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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병욱
작성일 2009/02/13 (금) 14:11
문서분류 역사
설명 한국 현대사를 다룬 소설
구분 보존
저작 정병욱
ㆍ추천: 0  ㆍ열람: 126      
임진강 2편
경주 댁 일가가 모두 놀란다. 청기와집이라니.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인가. 허허허…하며 처남은 이내 어이없어 웃고만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네.”
형부의 대답에 처남은 고개를 차마 들 줄 모른다. 그러나 그 선물로 준 것 만으로도 족하다는 병기의 말에 경주 댁은 눈물을 이내 보인다.
“박 서방 자네만 보믄 정을 잊지 않겄으이, 아이고, 내 아이가 아아가…”
말을 이어보지도 못한 채 경주 댁은 소리내어 울어본다.
“실컷 울어보소!”
소리치는 딸의 성화에 경주 댁은 이내 기쁨의 눈물을 뿌려본다. 한 양반가의 솔거노비로 살다가, 반가 출신인 어느 관아의 군졸과 눈이 맞아 통정을 하다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암의 봉필네가 멀리 달아나라고 하면서 삼만 냥을 내놓아주어 경주로 달아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십 년이 더 지난 뒤에 봉필네가 병기에게 한때 유언하기를,
‘경주 댁의 여식 방옥에게 무슨 화가 닥쳐오거든, 어서 몰래 달아나거라. 달아나서 몸처신을 잘 해야 한다.’
며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그 은혜를 죽어서도 여한없이 고마움을 보이려는 듯 눈물을 이내 뿌리는 것이다. 냉정한 성격의 박 양반의 증손자 병기. 그러나 그런 사위를 누구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물론 반가의 적자라는 이유로도 그렇지만 딸을 살린 은인이기 때문이다. 한때 박 판사는 첩으로 의성 댁을 얻으려고 했지만 갑작스레 병기와 바람이 나(?) 달아난 나머지 의성 댁과의 정분을 저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용산에 정착한 병기는 어떤 경로로 해서 한식점 주인장이 되고 또 용산의 유지 자리에 앉은 부잣집의 가장으로 군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의성 댁의 그 크나큰 은혜로 남편의 뒷바라지를 돌본 것 때문일까.
의성 댁에게 병기는 은인이요, 남편인 동시에 한 남자다. 그러나 병기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인에게 큰 도움만 주고픈 것 뿐이지.’
그날 기왕에 경주에서 하루 묵고 대구로 가기로 했다. 그때 병기의 장인이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침 대구서 온 사위 병기를 보니 반가이,
“어서오게.”
하며 병기의 인사를 받았다.
“아버지, 오셨어요?”
하며 의성 댁은 아비에게 절을 한다.
“저녁 무겄나?”
“네.”
“그러면 술상을 차릴테니까 같이 술을 마시자고.”
병기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말하고 장인과 같이 방에 들어선다. 그리고 방안에 와서는 병기가 장인과 마주 앉는다.
“박 서방이 대구로 피난왔다는 것을 처음 들은 걸세.”
“…”
“지금은 미국놈하고 노서아놈하고 전쟁을 일으켜서 우리 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꼴을 보노라면 참으로 서슬한 칼날 앞에 선 기분이랄지.”
“…”
“자네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몇 달도 안되었는데 이를 어이하면 좋나?”
“진작부터 장례를 다 치르긴 했습니다.”
“재산분배는 했나?”
“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노 서방이 경주 댁에게,
“임자, 주안상 내오소.”
하자마자 의성 댁이 문을 열고 주안상을 들인다.
“얘기 나누세요.”
하며 의성 댁은 바깥을 나선다.
“자식들은 잘 지내나?”
“네.”
“아아가, 전시 중인데 어떻게 먹을 거리가 없어서 어쩔까 하고 망설였다.”
“…”
그러나 그런 근심은 보이지 않던 장인은 사위에게 옆에 있는 동동주를 사발에 부어준다.
“자네 동생이 이미 죽은 뒤에 제수한테 재산상속이 되지 않았던가?”
“영암에 있던 모든 재산을 팔아버릴 작정입니다만.”
“그건 잘 되었구먼. 그 옛집이 지금 폐가가 되었을 텐데”
“네.”
그리고 다시 장인은 처남을 부른다.
“야, 아버지.”
“들거라. 네 ○○가 있으니 어서 들어라.”
들어온 처남은 병기가 술잔을 부어주는 대로 받아 마신다.
“내가 그 박양반댁에 간 지가 한 십년은 넘었을게지. 삼십년이던가. 사십년이던가?”
웃고 말았다. 집안이 가난한 양반가에 시집을 간 경주 댁은 시어머니를 봉양하여 마을사람들이 孝婦(효부)로 칭할 정도로 경주 고을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진 사람이었다. 경주 태생인 그녀에게는 아무런 선물도 없었지만 사위 병기는 하나의 선물과도 같은 존재였던 거다. 늙고 나약해져가는 나이에 사위라는 귀중한 선물을 받으니 하느님에게 간청했던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3년이 흐른 1953년 어느 날, 판문점에서 미국과 소련은 휴전협정을 맺었다. 한민족의 동의도 없이 임의로 휴전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을 맺은 지 며칠이 되어서야 병기 가족은 서울로 상경해왔다. 그들이 한강에서 다리를 건너고 용산의 이태원 집에 이르렀을 때 종업원 하나가 주인에게 안부를 물어보고서,
“사장님, 저기 방금 어떤 손님이 이 편지를 전하라고 하시기에.”
라고 하면서 편지를 주인에게 전해주었다.
“누군지 아는가?”
“혜화문에 살고 있던 홍 선생님이라고 하기에.”
“그래?”
순간 병기는 편지를 뜯어보았다. 그 편지에는 안부를 묻는 내용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 홍용석입니다.
기억하시지요?
다름이 아니라 지금 박 선생에게 찾아갈까 하는데 멀리 전주에서 와야 되니 선물을 많이 싸와야겠군요.
하루 종일 마누라가 하도 성화를 내는지라 이렇게 안부를 물어보는데 참 세월이 빠르지요?
병기 씨에게 이렇게 편지로나마 안부를 묻는 이 못난 사람을 나무라면 좋겠지요?
형수님은 잘 계십니까?
전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쟁이 그나마 끝나니 참 기쁘고 기쁘지만 휴전선으로 깔리는 운명을 타고난 모양입니다그려.
원우도 용현이도 야화도 잘 지냅니다. 댁의 자녀들도 잘 있지요?
애들을 보지 못 한 이내 몸이 이렇게 멀리나마 있다니 곡하고 곡하지요.
하도 원우가 성화를 내는 지라 이렇게 초대를 합니다. 저희 조부님의 고희연에 오시면 합니다. 주소는 이렇습니다.

