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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욱
작성일 개국627(2018)년 4월 20일 (금) 23:54  [자시(子時):삼경(三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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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분류 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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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간행> 보덕문집(寶德文集) 24
 * 차례

추억(追憶)의 사랑방(舍廊房)
근대(槿代) <1>


추억(追憶)의 사랑방(舍廊房)

1

광무(光武) 8년 수치스럽게도 대한(大韓)이 일본으로부터 국가권한을 박탈한 순간이었다. 그날에 백성들은 대성통곡하고 이스라엘과 유다라는 나라가 망국이 된 것과 같이 망국이 되어가는 조국을 한탄하다 못하여 순국을 하는 속에서 쓸쓸히 벼슬길을 버리어 나오는 이가 있었다. 덕수궁 대한문을 나선 이. 이를 보아하니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듯 흰 백의를 입은 채 문을 나섰다. 이 노인을 두고 사람들이 말하길, 이 사람이 정승(政丞)이라는 소문이 있어 이름 그대로 구 정승이라는 사람이라고 한다. 선조의 며느리 구씨 집안의 후손이었는데 그는 대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였건만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 한다'는 말이 그 말이 맞는 말이다. 한데 그에게 무엇보다 고민이 생겼으니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기 전에 재빨리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희승(熙昇)이라는 이름이 이 구 정승이라는 이의 가명(家名)이다. 구 정승에게는 신식문물에 물이 든 아들이 있었는데 이 구 정승의 아들이란 이의 이름이 송학(松鶴)이라는 아이였다. 어려서 총명하기 그지 없어 천자문(千字文) 소학(小學)을 비롯한 여러 고서(古書)들을 두루 읽어 학식을 쌓았고 스스로 일본어와 한글을 깨우쳤는데 가히 도사였다. 한데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조선에 유입되고 있는 신학(新學)의 신기한 것들을 모조리 다 수용하기도 했던 개화인(開化人)이 되어가고 있었다.

2

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시작이었나 보다. 송학이 일찍이 한 여자를 사모하게 되었다. 볼품 없는 반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는 용희라고 불리는 이름을 가졌다. 거의 무종교(無宗敎)인 집안에서 시집을 보내려고 하는 찰나 결국 혼사는 이루어졌으나 송학에게 중병이 생겨 희생하였으나 며칠 후에 갑작스럽게 요절하자 용희는 그렇게 통곡을 하였다. 남편이 될 사람이 병으로 돌연 죽으니 그녀는 절에 들어가 여승이 되겠다면서 도량(度量)을 닦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송학의 먼 친척동생인 운(雲)이라는 남자가 절에 들어오면서부터 그녀가 사모하기 시작하였다. 그녀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가 없는 상황에서 쉽게 사랑을 한다는 것은 좀 애매모호하다고 봐야 할 터인지.
그녀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라도 꺼내야 될 차례가 된 듯하다.
그녀는 사실 대한제국(大韓帝國)의 하급 관리였는데 을사조약을 체결하는 데에 대해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통감부에 끌려가 온갖 고통을 다 당하고 나온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를 유배지인 제주도로 보내 버리어 연락을 하고 싶어도 연락을 못하는 판국이 되니 병들어가는 어미를 돌보느라 늘 고생이 많아 말 많고도 탈 많은 터였다. 하여 운이 스님으로부터 용희 낭자에 대한 얘기를 듣고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결국 용희를 점차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용희는 이를 만회하려는 듯이 몸부림을 치자 용희의 갈 길을 막은 채 운이 말하였다.
"낭자! 당신을 보려고 이렇게 멀리 만 리까지 달려온 사람이잖소."
하는데도 용희는 대답도 못하였다.
다음날이 되어서 운은 용희의 온갖 잡일을 돌보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용희의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날 밤까지 용희는 아무런 답을 말하지 못한 채 자기 방에서 기거하였다. 그런데 운이 용희의 방에 들어서자 용희는,
"도둑놈이다!"
라고 소리치는데
"나 운이야 운이!"
라는 소리에 용희의 놀란 가슴이 내려갔다.
"왜 날 괴롭혀요! 여기에 와서 무슨 할일이라도 있어요!"
"난 괴롭힌 게 아니오. 난 단지 당신으로부터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오."
하며 차분히 말을 하였다.
그 후 용희는 아무런 의욕도 없었고 결국엔 운이를 찾지는 못하였다. 하여 운이와의 연락을 끊은 채 절을 나섰다.
한편 이 소식을 모르고 있는 운이는 용희와 헤어지라는 구 정승의 말에 대해 반발하지만 결국엔 중매를 맺어 결혼을 하라는 소리에 결국 모 부잣집의 딸인 은선이라는 여인과 결혼을 맺게 되었다.
하지만 운이는 이 여자와 혼인을 했음에도 용희를 잊지 못하였다.

