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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욱
작성일 개국628(2019)년 9월 6일 (금) 23:35  [자시(子時):삼경(三更)]
ㆍ추천: 0  ㆍ열람: 79      
[시사일간] 제006호
 

 
 
전라도 전주부 백성 시사일간사 발행 - 개인 발행 소식지 제006호 - 개국628(2019)년 9월 6일
 
 
행용양위사직 김지수 대감 회방연 개최
 
지난 9월 5일 중직대부 행용양위사직 김지수가 회방연을 맞이하였다. 이날 행사 주최자인 행예조좌랑 박세당은 "과거에 급제한 이후 지난 12년이 넘어 오랜 시간 동안 관직에 계시면서 조정의 업무에 힘쓰셨고, 최근에도 여러 가지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음에 칭송받음이 마땅하다고 전했다.
 
 
태풍 링링 북상
 
지난 9월 2일 필리핀 동북부 해상에서 형성된 제00호 태풍 링링은 9월 6일 21시 현재 제주 서귀포 남서쪽 약 250km 부근 해상에 위치하여 서서히 북상 중에 있으며, 9월 7일에는 황해도 해상으로 접근하여 중부지방에 막대한 피해를 남길 것으로 보여진다. 이번 태풍에 대비하여 만전의 준비를 다해야 할 것이다. 축대 붕괴와 농작물에 피해가 없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시사일간 복간
 
시사일간을 금일 자로 복간한 것은 참으로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개국620년 8월 8일을 끝으로 오랫동안 휴간하게 되었다. 이후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그리고 촛불혁명과 박근혜 탄핵. 그밖에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시사일간은 긴 수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시사일간. 시작은 미약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시사복간은 아조에 길이 남을 언론지로 남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이다. - 발행인 백
 
 
[보덕] 창세기(創世記)
 
[보덕] 창세기(創世記) <제1편>

 [본 작품은 조선방송사와 조선문학회에 연재하여 간행된 <고향집>을 재편집한 것이다.]