전북 전주시 덕진 115번지 50호

이 주소로 선생님이 오시면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하하하하…그럼 이만 줄입니다.

1953년 8월 18일

전주 홍 수사 댁의 홍용석.


안부를 물은 것에 당황한 나머지 병기는 조만간에 며칠 동안 음식점을 휴업하여 다시 서울로 옮기라는 지시를 내리라고 종업원에게 부탁을 하고서 조만간에 전주로 떠날 채비를 차렸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 기차에 가족들과 탔다. 서울역을 지나 전주에 이르니 약속이나 한 듯이 한길의 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진과 병기는 사돈뻘이 되는 탓도 있기 때문이다.
의성 댁이 인사를 하자 형진의 부인 용화가 반긴다.
“어서 와요. 정말로.”
택시에 올라탄 병기 부부를 위해서 용화가 준비한 조그마한 선물을 준다.
“비록 약소하지만 이걸 받으셔요.”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학용품을 주었다. 고맙다는 듯이 호범이 말없이 인사한다. 전쟁의 상처는 남았지만 이것만 주는 것으로 용화는 족할 따름이었다. 드디어 강희의 집에 도착하니 온갖 친족들이 가득찼다. 전주 외가와 서울 친가도 고희연을 축하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형기가 병기 가족들을 이끌고 마당에 서있는 용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병기 가족들이 왔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용석이 입을 벌려 웃으며 병기 가족들을 환영해주었다.
“이거 오래간만입니다.”
용석이 인사를 하자 강희도 따라와서 인사를 한다.
“환영합니다.”
용석은 병기 아이들을 바라본다. 병기 아이들에게도 인사를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귀엽네.”
칭찬을 하는 투에 아이들은 쑥스러워한다.
“이걸 어쩌죠. 이렇게 이른 아침에 오셔서. 아무튼 병기 씬 친가로 왔다는 심정으로 저희 어른들에게 인살 하세요. 지금 안에 계시니.”
강희가 시댁 어른들께 서울의 박 판사집 큰아드님 내외가 왔다고 알렸다. 그런데 어른들이 놀란 나머지 체통을 지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기 가족들이 들어서자 너무도 기쁘고 놀란 탓인지 양손을 잡고 병기 부부를 대했다.
“아이고, 이거 참 반갑군요.”
홍 좌랑이 이내 웃었다.
그리고 절을 하여 앉으니 어른들에게 안부를 주고 받기 시작했다. 바깥에서는 갑수 부부가 들어섰다. 부엌에서 나온 강희가 양친께 인사를 드리고 박 판사네 장남이 왔노라고 일렀다. 하여 병기 가족이 나오자 갑수 부부가 그들을 반겼다.
“자네 부친의 명복을 비네.”
하며 병기를 가엾이 여긴 갑수는 따로 건넌방에 가서 주안을 차렸다.
갑수는 병기에게 봉암의 안부를 전해주었다.
“지금 봉암은 충청도의 수덕사에서 은둔 중이야. 전쟁에 대한 잡생각은 저버린 지 오래랍시고 멀리도 갔더구먼. 한길이가 이곳에 묵을 수 있도록 주지승에게 일러놓았다는 구먼. 두 딸을 시집보낸 덕분에 더없는 금슬을 누리기도 했구먼. 나는 초로에 접어들었구먼.”
그러면서 병기에게 성악가××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는 김독하가 며칠 전에 봉암이 묵고 있다는 수덕사에 왔었다고 한다. 봉암이 대웅전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는 사이에 갑수는 독하를 보았다고 한다. 초췌한 모습의 젊은 시절을 더이상 볼 수가 없었다.
“갑수, 자네 잘 지냈는가? 내 아들놈이 의사라는 것도 알지?”
“그래.”
“의사가 되었어.”
“수재가 되었구먼.”
“수재라니. 과찬이라네. 한데 자네 딸내미 말야. 그 딸내미 얼굴을 보고파서 죽겠어. 그 딸아이 이름이 강희라지? 그리고 남편도 있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지?”