3

그로부터 5년 후인 1910년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 순간 온 백성들은 통곡을 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니 온통 온 나라가 통곡소리로 가득 찼다.
이 시기에 용희는 평양의 모 권번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난날의 안 좋은 기억들을 잊어버리기 위해 기생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녀는 줄곧 판소리를 비롯하여 명창이 되기 위해서 소리를 팔아먹고 사는 생애를 택하였다. 권번의 주인장인 앵화의 주선으로 용희는 승화(昇華)라는 기생으로 다시 태어났던 거다.
이 사실에 대해서 구 정승은 하인을 시켜서 알아듣기는 하였으나 운이의 금슬이 안 좋은 결과가 생겨 내심 노심초사한 모양이다. 그 노심초사한 심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까보다. 운이가 혼인한 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여 불면증에 시달리고 정을 통해보았자 아이를 낳지 못할 것이 뻔했다.
결국 구 정승은 병을 앓아 죽자 운이가 상주가 되었다. 구 정승의 사촌뻘인 운이의 아버지가 운이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이놈아! 기어이 일을 벌이려고 작정하였단 말이냐!"
소리치며 나무라자 운이는 결국 바깥으로 뛰쳐나와 눈물을 뿌렸다.
용희와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은 운이도 잘 알았다.

4

때마침 용희가 있던 기방에서 독립운동자금을 은밀히 내보내는 데에 대해서 신고가 접수되었고 하여 그 기방으로달려갔다. 이번에 기방을 비롯한 여러 권번들에 여러 차례 수색하였는데 헌병을 비롯하여 여러 경찰관들이 모조리 수색하기 시작하였다. 온갖 잡다한 것들을 내동댕이치기를 수차례. 계속 이어졌다.
그 기방에 주인장이 밖으로 나와서는 순사인 운에게 말을 건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잠시 수색하러 왔소."
"무슨 수색을 하시려고요?"
"독립자금에 대한……"
"아, 그래요?"
하며 주인장은 손가락질을 해대면서,
"여기서 샅샅이 뒤져보십시오."
라며 운에게 권한다. 그의 휘하에 있던 경찰들이 일제히 수색을 하였다.
그러나 돈이 없었고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때마침 용희, 아니 승화가 평양의 지방 유지들과 정조(貞操)를 하루아침에 팔은 채 기생집에 들어섰다. 어느 순간 운이는 그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저 여자가……'
운이는 순간 승화의 모습에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여자가…… 누구일까……? 혹시 내가 그토록 사랑해왔던 용희란 말인가.'
그러나 운이는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아침 용희의 얼굴을 잊지 못하는 모양인지 상사병에 걸린 듯 순사 일을 제대로 못하게 생겼다. 독립자금을 마련하는 한 경로를 조사하라는 상부의 지시에도 무응답이었다.
'용희가, 설마, 용희가 기생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인데.'
용희의 용모를 보고 운이는 혼란에 휩싸였다.
그 혼란이라는 건 용희를 다시 만난 것에 대한 회한을 간직한 혼란을 의미했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모임이 있다고 하기에 운이가 그 기생집으로 가자며 모임을 갖게 되었는데 기생들도 물론 딸려 나와 고위 간부들에게 정절을 팔았다.
한데 승화의 모습이 드러난 순간 운이는 당황했다.
승화는 결국 가야금 소리와 함께 구성진 노랫가락을 한 소절 불렀다.
그러자 운이가 순간 용희를 내 품에 안기면 어떨까 하고 상상하고 있었다.
한 경찰 간부가 왈,
"하하하하. 우리 구 순사가 저 여잘 꾀면 될 텐데."
"그러죠."
하며 운이는 승화를 접근하기 시작했다.
"승화."
라고 운이가 부르자 승화가 뒤를 돌아본 순간,
"여전히 아름답구려. 용희."
순간 용희가 운이를 알아본 모양인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다, 당신이 어떻게……"
용희는 그런 운이가 한심하기 짜깅 업승리라.
"나는 당신을 사랑하였소."
눈물을 보인 용희가 아무런 말을 못한다.
"나는 영원토록 당신을 사랑할 것이오."
하며 순간 용희를 포옹하기에 이르렀다.

5

그리고 술에 취해 있는 운이와 결국 정을 통하고 말았다. 그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운이는 경찰서로 향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흘러 용희는 의식에서 벗어나 깨어보니 아침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을 식사하고 무리하게 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 순간 용희가 갑작스레 쓰러지게 되었다.
하여 기생들이 이를 보고 종업원에게 업혀저 용희는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결과가 나왔는데 임신이 6개월이라는 얘기뿐이었고 결국 무리하여 빈혈에 시달려왔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하였다. 아이를 낳기 위해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소리를 아끼지 않게 말해주었다.
승화가 눈을 떴을 때 주인장이 말을 꺼냈다.
"그 아이 누구 아이더냐?"
하는 소리에 용희는 당황하였다. 자신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혹 그 아이가 어제 이곳에서 잠을 청한 그 순사더냐?"
승화는 결국 놀라고 그리고 눈물을 뿌렸다.
다시 며칠이 지나고 승화는 만삭이 되어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그 아이가 바로 구운의 아이였다.
그 아이를 서울 큰아기라고 불렀는데 용희는 후회를 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정녕 운이라는 남자에게 정을 통하였단 말인가.'
하며 후회하게 되었고 대동강(大同江)에 있는 절벽에서 그녀는 아이를 남기고 스스로 낭떠러지에 떨어져 결국 죽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운이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운이도 평생 그녀와 동침하였다는 죄책감 하나로 순사 직에서 물러갈 것을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것도 살아있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용희의 뒤를 쫓듯 자살을 택하고 말았다. 이 운이의 자살 소식에 가족들은 대성통곡을 하였는데 정확한 사인은 할복(割腹)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 당시의 신문 기사에선 이런 사건의 원인에 대해 세세히 적혀져 있었다.

