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병욱
[대표] <간행> 보덕문집(寶德文集) 25
근대(槿代) <2> 근대(槿代) <2> 그러나 길 한 켠 지나가는 한 젊은 여자가 근대에게 다가가더니 전처였던 이향자의 친구라 하면서 접근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향자가 지금 현재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결국 근대는 이 여자와 헤어지고 난 후 환청이 들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경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실신하였다. 하여 근대를 의원에 데려다 진찰을 받으니 단순한 쇼크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강장제를 처방해주어 며칠 동안 쉬게 하였다. 이튿날 저녁이 될 무렵 근대는 눈을 떴다. 근대가 내게 건넨 첫 한마디. "의사가 뭐라고 하던가." 그러자 내가 말해주었다. "의사가 아무런 걱정하지 마라더구먼." 근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내내 의사가 걱정스런 말을 하였다. "이 환자가 자주 쇼크를 일으킬 지 의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의학으로서는 완전한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한의학이라도 받아들여야할 지도 모릅니다." 이런 말을 듣던 나는 용한 한의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볼 요량으로 근대에게 말하였다. "자네 병세로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그러네만 한의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지 않겠는가. 아는 데가 있는데 그리로 갈까?" "맘대로 하시게." "그럼 다음날에 가도록 합세." "응." 그러다 근대가, "잠깐." 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응." "나 연옥이란 아이를 봐야만 한다네." 연옥이란 아이는 내 사촌여동생을 말한다. 지금 현재 사범학교에서 국어를 전공하고 있다. "아, 연옥이. 알지. 연옥일 데리고 올까?" 근대가 끄덕이는 것을 보면 보고 싶어 했나보다, 연옥인 사실 안국동에 살고 있다. 女專(여전)을 마치고 자신이 교사가 되겠노라고 옹고집을 부려 사범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는 명석한 아이였다. 이 아이를 근대에게 소개시켜주었더니 그가 내 아내가 될 사람이라고 점찍어두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근대를 사모하게 되었고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근대가 경성부청에 가보고자 했으나 몸이 좋지 않으므로 내가 대신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府廳(부청) 건물에서 만난 연옥이 내게 근대 오라버니가 어디 있느냐고 그러자 내가 오라버니는 편찮으셔서 여기에 오지를 않으신다고 말했다. 근대의 전처 이향자하고는 자신의 언니가 그 여자와 여고보 시절 때 친구라고 하여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 오라버니, 저랑 같이 가요."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은 근대가 있는 병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연옥이 들어서면서 근대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근대가 위안이 된 모양인지 연옥의 손을 잡으면서, "우리 향자에게 가서 내 건강하고 또 보고 싶다고 전해주시구려." 하며 부탁하였다. "네. 제가 대신 안부를 전할게요." 그런 연옥이 근대에게는 고맙게 느껴졌다. 그렇게 일 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1927년 新幹會(신간회)가 조직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기사가 실려 있는 신문을 읽고 있던 나는 잠시 중국에서 출장 차 호텔에 머물며 쉬고 있었다. 그때 나는 문득 근대가 생각이 나 편지지를 들고 만년필을 잡았다. 그 만년필을 잡은 나는 근대에게 이렇게 편지하였다. 근대군, 이 편지 전하고자 했다네. 그동안 잘 지냈는가. 내가 이미 처자도 얻고 나는 이미 출장차 중국서 있는 다네. 자네 잘 지내고 있는가. 정말 자네가 보고 싶다네. 오래간만에 만나 보고픈데 어찌할 수 있으랴. 아무튼 오래간만이네. 어떻게 지내는지 이 글을 보거든 내게 편지해주길. 추신 : 정말, 내 진심이라네. 근대, 자네 친구 A. 다음날 오후에 답장이 날아왔다. A군! 자네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아는가. 아무튼 자네 조선에 온 것을 환영한다네. 나는 이미 홀몸조차 아니라네. 경이랑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네. 자네 중국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얼마나 기쁜지 한번 보았으면 하네. 한데 무엇보다 고민인 것은 있다네. 그게 무엇인지 아는가. 내 생부모를 찾는 것이라네. 