“그래. 이 사람아.”
“그 시댁의 본관이 남양홍씨라지? 본시에 무관출신이고, 전라우수사라는 벼슬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그렇다네.”
갑수는 놀라지 않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다. 한때 갑수의 사위 용석이 사상범에 연루되어 석방되는 중에 고문 후유증을 고치려고 자기 아들을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하여 병을 고쳐준 인연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김독하는 갑수가 이태리로 친구들과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박 판사에 대한 원망을 한 지 잊은 지 오래요, 원망조차 하지 않았다. 박 판사는 여러 이념과 사상과 경향을 섭렵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그런 것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양호는(양호는 김독하의 아들이다) 아버지와 수덕사에 머물렀다. 특히 갑수에게 양호가 사위의 안부를 묻는다.
“아저씨, 강희 남편 분이 병마에 시달렸을 때 제가 고쳐준 인연을 잊지 않으셨죠? 그때를 생각해서 안부를 묻는 거예요.”
하면서 양호는 강희의 미모를 잊지 못하였다. 강희는 어린 시절을 노서아 극동지방의 사할린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고 있었기에 노서아의 예술인들과 자유롭게 교류하였다. 그때문에 문화예술의 독창성을 받을 수가 있었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듣고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은 이력이 있는 만큼 강희는 조선에서 파격적인 성격을 발휘할 수가 있었던 거다. 하여 모 음악학교의 광고가 신문에 나타났을 때 갑수가 무엇보다도 교사로 키울 욕심에 권유하기도 했단다. 그런데 그 교사로 키울 욕심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고, 오히려 뭇남성들의 심신을 자극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에 미국서 유행하는 디자인을 그대로 본떠서 따르는 탓에 사람들은 그녀를 파격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불렀고, 조선서 문화를 쉽게 받아들인 여자라고 했다. 신여성으로써 그녀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하여 반가의 며느리로 간 탓에 양호는 그런 여자를 청혼 한번도 하지 못한 채 보낼 수밖에는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면서 갑수는 병기를 인자로운 눈으로 바라다본다. 그리고 김독하가 한 이야기를 병기에게 털어놓았다. 수덕사에서 김독하에게 박 판사의 맏이가 자기 집 보모와 애정도피를 한 사실을 토로한 것이다. 그때 김독하는 말했다.
“친일판사네 장남이 자유를 찾으러 방황한 모양이네.”
웃기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이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병기 군, 내가 편지를 하고픈 것이 아니라네. 내가 편지를 한 연유는 자네도 알다시피 애정도피를 한 행위에 놀란 일이었네. 한데 자네가 이렇게 자유롭고 깊은 마음 씀씀이가 진정 마음에 들었지 뭔가. 하지만 나는 그런 자네를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긍정적인 시각을 보고 싶었다네.

하면서 그의 안부를 전한 글을 병기에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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