대정(大正) 5년 5월 3일. 하오(下午)에 한 순사와 여자의 동반자살이 평안도 ××의 한 절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에 따른 정확한 사인이 할복이라는데 굴러 떨어지면서 살을 많이 다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에 결혼을 하려다가 중매라는 비극에 얽매어 결혼한 남편은 결국 자신의 본처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비정한 삶을 살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순사가 되어 자신의 옛 애인인 기생과 정을 통하여 아이를 낳다가 그 아이를 버린 채 두 사람이 떨어져 동반 자살한 것으로 경찰 측에서 밝힌 바가 있다.
이 소식에 대해 경찰 측에선 죽은 순사에게 직급을 올려주고 삼일장으로 치를 예정이라고 한다.

근대(槿代) <1>

1926년 서울 태평로.
이곳에 한 젊은이가 걸음을 걷는다. 그는 뿔테안경에 구라파 사람같은 이미지, 그리고 명석한 외모를 가진 젊은 친구를 만났다. 그가 누구인가하면 내 친구 槿代(근대)라는 이름의 이 사나이였다. 이 사나이와 내가 알게 된 건 도쿄에서 제국대학을 유학하면서부터였다.
이때 근대는 조선 유학생들 중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의 실력을 따라잡지 못하지만 이를 악무는 한이 있더라도 강도를 쫓아 잡아야하는 내 성질을 과연 잘 알까? 잘 안다면야. 하하하……
그리하여 근대를 만나고 하면서 서로 다정스레 지내면서도 서로 서먹거리는 것까지는 참는 성질이라 뭐라 할 얘기가 없다.
근대는 본래 반가 출신이었다. 그의 姓(성)이 沈(심)이다. 심.
그러나 그의 미소 뒤에는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둠이란……
무엇일까……
그 이야기를 꺼내본다.
사실 그는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와 반가의 적통을 이은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 이를 보고 문중에서는,
"호적을 파내라!"
할 정도로 반발이 심했다. 그만큼 근대의 부친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 당시에 명성황후가 시해당하는 직후인지라 갈피를 잡지 못하던 차에 혼인을 치르는 것이 무엇이 대수인가. 그래서 이들의 결혼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래서 무수리는 龍台(용태)라는 근대 부친 사이에 근대가 태어난 셈이다. 이 사실을 알고 용태부친은 호되게 용태를 혼내기 시작했다. 이후 근대의 부친 용태는 다른 반가의 여자와 혼인하고야 말았으며 근대의 생모는 궁에서 나와 구걸을 하였다. 구걸하는 내내 어느 부잣집에 들어가 식모 노릇을 하였다고 했다. 몇 년 후 근대의 생모에게 상궁이 찾아와 말하길,
"그 아이 버리고 궁궐에 다시 가지 않으련?"
당시에 궁에서 하인이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해 적대하는 성향이 있었는데 바로 이번에 이야기한 것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
"그까짓 궁궐이 망해가는데 왜 그곳에 갑니까! 싫소!"
상궁은 그녀에게 거금을 주면서 주막집을 하라는 권유에 생모는 열심히 근대를 위해 강인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한 무리의 하인들이 왔으니 그들은 생부의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말하고자 한 것은 근대를 친가의 호적에 올려야한다는 것이었는데 이에 생모는 그 말에 순종하듯이 근대를 친가로 보내었다. 그 후 무수리는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그 슬픔은 평생토록 괴로움을 간직하며 살았다.
내가 그런 그를 연민으로 밖에 볼 길이 없다.
"A"
내게 근대가 불렀다.
"왜?"
"우리 다방에 가세나."
우리는 근처에 있는 다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방에 이르러 차를 마시는 가운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 기분이 안 좋은가."
근대는 이를 기피하듯,
"아무 것도 아니라네."
라고 말할 뿐이었다.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니 보고 싶은가."
"행방불명인데."
"그렇겠군."
"애가 타지, 애가 타고말고."
"기운을 차리게."
근대의 생모에 대한 그리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 경복궁에 가지 않으련?"
근대를 따라 경복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경복궁에 이르러 근대는 길 한복판에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근대의 생모가 살았다는 왜놈에게 헐려진 九重宮闕(구중궁궐)에서 이런 해프닝을 하는 것은 참으로 웃기는 유머와도 같겠지만 예전 일본유학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처량함―슬픔―사랑―운명을 두루 갖춘 사람이 바로 근대다. 하루는 그를 보면서 처량함은 어미에 대한 그리움이요 슬픔은 아비에 대한 원망과 비난, 사랑은 어미에 대한 사랑, 그리고 운명은 자기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을.