자네, 내 생모를 찾아주게. 물론 내 생부를 찾았으니. A군의 친구 근대가 쓴다. 근대의 모습을 나는 돌이켜보았다. 내가 중국에서 서울로 올라온 Q라 하던 동창과 술자리를 마련하는 와중에 내게 소식을 전해주었다. "근대, 그 사람이 지금 어디론가 사라졌다네. 평양에 갔는지, 함흥에 갔는지, 아니면 장생포로 갔다든가. 그럴 텐데. 자세히는 잘 모른다네. 明沙十里(명사십리), 아니면 금강산에 갔나. 하여튼 함흥차사나 다름이 없다네." "하하하하, 그러지 말게." 나는 그만 얼굴을 찡그리고야 말았다. "허허, 아니 자네 얼굴을 왜 찡그리는가?" "아니." "오호라, 자네 며칠 전에 근대 편지를 받은 게로구먼." "그렇다네, 근대군, 그놈에게 내가 편지를 보냈다마는." "헌데 이를 어쩌누. 심근대 그 사람, 지금 서울에서 울산으로 갔나봐." "장생포라 하더니." "울산에 장생포라는 데가 있다는 게야." "진작." 조선의 모습은 아직도 그대로요 수도 서울, 아니 경성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서울에는 화신백화점이 생겨나게 되었고, 전차가 이리저리 구석구석 다니고, 차가 많이 있는 듯 차들이 지나가기를 여러 번하였다. 종로거리도 변함이 없지만 광교 아래도 그대로다. 청계천의 정기도 그대로다. 청계천의 맑은 물을 며칠 전에 무슨 사업을 한답시고 자금을 모아댄다던 소문만 무성히 들려왔고 이에 참다못한 채 府廳(부청) 앞에서 항의를 하였다. 그런 다음 근대의 숙소에 들어섰는데 근대가 난데없이 내게 사람을 증오하는 나그네의 꿈을 꾸었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꺼내었다. 근대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나그네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네. 네 어미가 무수리라고." 그리고서는 머리를 쥐어짜며 괴로워하였다. 칼에 무서운 사람처럼 근대는 집에 들어서서 웅크리고 있었다. "경이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소리에 나는 당황했다. 사실 경이에게 예기치 않은 사고가 생긴 바람에 병원에 입원해있었는데 근대가 그 말을 하는 순간 말하였다. "병원에 입원했다네. 사고가 나서." "어떤데." "괜찮다고 하였다네." 이제 근대는 새 출발을 해야만 한다. 그 새 출발을 어렵게 생각할 지. 잘 모르겠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근대의 생부가 내게 다방에 오라는 편지를 받아보고 다방에 갔다. 그 다방에 들어선 하이칼라인 나의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말없이 종이 두 장을 내게 건넸다. 그것은 호적등본이었다. 그 호적등본을 바라본 나는 근대의 이름이 있음을 알고 충격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근대의 부친이 말하였다. "A군. 내가 근대 그 아이를 내 아들로 입적했소." 그런데 근대가 충격을 먹지 않을까 염려한 마음으로 말을 꺼내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근대를 아이로 입적한 것을 근대가 알고 있습니까?" 점점 식어가는 커피 잔을 머금어 마신 근대의 부친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근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그리고 잡담을 나누고서 근대의 부친을 뒤로하고 얼른 근대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이르니 신음소리가 온 사방에 들리어온다. 그 방에 들어가 보니 근대는 신음소리를 내며 이런 소리를 내었다. "아, 아, 아니야! 아니야!" 신음소리를 계속 내는 근대를 보는 나는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근대의 꿈은 알 길이 없었지만 잠시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기도를 해주었다. 드디어 근대는 눈을 떴고 근대가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이렇게 눈빛으로 말하였다. ‘Oh, Where Can I buy in? (아, 나는 어디에 살까?)’ 하고는 ‘아, 나는 어디에 살까?’ …… ‘내가 어떻게 살까?’ ……그런 말을 왜 하는가. ‘하는 말이 왜, 불편해서?’ ……요상한 꿈을 꾸었다네. 근대의 음성이 들리어온다. ‘요상한 꿈?’ …… ‘정말인가?’ ……그렇다네. ‘그렇다면 그 꿈이 뭔지도 궁금해지겠구먼.’ ……응, 부친과 모친이 나를 낳았다는 줄을 알았는데, 심씨 가문이 그것도 내 아버지가 큰아버지라는 게 정말 끔찍했어. 내가 진작 독립운동에 투신해서 불란서의 잔 다르크나 나폴레옹처럼 몸 하나를 헌신했더라면 해방이 되거든 당당히 國祿(국록)을 받아먹으며 떵떵거리며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우리 집안은 보잘 것 없는 집안일세. 오죽하면 衡平社(형평사)를 일으켰던 천민들의 그 뼈아픈 사연을 들을 길이 있으랴. 나는 한 번 사고 쳐 보는 게 소원인 사람이라네. 그런 기고만장한 삶을 살았으면. 朴烈(박열)처럼 의롭게 살다 감옥에 갇혀 불귀의 객이 되고 싶은 그런 정열적인 마음. 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싶었다네. 신분의 굴레? 그까짓 것이 뭐기에 이 심근대를 만만히 보더란 말인가. ‘아, 나는 근대 군을 존경한다네.’ ……정말인가? ‘응.’ ……하하하하, 나는 부친을 보고파하지도 아니하였지만, 그 부친을 보고파 어쩌누. ‘근대 군, 참으로 발칙하구먼.’ ……어허! 발칙하다니? 그 말은 삼가게, 하하하하. 내 생부가 정녕 있더란 말인가. 감히 내게 생부가 있더라는 말은 금시초문이요, 그 말만 한다면야 죽을 테니 하인들이라는 놈은 보려야 볼 수가 없도다! 그렇게 근대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사흘 후 나는 근대의 생부를 다시 만났다. 나는 근대의 부친을 직접 뵈었다. "무슨 일로 왔는가." "저는 근대 군에 대한 것을 말할까 해서 왔습니다." 그러고 난 후 근대의 근황과 더불어 생부를 그리워하고 있노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근대가 생부를 증오하고 있다고 말해주자 생부는 울부짖었다. "내가 죄인이오! 죄인이오! 내가! 내가 죄인이오! 근대 내 아들이 나를 모르다니! 하늘이 무심하지 않을 수 없구려! 조선 오백년 역사 이래 내가 간통을 저질렀소! 무수리하고 간통을 저질렀소! 간통죄로 나를 데려가시구려!" 연신 울분을 토하는 근대의 부친 심용태. 그는 아들을 몹시 그리워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죄의식을 잠재울 이가 오직 근대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칼바람이 날리는 그의 집안의 분위기에 적응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생부의 집을 나선 나의 발길은 점점 무겁기만 하였다. 부친이 알려준 대로 근대의 외할머니를 만나보라고 하여 정확한 주소를 알아왔다. 근대의 외할머니가 사시는 곳은 경기도 退村(퇴촌)이라는 곳이었다. 그곳에 이른 나는 그 집에 다다랐다. 그 집은 초가지붕을 얹은 황토 집이었다. "계십니까." 그러자 방문이 열리고 사투리가 나왔다. "누구랑가. 시방 뉘기에 왜 여기에 와서 난리라다냐?" 전라도 말씨를 한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서 놀란 듯, "헌디 총각이 누구시랑가요? 시방 누구시기에." "저는 심근대 씨의 친구 되는 사람입니다. 이름은 A입니다." 그 순간 아주머니는 나를 알아보신 듯, "아이고, 어서 오구려. 근대 외할미 되는 사람이오." 하며 반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내내 근대의 외할머니는 그동안 무수리인 근대의 생모가 살아왔던 행적을 낱낱이 토하였다. 그러는 동안 외할머니의 눈에선 눈물이 나왔다. 그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을 근대의 생모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였다. 美人薄命(미인박명)일까, 楊貴妃(양귀비)일까. 한참 망설여지고 있었다. 다음날 그분의 말씀에 따라 근대의 생모가 기거하는 곳을 알아내었다. 서울에 있는 모 성당의 근처라고 하여 그 집에 이르렀는데 그곳에 살던 하인이 말해주기를, "근대의 생모께서 내일 모 다방에서 보자고 하십니다." 라며 나에게 슬며시 전해주었다. 그 다음날 나는 근대의 생모를 만나고자 그 다방에 갔다. 다방에 이르니 파란 저고리를 차려입은 비녀를 꽂은 여자 하나가 있었다. 그 여인을 보아하니 갓 마흔을 먹은 여자인 듯한데. 가서 슬며시 근대 군의 생모냐고 물으니 놀라며 일어선 순간 그 생모는 내 손을 잡으며 오열하였다. 나는 그분을 자리에 앉히고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하셨다. 생모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생부를 만난 것은 구중궁궐에서였어요. 그곳에서 우연히 사모를 하는데 그때는 신분제가 폐지되기 직전이었겠지요. 그래서 가끔가다 그 사람의 집이 세력가이다 보니 그 집에 가지 않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그 집에 드나드는 과정에서 근대 생부가 나에게 청혼을 하더랍니다. 일개 무수리가 그런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는 바였지만 아직 총각이었고 궁에서 나와 달라고 청하기를 수십 차례. 난 그 사람에게 정조를 바쳤지요. 나에게 서양에서 나온 포도주를 따르더니 마시자고 해서 마신 것뿐인데 갑자기 제 앞에서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면서 저를 품에 안기어 가로채더랍니다. 그래서 내게 사랑을 주고 순간의 욕정으로 통정하게 되었던 겁니다. 나에게 권위 있는 도련님한테 시집을 가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지만 그땐 궁궐에 있는 몸이었고 이를 들통 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상궁 마마님이 제게 궁궐을 나가라고 하여 나갔는데 시댁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지라 은밀히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이가 심씨 핏줄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고 그래서 숙부의 자식으로 들어갔던 겁니다." "……" "그러고서 나는 그 죄책감에 사로잡혀 낮이고 밤이고 사흘이고 나흘이고 울분을 토하며 살았습니다! 그 괴로움을 잊으려 청량사에서 도를 닦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절에 있다고 근대 생부에게는 말씀해주지 마세요." 그 여인의 말을 듣던 나는 순간 연민을 느꼈다. 