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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보덕] 시대(時代) 05 제08화
한치형의 집에서 머물던 인수대비는 상감의 청에 못이겨 대궐로 환궁했으나 그녀는 이미 이빨 빠진 늙은이나 다를 바 없었다. 대궐에 돌아와 있어도 다를 바가 없었다. 아침 문안을 받지 모하고 드나드는 내관이나 궁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신진 관료들의 득세도 한몫을 하기는 했지만, 중궁의 기세도 못지 않았다. 인수대비는 급기야 ‘중궁이 필시 내게 문안드리지 말라고 상감에게 충동질하고 있을 것이야.’ 까막눈이신 대왕대비의 뒤에서 정사를 알음한 것이 엊그제이거늘, 이제는 뒷방의 늙은이로 물러난 자신의 신세가 매우 외롭고 처량했다. 새 관료들의 기세에 휘둘려 기성 세력을 몰아내려는 상감의 모습을 보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인수대비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길 없다. 신진 관료들은 이에 한술 더 떠서 자신이 정사에 더는 관여하지 말라고 눈총을 주니 졸지에 팔다리가 묶인 상황이었다. 경기감사(京畿監司)로 있던 한치형이 문안을 오자마자 오늘도 전하께서 아침 문안을 드리지 못하셨습니까? 묻자 왕대비의 눈에서는 우울의 눈빛이 더 짙어졌다. 인수대비는 한숨을 깊이 쉬더니 어미를 포용하지 못하십니다. 조정의 원로들을 무슨 수로 누르며 다스리십니까. 속내를 털어낸다. 그렇게 서두르셔서야.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옛말이 있지요.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했더니 불평이 대단하더랍니다. 그래서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니까는 원숭이들이 좋아하더랍니다. 신하들이란 원숭이와도 같습니다. 아침에 세 개나 저녁에 세 개나 따지고 보면 다 같은 숫자인데 당장에 눈앞에 쫓는 것이 신하들의 속성이지요. 주상께서는 이들을 다스릴 수가 없지요. 걱정스레 쳐다보던 치형이가 잘해나가시겠지요. 마마. 위로했으나, 급하기도 하시지. 어쩌자고 어미를 그리 못 믿으시는지. 인수의 목소리가 울먹인다. 중전께서 하시는 일이 위태해 보여서. 제 집사람이 보기가 그렇게 무섭더랍니다. 중궁이 보통이 아니실 테니까요. 사람 다루는 법부터 배우셔야 할 텐데. 인수대비의 눈물이 마를 길이 없다. 왕대비가 만사에 무심하다는 소문을 어느새 중궁전에까지 들렸다. 중궁은 임사홍을 곁에 두고 정사에 관여하였다. 전하께서 더는 대비전에 눈치 보지 말라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사헌부(司憲府)와 홍문관(弘文館)의 젊은 관리들이 인수대비를 탄핵한다고 아우성이라고 하십니다. 사면초가입니다. 대비께서는. 중궁의 얘기를 듣자마자 사홍은 소인이 염려하는 것은 전하께서 훈구대신들을 홀대하시는 것이 지나치시기에. 염려했다. 원로대신들을 소홀히 대하시면 그들이 모두 경춘전(景春殿)으로 달려갈 것이니 개혁을 하시거든 천천히 하시라고요. 경춘전은 인수대비의 거처다. 중궁의 말에 사홍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째서 놀라십니까?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궁중의 아녀자로 보셨지요? 임사홍이 멋쩍어하니 나도 그만한 사리분별은 할 줄 압니다. 염려 마세요, 임 승지. 젊은 관리들과 무슨 정치를 하시겠습니까? 말만 앞세우는 선비들이 아닙니까? 중궁의 말을 듣고 임사홍이 음흉한 웃음을 띠었다. 젊은 관리들의 뇌화부동하는 모습을 두고 동조하는 중궁이었다. 그러나 현석규나 허종 같은 지조 있는 청백리들을 자칫하다 경적필패(輕敵必敗)라는 말처럼 망할지 모른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들의 예상대로 인수대비는 권숙의와 짜고 각별하게 잠저 때부터 지내온 한명회의 애첩 향이와 접촉해 명회와의 만남을 도모했다. 권숙의는 인수대비의 오른팔 노릇을 충실히 해냈다. 중궁에게도 잡인(雜人)을 들이지 말라고 직언을 하였다. 그러나 말씀을 삼가세요. 대비전에서 권숙의를 감찰(監察)한 것은 내명부의 후궁들을 단속하라고 한 것이니 이래라 저래라 내게 간섭하는 것이 아닙니까. 중궁의 위세는 이렇듯 기세등등하니, 한명회로서도 행여 인수대비에게나 왕실의 웃어른을 효도를 행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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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