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덕] 女性時代 제9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무화는 돌아갈 채비를 차리고 있었다. 무옥과의 시간도 아쉽긴 했지만 하는 수 없이 바깥을 나설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는 걸 그는 진작 알았다. 세속과의 인연이 닿으면 닿을수록 친구의 고난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하루빨리 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무화야, 도착하면 편지로 연락하렴.” 무옥의 마중을 뒤로하고 무화는 터벅터벅 시내로 향한다. 백강화가 서울로 돌아왔다. 만주에서 유랑을 한다는 편지를 남긴 지 꼭 일년 반만이었다. 그동안 일은 많이 벌어졌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참전한 마라톤인 손(孫)·남(南) 두 선수에게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이 수여되자 이를 기뻐하는 나머지 일장기를 지워버린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동아와 조선중앙의 신문사들이 무기정간, 혹은 폐간이라는 조치가 내려지면서 일본의 강압은 더욱 강해지고 그에 따라 병참기지라는 이름 아래에서 조선은 중국으로의 대륙침략이라는 야욕을 내비치고 있었다. 일본 국내에서는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점차 우경화로의 길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이 정국에 발맞춰 강화 또한 만주에 있는 동안, 일본의 비호를 받으면서 부유한 삶을 살아왔기에 더욱 거침이 없었다. 이 소식을 들었던 윤 서기가 백강화를 맞이한 것은 이로부터 나흘 뒤였다. “오, 에토(江藤) 상.” 윤 서기는 작년에 서기에서 순사로, 지금은 순사부장으로 앉았는데 이를 기념하려고 무악재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전에는 단칸방이나 다름없는 살림살이를 일구던 윤 서기, 아니 윤 부장은 어느 순간 서대문경찰서에 순사부장으로 부임하였던 탓에 살림살이가 윤택해져 이곳 무악재의 집에 옮긴 것이다. “고귀하신 분을 이리 모시니 감개가 무량하옵니다.” 입이 귀에 걸리도록 강화를 맞이하는 모습은 참으로 꼴불견이 아닐 수 없었다. “나를 에토 상으로 부르지 말아요. 사실 만주에서나 그런 말을 쓰지, 조선에서는 이 말을 쓰는 것을 자제해주셨음 해요.” 강화는 윤 부장에게 주의를 주고, “사실 윤 부장께 긴히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어요.” 하고서는 자신의 품에서 꺼내었다. “이거면 되죠?” 바로 소절수였다. “사, 사천원!” “윤 부장에게 과분하다고 느껴지겠지만 부탁이라면 들어주셔야지요.” 윤 부장이 놀라는 것을 비웃듯 강화는 집요하게 묻는다. “혹시 김무화와 관련된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고 계시나요” 그러자 윤 부장이, “네?” 하며 놀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빤히 바라보는 윤 서기의 눈초리에 강화는 이렇게 말했다. “난 사실 그 아이하고는 막역지우나 다름이 없는 사이기도하고 또 그 애 아버님이 제 아버지를 보좌해주었던 비서관 노릇을 한 탓에 서로 친하다시피 한 아이랍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서기님이 맡으신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차마 양심의 가책이 생기더군요. 그러니 윤 서기님께선.”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강화가 하는 말을 가로막듯 한 윤 서기. “그게 아니라 김무화 씨를 불러들인 연유가 어떤 증좌를 위해서 찾고자 한 것일 뿐.” “증좌라니요?” 강화는 무슨 낌새가 있는가 하고 나름대로의 촉수로 윤 서기를 압박해나갔다. “김무화의 언니인 김선화와 그 부군이 어떤 모의를 했는지에 대해 조사를 해보려던 참이었는데 두 사람이 죽고 없으니 그 유족이나 다름이 없는 김무화 씨를 불가피하게 조사를 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윤 서기의 해명에도 아랑곳없이 강화는 윽박지르듯 한다. “강화는 친구이기에 앞서 자매와 같은 사이란 걸 모르시오!” 갑작스런 강화의 돌변한 태도에 윤 서기, 아니 윤 부장으로서는 너무나 얼떨떨한 듯 그녀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주에 있다가 돌아오겠다는 사람이 어떻게 갑작스럽게 태도가 돌변할 수가 있었을까. 더욱이나 아버지 대로부터 차별이 있었던 강화와 무화, 무화와 강화였던 것을 윤 부장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강화가 하필이면 이제 마무리가 될 법한 사건을 순식간에 무마시키려고 한 연유는 무엇인가. 윤 부장으로서는 의심의 여지가 충분히 주어졌다. “어, 에토 상. 어째서 그 사건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러자 강화는, “내가 만주하고도 신경(新京)이란 곳에 있었을 때. 어떤 청년 하나가 제게 찾아왔더군요. 알고 봤더니 일본영사관에서 제 은신처를 알아보고 왔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말하길, 자기에게 은인 한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의 따님을 그것도 은인의 사위 일 때문에 딸에게 고문을 가하다가 갑자기 죽었다고 하면서 은혜를 원수로 갚는 꼴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래 어느 댁의 따님을 죽였느냐고 하니까 그 사람이 김 모 비서의 큰딸이 그 사건에 연루되어 큰 고초를 겪었는데 그 사건의 핵심담당이 당신이라는 걸 알고서도 자신은 말단 관리의 신분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었겠냐며 눈물을 보이더군요.” 순간 윤 부장은 자신의 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 사건에 대해 말해드리리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군산에서 노동쟁의가 있었소. 그때 당시 김선화의 부군이 되는 사람이 주동자라는 어떤 사람의 밀고에 의해서 내가 직접 그 수사를 맡게 되었소.” 하면서 그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강화는 경청하는 태도를 취했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어디서 노동쟁의가 있었나요?” 