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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선안] 종이꽃 제43편
이윽고 상가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안 서방 내외도 상가의 일을 마다하지 않고 거들고자 나섰다. 그 가운데 어린 애들은 어린 애들대로 먹을 것이 풍성한 것에 환장하며, 이것저것을 집어 먹어대니 아낙들은 애들을 나무라기도 한다. “손님들이 먹을 것을 뭘 잘했다고 집어먹어, 집어먹길!” 날벼락을 맞은 채 꼬랑지를 감추어 애들은 달아나고 만다. 초화 어미의 빈소는 삼일 뒤에야 파했다. 초화는 어미의 넋을 위로하는 삼우제를 서울에서 치르기로 마음을 다잡고 생전 어미의 귀하게 여긴 물품들은 모두 찾아내어 빈소 뒤뜰에다 불을 태워버린다. ‘어매, 못난 딸은 어찌하라고 멀리 황천을 떠나셨소.’ 불에 태워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던 초화는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곁에 남편은 묵묵히 위로하며 지키고 있다. 초화는 이윽고 서울로 올라갔다. 망자(亡者)의 죽음을 지켜보던 진해댁도 아들의 장가가는 것을 보고나서 안심하듯, 초화의 뒤를 따르듯 서울로 올라갔다. 제13. 종이꽃 서울 청량리동(淸凉里洞)에 살림을 차린 방의의 집에 방 대감은 찾아갔다. 그녀의 고명딸 수미(秀美)의 혼사를 의논하기 위함이었다. 수미의 나이는 이제 서른을 바라보고 있었다. 곁에서 근심하고 있는 박씨 부인은 이러다 호박처럼 늙어가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하루하루 근심 속에 살아가고 있었는데 방 대감의 주선으로 중매를 선다는 말을 듣고서야 매우 안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큰아버지가 혼처를 마련해보겠다고 이야기할 때 수미가 대뜸 “큰아버님, 제게 그런 사람이 있기는 있사와요.” 얘기를 꺼내는 것이다. 이에 박씨가 화들짝 놀라며 “그 얘기는 하지나 말아라.” 하며 딸의 말을 막아섰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 방 대감은 수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데 “저 장씨네 아들을 좋아해요.” 오래전 부산에서 목공소를 꾸리던 장욱의 아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는 지금 돈암동에 사는 황숙의 사촌동생이었고, 일전에 미군 PX를 꾸리던 황필자의 사촌오빠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황씨 집안이 장욱의 외가인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그 집 외아들인 장산이 필자의 간청에 의해 근근이 PX를 드나들며 연명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장욱이 부산의 목공소를 처분하고 서울로 상경해 살 길을 도모하고자 노력하는 도중에 뜻밖에 교통사고를 당해 반신불수가 된 뒤로부터 아들이 생계를 이어가야만 했다. 집도 초라하기 짝이 없고 낭떠러지로 떨어진 살림에 감당하기 어려운 나머지 그는 비뚤어지게 건달패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랬는데 최근에 와서 버스 운전수로 자원해 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우연히 길에서 스쳐 지나다가 양가집 딸인 방수미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첫 미모에 반한 건 장산이었다. 물론 부산하고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고 하지만 가까이 지내보지 못한 남남, 낯선 사이였던 거다. 이 소식은 곧바로 황숙의 막내동생인 황필순의 귀에 들어갔다. 처음에 혼담이 오고간다는 말에 내심 좋아라, 했다. 그런데 부산에 방씨 집안의 고명딸이라는 말이 들림과 동시에 싸늘하게 돌아섰다. “아니 하필이면 그래, 양반집 딸을 사모한다 그거야?” 히스테리 한 말씨로 필순은 못내 아쉬워하는 것이다. “양반집의 딸이면 어떻고, 백정 집의 딸이면 어떤데요?” 퉁명스럽게 말하는 조카의 말에 “얘가 보자보자 하니까. 그 집의 풍모로 보나 체면으로 보나 우리한테 과분한 게 아닌가.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살림을 차린다 치자, 그러면 우리 살림을 보고 뭐라고 생각하겠니. 지나가는 대갓집 개가 웃을 일이다.” 하며 반대하고 나서는 것이 아닌가. 장산은 그런 고모의 태도에 격분하고 나서 집을 나가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이를 보다 못한 황보씨는 아들이 혹여 불량배들한테 끌려가 무슨 해코지를 당한 것이 아닌가 하며 내심 불안해하고 있고, 아버지는 태평스럽게 “아 어련히 돌아오려고.” 하며 아들의 무사귀환이 당연하다는 듯 의연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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