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안] 종이꽃 제11편

혜산부인의 울컥함은 그녀로 하여금 다시 서울로 올라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버렸다. 포화에 시달려 폐허가 될지라도 하루 속히 서울로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터에 엄 훈장이 내다 준 돈을 받고 고마움을 느끼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돈을 받고 난 순간 야반도주를 해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월사금을 주는 것이 순리이긴 하지만 집안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욕심이 그녀로 하여금 충동질을 해댄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 자고 있는 제 자식을 깨워 이렇게 말하였다.
"웅규야. 우리 서울로 올라가자."
갑자기 어머니의 입에서 서울로 가자는 말을 들었던 웅규는 할말을 잃고 어머니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머니를 보는 웅규의 눈에서는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어머니가 이렇게 변했는지 알아보기라도 하려는 듯이.
이들은 서둘러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잡동사니들만을 들고 달아나듯 서둘러 부산의 둥지를 떠나야 했다. 아침 해가 화창하게 떴을 때 이들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들이 달아난 지도 모르고 이웃에 살던 봉국이네가 혜산부인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경상도 말씨의 그녀는 문을 두드려댔다. 그러나 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한 마디의 편지 한 장을 내놓지 않고 모습을 보이지 않은 줄도 모르는 모양이다.
"계십니까. 아무도 없어요?"
봉국이네의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집은 고요하기만 하다.
'이상타. 엊그제만해도 사람이 있었는데?'
의문을 가지는 사이에 옆에 지나가던 칠숙이네가
"그 집 야반도주를 했나보오."
하고 봉국이네에게 말을 건다.
"그기 무슨 소리요?"
의아하게 묻는 봉국이네. 그러자 칠숙이 어머니는 자신이 시장 노상에 장사하러 가는 길에 이들이 달아나는 것을 알아보았다는 것이다. 하도 난감한 일이어서 봉국이네는 할말을 잃었다. 그리도 살뜰히 대해놓았더니 제 뒤통수를 치는 처사가 하도 한심하여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사 마 어이가 없구마.' 하는 표정으로 서둘러 길을 떠난다.
하기야 동백꽃이 필 즈음에, 아니 굳이 월사금을 내지 않고도 국민학교를 졸업하였고, 이미 삼일상은 다 수습은 한 셈이니 국군이 수복했다던 서울로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