 사람처럼 뚜렷해지지는 않지만.”
“놔주세요!”
망량은 조금씩 옅어지는 검은 몸을 좌우로 흔들며 앙탈을 부렸다. 이 요괴는 차후 이익의 <성호사설>에도 등장하는 요괴다.
“정말이군. 점차 색과 형체가 나타나는군. …눈과 귀가 아주 크네.”
청년이 망량을 보며 말했다.
“요괴를 봐도 별로 놀라지 않네.”
“요괴보다 이상한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긴.” 수동은 망량을 집어던졌다. 망량은 몇 바퀴 눈길을 구르더니 발딱 일어서, 대령원 출입문으로 달려가면서 모습이 희미해졌다. “나는 정수동라고 해.”
“나는 영이라고 부르면 된다.”
청년이 대꾸했다.
잠시 후 영이 눈치를 살피며 입을 뗀다.
“저기, 늘 궁금한 게 있었는데….”
“물어봐.”
“요괴는 배가 고프거나 하지는 않나?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하나? 요괴가 농사를 짓거나 물물교환을 한다는 말은 못 들어 봤거든.”
“요괴에게 본능은 헛된 바람이거나 살아생전의 습관일 뿐이야. 식욕도 거짓이지. 먹는다고 실제로 배가 부르거나 살이 찌지는 않아. 그저 배가 부르고 만족하다고 착각하는 거지. 그 때문에 요괴들은 인간들이 바치는 음식을 가장 좋아하지. 인간이 구해서 바치는 음식은 배고픔에 대한 욕망만이 아니라 자존감까지 크게 만족시켜 주니까. 다음은 뺏어먹기, 마지막은 훔쳐먹기 순이야. 재미있는 건, 사람에게 음식 따위를 선물받거나 사람들의 기도 대상이 되면 요괴들은 욕망이 충족되고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더욱 강력하게 변한다는 거야. 이론상으로는 많은 사람이 믿고 모시게 되면 잡귀도 대요괴나 대신(大神)이 될 수 있는 거지.”
“사람의 믿음이나 정성이 모이면 모일수록 요괴고 신이고 더 강하고 훌륭해진다는 건가?”
“바로 그렇지. 그런데 날이 이래서 걱정이야.”
수동이 오랜 친구에게 하듯 편히 말했다.
“무엇이?”
영 또한 격 없이 되물었다.
“이런 날은 해괴한 일이 당연한 듯 벌어지거든.”
“…….”
수동은 힐끔 영을 돌아본 후 입을 뗀다.
“나도 하나 물어보지. 여긴 뭐 하러 왔나?”
“거래가 있네.”
“오-. 장사치였나?”
순간, 두 사람의 눈앞으로 길고 검은 수염을 휘날리며 유덕이 지나간다. 뒷짐을 지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금강산이 그려진 부채를 펼친 그의 풍채는 만사(萬事)의 판관이라도 되는 양 존엄하다. 그의 눈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길 끝을 응시하지만, 길 가에 앉은 수동과 영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걸음마다 무거워 내딛는 땅이 구멍이 뚫릴 기세다.
휴-. 잠시 멎었던 숨을 내뱉으며 수동이 웃었다.
“무서워라~.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네.”
“내가 거래할 사람이 저 사람이다.”
영의 얼굴이 단단해졌다. 그의 눈 안에 분노가 눈물처럼 차올랐다.
“에? 저 사람? 너무 무서운데?”
수동은 멀어진 유덕의 등을 보며 뇌까렸다.
“예전에 원나라의 사막 땅에서 꼭대기가 끝없이 타오르는 산을 본 적이 있다. 저 사람은 그 불과 같은 사람이다. 모든 것을 태울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영이 두려운 듯 말했다. 그 말에 수동은 설핏 미소를 지었다.
“넌 바위 같아. 아무리 큰 불길 앞에서라도 절대로 굽히지 않는.”
“교육이 무서운 거라니까.” 영이 쓴웃음과 함께 덧붙인다. “아버지가 늘 그러라고 했거든.”

등잔을 켠 초가 안. 노파와 두 청년이 앉아있다. 평나와 영과 관이다. 등이 굽은 평나는 지팡이 끝을 두 손으로 거머쥐고 영을 쏘아보다, 거칠게 입을 연다.
“그 요괴 잡는다는 놈 혹시, 오살할 놈들의 인사는 아니었냐?”
“그렇지는 않은 듯 했습니다. 숨어있던 요괴 망량을 떼어낸 것만 봐도 의심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영이 대답하며 관을 돌아봤다. 뒤로 머리를 묶은 관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아이처럼 하얗고 보드랍고 깨끗한 피부의 청년이다. 안타깝게도 벙어리였다.
“보세요. 관도 괜찮다지 않습니까.”
“지랄맞을 놈의 세상! 여하튼 일이 끝날 때까지 매사에 조심해야 해.”
“알겠습니다.” 영은 다시 관과 시선을 맞춘다. “관. 찾을 수 있겠어?”
관은 입가에 먼지 같은 미소를 피웠다. 영은 그 의미를 알았다.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그것이 더욱 믿음직스러웠다. 알 수 없다는 것은 힘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힘을 낸다면 관만큼 성과를 내는 자는 없었다.
“대령원의 가장 높은 곳은 객점의 지붕이다. 목이 부러질 만큼 춥다. 견딜 수 있겠느냐?”
평라가 관에게 물었다.
관은 아주 깊이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거래가 이뤄지기 전에 인질로 잡힌 그분을 구출해서 떠나야 해.”
영이 관의 눈을 보며 말했다.
“하나 물어보마.”
평나가 영을 보며 목소리를 은밀하게 바꿨다.
“말씀하세요.”
“만일 그분을 구해내지 못한다면, 정말 천부경을 내어줄 생각이냐?”
그 말에 영의 얼굴이 얼음처럼 냉정해졌다.
“평나 님. 왕희 님은 고려의 마지막 왕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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