나는 근대의 생모를 만나고 난 후 밤에 같이 지인들과 만남을 가졌다. 그때 지인들이 모인 주점에 이르고 보니 그의 친구들이 모조리 모여와 있었다. 그 친구들은 대개 다 문인들이었고 동인지에서 맹활약하는 사람들도 줄줄이 있었다. 특히 Q라고 하는 이도 그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근대와 전문학교 동창으로 일본에 유학하기도 한 전형적인 조선 청년이었다. 이 청년이 앙칼진 소리로 나를 비웃는 것이 아닌가. "이봐, A, 나는 자네의 그 습성을 이해하기가 어렵네. 아니 근대가 무슨 한낱 어린 아이도 아니거니와 또 장가를 들었을 판인데. 어떻게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지. 감당하기가 어렵지 않겠나? 자네가 난데없이 근대를 졸졸 따라다니는 자네 모습만 보면 안타까워서 탄식하겠으니. 이 가당키나 하는 소린가? 안 그런가, 諸君(제군)들?" 옳소……옳소……하며 연신 기립박수가 쏟아질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왁자지껄하며 제군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징소리처럼 요란하였다. "근대의 생모가 무수리라고? 거참, 근대는 못난 놈이다. 우리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그 모습을 보게나." 나는 화가 덜컥 나서 Q군의 팔소매를 잡아채어 바깥을 나가고야 말았다. Q군이, "이봐 A. 저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지 않으련?" Q군을 무심하게도 의리가 없는 인간으로 치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송두리째 뭔가를 버리고 가듯 서울 거리를 거닐었다. 드디어 광화문통에 이른 시각 저 잔치판에서는 이런 말이 나돌게다. '못난 놈이 아니라네. 자기 생모가 잘못한 게지.' '그렇긴 한데, 술맛이 떨어져버렸어.' 아마 Q군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술을 왜 마시는가! 그게 궁금한가!' 하고는 근대 이야기를 꺼낸다면 화를 낼 것이다. '몰라!' 나는 순간 그 융통성 없는 인간이 이렇게 근대의 비밀을 품에 안은 채 아무 말도 않았으리라. 그날 효자동에 있는 근대의 집으로 갔다. 그곳에 이르니 문인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근대의 文友(문우)이기도 하였다. 이 문우들이 찾은 이유는 근대의 근황에 대한 염려였다. 근대는 최근 神經衰弱(신경쇠약)에 시달려 세브란스병원에 가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근대의 이런 증세는 아무리 발달한 조선의 서양의술이 있어봤자 소용이 없다. 그저 꾀병일 따름. 때는 마침 1930년이었다. 그 시기에는 疾風怒濤(질풍노도)의 시간이었다.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고 청산리전투에서 승전보를 던졌던 白冶(백야) 金佐鎭(김좌진) 장군의 죽음이 안타깝게 작용이 된 까닭이었다. 이런 시기에 雨月(우월)이라는 소설가가 말하길, "조선의 정세는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로 충돌을 빚어져가고 있어. 新幹會(신간회)를 조직하였다지만 통합이 잘 안 돼서. 지난날 청산리에서 승전보를 날렸던 김좌진장군이 그것도 사회주의자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만 봐도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란 말인가." "그 소식이 총독부로부터 알려졌다지?" 나그네가 우월에게 물어보았다. "그렇다는 사람도 있고." 松月(송월)이라는 시인이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이렇게 말했다., "총독부에서 뭐를 안다고 그렇게 誤報(오보)하누." "총독부가 뭐를 안다니 자네 미쳤나?" "하하하하, 그래 내가 미쳤다. 그만하게, 삼류소설을 쓰는 주제에." "뭣이!" 우월의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에 殷天(은천)이라는 시조시인이 말하길, "그게 사실이라네. 총독부가 사실대로 밝힐 수 있을는지도 모르지." "우리 조선이 이렇게 굶주리는 식민지로 전락한 이내 심사가 얼마나 아프겠나.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하직하고 싶어. 그 위대한 장군을 여읜 부모처럼 보내야 한다는 게 감당하기가 힘이 들고 조선 독립의 희망이 점점 더 사라지고 말아. 나는 그것이 싫다네. 아암, 싫고말고. 그보다 더 싫은 것이 어디 있는가." 우월이 이렇게 말하면서 은천을 불렀다. "에, 우월이." "왜?" "내 아는 지인들 중에 신문사기자를 하는 놈이 한 명 있는데." 이때 근대가 말을 막고서, "내가 차라리 기자노릇하면 안되나?" "풋, 하하하하,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실성한 사람같이. 청계천 거지 노릇을 하는 것 마냥 자네가 이런 센스가 있는 양반인 줄 몰랐구먼. 하하하하, 그래, 미안하네." 나는 이런 광경을 보면서, '우월이 저 놈이 내 친구가 직장을 아니 구했다고 비웃는 건가. 개팔자가 상팔자라도 된단 말이냐. 얼빠진 놈.' 그때 근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이놈아, 차라리 벼락 맞아 황천길에 가게나." 이때 비웃던 우월의 얼굴이 굳어졌다. 