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신문
조정 관보 열람 (클릭) - 지역 관보 열람 (클릭)
작성자 정병욱
작성일 개국628(2019)년 12월 9일 (월) 22:41  [해시(亥時):이경(二更)]
ㆍ추천: 0  ㆍ열람: 79      
[시사일간] 제010호
 

 
 
전라도 전주부 백성 시사일간사 발행 - 개인 발행 소식지 제010호 - 개국628(2019)년 12월 09일
 
 
뒷담화…… 나토 70돌 정상회의 환영식장에서
 
나토 70돌을 맞아 열린 나토 정상회의 환영식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0분 늦게 환영식장에 도착한 것을 가지고 각국 정상들이 뒷담화를 늘어놓은 사실이 알려졌다.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이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와 프랑스 마르코 대통령에게 지각한 이유를 물었는데 캐나다 총리가 "그가 40분 동안 기자회견을 하는 바람에 늦게 왔다"며 "그의 팀원들도 놀라서 입이 쩍 벌어지더라."며 물었는데 '그'는 다름아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각은 지난해 2018년 나토 정상회의가 끝나고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몬테네그로 총리를 거칠게 밀쳐내고 아무 일이 아니란 듯 거만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화제가 된 바가 있었다.
게다가 이번 정상회의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방위비 인상 압박을 가함으로써 각국 정상들로부터 소외되었다. 더구나 시리아 철군을 강행한 미국의 일방문제를 두고 문제 삼은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의 논쟁 이후로 나토 정상회의가 냉각기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이다. 뒷담화 사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조기 귀국하고 즉각적으로 위선적인 태도를 비난하며 SNS를 통해 쥐스탱 총리에 대해 불쾌감을 나타냈으나 트뤼도 총리가 내용이 왜곡되었다며 진화에 나선 상황이다.
 
 
일본 총리 아베 엉뚱한 답변에 비난 폭주
 
지난 4월 열린 정부주최 벚꽃놀이에 초청자 명단 공개 요구를 하는 야당의 요청과 달리 일본 정부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거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행사에 국가 공로자들이 초청되었다는 정부의 주장과 다르게 아베 총리 지역구 주민들을 비롯해 2조 원대 피해를 낸 다단계 사기업체 회장까지 초청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벚꽃놀이 끝나고 한달도 채 되지 않은 5월 9일 일본 정부가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당시 초청자 명부를 요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명부를 폐기한 사실이 밝혀지며 추궁하는 도중 "장애인 비정규직 직원의 근무시간 등을 고려한 문서 절단기 사용 예정일이 잡혀 예정대로 폐기한 것"이라는 답변으로 둘러 말하는 일본 아베 총리의 태도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비난이 폭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측근들 사이에 스캔들이 일어나는 아베 내각에서 촌극이 일어나는 현실에서 차후 일본 정치가 어떤 파장을 가져올 지 주목할 대목이다.
 