*  1  *

천지만물이 창조해 개벽한 지 삼십년이 될 무렵이었다. 삼십년이란 세월은 짧기도 하지만 길기도 한 세월이었다. 이 세월동안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하나 한 나라가 세워진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리라. 만물이 창조한 지 만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고 하니 그 이전의 역사가 흐릿하게나마 있으리라.
이날 선사민족이 세운지도 어쨌든 삼십년이 되어갔다. 임금은 그동안 백성들의 신임을 얻었으나 세계 최초의 왕조인 이 나라에 권력다툼과 부정부패, 그리고 가난을 면치 못하는 신세인지라 이 왕조의 임금은 백성에게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이를 아랑곳 하지 않고 아둔하다는 듯 임금이 타락에 빠지게 되었다. 도를 가르치는 성인을 무참히 죽이기도 한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게다가 대운하(大運河)를 건설하여 백성들을 죽음에 이르렀고, 지방관들의 반란을 진압하지 못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야 말았다. 이에 백성들의 분노를 잠재우지 아니하고 민란을 일으켜 무능한 관료를 죽이기에 이르렀다. 이에 왕은 백성들을 모조리 죽여 탄압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승은 왕의 편전에 들어서자마자 알현을 청하였다.
“전하!”
기뻐하는 모양으로 왕에게 다가가 아뢰기 시작한다.
“무슨 일입니까.”
왕이 무뚝뚝하게 인사를 받아들인다. 정승이 아뢰기를 백성들이 울부짖고 있사온데 정작 이렇게 나약한 왕이 되시었으니 상감께로는 폐로 갈 것이고 나라는 멸망하고야 말 것이라고 직언을 올렸다. 이에 왕은 이렇게 즐거이 노는데 왕실에 피비린내가 진동해 살수가 없다며 생지옥이 따로 없더라고 한다.
정승이 얼굴이 돌변하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여봐라.”
하니 문 뒤에서 잠복해 있던 군사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에게 이르길,
“저 타락한 왕의 목을 베고 앙급자손에 이르게 하라!”
이에 군사들이 왕의 주위를 에워싸자 왕은 당황해하였다. 정승의 그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왕은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어 울부짖어 사정하기를,
“자네 이렇게 무섭게 나오다니 왜 이러시는가.”
그러며 왕은 궁의 무서움을 간파한 나머지
“내, 자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 터이니 이리 대하지나 마시게.”
하며 사정사정하는 게 아닌가. 정승은 말하길,
“내 성씨를 궁(宮)이라 하고, 당신의 그 옥좌(玉座)를 앉아보는 게 소원이겠소.”
왕은 휘둥그레지고 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사병에게 끌려가 버린 채 옥좌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군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궁궐에서 벗어난 직후 왕은, 아니 폐주는 왕의 수급을 베라는 정승의 명에 따라 궁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왕비와 후궁들도 모조리 시해해 암매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끝끝내 왕위에 올라가지 않았다. 만에 하나 자신이 일으킨 정변을 보고 백성들이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한 까닭에 자신은 폐주의 아들로 하여금 왕위에 올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었다. 일종의 미봉책(彌縫策)이었다. 왕실의 어른이 세상을 하세했다는 소식이 방방곡곡에 전해지자 백성들은 하나같이 목을 놓아 통곡을 하였다. 아무리 자신들에게 어진 마음으로 선정(善政)을 베풀지 않았더라도 임금은 엄연한 임금이었다. 그렇기에 궁씨 성을 얻은 정승은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입지를 다져야만 했다. 잘못하다가는 자신도 폐주와 같은 운명이 될 테니 살아보아야 하지 않는가.
그의 아들을 왕위에 옹립했던 궁 정승. 자신이 드디어 실권을 잡았다. 실권을 잡은 그는 왕을 포로로 삼아 자신의 세력을 마음껏 부려먹었다. 이에 궁 정승이 임금에게 다가가 말하길,
“전하, 만백성의 어버이로서 도리를 다하셨습니까.”
이에 왕은 궁 정승에게 웅크리고야 말았다. 궁 정승의 위세에 말문이 막히었다.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배어나고 얼굴에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속삭이듯 궁 정승은 왕의 얼굴을 어루만지듯 그 보드라운 손으로 만지며 아녀자의 눈으로 흘겨보듯이 하며 왕의 귓가에 속삭이며,
“전하.”
하며 부른다. 그러자 왕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두려워하였다.
“왜 나를 부르는 게요?”
왕의 음성은 떨린다.
궁 정승의 말이 간교한 성향이 묻어나온 만큼 왕의 위에서 국사를 조정하는 지위에 머물러있으니 무능한 자신의 힘만으로는 매우 벅찼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왕은 궁 정승이 물러간 이후에 은밀히 부하들을 불러들여,
“만인의 적 궁 정승을 죽여라!”
하며 밀명(密命)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궁 정승은 이에 어김없이 신전에서 절하게 되었다. 그는 온갖 주문을 외우고서는 향을 피운다. 그 향은 신전을 아우르듯 가득차기에 이르렀다. 어두운 밖은 궁 정승의 염원에 응답하는 양 천둥과 번개가 동시에 내려치고 태풍은 겉잡을 수없이 온 신전을 어수선하게 휘몰아친다. 덩달아 신을 모셔둔 제사상에 비추는 촛불 두 개가 꺼지려하는 동안 그는 아랑곳 않고 묵묵히 눈감고 기도했다. 시간이 삼경(三更)이 되었을까. 궁 정승이 갑자기 눈을 뜨고 신전을 나서더니 제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왕이 음모를 꾸몄다. 폐주의 신하들과 모든 백성을 죽이고 왕을 폐위시켜 죽여라!”
천지가 개벽(開闢)하는 순간이었다. 궁의 군사들이 일제히 천지를 뒤흔들 듯이 들고 일어났다. 구중궁궐은 그야말로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궁녀들의 비명소리, 신하들의 비명소리, 왕이 이에 놀라 피신하였다. 그러나 궁 정승의 부하 길응(吉應)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지만 왕에게 충성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장자성(張慈成)이었다. 그는 선왕 때 벼슬길에 올라 청백리(淸白吏)로 통할만큼 선량한 관리였다. 그는 현재 동부부사(東部部司)로 일하고 있었다. 항상 왕을 섬기며 폐왕에 대해 충의(忠義)로 지키는 의에 사는 이였으나 궁 정승이 실권을 잡아 왕을 시해할 때 궁 정승의 제의를 거절했지만, 궁 정승이 자신의 부하로 받아들이자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불가항력(不可抗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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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시습
628('19)-09-07 00:21
시사일간 잘 보았습니다.  김지수 님을 대감이라고 호칭하셨는데 경의의 표현인줄은 알겠지만 잘못된 호칭이 아닌지요?
역사를 즐기는 공간이기에 바른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요.
정병욱 네, 주의하겠습니다~^^ 9/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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