근대와 같이 뿔테 안경을 쓰면서 소위 모던 보이로 帝國大學(제국대학)을 나온 엘리트의 모습인 그가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가. "자네한테 이런 말을 들은 게 처음이라네." "그래?" 이때 호탕하게 근대는 웃었다. 이때 그의 친구인 相亞(상아)라는 이가, "자네들 그만하게." 염려스러운 듯 뒷수습을 하는 데에 애를 썼다. "몰라." 근대는 구석진 곳에서 벌러덩 누웠다. 그때 송월이 킬킬거리듯 웃으면서 왈, "늙은 꼬부랑 할멈이 되었나? 일개 사내자식이 이렇게 약해서야 되겠나?" 이때 근대는 말이 없었다. 송월이 은천에게, "은천, 자네 일본유학시절에 문학적인 경향을 좀 지니었던 저 친구 근대의 이런 모습은 처음인가?" "그랬나?" "그것도 모르다니. 쯧쯧쯧." 혀를 끌끌하며 송월은 우울하게 있는 근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근대는 거동도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근대의 심정을 이해해주는 이들이 있어 그는 외롭지도 않았다. 이때 은천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심근대, 그를 보는 시선은 보잘 것도 없었다. 우월이 가만히 있는데 근대의 집에 들어온 나그네가 있었다. 그 나그네는 素山(소산)이라는 사람으로 자유 시인이요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그는 청계천을 지나 이곳으로 왔다한다. 그러나 그는 경성부내의 모습을 보고파하지 않았다. 소산이 상아에게, "한데 어쩐 일로 이곳에 올 생각을 다했나?" 소산의 무관심한 표정에 당황하며 상아가 왈, "모르네." 고작 그 한마디였다. 이때 우월이 대자로 누워 뻗은 근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산, 자네 근대 이 친구를 아나?" 하고 우월이 물어본다. 소산이 근대를 바라보고서는, "알지. 내가 그때 관동대지진 때 나를 구해준 사람인데, 그 하숙집 주인이 조선유학생을 죽이지 못해서 한이 맺힌 사람이었는데 그 한이 지금까지 와 닿다니, 상상하고도 볼 것도 없네. 핍박을 받은 조선 민족을 생각해주라는 말을 유창한 일본어로 말하더군. 하하하하. 바로 그 사람이 심근대였어." 근대는 일어나자마자 소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하였다. "소산 군, 나는 아오리다." "하하하하, 그래요?" 소산은 근대에게 존댓말을 한다. 우월, 송월이 얼굴을 찌푸린다. 소산은 이때 말했다. "이 소산이라는 호가 맘에 안 든다네. 내가 차라리 半月(반월)이라 호를 지어야지." "그러지 말게. 흰 산이잖은가. 하하하하." 송월의 말에 소산은 얼굴을 찌푸린다. 근대는 아무런 말조차 하지도 못하였다. 이향자와의 이혼 때문인가. 아니면 경이를 생각한 탓일까. 나는 그야말로 걱정이 생겼다. 그러나 근대의 생부는 직접 아들조차 보지도 못하였고, 생모도 그를 보지도 못했다. 내가 그 두 사람을 보았는데, 근대의 부친 용태를 몇 번인가 만났고, 무수리인 생모는 다방에서 만났지만 얼마 못 가 가버리니 나는 이해할 수가 있었다. 생모가 아들 근대의 출생비밀을 묻어버리려 애쓰는 것 같았다. 우월이 그 또한 근대와 더불어 출생비밀이 있었다. 본래 그는 서대문에 살고 있는 갑부 송 부자의 庶子(서자)요 어머니는 後室(후실)이었지만 어머니를 폐병으로 여의어 정실인 큰어머니가 돌보았지만 부친 송 부자에게 온갖 핍박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큰어머니에게 정신적인 어머니로 남겨지고, 그를 계기로 문인이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냉정한 사람으로 변했으며 몇 년 후 부친이 풍에 걸리기 직전에 우월은 동대문 서 참판의 딸과 혼사를 치렀다. 그러나 그 뒤에 부친이 풍에 걸린 이후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어버렸다. 그 일로 인해 큰어머니는 우월에게 친정에 가서 평생 동안 산다고 하였으나 우월은 안 된다면서 애원하여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리고 겨우겨우 부친을 돌보았지만 냉엄한 부친이 비정하여 그는 살인하기로 음모를 꾸몄다. 이에 풍에 걸린 부친을 청산가리를 이용하여 독살하고 집 근처 산마루에 묻었는데 며칠 후 이를 발견한 경찰에 발각되어 고문을 당한 후에 석방되었다. 그 후에 지식인이 되었고 큰어머니를 가끔 뵙고 명절이면 가족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가곤 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큰어머니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나는 그런 우월을 보면서 한편으로 불효막심한 놈이지만 근대와 같은 출생비밀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사정을 통해 근대의 삶을 알고 있던 우월이 왈, "이봐, 근대. 자네한테 생부모가 있다며?" 이에 근대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서 근대는 이야기로 시작하였다. "내 부친은 양반이면서도 관직에 오른 사람이요, 모친은 무수리로 궁녀들의 수발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게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뒤였고 서로 사모하게 되었소. 