 
[보덕] 창세기(創世記) <제5편>
 
재위 5년 도원을 공영참판에 임명했다. 그동안에 누적되었던 구세력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에 왕이 구세력이 장악하였던 총리부와 공영부 모두를 기존의 관리들을 파직하고―부정부패를 일삼아 백성들의 노동 착취를 묵인하였다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여 새로운 제도를 개혁하려는 왕의 의지가 반영되었다.
도원. 그는 돈녕부 도정으로 있는 도국의 아들로 지난 과거에 여섯 형제가 급제하여 화제를 낳은 사람이었다. 도국의 타고난 성정으로 자식들이 모두 새로이 나라를 이끌어 갈 도량이 넓은 인재로서 기대가 매우 큰 터였다. 도원의 동생들도 맡은 벼슬은 이러했다. 도위는 공영사, 도봉이 총리참의, 도진이 대중정, 도우가 대중정 대신, 도석이 대중정 판서에 제수됐다.
고태수는 대중정 판사에 임명하였다. 동방일은 문적원감에, 그 동생인 동방속과 동방봉우는 각각 문적감사와 문적감경에 임명됐다.
구영성은 문적감호에 호판성은 주자감경에 임명했다. 주자학장에 신강이 맡았다.
이듬해에 왕은 총리부 자체를 혁파하여 업무를 각각 돈령부와 의정부에서 주관하도록 명했다. 이후 공영부를 폐지함에 따라 그동안 나라의 골칫거리로 여겨지던 두 개의 기구가 사라졌다.
대중정이라는 직제를 폐지하여 돈령부와 의정부에 직무를 이임하고 대신, 판서, 판사도 같이 없앴다.
이후 주자학감에 도원을, 주자교수에 도위, 이벌찬에 도봉, 이찬에 도진, 잡찬에 도우, 파진찬에 도석, 대아찬에 고태수, 아찬에 동방일, 일길찬에 동방속, 사찬에 동방봉우가 임명되었다. 급벌찬에 구영성이, 대나마에 호판성이 임명되었다.
나마에 권봉달, 사지에 유월야, 길사에 양광웅, 대보에 임희량, 소오에 김공달, 조위에 설언호를 임명하였다.
이봉소에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이운소에게 중추부경력(中樞府經歷)을, 이방소에게 중추부도사(中樞府都事)에 명하였다.
재위 7년 정운을 영돈녕부사에 명한 뒤 이보고에게 우의정에 임명하였다. 뒤이어 온일흥을 동지돈녕부사에 임명하고 장보공에게 우찬성(右贊成)으로 삼았다. 그리고 백을을 좌찬성(左贊成)으로 삼고 그 후임을 봉용서가 맡도록 했다. 궁호보를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으로 삼고 도원을 그 후임으로 명했다. 궁보조에게 의정부검상(議政府檢詳)이란 벼슬을 제수해 그 후임으로 도위에게 맡기도록 했다.
황보국으로 하여금 의정부사록(議政府司錄)으로 삼고 도봉에게 그 후임을 맡게 하니 왕의 인사단행이 매우 공평하였다.
재위 8년 황자가 태어났다. 원래 황자가 태어나자마자 태자로 책봉되는 것이 관례로 여겨졌으나 잠시 뒤로 미루고자 왕비가 직언하니 왕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재위 10년 봄에 왕은 왕비의 동의를 얻어 황자를 태자로 책봉하였다. 이후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자 상서원(尙瑞院)의 설치를 명하였다. 도진을 상서원정(尙瑞院正)에, 도우에게 상서원판관(尙瑞院判官)을, 도석에게 상서원직장(尙瑞院直長), 고태수에게 상서원부직장(尙瑞院副直長)에 명하였다.
 
 
이후 왕은 그동안의 봉안되어 모시었던 덕왕부터 보왕에 이르는 선대왕들을 모두 ‘종’으로 높이고자 하니…
 
같은 해 가을에 조재가 세상을 떠나자(병으로 인함), 좌․우의정으로 하여금 국사를 담당토록 하였다.
재위 12년 옥보에게 오위장(五衛將)에 임명하여 병권을 확립하도록 하였다.
뒤이어 동방일을 오위 상호군(上護軍)에, 동방속을 오위 대호군(大護軍), 동방봉우에게 오위 호군(護軍), 구영성에게 오위 부호군(副護軍), 호판성에게 오위 사직(司直), 신강에게 오위 부사직(副司直), 권봉달에게 오위 사과(司果), 유월야에게 오위 부장(部將), 양광웅에게 오위 부사과(副司果), 임희량에게 오위 사정(司正), 권봉달에게 오위 부사정(副司正), 설언호에게 오위 사맹(司猛)에 제수했다.
재위 13년 정월에 온연방에게 오위 부사맹(副司猛)으로, 궁보조를 의정부 사록으로, 황보국에게 돈녕부봉사, 남궁부를 오위 사용(司勇), 이봉소에게 오위 부사용(副司勇), 이운소에게 지중추부사로, 이방소에게 중추부경력으로, 도원으로 하여금 겸임(兼任)으로 중추부도사에 임명하도록 하였다.
같은 해 오월에 궁정승의 위패를 종묘(宗廟)에서 빼낸 뒤 시호인 ‘태정숭록대신궁왕’이라는 시호를 추탈하니 금상이 왕권강화를 위해 취한 조처임을 드러낸 대목이었다. 이후 왕은 그동안의 봉안되어 모시었던 덕왕부터 보왕에 이르는 선대왕들을 모두 ‘종’으로 높이고자 하니 신하들에게 있어서 당혹스럽기 이를 데 없었으나 왕의 의지가 매우 굳건하므로 흔쾌히 받들어 봉종이라는 시호가 있음을 전례로 해 덕왕을 ‘덕종(德宗)’으로, 보왕은 ‘보종(寶宗)’으로, 추숭할 것을 명하였다. 단, 봉종(생전에 봉왕이라 칭함)은 제외하고.
재위 15년 왕은 황자의 이름을 부(夫)라 하고 태자로 책봉하였다. 태자에 책봉된 후 왕은 종묘에 나아가 여러 열성조께 후사를 밝힘을 천명하니 신료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도리가 없었다.
재위 16년 공석인 관직들은 모두 폐지하라고 명하니 그 중에 주자감과 문적원(文籍院)을 폐지하고 이벌찬, 이찬, 잡찬, 파진찬, 대아찬, 아찬, 일길찬, 사찬, 급벌찬, 대나마, 나마, 사지, 길사, 대보, 소오, 조위를 폐지하였다. 이들 모두의 업무는 돈령부와 중추부 이외 관청들이 주관하도록 명하였다.
재위 22년 인사단행이 이루어졌다.
영의정 이보고, 좌의정 정운, 우의정 백을, 좌찬성 장보공, 우찬성 도국, 좌참찬(左參贊) 온하수, 우참찬(右參贊) 봉용서, 의정부사인 온일흥, 의정부검상 온연방, 의정부사록 궁호보, 영중추부사 궁보조, 영랑은 판중추부사, 길보는 지중추부사에 명하였다.
길석에게 동지중추부사, 황보국에게 첨지중추부사, 남궁부에게 중추부 경력, 옥보에게 중추부도사, 이봉소에게 영돈녕부사, 이운소에게 판돈녕부사, 이방소에게 지돈녕부사, 도원에게 동지돈녕부사, 도위에게 돈녕부도정, 도봉에게 돈녕부정, 도원에게 돈녕부부정, 도우에게 돈녕부첨정을 명하였다.
도석을 돈녕부 판관에, 고태수에게 돈녕부 주부, 동방일에게 돈녕부 참봉, 구영성에게 상서원정, 호판성에게 상서원 판관, 신강에게 상서원 직장, 권봉달에게 상서원 부직장, 유월야에게 오위장 겸 상호군에 명하였다. 양광웅에게 오위대호군 겸 호군, 임희량에게 오위 부호군 겸 사직, 김공달에게 오위 부사직 겸 사과, 설언호에게 오위부장 겸 부사과에 명하였다.
왕은 오위를 자신뿐만 아니라 궁궐의 군대로 하여 친위군대로 만드니 이때 오위의 체계가 굳건하였으므로 사정, 부사정, 사맹, 부사맹, 사용, 부사용으로 하여금 백성들의 출사로 터놓아 사정 5, 부사정 309, 사맹 16, 부사맹 483, 사용 42, 부사용 1939 총 2794명을 뽑았다. 국가에 재난이나 환란이 일어났을 때 호위하는 군대로 쓰이니 나라가 존속하는 내내 그 기능이 유지된다.
재위 24년 영의정 이보고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니 왕과 왕비가 상심하였다. 이후 영의정은 비어 있어 좌의정․우의정이 대신하였다.
 