이 사실을 아는 나로서는 곁에 있어 주기만한다면 위안이겠거니 하며 기다리는 나를 근대는,
"어서 집에 가."
하는 소리를 어이없게 들은 나는,
"왜 갑자기 집에 가라고 하는가?"
"집에 가란 말이야!"
소리치며 근대가 대노하자 근대를 두고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날 대학 강의를 하지 않았던 근대를 하숙집에서 만났다. 근대의 하숙집 주인이,
"근대 씬 지금 자고 있습니다."
하며 말하는 것을 듣고 문을 열었더니 남자의 정열적인 향내가 피어올라 밤꽃향내가 풍겨오고 서양철학에 대한 책들과 원고지 몇 장, 소주 서너 병이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근대는 큰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안주상도 오징어 말린 것과 땅콩이 전부였다.
"근대, 자네 일어나게."
이때 근대를 깨우는 내 뒤에서 한 여인이 불쑥 들어왔다. 이 여인은 부잣집이라기보다 家風(가풍)이 있으면서도 가난한 집안을 지키면서 대학생이 되었다. 근대 역시 그녀의 집안과 별반 다른 것도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 통의 편지가 나에게 왔다.
東京帝國大學 文科敎授 藤本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렇다.
도쿄제국대학 문과교수 후지모토
후지모토 교수의 편지였다. 그 편지를 쓴 교수는 나와 근대의 정신적인 지주요, 스승인 분이셨다.
편지 내용은 이렇다.
근대가 어디 아프지는 않은가. 내가 무척 걱정하였는데 괜찮다고 하거든 내일 데려오게나. 만일 거부한다면 내게 찾게나.
후지모토 선생의 글을 읽다보면 근대에 대한 연민을 볼 수 있다. 교수님 또한 근대와 같은 생애를 살았기에 연민이 가고 친구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후지모토 교수.
그 교수를 보는 내내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도 남는다는 좌우명이 내 腦裏(뇌리)를 스친다.
그래서 근대를 데리러 하숙방에 갔다마는 근대라는 학생이 떠났다는 소식에
"어디로 갔습니까?"
하며 물어보니,
"조선에 갔어요."
"누구와 조선으로 갔나요?"
주인 곁에 한 여인이 자리해있었는데 그 여인을 근대 연인이라 소개한다. 이 여자의 이름은 경아라는 사람이었다.
경아는 근대의 집안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결혼조차 할 길이 없던 터였고 또 그런 그녀를 문전박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근대의 행방을 샅샅이 뒤진 뒤에서야 소식이 전해졌다. 근대가 있다는 곳은 東京(동경) 신주쿠 거리였다. 거기다 특이한 점이 있었다한다. 어린 남녀가 기모노를 차려입고 몇 번가에 있는 어느 기와집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 집에 남몰래 들어가고 보니 근대의 이름과 李香子(이향자)라는 이름의 문패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한다. 그녀가 근대와 결혼했을까? 나는 겨우 한 숨을 내쉬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가고 졸업식은 다가왔다. 후지모토 교수가 말했다.
"근대에게 졸업장을 전하게."
근대를 만나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때 일본열도는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에 체류 중인 조선인들을 죽이는 만행이 일어났던 시기였던지라 동거하며 아내로 지내던 이향자가 조선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애원어린 말이 들려왔다. 이에 근대는 걱정하면서,
"우리가 왜 이곳에 왔을까. 무슨 희망이 있어 왔을까. 왜 그럴까? 내가 진작 졸업이라도 했으면."
정신을 놓기 시작했다.
"당신 지금 무슨 생각했어요? 왜 당신하고 살아가는지. 정말 궁금해요. 당신이 무수리의 아들인 것도 잘 알아요. 네 잘 알고말고요!"
향자의 말에 나는 놀랬다.
나와 친면이 있는 미국인이 필리핀에 삼 년간 체류하다가 일본으로 건너와 근대와 맺은 의리를 배신하고 일본과 협력하는 데에 힘을 쏟아 미국공사관하고도 비서관 밑에서 일하는 가운데 근대의 집을 식민 지배를 받는 백성이라는 차별론을 내세워 근대를 내쫓게 한 것이다. 이에 두 사람의 말다툼은 몇 시간이 지나서야 진정이 되었고 나는 그 집에 다시 들어섰다. 그리고 근대가 묵는 방에 이르렀다. 그 방에 들어선 순간 근대는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있었다.
"아니, 이보게! 근대!"
온몸에 땀범벅이 되어 병원에서 진찰을 받으며 입원하였다 몇 주 후에 퇴원하였다. 그러나 이향자는 오지를 않았다.
근대는 이미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근대의 부인이 아직도 들어올 생각을 않는다. 이때 장모가 들어섰다. 장모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심 서방, 이러면 되는 기가!"
경상도 말씨의 장모의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이에 흥분하여 문을 벅차고 장모에게 대드는 근대의 모습이 나한테 충격이었다.
"장모님이면 다입니까! 이 사회가 불만스럽소이다! 사회가 불만이야! 왜놈들이 들끓다보니 지긋지긋하고 짜증이 납니다! 제 생부가 궁녀와 간통을 저지르다가 내가 이렇게 태어나느니 내가 왕이 되고 싶소이다!"
이 말을 하며 장모에게 들들 볶았다. 이때 동거하던 여자가 들어섰다. 근대가 벌떡 일어서서 손가락질하며 장모에게 명령한다.