그것도 약관이었던 내 생부가 열다섯의 무수리를 사모했지. 그러나 을사조약 때까지 사랑을 나누다가 결국 심용태가 그녀에게 핏줄을 주고야 말았으니 그 무수리의 심정이 오죽할까. 그래서 내가 태어난 게요. 태어나자마자 심용태 그 대감의 형에게 맡겨져 양자로 자랐소. 그 결과 일본유학도 가곤 하였고, 귀국하고부터 자네들하고 지식인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지." 이에 우월도 동병상련을 느끼면서, "내 형편이랑 똑같군. 내 말을 들어보게. 내 성은 본래 宋家(송가)요, 부잣집이라. 난 후실의 아들로 송 부잣집에서 태어나 생부와 살았지만 후실은 병으로 죽고, 나는 큰어머니의 보살핌으로 겨우겨우 살아왔소. 그러나 아버지의 냉엄함과 핍박을 받으며 연명을 해야만 했소. 그러나 그 큰어머니는 내게 정신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요 내게 연민을 느끼며, 따뜻한 사랑과 마음으로…… 하지만 아버진 나를 계속 핍박을 가하여 결혼 직후에 천벌을 받은 모양인지 풍에 걸려 돌보고야 말았지. 큰어머닌 친정에 간다며 가버렸고 결국 내가 부친을 보냈소. 형편은 보잘 것도 없지만." 모든 사람들이 침묵할 때, "A, 그대가 정녕 내 형편을 알고 있는가." 우월이 내게 물어왔다. "응." "하지만 나는 보잘 것도 없다네. 생부, 아니 생부를 찾을 줄도 모르던 근대, 그 사람은 내게 생부모를 찾아 달라, 찾아달라고 애원을 하고." 순간 내 말문이 막혔다. 다시 말을 겨우 이었다. "아, 나는 모정을 느끼지도 못한 그런 사람을 보노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나는 말을 끊었다. 우월이, "근대도 내 형편이랑 다르지 않을 줄이야.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만났기에." 그들은 말조차 하지도 못하였고, 야심한 밤이 되어서야 모두가 크게 웃었다. 다음날, 나는 근대의 생모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A군 보시오. 내일 종로에서 만납시다. 종로 ○○다방으로. 나는 곧장 종로에 있는 그 다방으로 가보았다. 그 다방하고도 인사동에 있는 곳이었다. 인사동 거리에 이르니 國一茶房(국일다방)이라는 상표가 되어 있는 곳에 이르러 그곳에 들어갔다. 모친과 나는 두 번째로 만난 셈이었다. 근대의 모친을 바라보고 그가 있는 자리에 앉는데 내게 생모는 돈 봉투를 주며, "우리 근대를 위해서라도 쓰시구려." "네?" 어리둥절한 나머지 나는 말조차 잇지를 못하였다. "거금을 주는 게요." 하며 곧장 헐레벌떡 근대의 모친은 다방을 나섰다. 몇 개월 후 내게서 세무사를 경영할 생각이 없느냐고 한 나그네가 내게 말해온 적이 있었다. 내가 그러겠다고 하자 그 사람이 선뜻 세무사 경영권을 주자 내가 그곳에서 일하였다. 그러나 이때 사무실을 찾아온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자유시인 소산이라는 놈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이내 소산이 들어와서 한단 소리가, "저기 소식 하나 전해야 될 듯싶어 있소이다." 하고는 바로 말을 꺼내었다. "근대가 생부를 만나고 있습니다." 순간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생부를 증오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변해질 줄이야. 실감이 나지 않았다. 크나큰 갈등으로 몸서리치도록 아파하는 근대가 어째서 아버지를 만나볼 수 있단 말인가. 때마침 근대는 다방에 있었다. 나는 그 다방에 들어서서 이야기 꺼내는 생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근대야. 네 생모는." 근대의 말을 가로막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알고 있습니다. 제 생모가 무수리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낳고 달아났다지요?" 근대 생부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하지만 저는 생모를 만나기 싫습니다." "근대야, 그게 무슨 소리더냐." "……" "미안하다." 하면서 근대의 생부는 무릎을 꿇으며 아들에게 잘못을 시인하였다. "근대야, 너는 몰라도 나는 안다. 나는 네가 내 자식인걸 안다. 모르는 게 아니라." "……" "하지만 너를 그리워하였는데 네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자랐는지 그게 궁금해서 이렇게 너를 찾은 거란다." 이에 근대는 냉담한 어투로, "아무리 저를 받아들이시더라도 저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 이미 생부모를 잊은 지 오랩니다. 한번만 이런 일로 보신다면 당신을 구속시킬 수 있소." 근대는 일어나 바깥을 나서며 내 곁을 스쳐지나갔다. 그때 심용태 대감은 일어서면서 근대가 어린 시절에 입었다는 색동옷을 품에 안고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그의 눈물은 그칠 줄 모른다. 근대는 바깥을 나서면서 속으로, "내가 이렇게 냉정해지다니. 내가 불효막심하였구나." 근대는 고개를 저었다. 근대 군, 그가 양부모 집으로 갔다. 양부모란 용태 대감의 형 내외였다. 양부모의 집에 이르러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다. 상주는 근대를 양자로 입적한 뒤에 태어난 동생이었다. 