강화의 물음에 윤 부장은 떨떠름한 담배의 끝맛 때문에 눈살을 살짝 찡그리고 타다 남은 담배 꽁초를 재떨이에다가 눌러서 버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 김선화 씨 부군이 집안 자체가 명문가에다가 사업가요, 강원도 동해에 정어리 사업을 하는 통에 그 사업을 물려받은 나머지 정어리 공장에 직접 가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요?” “그래서 그 공장에 가보았더니 공장 주인 아버지가 알고보니 노동자를 삼백 명 가까이 고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 체불이니 노동 착취니 하며 거기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다고 합디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자신에게 물려준 재산이 몇천 원 있다길래 그걸 가지고 노동자들의 월급을 올려주는 조건으로 협의를 본 다음 칠 년 가까이 미루어지던 일값을 모두 공평히 치러주었다고 소문이 자자하더랍니다. 그래서 삼 년간 그곳에서 공장주 노릇을 하다가 자기 고향 후배에게 운영권을 물려주고 사회주의에 눈을 돌렸다고 합디다.” 그 후 김무화의 형부는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에 대해서 많은 관심과 조예를 가지게 되었고, 이로 하여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운동에 깊이 뛰어드는 계기가 생겨났다. 그 후 서울에서 결성된 신간회의 임원으로 활약하여 그곳에서 역시 청년운동에 맹활약했던 김선화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혼하기 직전에야 비로소 장인이 부일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었다. 이에 두 사람은 이혼을 하게 되었고, 김무화의 형부는 이혼하는 즉시 전라도 군산에서, 그러니까 그곳에 있는 다목공장에서 일어난 1차 노동쟁의 때에 경찰이 들이닥친 채 탄압을 받음으로써 그 주모자로 몰려 영어의 몸이 되고야 말았다. 그 후유증으로 무화의 형부는 옥사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끝까지 그와의 사랑을 잊지 못했던 선화가 그 진실을 깨닫고는 몸소 군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던 탓으로, 그 다목공장에서의 쟁의에 가담하여 노동운동을 벌이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죽은 것이다. 이 일련의 이야기를 듣고는 백강화가, “그럼, 김무화 씨 거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요?” 하며 윤 부장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윤 부장은 메모지를 꺼내어 김무화의 집주소를 적어냈다. 그러고는 강화에게 넘겨주니 강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윤 부장에게 인사를 할 새도 없이 서둘러 밖을 나섰다. 강화는 무작정 길을 나서게 되었다. 그녀의 손에는 김무화의 거처 주소를 적어준 윤 서기의, 아니 윤 부장의 메모가 쥐여 있었다. 그런데 주소지는, 동네를 제외하곤 별로 알 도리가 없어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네 주민이라도 붙잡아서 하루빨리 무화를 만나야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하지만 어떤 중늙은 여자 하나가 그 집을 알고 있노라며 안내를 해주었다. 그러자 강화는 속으로 매우 고마워하였다. 이윽고 그 집에… 들어서기 전에, “계세요.” 하며 안을 들여다 보려 했다. 그러자, “뉘세요……” 하고 안에서 기척이 났다. 그러나 강화는 끝끝내 누구라고 내색을 안했다. 문 앞에 와서 열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안에서는 여자 하나가 있을 뿐. 그녀의 바램대로 문이 열렸다. 그러고서 여자가, “뉘세요.” 하며 강화를 바라보았다. “저, 김무화 씨라고. 안에 있나 싶어서요.” 그러자, “김무화 씨하고는 어떤 사이죠?” 하고 여자가 물어보았다. “그냥 친구예요.” 순간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탓인지 여자는 강화를 유심히 바라본다. 이에 강화가 순간적으로 여자로부터 시선을 벗어나고자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바람이 원천봉쇄되고야 말았다. “너 혹시 백강화니? 백 후작의 딸말야.” 하는 말에 화들짝 놀라는 강화였다. “너 나를 어떻게 알았니?” 그러자 싱긋 하고서, “나를 기억하지 않다니.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주었는데.” 섭섭하다는 식으로 대하는 모양을 보아하니 극단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눈치였다. 안희옥(安熙玉). 그녀는 김무화와 소학교 시절 동창이었다. “근데 강화 너는 여기 웬일야.” 희옥이 묻는 말에 강화는 “무화가 옥고를 치렀다는 얘기를 듣고서.” 하며 주저하는데 그녀가 낄낄거리며, “하하하…… 옥고는 개뿔. 무화가 무슨 하느님의 어린양이니. 큭……” 그리고는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바닥에 주저 앉는다. ‘천박한 계집애.’ 때마침 말동무가 있어서 반가운 듯이 안희옥은 그녀에게 귀띔해주었다. “사실 무화. 여기 서울에서는 보기 힘들지도 몰라.” 하고서 훌쩍 거리자 무안해하던 강화가, “무슨 안 좋은 일이야?” 물어본다. “무화가 일 년 가까이 미국에 다녀올 건가봐.” 김무화가 미국으로 간다는 소식에 백강화는 무거운 족쇄를 채워지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
http://www.1392.org/bbs?history23:190  
|
| 
|
![[1]](./skin_board/a_standard/b_img/attrib/man2.gif "[1]")
정희서 623('14)-06-01 07:59
|
진짜 길다 | |
|
![[2]](./skin_board/a_standard/b_img/face/a1.gif "[2]")
김일식 623('14)-06-13 22:47
|
재미있어요,,,,계속 봐야 할것 같아요,,,, | |
|
|
| 창작 역사소설 최근 댓글 | ||||||||||||||||||||||||||||||||
|
정병욱
정병욱
정병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