"집을 나가시오!"
하며 아내의 팔목을 휘어잡더니 자기 방에 들어서서 문을 닫아 잠그자마자 여자가 비명소리를 질렀다. 근대는 조용히 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장모는 문을 강하게 두드리며,
"이놈아! 내 딸을 왜 건드리느냐!"
하며 화를 내었다. 근대는 성적인 耽溺(탐닉)에 젖어 살아갔음을 알았다. 장모는 할 말을 잃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 소문이 조선에도 퍼졌으니 어떤 시인이 이렇게 말했을 정도다.
아,
조선의 젊은이들
어디로 갔는가.
탐닉에 젖어
살아가는
아, 백의민족이
졸지에 자본에
굴레에 얽매어
고뇌에 얽매어
이리도 가슴 아프게
강산을 뒤흔드느냐.
속세에 얽매었느냐!
이후 근대는 연신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근대는 한탄스러웠는지 아리랑을 부른다. 부인은 멍청히 남자를 노려보고 장모도 남편을 노려본다. 앙숙이었나 보다. 어쩌겠는가.
칼바람. 신음소리조차 없는 다툼, 근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그러나 양육권을 둘러싸고 다툼을 하는 터였다. 양육권만 차지하면 대수더냐! 하고 내가 소리치면 얼마나 좋을런가.
"아이고, 하늘의 명천입네! 제발 이 다툼을 다스리게 하옵소서! 비나이다. 어이고, 아이고!"
"엄마 왜 그래!"
부인이 화를 낸다.
"왜 소릴 질러!"
"역겹다."
하고 부인은 방으로 나간다. 다시 잠잠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근대 부친의 나머지 행적은 이렇다. 마흔 다섯의 나이로 삼일운동에 참가해 투옥되었고 석방된 후에는 민족주의자로 나서서 조선의 언론계에 협력했으며 전라도 高敞(고창)에서 학교를 세워 애국심을 고취시키는데 공적을 쌓았다. 지금은 이미 혼인하였다.
이런 상황도 모른 채 근대는 장모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고서는 베개로 사정없이 장모의 얼굴을 패기 시작한다.
"이놈이 정신이 나갔나!"
하며 소리치더니
"하느님 맙소사!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장모는 자신의 부러진 옥비녀를 바라보면서 울부짖었다.
"엄마를 가지고 뭐해!"
향자가 소리치자 근대가 왈,
"이 극악무도한 것들."
이에 분노한 향자와 근대는 어김없이 개와 고양이처럼 다투기 시작했다.
싸움을 한 지 몇 시간 후에 휴전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근대가 내게
"나랑 같이 바깥으로 가세나."
하며 근대는 나를 바깥으로 데려왔다. 집을 나선 나는 근대의 가엾은 모습을 보고 다시 생각하였다. 근대의 모습이 매우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결혼을 한 지 한 달 만에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내가 의문을 가진 게 뭔지 자네는 아는가."
하는 근대의 말에 나는 냉정히 답했다.
"말해보게."
호탕한 말투로 근대가 말하기를,
"생부와 생모에 대한 의문 말이네. 그 두 사람이 살아있는지 궁금하다네."
그러고서 근대는 몇 분이 지나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바깥을 나서며 근대가 내게 인력거를 타자고 권했다. 그래서 나도 인력거를 타기로 결심하였고 인력거가 도착하는 동시에 근대가 목적지를 일본어로 말했다.
"本町8丁目に"
번역하자면 이렇다. 혼마치 8정목으로.
그래서 인력거는 그곳에 이르러 멈췄다. 내리는 두 사람은 술집으로 향하는데 근대가 말했다.
"일본의 밤을 지새운다면 정말 좋을까?"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뒤에서 쫓아오는 듯 사람이 걷고 있었다. 술집에 가 술을 마시고 몇 시간 담소를 나눈 후 바깥을 나서는데 뒤쫓아 오던 사람이,
"도련님! 근대 도련님!"
하며 다가갔으나 근대는 이를 무시하고 달아났다.
"가지 마시오! 가지 마시오!"
"왜 하필 나한테 도령이라고 그러느냐!"
근대는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그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 누구기에 이러는 거요!"
근대가 격앙된 말투로 그를 대했다.
"지, 지는 옥 서방이여라."
"그렇소?"
옥 서방이라는 사람은 심근대의 부친 용태의 집에서 일하던 행랑아범이었다. 근대는 생모와 생부조차 몰랐고 그 일로 하여 근대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다신 나를 찾아오지 마시오!"
하지만
"왜 그래요, 도련님이라고 믿고 있어요!"
"정말 그렇소?"
"그렇다 할 수 있어라."
"근데 어째서 내 이름을 알고 있소!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왜 내 이름을 알고 있소, 왜―!"
근대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도련님, 이러지 마셔라."
근대는 내게,
"먼저 가겠네."
하며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다음날 관부연락선을 통해서 부산에 이르렀다. 그때 우연히 어떤 나그네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A군에게 고함.
당신을 만나고자 하니 부디 이 편지를 받는다면 위치를 적어놓았으니 오시오.
총독부 앞의 도로에서 우회전하면 樂山屋(요산옥)이라는 곳이 보일 거요. 그곳에서 만납시다.

