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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욱
작성일 개국628(2019)년 10월 10일 (목) 18:36  [유시(酉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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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일간] 제008호
 

 
 
전라도 전주부 백성 시사일간사 발행 - 개인 발행 소식지 제008호 - 개국628(2019)년 10월 10일
 
 
[보덕] 창세기(創世記) <제3편>
 
이후 왕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을 태자에 봉했다. 모우는 스스로 목을 매 자살했고 이 소식을 접하고는 왕이 친히 시호(諡號)를 내리지 않았다. 봉화는 지방관인 길돌(吉乭)이라는 자와 혼인하였고, 국과 운봉은 벼슬길에 나아가 온건한 노선을 취하면서 궁국을 궁내대신에 궁운봉을 왕내대신에 임명되어 덕수공에 봉했다.
이에 신하들은 일제히 반발했지만 이는 왕통을 지키는 데 있어 체면을 유지한다는 명목 아래에 있다고 말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태자가 왕성하게 자라자 태자에게 왕비를 맞이하게 하였는데 역시 장자성의 딸이며 그의 이모인 희와 결혼하였다. 이는 이찬 온희구의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태자 부부의 금슬이 좋아 태자에게 대리청정 하도록 명하였고 금상 덕왕은 태상황(太上皇)에 올랐다. 이에 불만을 품은 길돌의 동생 길응, 그의 부하 억, 안 등과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간파한 예언자의 말이 이러했다.
‘궁씨가 정통왕가를 범하려 하고 있사옵니다. 이는 하늘을 어둠으로 바꾸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음이오니 길응 일당을 죽여야 할 줄로 아뢰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을 불을 보듯 뻔한 이치로소이다.’
이에 사찬 이보고를 정토장군으로 임명해 길응의 세력을 토벌하도록 지시하자 이보고는 삽시간에 진압하고 길응 등 세 명을 사로잡아 들였다.
“이 무슨 경우란 말이냐! 이 사람들아! 왜 그깟 정변(政變)을 일으켜 국정을 혼란케 하느냐!”
상왕 덕왕이 말했다.
반역자들은 말이 없다. 묵묵히 왕을 불신하며 눈을 사납게 노려볼 뿐이다.
왕이 말했다.
“짐은 말하노라, 저 반역자들을 저자에 효수토록 하라!”
반역자 세 사람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봉화는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친정 가문이었던 궁씨를 위해 희생했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비의 죄업을 속죄하기 위해 금상의 엄명을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 때문이었다. 봉화의 눈에서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이후 봉화의 울분은 그칠 줄 몰랐다. 왕은 대대적으로 궁씨 일족을 숙청하는데 수많은 궁씨 자손들이 목숨을 잃었고 봉화의 귓가에 이들의 비명소리만 요란스레 들려왔다. 자신은 이를 비관하여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이를 본 사람은 그녀를 모시던 시녀였으며 부군인 길돌이 부인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칼로 복부를 찔러 목숨을 끊었다. 부인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한 눈빛으로 살아있는 사람처럼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궁씨 일족을 멸하라는 어명을 내렸던 덕왕이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하는데 무려 오만삼천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궁씨 일족에 일조한 사람들과 그 일가의 외척을 포함한 숫자였다. 이 대숙청으로 왕은 왕권강화를 꾀하였고, 궁 정승 일가의 딸들도 모두 죽임을 당하고야 말았다. 이로 인해 궁씨 숙청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린 덕왕은 더더욱 강도를 높여 궁씨의 ‘궁’ 자를 발견하는 즉시 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까닭으로 마치 폭군으로의 길에 접어들고야 말았다.
그런 그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바로 치매(癡呆)라는 병이 왔기 때문이다. 덕왕은 육십을 일기로 붕어한다. 시호를 선사덕종대왕이라는 시호를 내리어 후히 장사를 지내도록 했다. 봉왕의 왕비 장희왕후(일각에서는 신덕왕후(信德王后)라 한다)가 직접 청정을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봉왕이 허수아비가 되었다. 이로 인하여 장자성은 태정대신선조성좌상겸총리대신파진찬 이라는 벼슬을 하게 하여 국부를 축적하도록 했고 온희구를 청정대부덕광공신 이라는 봉직(奉職)을 내려 왕비가 자신의 세력을 손수 만들어나갔다. 이를 통해 장씨 세력이 세도가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에 궁씨는 천하게 여겨져 세상 사람들로부터 차츰 잊혀져갔다. 세월이 다시 흘러 왕자 인이 장성하자 태자로 봉해 장자성의 손자인 용화를 태자비에 봉했고 후궁으로 천인(賤人)이 되어버린 궁씨 일가붙이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궁국의 딸 진을 태자비로 책봉하였다. 이에 신하들의 반대가 적지 않았으나 굴하지 않고 왕이 친히 강행하였다.
태자비 궁진이 아랫것으로부터 아버지인 궁국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식음을 전폐해 눈물을 뿌렸다. 딸이 태자비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궁국은 유언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 죽거든 우리 궁씨 집안의 큰 어른으로 살아가거라. 그리하면 궁씨는 곧 다시 세상을 열 것이니 참고 견뎌라.”
궁국은 이후 칠십을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궁국에게 조정에서는 진덕공이라는 시호를 내리니 왕은 후히 국장으로서 예를 다하여 마지막 길을 보내도록 했다.
금상 보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온희구를 국구로 삼아 왕실의 재산의 일부를 보태어주었다. 이를 대가로 희구의 딸 온화를 여식으로 왕비를 삼았다. 이 왕비는 혼인한 지 일 년이 되어 아이를 생산해 태자에 봉하니 이름을 방이라 하였다.
방이 태어나고 하자 왕은 태자비의 신분으로 있던 궁진에게 자진(自盡)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궁진이 왕명에 마지못해 받들어 자신의 처소에서 비상(砒霜)을 탄 물을 먹고 죽고 말았다. 그의 나이는 스물여덟이다. 꽃다운 나이였다.

