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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선안] 사무엘 제05화
사무엘이 하느님과 함께 하고자 머나먼 광야에서 헤맬 즈음 히브리 땅에 삼손이라는 판관이 열두 지파를 다스리고 있었다. 삼손은 들릴라라는 젊은 여인과 정분을 나누었던 것으로 유명했는데, 들릴라는 이 열두 지파 출신이 아닌 이방인이었고, 삼손은 들릴라를 통해 고향 팔레스타인의 동정을 살피고자 이용했었다. 그는 판관으로 지내면서 특유의 유머 감각과 함께 백성을 포용하고 어루만졌으며 의협심이 강해 열두 지파의 주변에 어려움이 따랐을 때 먼저 발벗고 나서서 해결해주었다. 그런 삼손도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노년에 접어들고 있었다. 열두 지파를 다스릴 힘과 지혜가 삼손에게서는 보이지 않았고 용솟음치듯 올라오던 용맹(勇猛)은 이빨 빠진 호랑이와 같이 되어 예전의 젊음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삼손을 지켜보던 몇몇 관리들은 “삼손이 이스라엘의 여러 서무(庶務)를 등한히 하고 은둔해 있다.” “애첩 들릴라한테 홀려 여색을 즐긴다.” 며 저마다 입방아를 찧어놓고, 급기야에는 삼손이 이방인의 여자에게 빠져 나라를 망치게 되었다는 소문이 두루 퍼져 나갔다. 일이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 둘 삼손의 곁에서 멀어졌고 우상을 금지하던 것을 깨고 다른 신을 모시기도 했으며, 더러는 사제들이란 사제들을 찾아가 삼손을 대신하여 몸을 의탁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삼손의 후계자를 자처해서 서로 반목하고 하다못해, 이단이라고 하며 서로 손가락질해대며 욕을 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에 어느새 다다른 사무엘의 귀에서도 소문은 들렸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속말처럼 삼손에 대한 신뢰는 소문과 같이 땅으로 떨어졌다. ‘도대체 삼손이란 사람이 누구길래 저렇듯 험담(險談)을 늘어놓을까?’ 그는 사제의 몸으로 오로지 자신을 주님께 의탁하고자 했고 세상과의 소통도 끊었다. 사무엘은 그만큼 앞만 보고 하느님의 길을 따라가고자 했다. 남루한 옷을 입고 있는 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사무엘은 지나는 사람들마다 묻고 물어서 브에르 세바라는 곳을 찾고 또 찾아갔다. 브에르 세바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 이집트 파라오의 박해에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찾는 여정에서 안착(安着)했던 곳이 아닌가. 또 하느님과 생사고락(生死苦樂)을 같이했던 역사가 깃들어진 고을이다. 사무엘은 지향 없이 떠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난날과 같이 진실성을 찾아보고자 방랑의 길에 동참하였던 것이다. 사무엘은 날이 저물 즈음이 되어 마침내 브에르 세바에 당도했다. 묻고 물어 찾은 브에르세바 땅에도 마을은 존재했다. 오아시스였다. 어두운 밤하늘에 거리낌 없이 집집마다 불이 켜져 있었고 저녁 밥상을 차리는 내음과 기척이 보였다. 사무엘은 집들 가운데 하나 찾아내어 놓고는 “신세 좀 지겠습니다.” 하며 양해를 구했다. 젊은 집주인 내외는 박대하지 않고 오히려 온순(溫順)한 성품으로나마 따뜻하게 맞이했다. 약소하게나마 저녁을 차리며 “준비한 게 별로 없지만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안주인이 상냥하게 대접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식탁에 모여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서도 화제는 떠올랐다. 바로 다름 아닌 삼손이라는 판관의 거취(去就) 문제였다. 사무엘은 하룻밤을 잤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융숭한 대접과 온기를 듬뿍 받아 젊은 가족들을 위해 축복하고 성소(聖所)로 향했다. 성소로 향하는 사무엘의 눈동자는 더없이 빛나고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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