심용태가 씀.
라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다. 이 글을 쓴 사람이 심용태라는 사람이 썼다는 것을 직감하고 근대에 대한 비밀을 폭로하려고 이러는 것인지 내심 궁금하기도 하여 이에 승낙하기로 하였다.
나는 근대의 부친을 찾아보기 위해서 전차에 몸을 싣고서 총독부 정류장에 내리던 사람들이 와르르 나가고 전차는 다시 출발했다. 다음 정류장이 종로1정목이다. 전차를 타고서 드디어 종로1정목에 내렸다. 계속 직진하여 걸어보니 정말 한옥인 건물이 하나 있었고 그 건물에 걸린 요산옥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곳으로 나는 들어갔다. 내가 그곳으로 들어가고 보니 祖父喪(조부상)이라는 한자가 쓰여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근대의 조부가 돌아가신 것임을 눈치를 챘다. 상주의 통곡소리는 마치 조선의 하늘이 통곡하는 것과 같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상주는 근대의 부친 용태요, 정식부인 김씨가 조상의 위패를 지키고 있었고 증조부 되는 근대의 이복여동생인 모양인지 하는 여자가 한 명 있었는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동생도 마찬가지다.
"아니 자네는 누군가."
용태가 나를 보더니 반가워하며 말하자,
"소인은 심근대의 친구입니다."
하며 정중히 인사하였는데 정실과 같이 반겨주었다.
"어서 오시게. A군."
나는 그와 마룻바닥에 올라가 맞절하였다.
"자네가 A군이라 했는가."
"네, 아버님."
심용태 씨는 이내 웃는다.
"그러지를 마십시오. 조상님께서 노하시겠습니다."
"거 참, 착하디착하구먼. 노하시라지. 그 조부께서 등을 지셨으니 A군. 내 방으로 같이 갑세."
나는 근대의 부친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요산옥과 그의 인연이 궁금해 그것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근대 부친이 말하시길,
"이 가게는 사실 우리 정실부인이 운영하는 것이오. 있는 자본금으로 마련한 이 요산옥을 내 집처럼 살고 있으니 말이오. 한데 종로에 왜놈들이 상권을 장악해 이리 파리가 날아다니는 걸 보면 대강 얼마나 심각한지 알 것이오."
그러고는 근대 부친은 하인이 들어와 안주상을 차렸다. 그리고 근대 부친은 내게 잔을 주면서 술을 따른다. 나는 얼른 받아 정중히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부친은 말을 꺼내셨다.
"사실 몇 개월 전, 그러니까 四月(사월)에 조부께서 화병에 걸리셨소. 그런데 병은 점점 악화되어 돌아가셨는데 심근대, 내 귀하디귀한 자식을 한번 보는 것이 여한이 없다고 하시면서 기다리시라고 연신 말했지만 하인들을 동원해서라도 그 아이를 보고프시다고 그러시다보니 한숨을 돌릴 겨를이 없다고 하더군. 그러니까 근대를 얻은 계기가 된 것이 운양호사건이 일어난 이후였소. 강화도조약이 맺어지고 문호가 개방되는 과정에서 내가 장원급제하였는데 내 그 나이가 이팔청춘이었소. 그래서 급제하고 벼슬길에 나아가는데 구중궁궐에 거닐다가 어느 궁녀를 보았소. 한데 그 궁녀가 내 마음에 들어와 사모했는데 그 궁녀의 이름이 夏姸(하연)이고 천하의 곱디고운 절세미인이었소. 그런데 내가 갑신년정변을 거쳐 을미년에 이르니 내가 그 여인을 흠모하다 상사병에 걸려 졸지에 순간의 欲情(욕정)으로 아이를 배고야 말았소. 그래서 그 궁녀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나 내쫓김을 당하였고 그 어머님께 뵈고 그랬으나 근대를 낳을 제 나한테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그 궁녀는 어디론가 사라져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고 난 그 소식을 듣고 좌절하여 통곡하였소. 그래서 나는 그 아기를 친인척이 되는 집안에 양자로 보냈소. 종종 그 인척이 편지를 받아본 적이 있었지만 그 편지를 이미 끊은 지도 몇 십 년이 되었소. 심근대, 그 아이를 알다니 얼마나 다행이오."
그러다 근대 부친은 침묵을 지켰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이미 혼인은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생부를 찾기는커녕 생모가 누구냐고 나에게 캐묻더군요. 게다가 하인들이 도련님이라고 부르자 그가 기피하는 겁니다."
그 순간 근대 부친은 고개를 끄덕이며 곰방대를 꺼내 담배를 피우면서,
"기피를 했다."
"죄송스런 말씀입니다."
"괜찮소."
하고는 근대 부친께서 눈물을 보이셨다. 그리고 울분을 토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내게 이런 부탁을 하셨다.
"A군! 나는 근대를 보고 싶소! 정말이오! 나는 그 아이를 보지 못한 게 일생동안 한이 맺혔소! 제발 그 아이만을 제발! 제발!"
하고는 근대 부친이 이내 혼절하셨다. 그 혼절한 모습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정신 차리세요! 정신 차리세요!"
