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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봉당] 반정(反正) 제04화
일각에서는 지순목은 본래 청양씨(靑陽氏)의 일족이었다고 하는데, 청양씨 내부의 다툼의 여파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날 것을 염려한 나머지 지순목 일가가 그 일족에서 나와 평민의 신분으로 지냈다고 전한다.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으나 청양씨는 지금의 요동(遼東) 부근에 대대로 세거하며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지순목의 임명으로 말미암아 왕은 그의 진면목을 발견했다. 지순목은 워낙 책략이 강하여 북방의 영토를 다시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존의 관리들은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순목의 말은 워낙 위험천만(危險千萬)한 생각이라 봅니다. 부디 북방을 다스리는 일만큼은 거두시는 것이.” “순목의 말이 다소 옳다고도 볼 수 없거니와 황당무계(荒唐無稽)하기까지 합니다. 순목의 청을 거두십시오.” 일이 이렇게까지 되자 왕은 지순목에게 당분간 본직에 머물도록 했다. 8월, 강원도 지방에 때아닌 폭우로 말미암아 산천이 홍수로 몸살을 앓고, 백성들은 백성들대로 토사에 깔려 사망한 사람이 수천을 헤아렸다. 9월, 북쪽에서 은상씨(殷商氏)가 발흥하여 침입을 일삼자 왕이 오위 군사 이천 명을 보내어 이들을 토벌했다. 은상씨의 수족인 은상진승(殷商眞承)이 생포되었으며 진승이 왕에게 항복하며 귀화하기를 간청하자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10월, 죽은 폐비의 아버지인 추영재를 위덕공(威德公)이라는 시호와 함께 증총리대신(贈總理大臣)으로 추사(追賜)했다. 11월, 황해도 이북 지방으로 서북도 백성들이 이주하자 왕이 이를 수습하기 위해 황해도에 감영을 하나 세웠으며, 황해감영의 인사들을 명했다.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에 원언지, 황해도도사(黃海道都事)에 김사상, 황해도검률(黃海道檢律)에 옥경, 황해도심약(黃海道審藥)에 제갈형을 명했다. 12월에 경기도 고양군수에 김염, 고양훈도에 천우서를 명하였으며, 광주목 인사 또한 명하니, 광주목사에 천미소, 광주판관(廣州判官)에 추서문, 광주교수(廣州敎授)에 주람을 명했다. 한율단군 19년 수지 8년 정월에 때아닌 한파로 인해 도성 백성 수십만 명이 얼어 죽자 왕이 다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길 뜻을 내비쳤다. 의정부 대신들이 반발하였으나 왕이 이를 강행하였다. 2월, 왕이 한성에 도읍 삼아 옮긴 뒤 선보궁을 정궁으로 삼아 대궐을 장엄하게 짓도록 명하였다. 선보궁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추위에 지친 백성들이 소요(騷擾)를 일으켰으나 왕이 직접 위무하여 이들을 진정시켰으며 왕실의 내탕금(內帑金)을 꺼내어 백성들의 살림살이에 보태쓰도록 했다. 3월, 양주 땅에서 나와 다시 선보궁으로 도읍을 옮긴 뒤 왕이 왕비의 소생인 조림대군으로 하여금 태자로 책봉하였다. 후궁들 소생을 태자로 삼고자 하는 움직임이 심심찮게 포착되는 데다 양주 땅에 세력을 둔 일부 관리들이 후계자를 두고 역모를 일삼을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뒤이어 태자의 교육을 담당하게 하고자 경연청(經筵廳)에다 태자의 교육을 맡겼다. 영경연사에 김소, 지경연사에 권일, 동지경연사에 도정하, 경연참찬관에 송성덕, 경연청시강관에 공강, 경연청시독관에 허덕윤, 경연청검토관에 엄해, 경연사경에 박소산, 경연설경에 길선주, 경연전경에 황우준을 명했다. 4월에 폐위된 개천대군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왕이 그녀의 위호(位號)를 왕후로 올려 부르도록 명하고 위패를 종묘에 따로 모시도록 했다. 신하들 가운데 일부가 반대하고 나섰으나 왕이 군주로서 타당한 나랏일을 많이 행하므로 위패를 따로 모시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로써 신하들의 말을 막았다. 5월에 표경궁이 낡았음을 알고 왕이 직접 표경궁을 중수하도록 명했다. 보름 넘게 중수하자 왕이 황태후전으로 하여금 그곳에 기거하도록 했다. 6월에 지순목의 일가로 칭하던 청양씨가 투항하여 본국으로 귀화했다. 청양씨의 수장인 청양홍(靑陽弘)이 힘써 본국의 백성으로 편안히 살기를 바라자 왕이 이를 받아들여 서북도 땅에서 살도록 허락했다. 청양홍 일가가 무려 백여 명을 헤아리니 왕의 성덕에 감읍하여 그곳에서 세거하여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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