동생이 일본유학을 마치고 조선으로 귀국한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양부가 죽었단 소식에 급히 소식을 듣고 귀국하였다. 이때 양모가 근대에게 말하길, "근대야!" 양모가 그를 반겼다. 근대는 눈물을 보인다. 엎어진 채 통곡을 한다. 땅을 치며 통곡하고 소리를 지른다. 소리 지르고서 쓰러지고 말았다. 동생이 달려와 근대를 업고 방으로 들어가 급히 눕힌다. 한의사가 왔다 갔고 다시 경풍을 일으킨 것이다 충격만 받으면 쓰러지는 근대의 증세 그 증세를 이해해야만 하였다. 그날 밤 근대는 양모 몰래 양잿물을 구하러 어딘가에 나아가다 주인장이 없음을 알고서 훔쳐서 양잿물을 구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자살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피를 토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에 와서 양모가 그를 보고 놀라 자리에 앉아 그의 상태를 알아보려고 아는 지인인 洋醫師(양의사)에게 왕진해줄 것을 요청하여 집에 불러들였다. 그러자 의사는 근대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더니, "이 사람이 왜 양잿물을 마시고서 죽으려고 했는지 의문입니다. 평소에 활기차서 웃고 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변고를 만드니. 말할 길도 없지요." 그러면서 진찰결과를 말했다. "이 사람이 아무래도 정신적인 강박관념 때문에 자살했나봅니다." 이에 가족들은 근대의 생모의 존재가 있었음을 말하지 않고도 알았다. 몇 시간 후 근대는 의식에서 깨어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대 군, 왜 죽음으로서 자신을 숨겼는가! 그가 일어난 직후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근대의 방에 양모가 들어서서 편지를 근대에게 주며, "너한테 양부께서 유언을 남기셨단다." 고 알려주자 근대의 눈에서는 혼란의 빛이 드리워졌다. 근대야 보아라. 미안하다. 내가 근대, 너한테 생부모가 있다는 이야기조차 할 겨를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사실 생부하고는 형제지간이면서도 네 생부는 내 동생이었다. 그러나 근대야. 네가 성실하고 예의바르고 유교사상에 어김도 없이 잘 소화해냈으니 선비풍이로구나. 네 생부모를 찾기를 바라면서 나는 남몰래 내 땅마지기와 집안의 권리를 너의 명의로 상속시켰으니 이제 이 집이 네가 주인인 집이니라. 전 재산도 너한테 상속했다. 이유서를 보는 게 내가 죽는 데 여한이 없구나. 울음소리를 내며 정신 나간 이처럼 멍하니 생부의 영정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멍하니 그는 양잿물을 마신 채 자살하려 했던 기운이 후유증으로 이어지면서 몇 개월 간 요양을 하러 떠났다. 1933년 근대는 요양생활을 접었다. 근대의 모습을 보노라면 보잘 것도 없고, 병자 같은 머리에 곱슬머리 같은 모습을 하였다. 근대는 사촌동생이 되는 근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형님, 아버님은 형님 생부의 형입니다. 이것이 현실인 셈이죠. 그러나 형님은 이를 받아들이기도 힘드셨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근대 형을 받아들일 겁니다. 그런 현실을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고는 형님이 방황하실지 모른다는 강박감에 놓일 겁니다. 하지만 전 형님을 믿습니다. 따를 겁니다." "믿지 마라." "네?" "날 믿지 마라." 그동안 나는 근대의 전처 이향자의 어머니를 만났다. "심 서방 그놈, 감히 나를 잘못하려고 할꼬." 이런 쓴 소리를 듣고서 향자의 어머니를 볼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뒤 우월을 만나 차를 마시기에 이르렀다. 차를 마시고 집에 들어선 와중에 집에 들어서자 파출부가 내게 KL군이 조선에 왔으니 모 청년회관 앞에서 보자고 하기에 나는 그 근처로 걸음을 옮겼다. KL군은 근대와는 회사동료요, 그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KL군과 만나 술자리를 마련해주기에 그곳에 갔다. 한데 근대가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근대를 두고 이렇게 비아냥거렸다. "근대 이놈아! 자네 감히 어찌 이러느냐! 제발 정신을 차리게나." 이에 근대는, "에라, 거짓말쟁이보다 못한 놈. 번데기를 처먹을 놈," 하며 나에게 공세를 가했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근대를 비난하지 않았고, 근대에게 생모를 만나면 어쩌겠는가하며 물어보니 내일 백양다방이라는 곳으로 오라고 내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대는 바깥을 나섰다. 근대의 그 심정을 당초에 이해하지 않으려했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어 약속대로 그 다방에 가보니 근대는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근대의 그 담배피우는 모습에 나는 그를 잠시 동안 눈여겨보다 그의 곁에 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KL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자네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나는 근대의 단도직입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이를 만회하려는 듯 엉뚱하게 KL에게, "시방 나랑 어디 갈까?" 