하는 소리에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바깥에 있던 김씨부인이 문을 열어 대감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했지만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하인들을 불러 병원에 데리고 가보라고 일장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병원에 가보니 단순한 쇼크라고 진단하여 강장제를 처방해 주어 다시 집에 들어와 자리에 들게 하고 김씨부인의 마중을 받으며 집을 나왔다. 그리고 발걸음을 얼마나 걸었을까. 내 집에 들어와 마누라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으면서 멍하니 있는 내게 불행케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여보."
"무슨 일이오."
"근대 씨가 며칠 전에 이혼했데요."
"이혼을 해."
"네. 이혼을 한 이유가 뭐라나."
"누가 이혼하라고 했는가."
"근대 씨 부인이 이혼을 요구하데요."
"왜 요구를 하나."
"근대 씨의 옛 애인을 만났다나 봐요. 자기 자신이 미국인과 사귀고 있었다고 하고."
"미국인이라는 사람이 누군가."
"W라는 사람이라던가?"
아내의 말로 W라고 하는 미국인은 본래 대대로 건설업을 운영하는 집안이요, 둘째가라면 갑부보다 부럽지 않는 집안이고 학벌이 센 집안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필리핀에 산다고 한다. 근대와 인연이 각별하단다.
"근데 양육권은 어쩌고."
"양육권은 근대 씨한테 넘어간 상태고."
그때 근대의 목소리가 내 집 뒤에서 들려왔다.
그때 근대가 문을 두드리자 내가 얼른 바깥을 나오면서,
"자네 또 술을 마셨나."
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아버지! 아버지!"
연신 소리치는 근대의 목소리를 듣는 나는 멍하니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어디 계십니까! 아버지, 한이 많소이다!"
동네 떠나가라 소리치는 근대를 보고,
"왜 이러는가!"
하며 나는 화를 내었다.
"아, A군. 자네 반가우이. 자네 마누라가 있는데 어쩌누."
"입 닥쳐!"
결국 나는 화를 내었다.
그때 근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취한 사람이 이렇게 이성을 되찾을 줄은 그 누가 알았으랴. 그런 내게 근대가 슬며시 말을 꺼내었다.
"아니 A군, 자네가 한이 많았나보군. 한풀이를 해야 하겠군. 그러니 하하하하."
그러고서 근대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 많은 조선 백성들아, 鴨綠江(압록강)을 가로질러 두만강을 가로지르니 오랑캐가 떡하니 지키고 있겠구나. 하하하."
나는 화를 참는 심정으로 냉정히 명령했다.
"입을 닥치란 말이 들리지 않은가."
"하하하하, A군. 내 실례하이."
결국 나는 근대를 부축해줄 수밖에 없었다. 근대의 이런 모습은 나에게 일종의 재앙처럼 다가왔다.
"이보게, 근대."
"응?"
하며 근대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나를 바라본다.
"인력거꾼으로 변장할 텐가?"
"흥, 인력거꾼임은 대수던가?"
"하하하하."
"헤헤, A군. 나는 자네를 좋아해. 내 벗이니까."
"친구니까."
"글 친구랄까? 문우랄까?"
나와 근대는 실컷 웃었다. 미안하네. 자네, 하고 내가 용서를 빌듯이 근대의 웃음은 매우 좋았다. 몇 시간이 흐른 때다.
"근대."
"왜, A군."
"내가 자네 아버지를 만났다네."
순간 근대는 놀란 듯 걸음을 멈추었다.
"뭐라고!"
"거짓말이지. 아암, 거짓말이고말고."
"거짓말이 아닐세."
"정말일까?"
"응."
근대의 눈망울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정말로……그게……진정인가."
아니라고 부정하기 힘들었다. 아니 그것조차 싫었다.
"내가 왜 인력거꾼이 되려고 했는지 이제 알겠는가."
근대는 아무런 말도 못한다.
"그건 바로 자네 부친 심용태, 그 사람을 만났지. 만났으이."
감정이 폭발한 나머지 근대는 내 멱살을 잡았다.
"그 사람은 어디 있는가!"
"총독부 근처에 있는 요산옥이라는 곳이라네. 그곳이 자네 부친의 집이지."
나는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서 근대는 멱살을 놓은 후 쓸쓸히 인사하지 않고 멀리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 다음날 후지모토 교수님의 연락을 받고 곧바로 교수님 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교수님 얼굴이 좋지 않으신 모양이다. 얼굴이 통통하지만 날씬한 모던 보이를 자랑했던 교수님. 그 교수님이 이제 정년퇴임을 앞두시고 긴장이 되셨는지 나를 노려보듯 바라보시는 게 아닌가.
"교수님,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얼굴이 좋지 않으시군요."
"아하하하, 그건 아닐세."
