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판사 제46화

2. ‘로사리오(Rosario)’의 노래

경주읍내의 자리해 있는 한 성당. 그 성당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서양식 건축물이었다. 붉은 벽돌이 무엇보다 여운이 남아있으며 성당의 종소리가 이윽고 들려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고독에 목말라하는 영혼들에게 마실 것을 주는 청량함처럼 달래어주는 청아한 성가대의 노랫소리. 그 속에서 로사리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거룩한 성전 안에 들어가서 미사를 드리는 여자가 있었다. 여기에 이른 이는 누구일까. 중년의 여자였다. 그 여자는 경주댁이었다. 노 서방과 자식들을 데리고 경주로 온 그녀는 편안하게 안정된 삶을 누렸다. 그러나 막내딸인 방옥이 서울로 가서 자신의 상전이었던 박 양반의 손자 박 모의 몸종으로 들어간 것을 모르고 있었다.

미사가 파하자 신부가 바깥에서 신자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 자리에 경주댁이 스쳐지나가자 신부가 먼저 아는 척하며,

“자매님. 왜 성당에 오시지 않으셨어요?”

걱정스런 말로 다정스럽게 말하던 신부의 말에 경주댁의 얼굴에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지, 지가 사탄에 사로잡힜나봅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신부는 이태리에서 온 사람이었다.

“꿈자리가 사납십니다.”

경주댁이 말했던 그 꿈자리는 의성 댁이 다른 남정네에게 사로잡혀 엄마를 부르짖으며 끌려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 꿈을 보는 경주댁의 마음에서는 천 가지로 만 가지로 찢겨지는 심정이었다.

“서울로 가셨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자매님?”

“그렇다고는 합니다만. 불안하고 초조해가 어떻게 말할 길이 없십니다.”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겁니다. 자매님. 힘내세요.”

경주댁은 집에 돌아왔다. 남편은 이미 어디론가 바깥으로 나가고 없었다. 경주댁은 주막을 하다가 며칠 전에 문을 닫았다. 그 이유는 서울에서 온 소식 때문이었다.

그 편지에는 봉필의 친구이자 박 판사의 故友(고우) 전갑수의 부친인 전 참봉의 편지에서 비롯되었다.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경주댁 아주머니를 잘 알고 있는데 소인이 전 모라는 사람입니다만. 봉필의 친구지요. 봉필이 감옥에서 살다가 나와서 변절을 하고 그 자책감에 시달려 병으로 객사한 소식을 들으셨는지요? 그때 봉필이 어머니께서 죽은 아들을 두고 연신 통곡을 하더이다. 한데 무엇보다 놀란 것은 댁의 따님이 박 판사 집에 기거하면서 하인노릇을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원수지간이라던 박씨 집안에 무슨 연고로 들어간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 바는 없으나 아무래도 돈이 궁핍하여 그리한 것이라는 것을 유념하셨으면 합니다.

전 참봉을 경주댁과는 잘 아는 사이다. 전 참봉은 경주댁이 봉필의 부인 여씨부인의 몸종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바도 있고 여러 번 경주로 드나들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봉필이 죽을 무렵에 전 참봉을 따라 서울로 가 성북동 집으로 조문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박 모는 갓 스무 살. 고등문관시험을 치를 무렵이었다. 그 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판사직을 맡게 되었다는 것을 익히 들어온 경주댁. 그런 처지에서 그녀는 방황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1926년 융희황제가 붕어하자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갖가지 일들이 조선 안에서 들고 일어났다. 사회주의는 기세가 등등하여 판을 치고 진주에 衡平社(형평사)가 일어나고 노동쟁의와 소작쟁의가 전국 각지에서 잇따라 일어난다는 신문기사를 볼 적마다 노 서방의 얼굴에서는 일그러진 표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정국을 앎에도 불구하고 자식들 가운데 유독 막내인 방옥, 그러니까 의성 댁은 학교를 제대로 다닌 적도 없지만 한문과 언문을 고루 깨우치고 오빠 둘이서 사놓은 서양서적을 탐독하여 서양문물에 대해 독학을 해댔다. 나이 다섯 살 때 그 서적들을 읽고 하였으니 그 머리가 오죽했으랴. 의성 댁, 그러니까 방옥이 태어난 해가 癸丑(계축)년이니 이는 庚戌(경술)년에 국치를 겪은 지 만 삼 년이다. 아들을 둘이나 낳고 막내를 딸로 낳으니 2남 1녀다. 세 남매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큰아들 방석과 작은아들 芳運(방운)이 마지막에 방옥이니 방옥은 중매쟁이에게 이끌려 안 서방 집안에 시집을 갔다. 그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갔다는 것이 진정 말이 된 처사인지. 경주댁의 걱정은 늘 앞섰다.