 
 
[알림] 없음
 
 
 
[광고] 없음
 
 
 
http://www.1392.org/bbs?paper:307 게시물 링크 (클릭) 게시물 주소 복사하기
수정/삭제 : 제한 (접속하십시오)     윗글 밑글 목록 쓰기
  다른 아이콘 비공개 설정 사조 백과사전 맞춤법 문법 검사기 0
2000
저장(입력)
[문학회지] 제120호 : 629('20)/09/15 [문학회지] 제119호 : 629('20)/08/30 [문학회지] 제118호 : 629('20)/08/15 [2]+1
[문학회지] 제117호 : 629('20)/07/20 [1] [문학회지] 제116호 : 629('20)/05/18 [1] [문학회지] 제115호 : 629('20)/04/21 [1]
[문학회지] 제114호 : 629('20)/02/11 [문학회지] 제113호 : 629('20)/01/11 [시사일간] 제011호 : 628('19)/12/22
[시사일간] 제010호 : 628('19)/12/09 [시사일간] 제009호 : 628('19)/12/07 [시사일간] 제008호 : 628('19)/10/10
[문학회지] 제112호 : 628('19)/10/03 [시사일간] 제007호 : 628('19)/09/29 [시사일간] 제006호 : 628('19)/09/06 [1]+1
[문학회지] 제111호 : 628('19)/09/03 [문학회지] 제110호 : 628('19)/08/21 [문학회지] 제109호 : 628('19)/07/21
[태백記] 제003호 : 627('18)/09/15 [태백記] 제002호 : 627('18)/09/02 [태백記] 제001호 : 627('18)/08/31
[문학회지] 제108호 : 627('18)/05/31 [문학회지] 제107호 : 627('18)/05/23 [1]+1 [문학회지] 제106호 : 627('18)/05/19 [1]+1
[문학회지] 제105호 : 627('18)/05/15 [1] [문학회지] 제104호 : 627('18)/04/15 [문학회지] 제103호 : 627('18)/04/13
[문학회지] 제102호 : 627('18)/04/12 [문학회지] 제101호 : 627('18)/04/04 [문학회지] 제100호 : 627('18)/03/25
목록다음쓰기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