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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건너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남쪽에 우뚝 솟은 나무가 있다마는 그늘이 있어야 쉬어보지. 한수가에 노니는 아가씨 있다만 만나보아야 사랑을 하지. 한수는 넓어서 헤엄쳐 갈 수 없고 강물은 길어서 뗏목을 띄울 수도 없구나. 울창한 잡목 틈에서 싸리나무를 베어야지. 그 아가씨 내게 시집오면 그 말에 꼴을 먹여줄텐데. 한수는 넓어서 헤엄쳐 갈 수 없고 강물은 길어서 뗏목을 띄울 수도 없구나. 울창한 잡목 틈에서 물쑥만을 베어야지. 그 아가씨 내게 시집오면 그 망아지에 꼴을 먹여줄텐데. 한수는 넓어서 헤엄쳐 갈 수 없고 강물은 길어서 뗏목을 띄울 수도 없구나. -『詩經』, 國風 中- 94년 여름, 처음으로 시경을 읽었다. 그런데 이 시를 읽고는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할만큼 길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왜 강을 건너지 못하고 울고 있느냐"로 꽤 긴 시간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때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인즉 그가 건너지 못하고 애를 태운 강은 그의 발 아래 흐르는 한수, 현실의 강이 아니라 그의 마음 속에 흐르는 두려움의 강이라고. 사랑에 목놓아 울지만 무언가가 그의 발목을 잡고 건너지 못하게 해 노래는 슬픈 정조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중국의 돌팔이 '문예비평가' 주자는 이 노래가 성군의 치세에 백성들이 염치를 알아 음란한 짓을 감히 하지 못하는 미풍을 노래하였다고 매우 독창적인 해석을 내렸는데 강을 제약과 두려움의 장벽으로 본 것은 어떻게 보매 상통할 수 있는 해석이다. (그런데 다른 시의 해석을 보면 아무래도 주자는 비아그라로도 치유치 못할 고질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일이 흐른 뒤 가슴앓이를 해본 후 강건너 저편 아가씨에 눈길이 가는 것이었다. 만약 이 남자가 건너지 못했다면 강건너 아가씨가 이 편으로 건너올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건널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거나 (아시는 분 아시겠지만 이럴 때, 평소에 없던 용기도 나오는 것이 남자의 맘 아닌가) 서로 조금씩 노를 저어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사랑은 저 혼자만의 정열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두 사람간의 교감이 있어야 하는 법. 한사람의 부족함이나 두려워 하는 마음을 다른 이의 여유와 따뜻한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는 것. 초등학교 시절 책상 한가운데에 선 긋고 서로 넘어오면 때리는 식의 내가 100 이면 너도 100 이어야만 한다는 만남은 어린애 유희일뿐 사랑은 아닌 것이다. 아마 사랑받지 못함에 모든 것이 싫어지던 그 나날의 내 감정이 담긴 해석이다. 오늘, 다시 한번 읽어보니 원점으로 돌아간다. 역시 이 시는 서로 사랑하여 부를 노래가 아닌 것이다. 멀리서 발 뒤꿈치 들어 바라만 볼 뿐인 슬프고도 아름다운 짝사랑의 노래다. 내 사랑을 위해 뭐든 다 해줄 수 있어. 살림도 내가 할께, 손에 물 묻히지마. 알았어, 다이아반지, 밍크코트 사줄께. 네가 웃을 수 있다면 지옥에라도 못가겠니. 그렇게 다짐해 보아도 발걸음은 앞으로 떨어지지 않고 고백의 단어들은 목젖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가슴 속까지 눈물이 차올라도 말 한마디, 눈길 한번 주지 못했던 ........... 님의 얼굴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에 그리운 마음만 저린다. 2500년전이나, 지금이나 겉보기는 달라도 한치도 변한 것이 없는 사람사는 모습. 지금 어느 하늘 아래 어느 누군가도 강을 바라보며 속썩고 있을 법도 하다.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는 바보들아, 사랑을 위해 용기를 내자. 우리 기운을 내자. 강은 건너라고 흐르는 것이고, 우리 뜨거운 심장은 더욱 사랑하기 위해 뛰고 있는 것이 아니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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