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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 시대_01 (제7화)
화타라고 하는 용한 의원이 조조의 머리를 고치려고 했다지만, 그 정도의 의술이 미치지 못하니 송구하다고 할 뿐. 뾰족한 방도가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알아본 바로는 자신보다 더 영험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그분에게 보이지 않느냐고 했다. 그래서 급한 나머지 유근의 처가 수긍한 바람에 연줄로 해서 의원이 말한 '그 사람'을 내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약관은 넘어 보였고, 명색이 진사라는데 어째서 저 사람이 대단한 영험함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걸까 하며 의문을 품었더랬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뿐. "대감마님. 소인의 뜻을 따르시겠습니까." 하며 젊은 선비가 영감을 응시하며 물었다. "으―응." 바로 대답하기 어려웠지만 끄덕이는 모양으로 대답했다. "그럼 고개를 숙이시고 눈을 감으십시오." 무슨 영문인지 모른 듯 유근 영감이 의혹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고개 숙이시고 눈을 감으시면 됩니다." 영감은 마지못해 그렇게 하자 젊은 선비의 태도는 돌연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능하신 하느님, 이 가엾은 영혼에게 새 생명을 내려 주옵소서."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유근 영감의 경직된 채 침을 흘려대는 증상이 점점 호전되어 가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당사자인 영감조차도 미세하지만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았을 때 이 사람이 대관절 어떤 사람이기에 그런 힘이 생겨난 걸까. 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유근은 어제까지만 해도 힘들었던 거동을 다음 날 조금씩 하기 시작하였다. 행랑아범의 부축을 받으며 대청마루를 한 바퀴 휘 돌며 걷는 것을 본 유근의 부인이 얼씨구나 하며 덩실덩실 춤출 기세였다. 그래도 욕심이 난 나머지 어제 만난 그 선비를 찾으라고 유근의 부인이 성화를 내자, 마름이 냅다 그 선비를 수소문하고 다녔더랬다. 그런데 수소문해 알고보니 성이 유(劉)가요 이름은 진길(進吉)이라 했다. 중인 신분이면서 부친이 역관으로 일하였다는 이력 말고는 없다는데 저런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신기하여 부인은 곧바로 그이를 직접 대면하고자 했다. 이윽고 마님이 기거하고 있는 별당에 선비는 하인의 안내를 받으며 찾아갔다. 하인의 부름에 들여보내라고 한 마님은 정중한 자세로 선비를 맞이했다. "나 기억하시오?" 마님이 존경의 눈길로 깍듯이 선비를 대하자, "그러문입쇼." 하며 선비가 절했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 영감의 병을 고쳐준 은혜도 있고 하고 부탁할 일도 있고 하여 부른 것이네만." 그러나 유진길이라는 선비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우리 나리 병환이 말끔하게 나을 수 있을까." 하며 돌려 물어보는 마님의 의중에 유진길은 답했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믿으시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아니 무슨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무식한 아낙인 유근 부인은 영문도 모른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유식한 사람이라면 응당 이 사람은 30년 되가기 전에 서학쟁이라고 해서 박해를 일삼았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이었다. 그러니까 유진길이라는 이름의 이 선비는 서학, 곧 천주교에 신앙을 둔 사람이었던 것이다. 곧 역적으로 내몰리는 간 큰 선비였다. 어떻게 보면 그 선비의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순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우리 영감이 영원히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마님은 선비에게 좋은 묘책을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선비는 종부성사라 하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우선 '세례'라는 의식부터 치르는 것이 관례라고 하였다. 그때부터 마님은 수긍해주었고 진길은 기쁜 마음으로 병환이 짙은 유근 영감에게 세례 의식을 치르고 곧바로 종부성사라는 걸 거행했다. 그로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 달 가까이 되어서야 유근 영감이 세상을 떠났는데 눈 감는 순간에 여느 평범한 얼굴로 되돌아왔던 거다. 이후부터 유근의 집안은 차츰 천주학을 신봉하게 되었고 그동안에 행하였던 박해가 잠시나마 잠잠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를 모를 리 없는 무지한 백성들의 입이 문제였다. 그들의 입에서 퍼진 소문이 무성해지면 무성해질수록 득의양양한 건 풍양조씨였다. 안동김씨를 쓰러뜨릴 절호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둘러 조씨네들이 왕대비인 조씨에게 찾아가 이를 도모할 것을 간청하였다. 이때 왕대비 조씨는 입이 열 개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막강하기 그지 없는 시어머니인 대왕대비의 기세에 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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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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