그러나 딸 방옥이 연신 몸 성히 잘 지내고 있노라고 편지가 올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경주댁은 주막집을 열어 음식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국밥을 팔기 시작했다. 소국밥을 팔고 있는 경주댁의 집에 전 참봉이 찾아왔다. 갑수의 부친이기도 한 전 참봉을 본 경주댁이 화들짝 놀라며,

“이 누추한 집에.”

하며 말을 이을 줄 모른다.

그러나 전 참봉은 의아해하는 경주댁을 안심시키고 방안에 들어간다. 경주댁에게,

“바쁘신지요.”

하고 전 참봉이 말했다.

“바쁘지 않습니다만.”

전 참봉은 깊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單刀直入(단도직입)으로 하겠습니다.”

하며 전 참봉이 경주댁을 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댁의 따님께서 박 양반네서 유모로 일한답니다.”

그때 경주댁의 눈에선 경련이 일었다.

“유모라고 하지만 형식상으론 食母(식모)노릇하다시피 하더랍니다.”

경주댁이 이 말을 듣고 이렇게 한탄한다.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가. 이게 무슨 일이기에 우리 귀한 금같이 생긴 내 딸이 어째서 식모를 한단 말이가. 안 서방을 데리고 그리로 들어갔단 말가!’

놀라움을 감출 길이 없어 입을 다물지 않고 고개를 내저으며 생시가 아님을 받아들이려는 듯 울분을 토하기 시작한다.

“아이고, 이 금쪽같은 내 새끼! 내 새끼가 와 그 지경이 되었나! 와!”

방바닥을 치며 대성통곡하는 어미의 심경을 전 참봉은 뼈저리게 아플 뿐이다.

“자책하시지 마십시오. 부인.”

자책해야하지 못할 그 불행한 일을 딸이 대신 감당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비록 서양물을 마셨다고는 하지만 귀가 얇은 그녀의 식견은 결국 딸을 그렇게 만들어놓고 말았다는 것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전 참봉을 옆방에 자리를 펴 그곳에 묵게 하고 남편인 노 서방에게 말했다. 그러자 지아비 노 서방은 짐작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가 그놈의 식견만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부인 탓이 아니오.”

“네?”

눈물을 뿌리며 지아비에게 하소연하던 경주댁은 일단 눈물을 거두어 지아비를 바라다보는데 지아비 노 서방의 눈에선 怒氣(노기)가 아닌 슬픔어린 눈빛이 되어있었다.

“바로 사회에 대한 모순이라오.”

그러면서 노 서방은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 내가 출타하고 오겠노라고 이야기했소. 그때 저 친구를 만났소. 한데 저 친구가 아무런 말을 않더군. 한데 그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당신한테 했나보구려.”

“서방님.”

“그건 당신 탓이 아니오. 신라도 骨品(골품)으로 나라가 점차 망했소. 그리하듯 조선도 신분의 차이 때문에 나라를 망친 것이오. 그놈의 儒經(유경)에 집착해서 나라를 말아먹고 말았지. 오죽했음 친일하노라고 작위를 따고 난리를 부리겠느냐 말이오.”

그리고는 노 서방은 한숨을 쉬어 다시 말했다.

“당신은 명심하시오. 세상은 망했소, 설령 해방이 된다한들 무슨 상관이겠소. 사람이 사는 게 그저 그렇다오. 天地開闢(천지개벽)이 이루어진들 우리가 어떤 수로 살아간단 말이오. 桓因(환인)이라느니, 桓雄(환웅)이라느니, 檀君(단군)이라는 뭐 이런 역사가 있다한들 무슨 상관이오. 그리해서 살지는 못하외다. 단군이 세우고 나서도 개벽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오. 설령 고구려장군 溫達(온달)이 천치로 살지 못했다면 나라는 점차 역전되었을지도 모르오.”

그리하여 그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 민족성에 찬사를 보내고 싶소.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친일에 열을 올리고 열녀문을 세워라, 뭣을 세워라. 그렇게 운운하면서 본인은 노력도 못하는 그것은 무엇이오. 사람의 무능함이란 게 그렇다는 것을 명심해야하오.”

그리하여 노 서방의 말을 듣고 비로소 경주댁은 또다시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