왕비는 그녀의 자진 소식을 전해 듣고 큰 충격을 받아 왕에게 그녀에게 후히 상을 치르도록 부탁하였으나 왕이 이를 거절하였다. 이는 필시 궁씨에게 정변을 일으킬 빌미를 제공할 것을 염려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왕비가 이를 헤아리지 않고 정전에 나아가 석고대죄를 청하니 왕이 직접 왕비를 찾아가 그녀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하여 이를 그치게 하였다. 왕비의 청에 의해 치러진 궁진왕비의 장례는 화려하게 치르게 되었다. 상여가 지나갈 때마다 백성들은 일제히 통곡하며 이를 슬퍼하니 천지도 감동하여 하늘에서는 장대비가 내릴 정도였다.
 
 
 
[시] 타다 남은 재   [시] 탁류(濁流) 속으로
   
- 선안 작

언제 어디에선가
타다 남아버린
한 줌의 재가 있다.

그 재는 형체 하나 남김
없이 화마(火魔)에
의해 삼켜버려 놓고는
한 줌의 재를 남겼다.

그러나 재가 되어 버린
뒤에 누군가에게 의해 잔상(殘像)과
같은 불씨가 꺼지지 않아
새로운 불꽃이 피어난다.

불꽃이 피어 오른 그 자리.

그 자리에
한껏 남은 재들이
다시 타올라 힘껏
타들어 가고……
어느 결에 소리 소문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야 마는
타다 남은 재.
- 선안 작

지난날의 내 상처는
아물 새도 없이
깊이 깊이 곪아
돌이키지 못해
썩어만 가고
그만큼 근심도
더해만 간다.
험한 세상,
험한 풍파에 시달린 몸
그 어디메 의탁(依託)하랴.
어느 하나 손 내미는
사람 없이 떠도는 나그네 신세.
그렇게, 그렇게
버림받은 채 흙탕물과
같은 신세 면치 못해
지향도 목적도 없이
탁류 속으로 휩싸이누나.
탁류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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