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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보덕] 시대(時代) 05 제04화
대사헌에 막 부임한 윤계겸은 외척의 몸으로 있어 현석규 등에게 논란이 되어 왔었으나 인수왕대비의 강권에 의해 관철(貫徹)되었다. 인수대비의 결단력이 한몫을 했다. 탐관오리들의 명단과 함께 그의 비리들을 요모조모 적은 책자를 계겸에게 보이니 계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양손이 덜덜 떨린다. 탐관오리들의 명단입니다. 뇌물만 받고 청탁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은 이름 밑에 점 하나만 찍었습니다. 점 하나는 견책(譴責)으로 충분합니다. 이름 밑에 두 개의 점이 찍혀 있으면 이권을 개입해서 뇌물을 챙긴 사람입니다. 물러나야지요. 점이 세 개면 백성들에게 지탄(指彈)받고 있는 탐관오리의 대표들입니다. 물러나는 정도로는 안 됩니다. 부당하게 모은 재산을 다 내놓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주상께서 막 친정을 시작하셨습니다. 경륜이 부족하시고 미숙하신 주상입니다. 짐을 덜어드려야죠. 딴은 그러했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전례가 있었다. 태자 건문(建文)이 병약하여 후사가 염려스러운 나머지 탐관오리들의 표본으로 개국공신(開國功臣)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수천수만의 인명들을 희생시켰다. 이에 황태자가 병으로 죽고 황태손(皇太孫)이 후계를 이었는데 조부인 황제에게 더 이상의 살상을 멈추라고 읍소하니 주원장이 말하길, 한 그루의 가시나무가 있다. 그 가시들은 날카롭기 그지없어 사람의 손으로 만지면 찔리게 마련이다. 탐관오리들은 모두 그런 가시와 같다. 나는 그 가시들을 제거해야만 네가 다스릴 나라가 장차 태평할 것이 아니겠느냐? 인수대비 또한 주원장의 전례에 따라 아들이 다스리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관리들을 숙청하고자 한 것이다. 고모들이 모두 명나라 왕실에서 후궁으로 지낸 덕분에 중국의 사서들을 두루 사들여와 읽은 까닭이다. 그만큼 인수왕대비의 지혜는 빛을 더하고 있었다. 윤계겸이 그 명단을 읽어보더니 황공하오나, 마마, 신이 얼핏 훑어보기에 당상관(堂上官)의 이름이 여럿 들어 있습니다. 하옵시면 이들을 다 처벌하라시는 것인지요. 머뭇거리며 묻자 인수대비는, 쳐야지요. 그래야 대소신료들은 물론 만백성들이 군주를 두려워하고 우러러 볼 것입니다. 의지가 매우 확고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상당군을 비롯해 의정부와 육조당상(六曹堂上) 들의 이름이 태반이었으며 밑으로는 미관말직에 이르기까지 인사를 청탁하고 이권에 개입한 인들이 세세하게 골라 넣어 탐관오리로 규정하고 있었다. 개혁이 아닌 경장(更張)이다. 인수대비의 한명회와 그 무리의 적폐를 청산하려는 굳은 의지였다. 왕실의 주도로 진행된 사정(司正)이었으니만큼 상하 대신들이 모두 어디로 불똥이 튈지 몰라 전전긍긍(戰戰兢兢)하였다. 그러나 인수대비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청백리(淸白吏)의 본보기로 삼아 더는 관리들이 사리사욕(私利私慾)보다 나라에 충성하게 만들려는 것이었으며, 왕실의 곳간을 채우게 하려고 노력하자는 뜻에서 펼친 사정이었다. 일석이조의 차원이다. 보다 못해 야밤에 대비전에 찾아온 사촌오빠 한치형(韓致亨)이 개혁이 아니냐고 대비에게 의문을 드러냈다. 개혁이라니요. 나는 그런 뜻으로 사정을 한 게 아닙니다. 다만 지나치게 이권에 개입한 채 치부(致富)한 사람을 몇몇 골라 본보기로 삼자는 거지요. 지나쳐도 모자라도 안되는 것이 사정입니다. 사정을 한다고 인심마저 잃어서야 되겠습니까? 미소를 만면에 띄우며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내비쳤다. 시간이 지나자 부정축재(不正蓄財)의 본보기로 한명회를 지목해 탄핵하는 상소가 올라왔다. 그 상소를 쓴 사람은 다름아닌 유자광(柳子光)이었다. 조정의 원로를 탄핵하고 모함한다는 이유로 사간원(司諫院)에 돌려 보냈다. 이 소식을 들은 인수대비가 노발대발하였던 것은 당연했다. 다만 금상은 덕치(德治)로 다스리고자 하였을 뿐이란 것을 인수대비로서는 미처 몰랐다. 신진관료들이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을 중심으로 상당군의 탄핵을 두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자칫하다가 상당군의 집안이 몰살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당군의 부인과 첩이 대비전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대비전에 저자세로 나섰다. 한편 윤기견의 딸이 용종(龍種)을 회임(懷妊)했다는 소문이 대궐 전체에 두루 퍼졌다. 새 대비전 사이에서는 중궁으로 윤 숙의를 간택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평소에도 너그럽고 자애롭던 대왕대비가 주도해서 만약 원자가 태어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서둘러 중궁으로 낙점하도록 재촉했지만, 인수대비가 머뭇거렸다. 한번 정하면 물릴 수 없는 것이 중궁의 자리라는 이유에서였다. ―한밤중에 대비전에 찾아온 상감에게 꾸지람을 내렸다. 상당군의 처신 문제였다. 이때 치형이 위로해주자 그새 화를 풀었다. 거미는 제 살로 ㅈㅅ을 키우고 죽는다고 합니다. 나는 거미의 모정(母情)보다 더하게 키웠습니다. 오라버니, 내가 자식을 잘 키웠지요? 예, 마마. 훌륭한 어머니시고 말고요. 서로 사촌 오누이의 주고받는 덕담에 밤이 깊을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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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