후지모토 교수님은 근대에 대해 안부를 물으셨다.
"근대는 지금 집에 있는가?"
"네. 곧 제 방으로 올 겁니다."
"자네 방에?"
"네."
"한데 A, 자네가 근대 졸업장을 주었는가?"
"아니오."
"그러면!"
교수님이 결국 놀라시고 말았다.
"나중에 주렵니다."
"그러실 테지. 내 명치대학에서 교수노릇을 한 지 삼십여 년이 되건만 그런 제자는 처음일세. 아마 조선서 삼척동자도 잘 알 테지."
하시고서 후지모토 교수님은 웃으신다.
"저 교수님."
"음, 말해보게."
"놀라지 마시고 들어주십시오. 사실 근대에게 生父(생부)가 있습니다."
순간 후지모토 교수님이 놀라신다.
"뭣이!"
"사실입니다."
"아니 근대에게 아버지가, 아니 생부가 계시다니."
"제가 미리 그분을 뵈었습니다."
"정말인가."
"네."
후지모토 교수님은 마음을 진정시키시고 창밖을 여셨다. 그리고 바람이 솔솔 들어오면서 마음을 진정시키신다. 날이 쾌청한데 야속하게도 춥게만 느껴진다. 이제 점점 여름으로 들어갈 무렵에 말이다.
그날 밤, 근대는 맨 정신으로 우리 집에 와 잠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근대는 잠들면서 연신 이런 말을 하였다.
"아니야! 아니야!"
그리고 그의 귀에서 환청이 들려왔다.
‘당신 지금 무슨 생각을 했어요! 나 왜 당신과 결혼했는지 정말 궁금해요! 당신이 무수리 아들이란 것도 알고요! 네! 알고말고요!’
결국 소리치고 벌떡 일어섰던 근대는 말없이 방을 나섰다. 그때가 해가 중천이기 직전이었다. 오전 일곱 시 후지모토 교수님은 우리 집에 오셨다.
근대의 몰골이 말이 아닌 것을 보신 교수님은,
"근대 군. 자네 많이 힘든가 보구먼. 자네 몰골이 말이 아니야."
근대가,
"선생님, 절 받으십시오."
근대는 눈물을 거두고 교수님께 큰절을 한다.
"그만하게, 근대 군."
하며 교수님은 근대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며 오열하였다. 그리고 오열하면서 소식을 전해주었다.
"자네 외조부께서 돌아가셨다네."
근대의 외조부와 교수님은 잘 알고 계시었다. 교수님 집 근처에 그 외조부가 집사로 일하고 있었기에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네?"
"진정 돌아가셨다네."
근대는 멍한 사람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대가 충격을 먹지 아니하였으면 하는 것을 누구나 바라는 바가 있으리라. 순간 근대의 눈에서는 외할머니의 모습이 선선하다.
"장례식을 언제 치른답니까?"
근대가 교수님에게 물어본다.
"4일장으로 치른다는구먼. 자네를 기다리려고."
그래서 후지모토 교수님과 근대는 자신의 외조부의 장례식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근대는 조부에게 절을 하고는 돌연히 바깥을 나서고야 말았다.
칼에 찔리는 그 심정이 되어버린 근대의 가슴은 만신창이가 되고도 찢겨지고도 남았으리라.
며칠 후 근대에게 어떤 이가 찾아왔다. 이름이 Q라는 이였는데 후지모토 교수님의 제자였다. 그런데 그의 곁에 한 여자도 있었는데 그 여자가 알고 보니 근대의 첫사랑인 경이라는 여자였다. 순간 근대는 그녀를 보고서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다. 기피하였다.
"근대 씨. 저 기억하시겠지요?"
하며 경이가 근대에게 말을 걸었다.
"근대, 자네 나를 알겠는가?"
"오, Q군. 오래간만일세."
"한데 왜 저 여인을 데려왔는가."
"저 여자가 자네를 보고 싶어 했다네."
경이, 그는 지금 평양에 시집을 갔지만 남편의 무능함을 깨닫고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그 시어머니에게 도움을 받아 피신하여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에 대한 정조를 꺾지 않고 독립군의 여장으로 투신하여 일본군을 소탕하는 임무를 하는데 큰 공헌을 새우게 되었다. 심지어는 사회주의에 가담하여 六十萬歲運動(육십만세운동)에 가담해 형무소에 갇히게 되어 구속되었다. 하지만 병보석으로 풀려난 그녀는 官立學校(관립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치고 몇 개월 전 임시교사로 있다 대전에서 야채장사를 하였다. 다시 독립운동에 가담해 독립자금 운송에도 뛰어들어 잠시 미국으로 망명하여 구미위원부에서 비서로 일하다 그만두어 조선에 돌아왔다.
"근대 씨."
"응."
"부인하고 헤어졌다고 들었어요."
"나는 너를 좋아했다."
"고마워요."
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쓸쓸하다고 느꼈다.
"아, 전차가 지나가는구나."
경이는 서울에서 본 전차를 오래간만에 본 것에 대해 감개무량하게 느낀 모양이다.

사진
寶德 善安 奉堂 정병욱(鄭炳旭)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리스도 말씀)
자택 보봉당 방문 / 홈 방문 : blog.naver.com/qpddnr9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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