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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보덕] 암투(暗鬪) 제01화
달문단군 재위 13년 정월에 영흥대군이 하세하였다. 2월에 그 뒤를 이어가듯 영의정 대선의가 세상을 떠났다. 대선의의 자손들은 도성에서 내려가 전라도 경양도 땅에 세거하며 조정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태황태후가 직접 명을 내려 시호를 혜종영흥치도대왕(惠宗永興治道大王)이라 하였다. 뒤이어 좌의정으로 하여금 의정부의 수장을 맡도록 했다. 3월에 엄운이 상왕을 복위시키고자 했다는 혐의로 엄벌에 처하게 되었으나 왕의 너그러운 성정 덕분으로 서해도 변방으로 귀양을 보냈다. 4월에 왕실의 뜻에 따라 웅비 동방씨를 왕비로 삼았다. 이것이 불행의 시작일 줄 누가 알았으랴. 본래 동방씨의 성정이 워낙 너그럽지 않아 왕이 다른 후비의 침소에 들어갈라치면 아랫것들을 시켜다가 감시하도록 닦달하는 등 유난히 투기와 샘이 심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왕의 침소에 들이닥쳐서는 후궁의 뺨을 갈구기도 하니 왕의 생모가 되는 중덕황태후가 별안간 “저런 발칙한 일이 있나!” 왕비의 무도함을 근심하였다. 이에 상기 허씨를 비롯해 소비 공씨가 중덕황태후의 신임을 받은 걸 빌미로 웅비를 몰아낼 궁리를 짜내는 것이었다. 여러 종친 그중에서 나이가 많은 축에서는 왕후의 투기에 대해서 쉬쉬하는 태도를 취하며 신중하게 바라보자 하는 주의였고, 귀족(貴族)들은 귀족들대로 어느 편에 빌어 붙어야 살아남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때부터 조정 신료들은 자연스럽게 귀족을 형성하고 있었다. 태황태후는 태황태후대로 세를 형성할 기회가 있었으나 실패했다. 결국 실권은 중덕황태후의 손에 있었다. 5월에 금상의 작호(爵號)를 훈공에서 의공(懿公)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영의정 대선의가 세상을 떠나자 왕이 사훈공(思勳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는데, 자신의 ‘훈공’이라는 존호에 생각한다는 뜻의 ‘사’ 자를 덧붙였으니 이는 자신의 권세에 버금가는 세도를 누렸다는 표징이었다. 그만큼 대씨의 세도가 매우 셌다는 것이다. 중덕황태후가 이를 천우(天佑)로 여기어 탈취하듯 권세를 움켜쥐니 왕실의 어른으로서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곧이어 조선왕의 연호를 이어받도록 하니 이를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7월에 의정부의 인사를 명하도록 하였는데, 왕이 태후의 간청에 따라, 외조부(外祖父)인 윤기진을 영의정으로 삼고자 했으나 돈령부 측에서 반발하여, “황태후가 정사에 관여함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속히 황명(皇命)을 거두옵소서.” 하고 나섰다. 하는 수없이 의정부의 인사를 새로이 단행하니 영의정에 대선의의 아우 대주화를 명하였다. 좌의정에 대홍우, 우의정에 홍제, 좌찬성에 장계, 우찬성에 민송주, 좌참찬에 민덕주, 우참찬에 황봉수, 의정부사인에 엄충, 의정부검상에 김도서, 의정부사록에 김강서를 명하였다. 섣부르게 대세에 저항할 수 없다는 황태후의 신중함이 엿보였다. 9월에 달문단군은 조선국 국내에 공공연하게 설교하고자 하는 불학(佛學)의 무리들로 인해 골치를 앓았다. 아무리 개방정책을 펼치고 있는 조선왕이라 할지라도 그만큼은 좌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불도(佛道)에 대한 박해를 중지해야 한다는 조정 대신들의 뜻을 받아들여 없었던 일로 하였다. 미미한 것에 연연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10월에 달문단군이 왕에게 다시 교섭할 뜻을 밝히자 왕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으며, 조선국의 화폐를 널리 유통하도록 허락하였다. 뒤이어 농기구며, 청동을 적극적으로 수입하도록 허락하자 경직되었던 본국의 경제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이때 이르러 태평성세라고 불릴만하다고 여러 백성이 입을 모아 기뻐했다. 11월에 선산태황태후가 하세하였다. 왕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왕실을 비롯해 귀족들로 하여금 예를 갖춰 장사를 후히 치르도록 명했다. 이때 왕비가 왕실의 웃어른인 태황태후의 상사를 겪은 것을 모른 채 상복(喪服)을 차려입지 않았다는 소문이 대궐 안팎에 공공연히 퍼져나가니 중덕황태후가 대성 일갈하였다. “저런 고얀 鷄集이 있나!”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고자 황후의 거처에 직접 찾아가 보니 그것이 사실이었다. 12월에 웅비를 폐위하고자 하는 황태후의 명이 있었으나, 웅비에게 태기(胎氣)가 있으므로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달문단군 재위 14년 정월에 웅비가 왕자를 낳았다. 왕이 왕자를 안동군(安童君)이라고 봉하였다. 명색이 왕비의 지위에 있었다고는 하나 아직 왕비의 첩지(帖旨)를 받지 않은 탓이다. 2월에 조선왕 달문단군의 명에 따라 책봉례(冊封禮)를 폐지했으며 동등한 국가로의 관계로 돈독하게 유지할 뜻을 밝히자 왕이 이를 기꺼이 받들었다. 3월에 중덕황태후는 웅비 대신으로 새로이 왕비를 맞이하도록 왕에게 권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왕의 새 배필은 성인공의 손녀이자 성중(成重)의 딸이었으며 광해왕비(廣海王妃)라는 존호(尊號)를 내렸다. 왕비의 성품이 평소에 워낙 단정하고 온순한지라 장차 나라에 있어 길이길이 큰 은덕(恩德)을 입게 된다는 뜻이니, 중덕황태후로서는 밑질 장사가 없었다. 새로 왕비가 간택되자마자 난처하게 된 쪽은 단연 상기 허씨와 소비 공씨였다. “황태후 마마께서 이리 나와서야 되겠습니까?” 왕비가 되지 못한 것에 허 상기는 심기가 매우 언짢았다. “이러다가 우리 모두 다 꼼짝없이 죽게 생겼습니다.” 소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덜덜 떨었다. 이후의 정세는 차츰 안정되었다. 4월에 왕비 성씨의 아버지 성중을 종부시정(宗簿寺正)에 명하고, 왕비의 아우 되는 성진술(成眞術)을 선무랑에 명했다. 11월에 사헌부의 인사를 명했다. 사헌부집의에 원승환, 사헌부장령에 송진, 사헌부지평에 도방수, 사헌부감찰에 옥강을 명했다. 뒤이어 송부를 경주부윤(慶州府尹)에 명하였다. 안동대도호부의 업무가 과중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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