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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백성] 현 조정 풍기에 대하여
금번 조정에 한바탕 징풍(懲風: 징계 바람)이 몰아쳐 어사조의 대부분 관리들이 업무 태만에 대해 질책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조정의 업무를 마비시켰던 아조 관리들이 그에 합당한 징계를 받은 것은 마땅한 일이라 사료되오나 관리들의 징계를 주도한 아문인 병조(兵曹)는 과연 혐의를 벗어날 만큼 득야청청 떳떳하였는지 신은 알지 못하겠나이다. 물론 병조가 다른 아문에 비해 업무량이 조금 더 많았다는 것은 인정치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문과의 업무량을 비교하여도 겨우 도토리 키재기만큼 앞서고 있는 것이 현재 병조의 실정이며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따져 보았을 때에는 병조의 쌓아 올린 치적이나 활동량이나 크게 이렇다 할 차도를 보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옵니다. 자신도 별로 낳을 것이 없는 입장에서 타인보다 도토리 키재기 만큼 우월하다 하여 병조가 조정의 징풍을 주도할 수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오히려 수석 관리(관리들 중에 관품이 가장 높은 관리) 이율곡이 근무하고 있는 병조에서는 금번 조정 마비 사태에 대하여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관원들을 대표하여 전하께 청죄소를 올렸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순리이고 충성하는 길이거늘 조금 우월한 형세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혐의는 미꾸라지처럼 피해가면서 다른 아문들에게 자신들의 혐의까지 덮어씌우고 조정의 징풍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인지 신은 알지 못하겠나이다. 이러고도 과연 병조가 진정 수석 아문이고, 병조 수장 이율곡이 진정한 수석 관리인지 우매한 신은 이해할 수가 없나이다. 수석 관리, 수석 아문은 모름지기 솔선수범 앞장서서 조정의 풍기를 맑게하고 진정한 민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다른 부서들과 관리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곳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아조의 수석 아문은 자신들의 혐의를 피하거나, 조정의 정국을 주도하기 위하여 조정의 징풍을 주도할 수 있단 말입니까. 병조가 업무량이 뛰어나고 치적 역시 뛰어나다면 신이 무어라 말 할 수 없겠사오나 다른 아문에 비하여 도토리 키재기 만큼 앞서고 있는 현 실정에서 과연 병조가 관리들의 징계를 주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이야 말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요,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전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신은 다른 조정 관리들 뿐 아니라 수석 아문으로써 조정을 마비시킨 병조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설사 병조가 다른 아문에 비해 열심히 업무를 수행했다고 치더라도 수석 아문으로써 조정의 업무가 마비된 사태에까지 이르게 한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다음으로 형조 율학훈도 겸 한성부 참군 권모(權某)는 업무태만을 이유로 온갖 수식어와 악담을 덧붙여가며 정천신은 업무에 태만한 자이오니 삭탈관직하라는 둥 정천신을 크게 핍박하고 있사온데 정천신이 분명 그러한 핍박을 받을 만큼 업무에 태만했던 것은 사실이나 과연 권모(權某)가 그것을 가지고 떳떳하게 핍박할 위치에까지 서있는지 신은 의아할 따름이옵니다. 형조 율학훈도 겸 한성부 참군 권모는 그의 상관인 형조 율학교수 김시민이 삼훈록 작성에 대해 직접 의견을 물었음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의견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데다 한성부 관속 이율곡이 떠난 이후로 지방관으로써 부족한 관속을 충원하려는 움직임 조차 보이지 않았사옵니다. 더구나 그는 한성부의 활성화에도 이렇다 할 차도를 보이지 않았으며 오래도록 등청치 않은 흔적이 보임은 물론이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성부 참군 권모가 정천신을 그렇게 모질도록 핍박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정천신의 삭탈관직을 주청할 수 있는 자격이 있겠습니까. 다음으로 병조 군기시 부봉사 박모는 정천신의 상소에 대하여 부당하다 하며 자신도 상소를 올렸는데 조정의 업무를 마비케 한 병조 역시 수석 아문으로써 과연 책임이 없다할 수 있겠습니까. 박모가 올린 상소가 다소 옮은 감이 있다고는 하지만 병조 역시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린다는 것은 형평상 옳지 못하다고 여겨지옵니다. 조정의 풍기가 위와 같이 문란하니 장차 이 나라가 어찌 되겠으며, 이 나라를 정성스레 개창하신 열성조께 지금 아조 백성들이 과연 얼굴을 들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옵서는 업무 태만과 함께 조정의 풍기를 문란케 한 아조 조정의 모든 관리들을 엄히 책(責: 꾸짖음) 하심과 동시에 모든 이치의 진실을 바르게 파악하시고 비답을 내리실 때에는 한번만이라도 더 고려하시어 항상 신중히 하시옵고, 말의 겉놀림 보다는 진실한 주제를 파악하시어 현명하신 비답을 내리시기를 신은 간절히 바라옵고 바라옵니다. 우매하고 파격적인 백성은 이만 물러가 전하의 바르고 어지신 하교를 기다리옵니다. 단기 4337년 10월 18일 한성부 백성 이덕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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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