하며 물어보자 나는 단단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디로 가자는 건가." "내 생모를 만나러." 근대는 내게 냉정하게 말했다. 그리고 우월도 덩달아 들어섰다. 이 세 사람이 모두 근대에게 시선을 옮긴다. 근대는 세 사람에게, "이렇게 어찌할까 걱정을 하였소. 한탄의 세월을 보내면서 나는 우월 군도 만나고, 우월 군으로부터 내 형편과 일치하다는 것을 알고 일본의 지배를 받아온 우리 조선의 아이들이 굶주림에 빠지어 거지 행세를 하는 그런 모습을 나는 가엾이 바라보았소. 왜 가엾이 바라보았을까 생각해보니 신분에 대한 굴레가 내 마음을 짓눌렀소. 내가 제아무리 부잣집에 태어났다고 하지만 사람의 삶은 변하게 마련이잖소. 나는 생모로부터 버림받은 한낱 짐승과 같소. 미운오리새끼요! 나는 심근대가 아니오! 심근대가 아니란 말이오―!" "그만 하게나." 이미 실성한 근대를 우월이 다가가 진정시켰다. "나는 며칠 전 내 어머니를 만났소. 무덤에서." 그러고서 근대에게, "생모를 만날 수 있으니 열심히 기도하시게." 이 말을 남기고 쓸쓸히 우월은 다방을 나섰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나는 근대의 외할머니께서 말씀허신 그 말이 귓가에 울려왔다. '한 오백년이면 충분할 것을. 박복한 계집 같으니라고. 근대를 가지고 어미로서 봐야할 도리가 없는가. 무정한 어미 심정이란.' 몇 주 지나고 근대 부친은 자신의 사랑방에 나를 부르셨다. 그분이 하신단 말씀이 근대를 만났다는 것이다. 나를 아버지라고 말하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참으로 다행이다. 그 다음날까지 근대 부친은 하인을 불러들여 술상을 차려 후하게 대접을 해주어 하룻밤 자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근대의 양부가 묻히신 곳으로 갔다. 그곳에 이르자마자 근대 부친은 한달음에 달려가 양부의 무덤에 가 울분을 토했다. "형님, 어찌해서 이런 변고를 당한답니까." 하며 몇 시간이고 울분을 토하기만 하였다. 그리하여 근대의 생부 용태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며칠 전 합의 이혼하였소. 그리고 아이들이 다 자랐으니 양육권은 필요 없게 되었고 근대의 생모를 수소문 끝에 만나 혼인을 하였소, 이 사실을 근대에게 알리지 마시오." 그리하여 근대는 생부와 완전한 화해에 이르러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었다. "이제 남은 건 네 생모를 찾는 거다." "전 생모 같은 사람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근대야!" "아버지만 있으면 됩니다. 저를 버린 생모를 어떻게 본단 말입니까." "난 며칠 전 네 생모를 만났다." 순간 근대의 표정은 굳어졌다. "네 생모가 너를 버린 죄의식으로 많이 고통스러워한단다." "……" "그 고통을 알아줄 이가 없어 화병에 걸려 죽기까지 했다는 구나." 그리하여 근대는 정식으로 용태의 자식으로 입적되었고 드디어 내게 생모를 만난다고 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근대는 그런 마음에 힘을 북돋아주었다. 삼일 후 근대는 생모를 드디어 만났다. "근대야." 가느다란 목소리로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이미 병원에 있는 몸이었다. 그가 病中(병중)이었던 거다. 다행이도 죽음을 맞이할 정도는 아니란다. 회복만 하면 되는 질병이란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병석에 누워있는 어미를 품에 안았다.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미도 덩달아서 뜨거운 눈물을 흘러내렸다. 그 후 근대는 허물에서 벗어나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자신의 애인이었던 경이와 재혼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본 나는 근대에게 부럽다는 말을 연신 해댔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모 신문의 기사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띈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여자가 근대의 마누라였던 이향자의 사진이었다. 그의 기사인 듯 읽고 보니 미국인 남편을 살해하고 유기한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아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 여자가 식민지 조선에 희생된 가련한 인생이라고 비유하여 그의 연민을 부추겼다. 하지만 이 이향자라는 여자의 모습을 보는 내내 열녀가 아니라 마녀라고 부르고픈 충동을 부추기에 충분했다,
|
|||||||||||||||||
寶德 善安 奉堂
정병욱(鄭炳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리스도 말씀) 
http://www.1392.org/bbs?moim09:2268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