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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욱
[보덕] 암투(暗鬪) 제08화
4월, 조선왕 달문단군에게 인수군의 땅을 바쳤다. 그동안은 대동군의 지역을 부분부분 바쳤었다. 인수군을 바친 대가로 조선왕으로부터 칠십만 냥을 받아냈다. 이후 그동안 얼어붙었던 정세가 수그러들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태평성대라고 노래하니 오랫동안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됐다. 달문단군 재위 31년 이덕 16년 단원군 지역을 조선왕 달문단군에게 바쳤다. 단원군을 바친 대가로 조선왕으로부터 팔십만 냥을 받아냈다. 달문단군 재위 32년 이덕 17년 경복군 지역을 조선왕 달문단군에게 바쳤다. 경복군을 바친 대가로 조선왕으로부터 구십만 냥을 받아냈다. 달문단군 재위 33년 이덕 18년 신화군 지역을 조선왕 달문단군에게 바쳤다. 신화군을 바친 대가로 조선왕으로부터 오십만 냥을 받아냈다. 달문단군 재위 34년 이덕 19년 삼화군 지역을 조선왕 달문단군에게 바쳤다. 삼화군을 바친 대가로 조선왕으로부터 사십만 냥을 받아냈다. 이로써 네 지역은 조선국의 영토가 되었다. 이들 다섯 지역의 백성들이 선사국으로 돌아왔다. 그 행렬이 오천 리를 넘는다고 한다. 달문단군 35년 이덕 20년에 왕검단군의 왕릉을 모신 구월산(九月山) 사당에서 장사를 지냈는데 여러 중신(衆臣)에게 이르길, “아침 햇살 먼저 받은 이 땅에 삼신께서 밝게 임하셨고 환인 열성조께서 먼저 법을 내시어 덕을 삼게 하시니 그 덕은 매우 깊고 크도다. 모든 신이 의논하여 환웅님을 보내시어 환인천제의 조칙을 받들어 처음으로 나라를 여셨다. 치우천황께서 청구에서 일어나 만고에 무용을 떨치시어 회수와 태산이 모두 천황에게 귀속되니 천하의 그 누구도 감히 침범할 수 없었도다. 단군왕검께서 하늘의 명을 받드시니, 기쁨의 환성이 구환에 울렸도다. 물고기를 물을 만난 듯 백성들이 소생하고 풀잎에 부는 바람처럼 덕화(德化)가 새로워졌도다. 원한에 맺힌 자는 원한을 먼저 풀어주고 병든 자는 병을 먼저 낫게 하셨도다. 일심으로 인과 효를 행하시니, 사해에 광명이 넘치도다!” 하였다. 달문단군 36년 이덕 21년 정월에 달문단군이 세상을 떠났다. 뒤이어 친척 동생인 양가 한율이 옥좌에 올랐다. 왕이 조문을 표하기 위해 왕족을 대표하여 황슬군의 후손에게 사신으로 다녀오게 했다. 2월에 왕명으로 양주를 새 도읍으로 삼았다. 왕의 정궁을 광흥궁으로 삼고 육조(六曹)의 관청과 의정부와 돈령부와 중추부, 그리고 오위도총부의 청사를 양주로 옮기게 했다. 3월에 충청도 성환도에 역병이 돌았다. 이곳 성환도 백성 이천 명이 죽었으며 삼천 명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왕이 이 소식을 듣자 자신의 부덕함을 뉘우치며 종묘에 나아가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사죄드렸다. 이후의 치세가 태평성대였다. 한율단군 1년 이덕 22년 정월에 왕이 태자에게 대리(代理)하여 청정(聽政)하게 하니, 실질적 왕권은 태자에게 있는 셈이었다. 왕의 갑작스러운 어명에 용승황태후가 “폐위된 왕비의 자식을 태자로 삼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국정을 대리하라니 이 어인 분부(分付)이십니까.” 반대하고 나섰지만, 왕의 뜻이 매우 확고하였다. 황태후를 제대로 모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황태후전에 소속된 궁녀 이십 명에게 책임을 물어 처참(處斬)하도록 명했다. 일이 여기에 이르자 조정 대신들 그 누구도 왕의 뜻에 거스르거나 황태후전에 발길을 하지 않게 되었다. 2월에 황태자가 몸소 충청도 성환 땅에 당도하여 그곳 백성들을 위무(慰撫)하였을 뿐만 아니라 역병을 치료하는데 의흥위 군사 이백 명과 함께 힘을 썼다. 이후 황태자가 국정에 가담하기 시작하자 온 나라 백성들이 큰 기쁨을 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 치세가 태평성대였다. 한율단군 2년 이덕 23년 정월에 왕이 세상을 떠났다. 구화전에서 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세간에서는 복상사(腹上死)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황태후가 이를 엄히 조사하도록 명하니 궁인의 성(姓)이 헌원씨였다. 황태후는 왕을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을 물어 헌원씨를 거처에서 사약을 내려 죽이도록 분부했다. 태자가 왕위에 올라 연호를 희덕(熹德)이라 하였다. 조정 대신들이 모두 일제히 천세― 천천세―하며 불렀다. 왕이 태자의 자리에 올라 선왕의 시호를 생전의 존호와 같이 의종이덕대왕(懿宗二德大王)이라 하였다. 용승황태후는 태황태후로 봉해지고, 선왕의 왕비는 황태후로 봉해졌다. 용승황태후는 천한 피를 가진 새 왕의 즉위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음에 무력감이 들었다. 한때나마 일말의 권세를 가지고자 몸부림쳤던 지난 젊은 날이 있었다. 왕은 이때까지만 해도 성군(聖君)으로 불릴 정도로 선정을 베풀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업원(業)을 얻었기에 내 아드님이 세상을 뜨셨던고.” 즉위식(卽位式)이 거행될 즈음에 쓸쓸한 황태후전 안에서 장차 태황태후가 되실 마마는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후의 치세가 태평성대였다. 희덕 1년 2월에 왕이 돌연 태도를 바꾸었다. 태황태후가 공공연하게 자신을 천한 피를 가지고 있다며 욕되게 한 것에 대해 격분한 왕이 칼부림을 하여 태황태후를 죽인 것이다. 태황태후가 “나부터 죽여라! 나를 죽이면 능히 네 자손들의 씨가 마를 것이다!” 하며 악다구니를 쳤다. 왕이 한번 칼을 벴다. 그러나 태황태후가 바로 쓰러지지 않았다. “나는 당장에 죽어도 여한이 없겠으나, 너 같은 천한 피를 가진 왕의 업적이 천년만년 이어지리라고 보느냐!” 연달아 태황태후를 칼로 베어 죽이었다. 천륜(天倫)을 어긴 패륜(悖倫)이었다. 의정부 대신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밑의 신하들조차도 왕의 극악무도(極惡無道)에 큰 충격을 받았다. 왕이 이에 한술 더 떠서 윤씨 성을 가진 남녀노소를 막론하여 모조리 잡아다 참수하게 하니 그 수가 이백이십오 명이었다. 한양에서 양주로 천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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